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악화일로(5)
이상하게 시야가 낮은 느낌이다.
하지만 윤리오는 이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고개를 들어 저를 부른 사람을 쳐다봤다.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나 이상하게 단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남자.
‘……차윤이 삼촌?’
윤리오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잡힌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몇 배는 조그마한 손.
그런데 낯설지가 않았다.
‘왜지……?’
윤리오가 잡힌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에 서차윤이 작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쥐고는 웃으며 물었다.
‘뭐가?’
묻는 목소리에 윤리오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아빠는요?’
내뱉은 단어가 왜인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윤리오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입가를 만지작거릴 뿐, 같은 단어를 다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빠랑 오늘 꼬기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리타는 어디 있지? 삼촌, 리타 못 봤어요?’
‘리타는 여기 있지.’
서차윤이 살짝 몸을 틀어 품에 안겨 있는 윤리타를 보여 주었다.
쌍둥이 동생은 세상모르고 서차윤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안아 줘요!’
‘싫은데.’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윤리오가 두 뺨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아이의 삐친 모습에 서차윤이 키득거리고는 말했다.
‘삼촌은 너희 아빠처럼 힘이 세지가 않거든. 그러니까 리오는 삼촌 손 꼭 잡고 가자.’
‘어디로요?’
서차윤이 윤리오를 흘긋거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너희 아빠가 데리러 가기로 한 곳보다 더 재미난 곳?’
‘꼬기 많아요?’
‘아마도.’
분명치 않은 대답이었으나, 윤리오는 활짝 웃으면서 서차윤과 발맞춰 걸었다.
‘있잖아요, 삼촌. 아빠가 삼촌 엄청 걱정했었는데!’
‘사해가?’
‘네! 저랑 리타도 걱정했었어요! 삼촌 엄청 아팠었잖아요!’
아이의 재잘거림이 이어질수록 서차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갔다.
윤리오는 보지 못한 변화였다.
‘그런데요. 삼촌, 얼마나 더 가야해요?’
‘모르겠는데.’
그러나 그 질문이 수십 번 반복되자, 윤리오는 결국 서차윤의 손을 놓아 버렸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안 갈래요, 안 갈 거야.’
‘그래?’
서차윤이 아쉬운 기색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싱긋 웃었다.
‘그럼, 리타만 데리고 가야겠다.’
‘안 돼요!’
윤리오가 황급히 서차윤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아이의 걸음으로 어른을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리타 내려 줘요!’
하지만 서차윤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아이의 동생을 데리고 걸어갈 뿐이었다.
‘삼촌!’
윤리오는 엉엉 울며 그 뒤를 쫓아갔다.
아빠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더라? 주변 어른들한테 도와달라고 외쳐야한다고 했었지.
그런데요, 아빠.
‘삼촌! 리타 내려 줘요! 내 동생 돌려 줘!’
……주변에 어른들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다행히도 서차윤은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그러고는 품에 안고 있던 잠든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리타야! 윤리타!’
윤리오가 모든 힘을 쥐어 짜내 윤리타에게 달려갔다.
‘일어나 봐! 일어나!’
암만 흔들어도 동생이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모습에 윤리오는 덜컥 겁이 났다.
그것도 잠시, 아이는 새근새근 들려오는 동생의 숨소리에 히끅거리며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촤르륵-!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붉은 천막에 의해 가려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윤리오가 동생을 꼭 끌어안고선 겁에 질린 얼굴을 보였다.
어딘지 모르겠는 낯선 곳.
이곳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사, 삼촌?’
자신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어른.
윤리오가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서차윤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 서차윤이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는 윤리오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의 모습을 두 눈에 새겨 넣겠다는 듯이.
그렇게 윤리오를 빤히 보던 서차윤이 이내 싱긋 웃었다.
‘하룻밤? 아니다, 이틀. 그것도 아니면 삼 일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야. 아마도.’
‘누구를요……?’
‘누구기는.’
서차윤이 굽혔던 무릎을 바로 세우고선 윤리오를 보며 웃었다.
‘네 아버지지.’
그 말과 동시에 주위가 새까맣게 어둠으로 물들고 말았다. 시야가 어두워지자 윤리오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삼촌? 차윤이 삼촌?’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동생을 꼭 끌어안고서.
‘삼촌!’
윤리오는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사람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아!’
-리오야.
‘아빠?’
윤리오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건, 아이가 그토록 애타게 불러대던 사람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의 피에로 인형이 아이를 향해 입을 달칵거렸다.
-안녕?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건네는 인사에 윤리오는 희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
“으아아악!”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던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인데도 윤리오는 이를 깨닫지 못한 듯했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손이었다.
어린 날보다 몇 배는 커져 있는 자신의 손.
그 다음으로 확인한 건.
“윤리타…….”
제 쌍둥이 동생이었다.
“어디 있어, 윤리타?”
우당탕, 힘이 풀린 다리가 온갖 것들을 쓰러뜨려 버렸다.
그러나 윤리오는 미친 사람처럼 제 쌍둥이 동생을 찾을 뿐이었다.
그 어린 날에, 죽은 듯이 깨지 않았던 동생을.
“윤리타!”
때마침 양호실로 들어오던 윤리타가 놀란 눈을 보였다.
“윤리오?”
자신과 똑같은 보라색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왜 그래? 악몽이라도 꿨어?”
묻는 목소리에 윤리오는 그대로 휘청거렸다.
“형! 청해진, 빨리 와 봐! 형이 이상해!”
윤리타가 황급히 윤리오를 부축하고는 뒤따라오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댔다.
귓가를 먹먹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힘겹게 손을 들고선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아…….”
어린 날, 악몽을 꿨을 적에 항상 저를 달래 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단다, 리오. 아빠가 있잖니.’
내가 그에 얼마나 안심했었는데.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에 또 얼마나 안도했었는데.
그렇기에 절망했었다.
그날의 악몽에 암만 괴로워해도 당신은 그 목소리를 건네주지 않았기에. 다정하게 내 등을 토닥여 주지 않았기에.
‘그 녀석들이 제발 더는 내 앞길을 막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간 너무 힘들었으니.’
나를, 외면했기에.
“형! 리오 형!”
흐릿해지는 시야에 윤리오는 그대로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때문에 윤리오는 보지 못했다.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 놓인 피에로 인형 하나를.
윤리오 대신 인형을 발견한 윤리타와 청해진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
윤사해는 오빠들과 함께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못했다는 게 맞을 거다.
“당연히 침입한 흔적이 없겠지! 그런데 도가 튼 새끼니까!”
새된 욕설을 내뱉은 목소리는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거실 한 쪽에서 윤리타가 저세상의 두 귀를 꼭 막고선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보였다.
“아가씨, 귀 막아 드려도 될까요?”
“아니, 리사는 괜찮아.”
나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돌아온 사람은 류화홍이었다.
평소라면 윤사해 어디 있냐면서 데리고 오라며 뺨을 때렸을 테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제발 빨리 가자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려서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우리 애가 괜히 쓰러졌겠어?! 애들이 인형을 봤다지 않나! 피에로 인형을!”
윤리오가 학교에서 쓰러졌었단다.
방 안쪽에서 한창 통화 중이던 윤사해가 신경질 가득한 얼굴로 거실에 나왔다.
“본부장에게 좀 만나자고 전해 주게, 지금 당장.”
윤사해는 상대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던전 관리 기구인 DMO와 각성자 관리 기구인 AMO. 윤사해가 만나자는 쪽은 AMO의 본부장이겠지.
현재 AMO의 본부장께서는…….
“우리 최애님이신데.”
이런 상황에서 같이 보러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는데, 윤사해가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왔니, 리사?”
“응, 아빠.”
윤사해가 서글픔 가득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아빠가 약속을 또 못 지켰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말없이 윤사해를 꼭 끌어안았다.
“특별히 용서해 주는 거야. 그래도 오빠들이 돌아왔으니까.”
“그래…….”
윤사해가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고개를 들었다.
“류화홍 헌터.”
“애들 잘 보고 있을게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윤사해는 그 말에 살짝 불안감을 비추긴 했지만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에 저세상을 꼭 끌어안고 있는 윤리타에게 시선을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윤사해가 집을 나서기 무섭게 윤리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타야! 뚝 그쳐, 뚝!”
류화홍이 호들갑을 떨며 윤리타에게 다가갔다.
“혜원이 누나가 리오 괜찮다고 했잖아! 같이 들었으면 왜 그래?”
“그치만…….”
윤리오는 광혜원의 진찰을 받은 후, 방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고 했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윤리타는 꽤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같이 수업 땡땡이 치고, 흐읍, 으.”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나와 저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윤리타를 꼭 끌어안았다.
“리타 오빠, 울지 마아.”
“리타 형, 울지 마세요.”
윤리타가 눈가를 세게 닦고는 우리를 꼭 끌어안았다.
저세상과 몸이 맞붙게 돼서 불쾌해졌지만, 이를 티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윤리타를 달래는 게 우선이니까 말이지.
나는 윤리타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며 윤사해가 내뱉던 성난 목소리를 떠올렸다.
‘우리 애가 괜히 쓰러졌겠어?! 애들이 인형을 봤다지 않나! 피에로 인형을!’
피에로.
그것은 서커스의 상징이었다.
『각성, 그 후』에서 다뤄진 적이 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게 아니다.
원작의 내용은 ‘윤리사’가 던전에서 살아남았을 때부터 이미 틀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주목할 건, 빌어먹을 서커스가 예상보다 이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