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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53)화 (53/500)

53화. 초여름에 드는 무렵(3)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아침.

나는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에 없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다가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예랑 단아가 유치원에 아직 안 왔다고?”

“응!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이야기 들었는데, 단예랑 단아네 할아버지가 오늘 못 보낸다고 했대!”

단예한테 팔라크의 둥지에 관해 한태극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슬쩍 떠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

나는 도윤이의 옆에 풀썩 앉고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단예랑 단아,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아니, 단예랑 단아네 할아버지가 그냥 집안일 때문에 유치원에 못 보낸다고 그랬대.”

집안일은 핑계고, 단예랑 단아가 위험해질까 봐 유치원에 보내지 않은 걸 거다.

팔라크의 둥지가 무엇을 품었는지 대중에게 알려지면, 세상이 꽤 들썩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애들이 아픈 건 아니라니 다행이다.

“그럼, 도윤아! 오늘은 우리끼리 놀자!”

“응, 리사!”

오늘뿐만이 아니라, 당분간은 도윤이랑만 놀게 될 것 같았다.

‘도윤이랑 단둘이서만 노는 게 불만은 아니지만…….’

단예랑 단아가 없으니 왜인지 모르게 허전했다.

‘애들도 내가 없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같은 기분을 느꼈던 거면 좋겠다.

그 사이 장난감이 놓인 곳으로 간 도윤이가 내게 물었다.

“리사, 레고로 팔찌 만들면서 놀래? 어때?”

“리사는 좋아!”

도윤이가 내 말에 레고가 가득 담긴 상자를 그대로 가져와서는 내게 말했다.

“아, 맞아! 아빠가 오늘 고기 사 준다고 같이 저녁 먹자고 했어!”

“저녁?”

“응! 리사네 형들이랑 다 같이 저녁 먹자고 하던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아빠는?”

“아저씨는 모르겠어.”

아무리 백시준이 고기를 사 준다고 해도, 윤사해 없이는 싫은데.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소고기 사 준다고 했어! 1등급 한우!”

“좋아! 리사는 아저씨랑 같이 저녁 먹을래!”

소고기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빠, 미안. 그래도 1등급 한우라는데 아빠가 이해 좀 해 줘.

***

CW(Clock Work).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소유한 ‘기업’이자, 던전 등과 관련된 국내의 각종 연구에 있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길드’인 곳.

이곳에 달갑지 않은 방문객이 찾아왔다.

장천의가 마주앉아 있는 남자를 보며 웃는 낯으로 물었다.

“고객님? 오랜만입니다만, 저를 왜 찾아오셨습니까?”

“자네가 리오의 중학교 입학 선물로 준 것 말이네.”

“리오 군의 중학교 입학 선물이요……?”

장천의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위급 상황 발생 시에 위치 추적 기능이 달려 있는 팔찌 말입니까?”

“그래, 그것 말이네.”

“팔찌 때문에 찾아오신 거라니! 저는 심각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장천의가 능청스레 웃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고장이라도 났습니까?”

“아니, 하나를 새로 맞추고 싶어서 찾아왔네. 시중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물건이더군.”

“리사 양의 것을 맞추려고요? 하지만 리사 양은 리오 군으로부터 팔찌를 물려받은 것 같은데…….”

장천의가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후원을 자처한 아이의 것을 원하나 보군요?”

윤사해가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장천의가 태블릿을 들었다.

“아이는 잘 지냅니까? 이름이 꽤 특이하다던데요.”

“자네라면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윤사해가 고요하게 장천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의 뒷조사를 하지 않았었나?”

CW 내에 마련되어 있는 VVIP 전용 응접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서 장천의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은 그대로 묻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객님? 어차피 아이는 고객님의 손에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를 ‘물건’으로 여기지는 말아 줬으면 하는데.”

불편함을 내비치는 목소리에 장천의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네, 제가 말실수했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CW는 이매망량과 함께 4대 길드라고 하여, 국내 제일이라고 여겨지는 길드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해도 윤사해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었다.

때문에 장천의는 윤사해에게 곧장 사과한 후에 능숙하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원하는 색상이나 디자인 있으십니까? 손목 둘레는 말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아이의 손목에 자동으로 맞춰지는 거라.”

“색상은 보라색으로, 디자인은 애들이 좋아할 법한 것으로 알아서 해 주게.”

장천의가 윤사해의 주문에 맞춰 태블릿의 화면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윤사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장천의 회장,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태블릿의 화면을 두드려대던 장천의의 손이 멈추었다.

“내가 맡기로 한 이상, 나는 그 아이를 내 아이처럼 대할 걸세.”

“암요. 그러시겠죠.”

장천의가 눈웃음을 지었다.

“더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테니, 괜한 경고를 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장천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윤사해에게 태블릿 화면을 보여 주었다.

“디자인은 이렇게 가려는데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윤사해가 화면에 그려진 것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그럼, 팔찌가 완성되면 찾으러 오겠네.”

그러고는 더는 볼 일이 없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객님.”

장천의가 그런 윤사해를 붙잡았다.

“언제 한 번 저녁이나 같이 드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필요 없네.”

“너무하십니다, 정말.”

윤사해는 칭얼거리는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진작 찾아왔어야 하는 곳인데, 그간 일이 바빠 계절 하나가 지난 다음에야 방문하게 됐다.

‘빌어먹을 장사치지만, 똑똑한 녀석이니 경고를 알아먹었겠지.’

자신이 후원을 자처한 아이.

왜 저세상이 대한민국 4대 길드 중 하나인 CW의 관심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윤사해는 장천의가 아이의 뒤를 캤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후로 다시금 아이의 뒤를 캐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윤사해는 저세상의 팔찌를 핑계 삼아 CW를 방문한 거였다.

그렇게 그가 CW의 본사 건물을 나서려고 할 때,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서 비서인가?”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서차웅이 아니었다.

[백시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이름에 윤사해는 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뭔가 이상한데.’

왠지 기분이 싸해져서 결국 친구의 전화를 받고 말았다.

“별 일 아니면 끊어.”

-아빠? 끊을 거야?

“리사……?”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에 윤사해가 황급히 휴대폰의 화면에 뜬 이름을 다시금 확인했다.

화면 위의 이름은 여전히 얼굴도 보기 싫은 제 친구의 것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윤사해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아빠?

“응? 어어, 아빠 여기 있단다. 그런데, 아가.”

-응!

“왜 그 자식이랑 같이 있니?”

아이 앞에서는 말조심.

윤사해의 인생 모토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

그 자식……?

나는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는 백시준을 쳐다봤다.

-아가? 리사?

“그게 말이야, 아빠. 시준이 아저씨가 고기 사 준다고 했거든!”

“소고기!”

도윤이의 말에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맞아, 소고기! 1등급 한우!”

휴대폰 너머로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서 말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세상이 오빠도 지금 같이 있어!”

-리오랑 리타, 세상이까지 같이 있다고? 백시준, 이 자식이……!

백시준이 휴대폰을 넘겨 달라는 손짓을 내게 보냈다.

네, 휴대폰 여기 있습니다. 지갑님. 아니, 시준이 아저씨.

“여보세요? 사해야?”

윤사해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른 백시준이 곧장 휴대폰을 제 귀에서 떼어냈다.

-……!

험악한 욕설이 들리는 것 같지만 내 착각이겠지.

백시준은 한참 후에야 다시 휴대폰을 제 귀에 붙이고서 말했다.

“고깃집 주소는 메시지로 보내 놓을 테니까 알아서 와. 애들 데리고 먼저 가 있을게.”

그러고는 윤사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우웅,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백시준은 그것을 무시하며 싱긋 웃었다.

“얘들아, 사해는 알아서 온다니까 우리도 가 보자. 시진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거든.”

그 말에 윤리오가 쭈뼛거렸다.

“죄송해요, 아저씨. 뭔가 계속 얻어먹는 거 같아서.”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리고 나한테 얻어먹은 거라고는 일전에 피자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요…….”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백시준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미안하면, 다음에 만날 때는 ‘아저씨’ 말고 ‘삼촌’이라고 불러 줄래?”

“네?”

“시진이한테는 그렇게 불러 주는 것 같아서.”

백시준의 말에 윤리오가 난처하게 웃으며 목 언저리를 긁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시준이 삼촌!”

윤리타의 말에 백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백시준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도윤이가 한 손을 들고서 방긋 웃었다.

“아빠! 나도 그렇게 불러 줄 수 있는데!”

“도윤이는 안 돼.”

그렇게 말하더니 백시준은 도윤이를 안아들었다.

“그럼, 갈까?”

우리는 그렇게 백시준의 뒤를 따라 동네에서 제일가는 고급 한우집에 도착했다.

“형, 왔어? 늦었네.”

“늦으셨네요, 아주버님.”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방에는 백시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영어 쌤……?”

“리오, 리타. 안녕하세요. 학교 밖에서는 처음 보네요.”

제인 아일리.

『각성, 그 후』에서는 악령이 되어 백시진을 죽였던 그의 여자 친구도 함께였다.

그런데 뭐라고요? 영어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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