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해바라기도 결국은 지나(1)
서차윤의 말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나랑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니?
“아저씨, 여기서 죽으셨다고 했잖아요. 혹시, 죽을 때 유언 같은 거 못 남기고 죽으셨어요?”
“뭐……?”
서차윤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대가 ‘서차윤’만 아니었다면, 미남을 웃겼다는 것에 뿌듯해하고 있었을 텐데.
“유언이라, 유언.”
서차윤이 입가를 매만지고선 키득거렸다.
“설마, 죽을 때 유언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서 너랑 이렇게 대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 못하고 죽은 게 한이 됐을 수도 있잖아요.”
“너 자꾸 나 귀신 취급 할래?”
“귀신 같은 거로 취급 중이에요.”
서차윤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한 마디도 안 지지?”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는 혀를 날름거려 주었다.
윤사해가 봤다면 기겁할 만한 광경이었지만, 지금까지 서차윤과 나눈 대화로 보건대 나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나참, 기가 막혀서.”
서차윤은 나를 위협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
지금도 봐봐, 골이 당긴다는 듯이 뒷목만 잡고 있잖아.
저러다 고혈압으로 한 번 더 죽일 것 같아서, 나는 서차윤을 놀리는 것을 멈췄다.
대신 궁금한 것을 하나 더 물어보았다.
“그럼, 아저씨. 여기서 죽었다고 해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텐데 왜 계속 여기에만 있어요?”
그리고.
“어차피 아빠랑 오빠들은 아저씨 못 본다면서요?”
내가 던진 질문에 서차윤이 굽혔던 무릎을 바로 펴고는 별장이 있는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차윤은 그렇게 한참동안 말없이 윤사해와 그의 아들들이 있는 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음대로 생각해.”
들려온 대답은 싱거웠다.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나는 다시 시작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란 거야.”
아니, 싱거운 줄 알았다.
뒤이어 들린 말에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다시, 시작한다고요?”
“그래. 네 오빠들을 서커스에 넘겨주고, 나는 그거 때문에 사해한테 죽고. 뭐 이런…….”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서차윤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애한테 지금 뭘 말해 주고 있는 거람? 암만 네가 미쳤어도 할 말, 못 할 말은 구분해야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리사는 애가 아니에요.”
“그래, 알맹이는 애가 아닌 것 같아. 알맹이가 애라면 지금 몇 번은 울었어야 했는데.”
“헉, 아저씨는 리사가 울었으면 해요? 못됐다!”
서차윤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나만 더 말해 주세요.”
“싫어.”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지만, 나는 이번에도 굳게 믿을 수 있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한테 그런 건, 아저씨가 원했던 거예요?”
서차윤에게서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것을.
내가 던진 질문에 서차윤이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서차윤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제 손으로 덮고는 울먹였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사해한테는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지 마.”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나는 다시 시작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란 거야.’
빙의자인 내가 있고, 회귀자인 저세상이 있는 세상이었다.
서차윤은 어떤 ‘존재’이려나.
내리는 비에 서차윤의 어깨가 젖어들고 있는 게 보였다.
투병하게 배경을 비추고 있던 그의 몸은, 살아 있는 사람과도 같이 변해 있었다.
나는 쥐고 있던 우산을 서차윤에게 내밀며 말했다.
“안 말해요.”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 있는 꽃밭에서 주저앉아 울먹이던 서차윤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될 일 없을 거예요. 절대로.”
내리는 비에 서차윤의 얼굴은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울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서차윤의 손에 억지로 우산을 쥐여 주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성불하세요.”
“……윤리사.”
서차윤이 내 이름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리고는 키득거렸다.
“나는 귀신이 아니라니까?”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건넨 우산을 꼭 쥐었다.
***
오랜 친구를 배신하는 일 따윈, 서차윤이 단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윤사해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윤사해는 죽을 운명이었다.
‘혹은 아이들이 죽거나.’
때문에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때마다 서차윤은 윤사해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해야……?’
윤사해가 눈앞에서 죽어 버리는 일 따윈,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니.
또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해 무너지는 모습 역시도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서차윤은 몇 번이고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때마다, 이를 인지할 때마다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찾은 방법이 윤리오와 윤리타, 윤사해의 쌍둥이 아들들을 서커스에 넘겨주는 것.
그게 바로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설계된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비록, 아이들 중 한 명은 필연적으로 나락의 길을 걷게 되는 시나리오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차윤은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윤사해와 그의 아이들을 최대한 오래 살아남게 만들기 위해서.
‘이후에 태어나는 아이는 내게 없는 아이로 치자.’
윤리사.
일곱 살의 봄날을 넘기지 못하고 꼬박 죽어 버리는 아이.
서차윤은 단 한 번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의 이름을 배제하고서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말해, 서차윤.’
그 과정이 굉장히 끔찍하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서차윤은 내색할 수가 없었다.
‘제발, 말해. 협박받은 거라고.’
끝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였다.
잡힌 멱살에 숨통이 조여 왔지만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눈앞의 남자가 두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비는 광경이 낯설어서일 거다.
“누가 네 동생을 가지고 장난질이라도 쳤어?”
“웃기네, 사해야. 내가 차웅이 걔를 동생으로 여긴 적 있어?”
어떤 때는 동생으로 여긴 적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서차윤에게 있어서 혈육이 중요치 않게 된 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사해야, 나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에 서차윤은 키득거렸다.
“협박 같은 거 받은 적 없어.”
제 멱살을 틀어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서차윤이 그 손등 위를 제 것으로 덮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나는 몇 번이고 네 아이들을 노릴 테니.”
가장 소중한 친구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서차윤은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윤사해의 창이 제 심장 부근을 찔렀을 때였다.
“그런데, 사해야…….”
제발, 부탁이니까.
“오래오래 살아남아.”
서차윤이 남긴 말에 윤사해는 다시 한 번 더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
바로 지난 회차의 기억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기억인지 모르겠다.
서차윤은 회고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제게서 멀어지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리사.”
거센 빗줄기에 제 목소리를 들었을까 했더니, 다행히도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윤리사.
일곱 살의 봄날을 단 한 번도 넘긴 적 없던 아이가 저를 보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말할 거 있으면 빨리 말해요! 리사 지금 비 맞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잘 보이는데.”
“그럼 빨리 말해요! 이러다 감기 걸리면 아저씨가 책임지실 거예요?”
“괜찮아,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걸리면 아이는 ‘개’만도 못한다는 말이었다.
아이가 서차윤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리고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아이의 얼굴에 서차윤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가 눈 뜬 곳은?”
“엄마 배 속인데.”
“장난치지 말고.”
아이가 비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는 말했다.
“던전이요.”
서차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아이는 내리는 빗속에 그 놀란 얼굴을 보지 못하고서 말을 이었다.
“저세상이 공략했어야 할 던전.”
우산을 쥐고 있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서차윤이 가하는 힘에 우산의 연약한 손잡이가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이 아슬아슬해졌다.
그 모습에 서차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손에서 힘을 뺐다.
‘안 되지, 안 돼.’
아이가 준 선물을 함부로 부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차윤은 그렇게 동요하는 마음을 잠재우고는 입을 열었다.
“윤리사.”
“아, 또 왜요!”
서차윤이 눈웃음을 지었다.
“오래오래 살아남아.”
들린 목소리에 꽃밭을 빠져나가려던 아이가 코웃음을 쳤다.
“리사는 아빠랑 오빠들이랑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 거거든요!”
아이는 그렇게 걸음을 돌렸다.
서차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해바라기 꽃들 사이로 사라진 아이의 뒷모습을 쫓다가 별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이 꺼져 있던 별장의 곳곳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떡하니, 우리 리사. 혼나겠네.”
서차윤이 키득거리고는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보다 던전이라…….”
서차윤의 두 눈이 차가우리만치 가라앉았다.
‘저세상이 공략했어야 할 던전.’
윤리사가 말한 던전은, 아이가 수도 없이 죽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왔다고?”
서차윤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가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인사하러 가 볼까? 다시 시작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만나러 가도 되겠지.
빌어먹을 이야기를 끝에서부터 몇 번이고 되돌린 새끼를.
서차윤은 그렇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선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