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폭풍전야(4)
한 학년에 100명 남짓.
교원까지 합치면 450명 남짓의 비나리 고등학교는 때 아닌 인파로 우글거리는 중이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윤리오가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사람 너무 많아. 벚꽃이나 보러 갈 것이지, 학교에는 왜 왔대?”
청해진이 윤리오의 옆에 걸터앉고는 답했다.
“다들 궁금했나 보지. 우리 학교가 명성에 비해 워낙 폐쇄적이잖냐. 이번 축제로 학교 구경하러 온 거 아니겠어?”
청해진의 심드렁한 대꾸에 윤리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둘을 짜증스레 부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너희 둘! 그렇게 있지만 말고 홍보 좀 하고 와!”
1학년 A반의 반장, 서유람이었다.
그 목소리에 같은 반 소속인 윤리오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가 가게야? 홍보를 왜…….”
“네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나 청해진이 홍보지를 들고선 윤리오를 얼른 교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무슨 짓이야?”
“반장 성격 알잖아. 괜히 신경 긁지 말고 홍보하고 오자.”
서유람은 승부욕이 강하기로 유명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옆 반에 비해 자신이 반장으로 있는 A반의 매출 실적이 좋지 않아 속이 들끓는 중이었다.
윤리오가 A반 밖으로 풍겨 나오는 음식 냄새에 짧게 혀를 찼다.
“그러게, 봄날에 타코야키를 왜 판다는 거야?”
“친척 중에 타코야키 장사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겸사겸사 장비도 싸게 빌리고 그런 거지.”
청해진의 말에 윤리오가 헛웃음을 흘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윤리타는?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돌아오지를 않네.”
“빨리도 물어본다. 걔 학생회장님이 찾으셔서 나갔잖아. 아무래도 학생회에 붙잡힌 모양인데? 거기 인력 부족이니까.”
그 말에 윤리오가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그 인간은 애를 왜 자꾸 찾는 거야? 그렇게 마음에 들면 제대로 학생회에 데리고 가든가.”
윤리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인파가 비교적 드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윤리오, 어디 가?!”
청해진이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라 붙으며 물었다.
“홍보는?!”
“안 해. 하려면 너나 해.”
“아, 진짜…….”
청해진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리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은지 오래인 구교사였다.
구교사 쪽으로 멀어지는 윤리오의 모습에 청해진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같이 가!”
***
“응……?”
어디선가 청해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청해진을 찾고자 했다.
그를 찾으면 99.9%의 확률로 윤리오와 윤리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청이었는지 청해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건, 축제를 구경 온 수많은 사람뿐이었다.
“리사, 왜 그러니?”
“아니, 그냥 사람이 많아서.”
“그래, 사람이 많으니 아빠 손 꼭 잡으려무나.”
윤사해가 나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된다는 듯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저세상의 손도 꼭 끌어 잡은 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는지, 윤사해는 결국 나와 저세상을 사이좋게 안아 들었다.
쳇, 아버지. 저세상은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망할 주인공님과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거든요!
어쨌든, 비나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학교 한 번 더럽게 크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내 작은 목소리를 저세상이 들었나보다.
말조심하라는 듯이 제 입가를 툭툭 건드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물론, 방긋 웃어 주며 무시했다.
윤사해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저세상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려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저세상을 놀릴 때였다.
“얘들아, 잠깐.”
윤사해가 노점상 앞에 멈춰서더니 우리를 내려줬다.
그러고는 나와 저세상의 손에 솜사탕을 하나씩 쥐여 주고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꼭 누군가를 찾는 모양새였다.
학교 내 잠입해 있는 길드원들을 찾는 건지, 아니면 윤리오와 윤리타를 찾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리오와 리타를 찾기가 힘들구나.”
아들들을 찾던 중이었나 보다.
윤사해가 난처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망할 녀석들도 왜인지 연락이 안 되고.”
‘망할 녀석들’이라면 분명히 길드원들을 말하는 걸 거다.
나와 저세상은 윤사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척, 솜사탕을 열심히 우물거렸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어깨까지 기른 짙은 분홍빛 머리칼을 반으로 묶고 있는 남학생.
여느 학생과 똑같이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비나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학생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부채…….”
남학생의 한 손에 들려 있는 옥색의 부채가 그의 정체를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용왕의 부산물이 왜 내 손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누나? 아니야? 안 궁금해? 이상하다, 궁금해야 하는데.”」
청해솔의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남해 용왕, ‘청(淸)’의 부산물을 흔들어대던 망할 까불이.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인 ‘초랭이’였다.
그의 존재를 떠올리자마자 나는 먹던 솜사탕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초랭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리사?!”
윤사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인파 속이었다.
분명, 청해진을 노리고 학교에 찾아온 것일 테다.
하지만.
“망할.”
축제를 구경 온 수많은 사람에 의해 초랭이를 놓치고 말았다.
잘못 본 건 아닐 테고, 쫓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일단 윤사해한테 돌아갈까?
그런데……!
“아빠?”
윤사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좌우로 열심히 고개를 돌려봤지만 윤사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헐.”
어떻게 하지? 아빠가 나 잃어버렸나 보다.
혼자서 미아 센터라도 찾아가야하나,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는데 어깨 위에 손이 놓였다.
“저런, 길을 잃었습니까?”
순간, 어깨가 화끈하게 타오르는 감각에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누군가 하니, 생전 처음 보는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였다.
“……누구세요?”
나는 화끈거리는 통증이 남아 있는 어깨를 꽉 끌어 쥐고는 주춤거리며 그에게서 물러났다.
남자가 그런 나를 보며 선하게 미소를 지었다.
“위험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꼭 위험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윤사해는 그런 말 한 적 없지마는 말이다. 내 말에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미아 센터가 있는데, 함께 갈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고로 낯선 사람이 보이는 호의는 거절하는 게 상책이다.
아빠, 어디 있어!
모르는 사람이 자꾸 나한테 아는 척 한다고!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시준이 아저씨?”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아저씨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도윤아!”
“리사, 안녕! 봐봐, 아빠! 내 말 맞지? 내가 리사 맞다고 했잖아!”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백시준이 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보호자신가 보군요.”
남자가 백시준의 등장에 고개를 살짝 꾸벅거렸다. 백시준이 그 고갯짓에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봐 주면 감사하겠네요. 아이 아버지와 아는 사이라서 아이는 제가 맡겠습니다.”
백시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리사, 유치원은 어쩌고 여기 있는 거야?”
“그러는 도윤이는?”
“아빠랑 축제 구경하고 싶어서 하루 빠지기로 했어!”
나와 도윤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내게 아는 척을 했던 남자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해는 어디 가고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니, 리사?”
나와 눈을 맞추고서 묻는 백시준의 상냥한 질문에 나는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아빠가 리사를 잃어버렸어요.”
어깨에서 느껴졌던 통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윤리사가 그렇게 백시준을 만나고 있을 때, 아이를 잃어버린 윤사해는 애가 타는 얼굴로 사방에 소리 지르는 중이었다.
“리사! 아가, 어디 있니!”
마음 같아서는 그림자를 부려 아이의 행방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학교 내에 잠입시켜 놓은 길드원들과의 연락이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이미 그 망할 녀석들과 연락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지만.’
윤사해가 이를 으득 깨물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류화홍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서커스, 그 빌어먹을 것들이 아이를 노리는 건 아니겠지. 그 전에 리오와 리타는? 아니, 서커스는 지금 어디에서…….’
윤사해가 복잡해지는 머리에 잔뜩 동요할 때였다.
“아저씨.”
부르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흠칫, 몸을 떨고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윤리사는 괜찮을 거예요.”
윤사해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천천히 호흡하며 불안을 잠재웠다.
아이 앞에서 이 무슨 추한 꼴을 보인 건지.
윤사해가 무릎을 살짝 굽히고선 저세상을 안아들었다.
“미안하구나, 세상아. 아저씨가 못 볼 꼴을 보였지?”
“네? 아니요, 아저씨가 어떤 모습을 보여 주든 상관없는데…….”
저세상이 우물쭈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걔가 매일 차고 다니는 팔찌 있잖아요.”
“팔찌?”
“네, 토끼 인형 그려진 거요.”
저세상의 말에 딸아이가 습관처럼 끼고 다니는 팔찌를 떠올렸다.
장천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리는 것으로도 짜증나는 CW의 주인.
그가 첫째 아들에게 줬던 선물로 기억하고 있다.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려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기에 빌어먹을 장사치가 소중한 아들한테 선물이랍시고 그것을 내밀 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었다.
“장천의 회장에게 연락을 좀 해 봐야겠군.”
윤사해의 입에서 나온 이름 하나에 저세상이 작게 몸을 떨었지만, 윤사해는 그것을 보지 못한 채 폰을 들었다.
그렇게 윤사해가 장천의에게 전화를 하려던 때였다.
“아빠?”
윤사해의 온몸이 절로 굳었다.
“진짜 아빠예요?”
반가움이 담긴 목소리에 윤사해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뻣뻣한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제발, 누군가 자신을 착각한 것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와! 진짜 아빠다! 세상이도 있네? 세상아, 안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윤사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축제 구경하러 오신 거예요? 아니면, 저랑 윤리오 보러? 그런데…….”
윤리타가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리사는 같이 안 왔나 봐요? 하긴, 유치원 가야 하니까 못 왔겠네요.”
딸아이의 꾀병은 쌍둥이 아들들이 축제를 위해 등교하기 무섭게 시작된 거였다.
즉, 아들들은 딸아이가 유치원에 간 줄로만 알고 있을 거라는 뜻.
하나뿐인 딸아이, 윤리사를 잃어버린 윤사해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