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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65)화 (65/500)

65화. 태풍이 온다더니(3)

제인 아일리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제인 아일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해 있었다.

“이야기 다 나누셨나 보네. 리사, 우리도 가자.”

“안 돼.”

“그래, 안…… 된다고?”

윤리타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무시하고는 말했다.

“리타 오빠, 우리 제인 언니한테 가자.”

“영어 쌤한테 가자고? 갑자기 왜?”

“인사하고 싶어서!”

“인사……?”

윤리타는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인 쌤 지금 친구 분이랑 함께 계시는 거 봤잖아. 선생님 시간 방해하지 말고, 다음에 인사하자.”

“아니야, 리사는 못 봤어!”

“윤리사.”

윤리타가 느닷없이 왜 그런 고집을 부리냐는 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제인 아일리를 이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윤리타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제인 아일리는 그녀의 친구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간 뒤였다.

어쩌지?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리사, 윤리오랑 세상이가 지금 우리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나는 입을 나불대고 있는 윤리타에게 곧장 손을 휘둘러 버렸다.

정확히는, 그의 뺨을 향해서.

“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리사랑 같이 제인 언니를 따라가 줘!”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내 손은 윤리타의 뺨에 적중했는데.

쫘악-!

너무 세게 때려 버렸다.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윤리타’입니다.】

그래도 스킬은 제대로 먹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윤리타의 눈치를 살폈다.

“리타 오빠?”

윤리타의 뺨에는 작은 손바닥 자국이 명확하게 찍혀 있었다.

괜히 미안해지네. 하지만, 오빠. 일부러 세게 때린 건 아니야. 정말로.

내게 뺨을 얻어맞은 윤리타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가 싶더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마치, 제인 아일리의 뒤를 안 쫓아갈 거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사라진 쪽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윤리사! 같이 가야지!”

『각성, 그 후』에서 윤리타는 제 기척을 숨기는데 있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면모를 보인 각성자였다.

그야말로 은신의 달인.

지금, 열일곱의 윤리타가 『각성, 그 후』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제인 아일리와 그녀의 친구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이.

그때.

“너희,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등 뒤에서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제인 아일리의 친구.

유랑단 아홉 탈 중 하나인 할미는 윤리사와 윤리타의 기척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왜지? 왜 따라오는 거지?’

느껴지는 기운으로 추측한 건데, 상대는 어린 아이 하나와 성년이 되기 전의 아이 한 명이었다.

할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제인 아일리는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중이라고 했지. 그 제자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어린 아이는 왜 따라오는 거지? 또한, 제자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선생의 뒤를 몰래 쫓는 건 무슨 경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꽤나 귀찮은 존재들인 것 같았다.

‘처리할까?’

할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옆에 위치한 대로를 흘긋거렸다.

왕복 8차선의 넓은 대로 곳곳에 한(恨)을 품은 영혼들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자신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할미는 그 중 하나의 원한을 이용하고자 손가락을 까닥였지만.

-안 돼, 곧 영(影)의 아이가 올 거다.

-키힉… 히히힉…….

-설아, 착한 설아. 우리 말을 듣고 멈춰요. 아니면 큰일이 날 거예요.

사방에서 속닥거리는 영적 존재들의 목소리에 할미는 손짓을 멈췄다.

‘영(影)의 아이라니?’

할미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 곁에서 걷고 있던 제인 아일리가 걱정스레 물었다.

“설아? 왜 그래요?”

할미는 능숙하게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문득, 몇 달 전에 겪었던 불쾌한 일이 떠올라서요.”

“불쾌한 일이라니요?”

“별거 아니에요. 오랫동안 공을 들여 가꾸어 놨던 곳을 누가 망쳐놓았었거든요.”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인 아일리는 그 말에 놀란 눈을 보이고는 걱정스레 말했다.

“도대체 누가요? 누가 설아가 애써 가꾼 곳을 망가뜨린 거예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괜찮아요, 제인. 다시 가꾸었고, 인제 풍족하게 만들면 되거든요.”

“정원이라도 가꾸고 있나 봐요?”

“그런 셈이죠. 지금 제인을 데리고 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에요.”

제인 아일리가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초대해 줘서 영광이에요. 설아. 덕분에 울적했던 기분도 풀렸는데, 가꾸고 있는 정원까지 흔쾌히 보여 주겠다니…….”

“친구니까요.”

할미가 간단히 대답하고는 제인 아일리에게 팔짱을 끼려던 때였다.

등 뒤에서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아빠!”

뒤를 쫓고 있던 아이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음? 잠깐만요, 설아.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서…….”

제인 아일리가 고개를 돌렸고, 할미도 그녀와 함께 몸을 돌렸다.

도대체 어떤 애새끼들이 겁도 없이 뒤를 밟았는가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어머, 윤사해 길드장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웬수와 다름없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는 입술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

망했다! 순조롭게 제인 아일리와 그녀의 친구의 뒤를 밟고 있었는데, 윤사해가 등장하다니!

제인 아일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알은 척을 해 왔다.

“안녕하세요, 윤사해 길드장님.”

제인 아일리가 윤사해에게 인사를 하는 틈을 타서, 윤리타와 함께 ‘나는 당신 자식 아니올시다’를 시전하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얘들아.”

윤사해에게 붙잡혀 버렸다.

윤사해는 나를 안아들고는, 윤리타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잡았다. 그러고는 제인 아일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보다 저인 것은 어떻게 알아차리셨는지?”

윤사해의 얼굴 위로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연기가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바꾸고 있었나 보다.

나랑 윤리타는 잘만 윤사해를 알아봤는데 말이지, 우리한테는 통하지 않나?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제인 아일리가 넉살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남들보다 좋은 눈을 가지고 있어서요. 웬만한 변장은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거든요.”

제인 아일리는 통찰 계열의 각성자였나 보다.

“하지만 사실 리오랑 리타 아버님이 정말 맞나 긴가민가했어요. S급 각성자셔서 그러신가?”

“그래도 스킬을 꽤 능숙하게 다루시나 보군요.”

“쓸 만한 스킬이 이것뿐이거든요.”

제인 아일리가 너스레를 떨고는 미소를 그렸다.

“애들이랑 장보러 나오셨나 봐요?”

“그건 아닙니다만…….”

윤사해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면서 나와 윤리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윤사해가 그런 우리들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는 친구랑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여기.”

제인 아일리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친구’라는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설아라고 해요, 윤설아.”

제인 아일린의 소개에 윤설아가 윤사해를 향해 고개를 꾸벅거렸다.

“안녕하세요, 윤사해 길드장님. TV에서만 뵙던 분인데,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네요.”

윤설아.

나는 제인 아일리의 친구라는 사람의 이름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나중에 [C+F=검색창] 스킬로 그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니다, 지금 몰래 해 볼까?

내 시스템 창은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나는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윤설아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눈이 내 발 끝을 한 번 바라보더니 시선을 머리끝으로 향했다. 그러다 나와 눈을 마주친 윤설아는.

싱긋, 무표정 위로 미소를 그리며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러기 무섭게 오한이 찾아온지라,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윤사해의 품을 파고들었다.

윤사해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꼭 안아 주었다.

“그보다 함께 저녁을 먹은 뒤로, 리오의 수업 태도가 너무 좋아진 거 있죠?”

“그렇습니까?”

“네, 앞으로도 그래 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에요!”

“제가 열심히 타일러 보겠습니다.”

C-마트 앞에서 학부모 면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리타는 어떻습니까?”

“리타야 언제나 수업 태도가 좋죠! 성적이 그만큼 비례하지 않아서 문제지.”

윤리타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 윤리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래도 같이 뒤를 쫓아 달라고 뺨을 때렸을 것 같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윤설아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제인 아일리에게 속닥거렸다.

“제인, 미안하지만 먼저 가 봐도 될까요? 갑자기 급한 연락이 와서…….”

“헉, 그럼요! 급한 연락이라면 가 보셔야죠! 정원은 다음에 구경시켜 줘요, 설아.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윤설아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면서 알겠다고 답한 후,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윤사해가 윤설아의 뒷모습을 보았다.

“제가 괜히 친구분과의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요.”

“아니에요! 설아가 하는 일이 워낙 바빠서요. 종종 저래요.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제인 아일리에게 물었다.

“저 언니가 하는 일이 뭔데요?”

“리사.”

“왜에! 리사는 궁금하단 말이야!”

윤사해가 내 칭얼거림에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제인 아일리 역시 난처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서 어쩌죠, 리사? 설아가 하는 일은 저도 잘 몰라요. 다만, 부르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언제나 바쁘다는 거? 그것만 아네요.”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제인 아일리는 내가 보인 미소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이내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도 이만 가 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리오 리타 아버님. 리사, 조심히 들어가요. 리타도.”

윤리타가 황급히 고개를 꾸벅였고, 윤사해는 귀한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나는.

“잘 가요, 언니! 다음에 또 봐요!”

그때는 그 친구라는 분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 하네요!

뒷말을 삼키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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