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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5)화 (45/500)

45화. 폭풍우 치는 날에(2)

콰과광-!

폭발음과 함께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다.

“윽!”

구교사로 향하던 윤리타가 몰아치는 바람에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하늘 위를 쳐다봤다.

그러나 보이는 건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로 인해 시야가 방해되기만 했을 뿐이다.

“망할.”

윤리타가 짜증스레 눈가에 맺힌 빗물을 닦아낼 때였다.

발목을 잡아 끌어당기는 무언가에 윤리타의 몸이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었다.

“엇……!”

그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박힌 돌에 머리를 박는가 싶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이 들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레 일어난 일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가 않았다. 윤리타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아빠?”

윤사해가 윤리타를 안고 있었다. 윤사해는 그를 꼼꼼하게 살피며 물었다.

“다친 곳은.”

“어, 없어요. 내려 주셔도 돼요.”

더듬거리는 말에 윤사해가 크게 안도하는 얼굴로 윤리타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윤사해의 아래서 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제각기 다른 곳으로 향하는 그림자에게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다들 어디서 뭣들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일들 해 줬으면 하는데. 아니면 시말서라네.”

그러기 무섭게 사방에서 폭음과 고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빗소리에 많이 묻혔지만, 분명 누군가 싸우는 소리들이었다.

“아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애들은요?”

불안해하는 윤리타에게 윤사해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은 걱정하지 마렴, 리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윤사해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고는 애매하게 미소를 지었다.

답을 얼버무리는 모습에 윤리타가 입술을 꾹 깨무는 순간, 그에게 있어서 반가운 목소리가 나타났다.

“길드장님! 리타도 있었네?”

“화홍이 형?”

윤리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윤사해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을 보였다.

“드디어 나타났군, 류화홍 헌터.”

“하핫, 그게 말이에요…….”

류화홍이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는지는 나중에 묻도록 하지.”

그러니까 나중에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류화홍이 이를 알아듣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윤사해가 그런 길드원을 무시하며 걸음을 돌렸다.

“그럼, 리타를 부탁하겠네.”

윤리타가 걸음을 옮기려는 윤사해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어디 가시려고요? 저도 같이 가요, 아빠!”

윤사해가 자신을 붙잡은 아들의 손을 애써 떼어내고는 말했다.

“리오를 데리고 돌아오마, 리타. 동생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으렴.”

윤사해는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아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

눈앞에 드러난 모습에 윤리오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덮친 바람이 가시기 무섭게 펼쳐진 광경은, 붉은 천막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피에로 인형들이었다.

-리오야.

-놀자, 리오야.

-리오야.

주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사방을 채우고 있다. 윤리오가 두 귀를 틀어막고는 이를 딱딱 부딪쳤다.

“닥쳐, 제발 닥치라고.”

윤리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사방에서 들려오던 웃음소리가 어느 순간 끊겼다.

“……?”

윤리오가 파르르 입술을 떨며 두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러기 무섭게 붉은 천막에 달려 있던 조명이 누군가를 비추었다.

“오랜만입니다, 리오 군.”

조명 아래서 나타난 사람을 보자 윤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자 장수.”

“오, 기억해 주고 계셨군요. 저를 잊으셨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서커스의 주인, ‘모자 장수’가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윤리오의 표정은 음식물 쓰레기라도 삼킨 듯이 썩어 들어갔지만 말이다.

모자 장수.

서커스에 납치를 당했을 적, 그와는 식사 때마다 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해야 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던 음식들을 제 앞에 들이밀어 넣고는.

‘드십시오, 성장기 아이는 잘 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히죽거리며 말했었다.

윤리오가 파르르 떨리는 손을 주먹 쥐고선 입을 열었다.

“죽여 버릴 거야.”

“흐음, 시간이 많이 지나기는 했나 봅니다.”

모자 장수가 키득거렸다.

“제 기억 속의 리오 군은 벌벌 떨면서 아빠에게 보내 달라고 울기만 하던 어린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윤리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자, 모자 장수가 즐겁다는 듯이 그를 계속해서 놀렸다.

“그런 말도 하실 줄 알게 됐다니, 세월 참 빠른 것 같지 않습니까?”

“닥쳐.”

윤리오가 검 한 자루를 쥐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비나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것을 처음으로 다행스러워하는 중이었다.

국내 제일의 각성자 교육 기관.

비나리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든 무기를 꺼내 이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었다.

자신을 향해 검을 치켜든 윤리오의 모습에 모자 장수가 느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포르말린(formalin)이라는 수용액을 아십니까? 시체를 보존하는데 쓰이는 건데…….”

끝을 흐린 목소리가 선명하게 이어졌다.

“거기에 리오 군이 절여지면 참으로 아름답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미친놈.”

진심에서 우러나온 목소리였다.

새된 욕설이 들려오자, 모자 장수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리오 군의 동생 분들이 대체재로 쓰여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건들기만 해 봐.”

윤리오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선 입을 열었다.

“리타와 리사, 세상이까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들, 그리고 새로이 맞이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윤리오는 이를 으득 깨물었다.

“내 동생들 건들면 무조건 죽여 버릴 거야.”

그가 건넨 경고에 모자 장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수그러들었을 때, 모자 장수는 쥐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타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린 아이 하나가 그의 품으로 떨어졌다.

“응……?”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칼을 가지런히 묶고 있는 아이.

놀란 듯 둥근 눈매의 보라색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윤리오가 희게 질린 얼굴로 소리 질렀다.

“리사!”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모자 장수가 아이의 말간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자, 어떻게 죽여 주실 건지?”

***

이 미친 새끼는 뭐야?

어깨에서 일어났던 통증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엉뚱한 곳으로 이동이 되고 말았다.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리오 오빠?”

윤리오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손 모아 검을 쥐고서 말이다.

잠깐만, 검이요?

오라버니, 왜 저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계신가요?

아니, 아니다.

윤리오는 나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있는 게 아니라…….

“리사를 놔 줘, 빌어먹을 새끼야! 네가 원하는 건 나잖아!”

내 뺨을 두드리는 남자를 향해 검을 들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데굴 굴러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피에로 인형들.

조명 아래서 섬뜩하게 웃고 있는 인형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서커스.”

빌어먹을 서커스의 주인께서 나를 인질로 삼아 윤리오를 위협 중인가 보다. 악질적이기도 하지.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준 사람은 선비 새끼겠지? 나를 이렇게 이동시킬 수 있는 각성자는 그 새끼밖에 없는데.

그것도 아니면…….

‘저런, 길을 잃었습니까?’

그때 뭔 짓을 당했나 보다.

안 그래도 어깨에서 이는 통증이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설마 스킬에 걸렸던 거야?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고는 남자를 노려봤다.

내 뺨을 두드리고 있는 남자는, 윤사해를 잃어버렸을 때 마주쳤던 남자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가 윤리오를 향해 히죽거렸다.

“동생 분을 건들면 죽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리오 군? 그런데 지금 당신을 보세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윤리오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그런 그를 보며 키득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그 점은 어릴 때와 똑같군요.”

이 자식이 지금 누구의 어린 시절을 입에 올리는 거야?!

나는 내 뺨을 일정하게 두드리고 있는 남자의 손가락을 콱 깨물고는 소리 질렀다.

“리사 놔 줘!”

일곱 살 몸뚱이로 뭘 할 수 있을까 했더니, 어른의 뺨을 때릴 수가 있었다.

일곱 살한테 개기면 어떻게 되는지 리사가 확실하게 보여 줄게.

나는 있는 힘껏 남자의 뺨을 때리고는 윤리오를 향해 달려갔다.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입니다.】

남자에게 스킬이 제대로 먹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사!”

윤리오가 기겁하며 나를 안아들었다. 그러기 무섭게 남자에게 걸린 ‘내 말이나 들어라!’가 풀렸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 하하. 하하하!”

남자가 미친 듯이 웃는가 싶더니 두 눈을 번뜩거리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내비치는 살기에 윤리오가 나를 황급히 안아들며 다리를 움직였고.

콰직-!

그 순간, 우리가 있던 자리에는 여러 개의 단검이 꽂혔다.

“미친 놈…….”

윤리오랑 나를 죽일 생각이야?

윤리오는 곧바로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를 꼭 끌어안고서 말이다.

“미안해, 리사.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리오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실성한 듯 거듭 사과하는 윤리오의 모습에 나는 빼액 소리 질렀다.

“리오 오빠!”

정신 차리라고, 윤리오의 이마를 빡― 소리 나게 때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윤리오는 정신을 차린 듯, 사과하는 것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마주친 시선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리사는 괜찮아.”

윤사해를 닮은 두 눈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그의 이마에 얼굴을 맞대고선 말했다.

“리사는 지금 리오 오빠랑 함께고.”

그리고.

“아빠가 곧 구하러 올 테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지금도 봐봐, 저기 천막이 찢기고 있잖아.

응? 잠깐만. 저거 찢기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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