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폭풍전야(3)
펑, 퍼벙―!
먹구름 낀 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것을 보며 청해솔은 M모닝을 우물거렸다.
<유영구의 유영길 벚꽃 축제, 성황리에 열려…… 인파로 북적한 유영길.>
<유영길에 만개한 벚꽃…… 인파로 북적.>
아침을 틈타, 그간의 뉴스를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나리 고등학교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의 유영구.
낮이고 밤이고 그림자가 항상 드는 곳이라고 하여 ‘유영(有影)’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그림자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름 한 번 특이하다니까.’
청해솔이 감흥 없는 얼굴로 기사를 훑어보다가 중얼거렸다.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네.”
분명, 비나리 학교의 교내 축제와 함께 열린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요번에 유영구 구청장으로 된 사람이 비나리 고등학교를 엄청 싫어한대.”
그때, 한 남자가 경쾌하게 말하며 청해솔의 옆에 앉았다.
“그래서 학교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기사로 내지 말라고 압박했다던데? 카더라 소식이니까, 너무 믿지는 마.”
청해솔이 제 옆에 앉은 남자의 이름을 심드렁하게 불렀다.
“류화홍.”
“해솔이 여기 있었네? 도서관에 있는 줄 알았더니!”
류화홍이 청해솔의 M모닝 세트에서 감자튀김 하나를 뺏어 먹고는 말했다.
“그래도 축제 첫날에 장천의 회장님께서 귀빈으로 참석하셔서 화제가 됐었나 봐.”
“그 아저씨가 참석했었다고?”
첫날이라면, 축제가 시작된 바로 어제의 이야기일 거다. 청해솔이 기사를 찾고자 했지만 그새 삭제됐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 청해솔은 CW의 길드장인 ‘장천의’와 관련된 기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는 친구에게 물었다.
“세상이인가, 걔는 어쩌고 학교에 온 거야? 수업 들으려고?”
“아니!”
류화홍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말했다.
“리사 아가씨께서 아프시거든. 길드장님께서 직접 돌보겠다고 나는 가래. 그래서 할 일이 없어졌어.”
“할 일 없어졌으면 수업 들으러 가면 되겠네. 너 아침 수업 있잖아.”
류화홍이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너 어차피 선후배 교류전 참석할 거 아니야? 그거 구경갈래.”
“선후배 교류전……?”
청해솔이 미간을 좁혔다.
“그거 취소됐다고 내가 말했던 것 같은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기는?”
청해솔이 콜라를 한 입 들이켜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축제에 ‘선후배 교류전’이 열리지 않는다는 소리지.”
“아니야! 이거 봐봐!”
류화홍이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하나를 청해솔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선후배 교류전에 네가 졸업생 대표로 참석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졸업생들은 자유롭게 행사에 참석해 주시면 된다고 하잖아!”
청해솔이 눈앞에 내밀어진 메시지를 읽어가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받은 게 없는데? 참석한다고 학교 측에 연락한 적도 없고.”
청해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뭐하려고?”
“전화해 봐야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 말에 류화홍이 청해솔의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학교에 가 볼래? 어차피 지금 축제 때문에 바빠서 해솔이, 네 전화 받을 사람 없을걸?”
“너 아침 수업은.”
류화홍이 말해 뭐냐는 듯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그러니까 쨀 거라는 소리였다.
청해솔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가 보자. 그 전에 잠깐.”
청해솔은 먹다 남긴 M모닝 세트를 치우고는 말했다.
“이제 가자.”
“크으! 이 시대의 참된 어른!”
“헛소리하지 말고.”
청해솔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류화홍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화홍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손을 잡고는 곧장 자신이 가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청해솔과 류화홍은 그렇게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지금쯤, 류화홍은 청해솔을 비나리 고등학교로 데리고 갔겠지?
류화홍이 맡은 일을 잘해 주고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 오빠가 워낙에 못 미더워야지.
머리를 데굴 굴리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콜록, 콜록!”
격하게 기침을 터트려 줬다.
“아가, 괜찮니? 많이 아파?”
윤사해가 내 기침 소리에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심스레 나를 안아 들었다.
아버지, 그 ‘아가’라는 소리를 맨날 해 주셨으면 하는데 그건 너무 욕심이겠죠?
나는 괜히 코를 한 번 훌쩍인 뒤에 윤사해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아빠아…….”
“그래, 아빠 여기 있단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황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망할, 계속 안겨 있고 싶다.
하지만 정신 차리자!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윤사해의 목에 팔을 꼭 두르고는 훌쩍였다.
“아빠가 리사랑 같이 오빠들 보러 가면 나을 것 같아.”
“…….”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윤사해에게 말했다.
“안 그러면 내일도 아플 것 같고, 그 다음의 내일도 계속 아플 것 같은데.”
오늘은 축제의 둘째 날.
윤사해는 축제 첫째 날의 귀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사해 대신 참석한 사람이 서차웅이라고 했지?
아무튼, 윤사해는 축제의 첫째 날에 이매망량에 처박혀서 내내 일만 했다고 들었다.
사실, 윤리오가 깨어난 이후로 윤사해는 귀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었다.
하루 한 끼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은 지켰지만, 그럴 때마다 윤리오가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찾아온 비나리 고등학교 축제의 둘째 날.
서커스가 윤리오를, 아니. 쌍둥이를 노리기 최적인 날이다.
그런 날에 윤사해가 비나리 고등학교에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매우 곤란했다.
그러니까 아빠, 나랑 같이 학교 가자! 응?
“멀리서 오빠들만 봐도, 리사는 바로 나을 것 같은데.”
반짝반짝 두 눈을 빛내는 내 모습에 윤사해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옷 입으렴, 리사.”
앗싸!
다행이다. 이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뺨이라도 때릴 생각이었는데!
“아빠 최고!”
나는 윤사해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춰 주고는 옷을 골랐다.
“세상아, 너도 옷 입으렴.”
망할, 역시나 저세상도 함께 데리고 갈 건가 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이제 윤사해는 절대로 아이를 혼자 남겨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원피스를 골라 입고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노란 옷을 차려입은 저세상뿐이었다.
“리사랑 같은 옷 입지 마.”
“이게 왜 같은 옷이야? 너랑 색깔만 같은 거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랑 색깔 똑같은 옷 입지 마. 바꿔 입고 와.”
“싫거든?”
“그럼 나도 싫어.”
저세상이 고개를 홱 돌리고는 퉁명스레 입술을 씰룩였다.
“아프다더니, 순 거짓말이었어. 하긴, 형아들 학교 가자마자 왜 그렇게 앓아눕나 했다.”
“뭐야, 세상이 오빠. 혹시 리사 걱정했던 거야?”
“내가? 너를?”
저세상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땅 밑의 지렁이를 걱정했다고 하지 그래?”
나는 그대로 저세상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다.
“아악! 윤리사!”
“세상아? 무슨 일이니?”
때마침, 윤사해가 옷을 갈아입고는 거실로 나왔다.
저세상이 내게 차인 정강이를 문지르고는 어색하게 웃음을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에 윤사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꾸나.”
“응!”
“네.”
나와 저세상은 사이좋게 윤사해의 손을 하나씩 잡고는 집을 나섰다.
윤사해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 건지, 간편한 차림으로 선글라스 하나를 낀 채였는데…….
“외모를 못 가리네.”
우리 아버지의 얼굴에서 아주 빛이 난다, 빛이 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에 윤사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뭐라고 했니, 리사?”
“아빠가 너무 잘생겼다고 했어!”
내 말에 윤사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집을 나온 후로 내내 잔뜩 긴장한 듯하더니, 그게 조금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보다 윤사해, 사람들의 안면 인식에 혼란을 주는 아이템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야. 왜 굳이 변장 같은 걸 한 거지?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윤사해의 발 아래로 그의 그림자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오…….”
여러 갈래로 길게 뻗었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에 놀라 입술을 오므렸다. 아무래도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자신의 그림자를 움직인 것을 보면, <[S, 숙련 불가] 부리는, 영(影)>을 사용한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스킬을 사용했나 하니, 비나리 고등학교의 정문이 눈앞에 보였다.
‘교내 안의 길드원들에게 연락을 보냈나 보구나.’
하긴, 서커스가 축제 기간에 윤리오와 윤리타를 어떻게 노릴지 모르는 상황.
윤사해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인간이 아니었다.
비나리 고등학교 내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매망량의 길드원이 배치되어 있을까, 궁금해 하던 중이었다.
학교의 정문에 다다른 순간, 교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 중 한 명이 우리 앞을 막아서고는 말했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각성자 분이시라면, 이쪽 디바이스에 코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윤사해가 코드를 입력하자 인증과 함께 디바이스에 윤사해에 대한 간략한 일람이 떴다.
윤사해는 놀란 얼굴의 경비원을 무시하며 우리를 데리고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윤사해, 그리고 저세상과 함께 도달한 비나리 고등학교는.
“애플파이 하나 드시고 경품 응모하고 가세요!”
“단돈, 5천원만 내시면 스트레스 풀 수 있도록 이마를 내 드립니다! 마음껏 때리세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북적이고 있었다. ‘윤리사’가 된 뒤로 가장 많은 사람을 접하는 날인 것 같았다.
……여기서 윤리오랑 윤리타를 어떻게 찾지?
그보다 서커스, 그 자식들은 이 인파 속에서 우리 쌍둥이를 어떻게 찾아서 노리겠다는 걸까?
여러모로 대단한 새끼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