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7)화 (37/500)

37화. 악화일로(4)

“시바.”

제대로 잠도 청하지 못했는데 아침이 찾아오고 말았다. 나는 마른세수를 한 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즘 잠을 제대로 자고 있지 못한 것 같단 말이야?

윤리사의 성장,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다.

“이러다 저세상보다 작아지는 거 아니야?!”

절대 안 돼! 오늘부터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는 거다, 윤리사!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는 방문을 열었다.

“리사, 일어났니?”

아침부터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윤사해에게 뛰어갔다.

“아빠, 굿모닝!”

그런데 내 인사를 받은 윤사해의 표정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뭐야, 아빠? 잠에서 깨어난 딸의 얼굴이 그렇게나 예뻐? 왜 그리 놀란 얼굴이야?

하지만 윤사해는 내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리사, 어젯밤에 못 잤니? 울기라도 했던 거야?”

“응?”

윤사해가 나를 한 팔로 받쳐 안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요 며칠 제대로 못 잤다고 눈 밑에 그늘이 졌나 보다.

윤사해가 놀랄 만도 하겠네.

나는 윤사해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고자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들이 없어서 잠이 안 왔어! 그런데 세상이 오빠는 엄청 잘 잤나 보다!”

“푸훕……!”

식탁에서 얌전히 아침을 먹던 저세상이 입 안에 들어 있던 시리얼을 그대로 뱉고 말았다.

어휴, 더럽게.

저세상이 윤사해의 눈치를 살폈다.

“죄, 죄송해요.”

“그런 말은 할 필요 없단다, 세상아. 옷에 흘리지는 않았니?”

“네? 네, 안 흘렸어요.”

저세상이 웅얼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나는 보고 말았다.

나를 향해 날선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저세상의 두 눈을 말이다.

마치, 새벽에 자신이 건네 준 정보에 대한 값을 이렇게 지불하느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에 나는 방긋 웃어 주기만 했다.

비나리 고등학교의 축제에 관한 정보를 준 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저세상이 준 정보로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 보느라 제대로 못 잤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들은?”

아침이면 돌아와 있을 줄 알았던 윤리오와 윤리타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윤사해가 씁쓸함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침 먹고 데리러가자꾸나.”

우리 오라버니들, 집에 돌아오면 무조건 뺨 한 대씩이다.

윤사해는 나를 저세상의 맞은편에 앉히고는, 저세상이 흘린 것들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제가 할게요, 아저씨…….”

저세상이 윤사해의 손에서 행주를 뺏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지지란다, 지지.”

윤사해의 말에 조용히 내민 손을 거두었다.

그렇게 윤리오와 윤리타가 없는 아침, 나는 뚱한 얼굴로 시리얼을 우물거렸다.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시간인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길드장님, 저 왔어요!”

류화홍이 나타날 거라서 그랬었나 보다.

“서 비서님께 들었어요! 리오랑 리타, 해진이네 집에 있다면서요?”

“그렇다더군.”

윤사해는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류화홍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마뜩찮은 얼굴로 류화홍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류화홍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리사 아가씨, 안녕하세요! 세상이도 안녕!”

“안녕하세요, 화홍이 형.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은 개뿔.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는 말했다.

“안녕, 화홍이 오빠. 오빠 때문에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집에 안 들어오고 있어.”

류화홍이 내 말을 못 들은 척, 헛기침을 하고는 윤사해에게 말했다.

“해솔이가 오늘 중으로 애들 보내겠다고 전해 달래요.”

“괜찮다고 전해 주게. 안 그래도 데리러 갈 생각이었으니.”

“이미 학교 갔다는데요?”

“뭐……?”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일곱 시를 막 지난 시간.

학교에 가기에는 무척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류화홍이 윤사해의 놀란 얼굴에 재잘거렸다.

“해솔이가 아침에 애들 돌려보내려고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더래요. 해진이한테 전화하니까, 이미 학교라고 했다던데요?”

그 말에 윤사해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꼬르륵, 울리는 소리도 함께였다.

뭐지? 아빠는 아침 먹었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윤사해가 소리의 출처를 찾았는지 류화홍에게 물었다.

“류화홍 헌터, 아침은 먹고 온 거겠지?”

그 말에 류화홍이 수줍음 가득한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는 말했다.

“아니요! 오늘부터 제대로 일하려고 아침도 안 먹고 출근했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윤사해가 악덕 사장이라도 된 것 같잖아.

사장이 아니라 ‘길드장’이지만.

어쨌든, 윤사해도 나랑 똑같이 느꼈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류화홍을 저세상 옆에 앉혔다.

“부탁이니 아침은 먹고 오게.”

그렇게 윤사해는 류화홍 몫의 시리얼도 내준 뒤, 나와 함께 유치원으로 향했다.

“리사, 오늘 오빠들과 함께 데리러 오마.”

“진짜?”

“응, 진짜.”

윤사해가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미소를 그렸다.

“아빠가 약속한 건 꼭 지킨다고 했잖니?”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윤사해는 선생님께 내 가방을 넘기고는 말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도 사이좋게 놀고!”

나는 윤사해의 말을 가로채고는 밝게 웃었다.

“아빠도 서 비서님 말씀 잘 듣고 돈 많이 벌어 와야 해!”

“그…… 그래, 그러마.”

윤사해가 떫은 감을 한가득 베어 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윤사해를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들어 주고는 꽃님반으로 향했다.

드르륵, 문을 열자마자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몰리는 시선에 나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내 인사와 함께 꽃님반이 소란스러워졌다.

“어제 유치원 안 온 윤리사다!”

“리사야! 어제 유치원 왜 안 왔어? 아팠어?”

유치원 안 왔다면서 삿대질한 친구는 단아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달려온 친구는 도윤이었다.

“어제 아빠랑 논다고 유치원 안 왔어! 아팠던 건 아니야!”

내 말에 도윤이가 다행이라는 듯이 방긋 웃어 주고는 내게 물었다.

“어제! 아니지, 이틀? 어제의 어제에 왔던 남자애 누구야? 아저씨랑 같이 리사 데리러 온 남자애 말이야! 리사 친구야?”

“윤리사 친구면 우리랑도 친구겠네? 근데 왜 걔는 유치원 안 와?”

대답할 새도 없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리사야! 그 남자애 이름이 뭐야? 우리 친구 맞지?”

“윤리사! 걔는 왜 유치원 안 오냐니까?!”

닦달하는 목소리에 나는 성난 소를 진정시키는 심정으로 두 손을 들고 말했다.

“얘들아, 천천히. 하나씩만 리사한테 질문해 줘.”

제발 부탁이야……!

다행히도 내 간절한 바람은 친구들에게 통했다.

단아와 도윤이는 점심시간이 시작될 때까지 서로 번갈아가면서 저세상에 관해 질문했고, 나는 열심히 대답해 줬다.

미안해, 저세상. 네 신상 내 친구들한테 다 털렸어.

어쨌든 친구들의 질문은 점심이 시작된 후에야 끝이 났다.

나는 점심으로 나온 어묵숙주볶음과 된장국을 후다닥 해치운 뒤에 한쪽 구석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눕고 싶다.”

“안 돼, 리사.”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단아와 도윤이가 질문 공세를 펼칠 때, 가만히 미소를 그린 채 구경 중이었던 단예가 보였다.

단예가 푸른 눈을 휘게 접으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했어, 리사야.”

“단예야…….”

“셋째와 도윤이가 어제 리사, 너를 엄청 기다렸거든.”

그런 것 같았다.

귀여운 자식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단예가 저렇게 말할까?

“세상이라고 했지? 리사를 데리러왔던 그 오빠를 애들이 엄청 궁금해했어.”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저세상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거구나.

머쓱해져서 코 밑을 닦는데, 단예가 내 옆에 앉고는 입을 열었다.

“애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아니야, 리사는 좋았어!”

나는 활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도윤이랑 단아랑 있으면 리사가 진짜 일곱 살이란 기분이 들거든!”

내 말에 단예가 미소를 그린 낯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기 이상한 말이었나 보다.

이미 내뱉은 말. 주워 담을 수는 없고, 어떻게 고쳐야 하나 싶었는데 단예가 내게 물었다.

“리사야, 나는?”

“응?”

“나랑 같이 있으면 몇 살처럼 느껴지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일흔 살?”

미안, 단예야.

하지만, 너는 조숙함을 뛰어 넘은 인생 2회차 어른이 같아.

***

윤리사가 한단예에게 ‘70’이란 숫자를 손가락으로 보이고 있을 때, 윤리오는 양호실에서 꾀병을 부리는 중이었다.

윤리오 혼자 있는 건 아니었다.

“야, 윤리오. 진짜 수업 들으러 안 갈 거야? 아픈 것도 아니면서.”

윤리오가 쌍둥이 동생을 외면하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저를 무시하는 태도에, 그의 쌍둥이 동생인 윤리타가 뚱한 얼굴을 보였다.

“내버려 둬, 윤리타. 어차피 축제 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안 하잖아?”

그런 윤리타를 잡아 이끈 것은 청해진이었다.

“윤리오, 선생님한테는 알아서 잘 둘러댈 테니까 쉬고 있어.”

청해진은 그 말을 끝으로 윤리타와 함께 양호실을 나섰다.

아니, 그랬다가 다시 돌아와 윤리오에게 속닥거렸다.

“우리 누나가 오늘은 꼭 집으로 돌아가래.”

그에 윤리오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머리 위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쉬어.”

너라면 쉴 수 있을 것 같아?!

윤리오는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참고는 웅얼거렸다.

“짜증나…….”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윤리오는 윤리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나뿐인 여동생과 얼마 전 가족이 된 아이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백하게 질려 있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자 거북함이 밀려 왔다. 그 때문에 윤리오는 학교로 걸음을 돌렸었다.

윤리타에게 굳이 자신을 따라올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만.

‘싫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집에 안 갈 거야!’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리는 동생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쌍둥이는 집에 들리지 않고 등교하게 된 거였다.

“바보, 윤리타.”

너라도 갔어야지. 그래야 애들이 우리 걱정 안 할 텐데.

그리고…….

윤리오가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을 애써 지워내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잠깐 눈 좀 붙이자, 머리 좀 식히는 거야.’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 이불 속에서 잠에 빠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또한.

‘리오야.’

달갑지 않은 꿈이 찾아드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