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0)화 (40/500)

40화. 폭풍전야(2)

노을이 지고 있는 저녁.

윤사해는 AMO의 본부장인 강산에와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은사이기도 한 그녀를 향해 윤사해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비나리 고등학교는 AMO 산하의 국립 특수 고등학교 아닙니까?”

“그렇지.”

“학교 축제를 물리는 일이야, 본부장 권한으로 말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끝날 일일 텐데 말입니다.”

뾰족하기 그지없는 말에 강산에가 찻잔을 들고서 입을 열었다.

“윤사해 길드장, 자네 말대로 본부장 권한으로 축제를 물리는 것쯤이야 아주 간단한 일이지.”

“그럼…….”

“그러나 그 뒤의 감당은? 무엇보다 이번 축제는 비나리 고등학교의 소재지인 유영구의 청장께서 함께 기획한 일이라지.”

즉, 단독으로 축제를 엎으라고 쉽게 지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윤사해의 말을 끊은 강산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학부모들께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까? 미지의 위협이 있어, 학교 축제를 무기한 연기하게 되었다고 설명 드려야 하나?”

윤사해가 그럼 되지 않느냐는 시선을 강산에를 향해 보냈다. 그 시선에 강산에가 코웃음을 쳤다.

“윤사해 길드장,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돼서 잊었나 보군.”

강산에는 두 손을 모으고선 나긋하게 설명을 이었다.

“비나리 고등학교는 국내 제일의 각성자 교육 기관이지. 그런 곳이 알 수 없는 위협에 학교 최대의 행사를 물린다고 하면?”

곳곳에서 관심이 쏟아질 테였다.

강산에가 상상만으로도 성가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학교 근처에서 게이트라도 일어나지지 않는 한, 축제는 물릴 수 없네. 이것이 내 의견이라네, 윤사해 길드장.”

게이트(Gate).

허공을 가르는 균열과 함께 몬스터가 쏟아지는 현상을 말했다.

일어나는 시기와 장소를 특정 지을 수 없다는 것에서 ‘재앙’으로 일컬어졌다.

결국, 어떠한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축제를 멈출 것이라는 말이었다.

‘젠장…….’

윤사해가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꾹 눌러 참을 때였다.

“축제 첫째 날의 귀빈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더구나, 사해야.”

사무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제자를 대하는 은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윤사해가 찻물이 식은 찻잔을 바라보며 답했다.

“일이 바빠서 말입니다. 서 비서가 대신 참석하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들 보기 두려워서가 아니라?”

“…….”

윤사해가 고개를 들어 강산에를 쳐다봤다. 자신을 향한 날선 시선에 강산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들과의 사이가 원만하게 풀리고 있다고는 들었단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남의 입에서 듣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강산에 본부장이 알고 있을 정도면, 지하 길드 쪽에도 이미 소문이 퍼졌겠군.’

지금 당장에도 빌어먹을 서커스가 아들들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윤사해가 입술 안 쪽을 꾹 깨물 때였다.

“하지만, 사해야.”

강산에가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을 이었다.

“여전히 어렵지? 과거에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과 말들이 너무 많았으니.”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었다. 윤사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윤사해는 찬찬히 숨을 들이마시며 동요하는 마음을 잠재웠다.

강산에가 그 모습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예전 같았으면 책상이라도 엎었을 텐데, 많이 컸기는 했군.’

그러고는 부드러웠던 은사의 태도 대신, 다시 사무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꺼냈다.

“윤사해 길드장, 이번 축제의 규모가 규모이기도 하니 AMO의 요원들을 많이 배치해 놓을 생각이라네.”

축제에 배치될 AMO 요원들의 실력을 윤사해가 못미더워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산에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나.”

안타깝게도, 강산에의 말은 윤사해의 불안을 덜어 주지 못했다.

오히려 윤사해는 깨달았다.

‘축제를 물리는 건 턱도 없겠군.’

여기서 강산에를 붙잡고 대화를 계속 나눠 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란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해야.”

그런 그를 강산에가 붙잡았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렴. 한 길드의 ‘수장’이 아닌, 아이들의 ‘아버지’로.”

나긋하게 타이르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문을 열어 젖혔다.

“지금도 아이들의 ‘아버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생님.”

윤사해는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의 문을 닫았다.

***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부스스한 몰골의 윤리오가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우리도, 방금 막 일어나던 윤리오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청해진……?”

윤리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을 불린 청가의 자제님께서 두 눈을 끔뻑이는가 싶더니, 이내 윤리오를 향해 우다다 달려갔다.

“흐어어엉! 윤리오!”

“와악! 더러워, 꺼져!”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는 친구의 모습에 윤리오가 기겁하며 청해진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런다고 밀려날 청해진이 아니었다. 청해진은 윤리오를 꽉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너는, 흡, 끄흡! 너느으은!”

울먹대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제대로 말 해,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

윤리오가 다시 한 번 더 청해진의 얼굴을 밀어내고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윤리타에게 물었다.

“윤리타, 얘가 도대체 왜 여기 있어? 학교는? 아니, 그 전에…….”

자신이 쓰러졌던 일을 기억해냈나 보다. 윤리오가 핏기도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윤리타에게 물었다.

“어떻게 집으로 온 거야?”

윤사해가 자신이 쓰러진 것을 알고,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을 가정한 듯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윤리오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거겠지.

윤리타도 이를 아는지, 그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그때에 류화홍이 눈치 없이 해맑게 답해 줬다.

“길드장님께서 상황을 수습하셨고! 너는 내가 데리고 왔지!”

윤사해가 상황을 수습했다, 라는 말에 윤리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류화홍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윤리오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때? 몸은 괜찮아? 혜원이 누나가 별 이상은 없다고 하던데.”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안 좋으면 형한테 바로 말해야 해, 리오야. 길드장님께서 엄청 걱정하셨거든.”

류화홍에게 ‘눈치’란 것을 선물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그래. 잠깐만, 길드장님께 전화를…….”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니겠지?

나는 류화홍으로부터 윤리오를 보호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리오 오빠! 들어가서 조금 더 쉬어! 리타 오빠랑 해진이 오빠하고 같이!”

내 말에 윤리오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야. 리사, 오빠는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야! 안 괜찮아!”

나는 윤리오의 말을 매몰차게 끊고는 말했다.

“리타 오빠랑 해진이 오빠, 뭐해? 리오 오빠 아픈데 저렇게 둘 거야?”

내 말에 윤리타와 청해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야! 너희들 이거 안 놔?!”

윤리타와 청해진이 윤리오를 연행해가듯, 한쪽 팔을 하나씩 잡았다.

“이거 놓으라니까!”

그 말에 청해진이 윤리오의 팔을 더욱 더 꽉 끌어 잡으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안 놔. 오늘 내가 극진히 모셔 줄게, 윤리오.”

“필요 없어! 너희 집으로 꺼져!”

꺼지라는 말에 윤리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애들이 들어! 말조심해!”

그러고는 윤리오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그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조용해진 가운데, 나는 슬그머니 저세상에게 다가가 물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의 축제는 수요일부터라고 했지?”

“응, 너는 유치원에 가 있겠네.”

“아니, 세상이 오빠랑 같이 축제 구경 갈 건데?”

저세상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유치원 또 째려고? 너 그러다 개근상 못 받아.”

“개근상은 진작 버렸지.”

나는 저세상을 향해 활짝 웃어 주고는 그의 어깨를 밀었다.

“뭐야, 왜 이래?”

“잠깐만 방에 들어가 있어 봐.”

나는 저세상을 그의 방으로 밀어 넣고는 곧장 류화홍에게 다가갔다.

물론, 순간순간 저세상이 나오려고 해서 몇 번이나 그를 방에다가 밀어내야했다.

어쨌든! 나는 저세상을 방에 가두는 것을 성공했다.

“야! 윤리사! 너, 나가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흥이다.

나는 굳게 닫힌 저세상의 방을 향해 허를 한 번 날름거려 주었다.

그렇게 류화홍에게 다가간 나는, 그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화홍이 오빠.”

“네, 아가씨.”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던 류화홍이 이를 끊고는 무릎을 굽혔다.

“무슨 일이세요?”

나와 눈을 맞추고서 묻는 것이, 이럴 때는 참 다정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다정하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오빠, 지금부터요.”

“네, 아가씨.”

나는 손을 높이 들어 올렸고.

“리사가 말하는 것들 모두 들어주세요, 알겠죠?”

곧바로 있는 힘껏 손을 휘둘렀다.

쫘악―!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참으로 정겨웠다.

류화홍의 고운 뺨에 남은 손바닥 자국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 내 눈앞에 뜬 반가운 시스템 창이 하나.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류화홍’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짜 망할 스킬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