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악화일로(3)
청해진의 이름과 함께 나타나는 서술은 없었다.
“역시나네.”
청해진을 처음 검색했을 때도 나타나는 텍스트라곤 없었다.
“‘동생’으로 검색해 볼까?”
하지만, 나는 이내 후회했다.
『각성, 그 후』에서 누군가의 동생이었던 사람이 워낙 많았어야지.
시야를 어지럽게 가리는 텍스트 창에 기겁하며 다시 ‘청해진’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검색 대상] : 청해진
[↳연관 검색어 : 청해솔 | 윤리타 | 밳� | 초랭이 | 비나리 고등학교 | 春 ]
연관 검색어로 뜬 것은 총 여섯.
단어 하나가 깨져 있었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시야 앞에 나타난 여러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러 보았다.
먼저, 첫 번째.
“시기는 봄, 그때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사고가 벌어졌고…….”
그 때문에 청해진은 『각성, 그 후』에 등장하지 않게 됐을 거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어 버렸기에.
“그래, 여기까지의 추측은 쉽단 말이지.”
청해솔과 윤리타가 청해진의 연관 검색어로 뜨는 이유도 간단하게 추리할 수 있었다.
청해솔의 경우 청해진의 누나이기 때문이고, 윤리타는 청해진의 친구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 밳� |
깨진 글자였으나, 읽는데 무리는 없었다.
백정(白丁), 유랑단 아홉 탈 중, 가장 무도하다고 일컬어졌던 자.
“윤리오를 가리키는 게 맞겠지?”
『각성, 그 후』에서 ‘백정’으로 불리던 사람은 윤리오뿐이었으니 맞을 거다.
“윤리오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 왜 자꾸 ‘백정’이라는 거야?”
괜히 입술을 씰룩이고는 또 하나의 탈에 주목했다.
“초랭이…….”
마찬가지로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에 속해 있는 녀석이었다.
“봄날,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고가 초랭이와 관련이 있다는 거겠지?”
즉, 청해진의 죽음에는 ‘초랭이’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
그렇지만 뭔가 이상했다.
『각성, 그 후』에서 초랭이가 가장 깝죽거리던 상대는 청해솔이었다.
“하지만 초랭이는 단 한 번도 청해솔의 앞에서 ‘청해진’이라는 이름을 꺼낸 적이 없어.”
성격상, 그 이름을 청해솔의 앞에서 꺼내며 그녀의 화를 돋기 충분했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죽였던 ‘청해진’이 청해솔의 동생인 것을 몰랐던 걸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청해솔 역시 초랭이를 귀찮게 여길 뿐,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그럼…… 청해솔은 동생의 원수가 눈앞에서 그렇게 까불거렸었는데 몰랐던 거야?”
빌어먹을 망작 같으니.
“작가님, 부디 해솔이 최애러들께 맞아 죽기를.”
나는 진심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 뒤 추리를 이어갔다.
“청해진이 어떻게는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죽는지는 얼추 알아냈네. 그렇다면, ‘언제’인데.”
이 역시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윤리오가 꺼낸 이름.
“서차윤.”
에 의해서.
윤사해를 배신하고, 그의 두 아들을 지하 길드에 넘겼던 이매망량의 부길드장.
이매망량의 ‘부길드장’이란 자리를 영원토록 공석으로 만든 그의 이름이 윤리오의 입에서 나온 이유가 뭘까?
“윤리오는 말했지, 모두 죽인 줄 알았다고.”
나 역시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 서커스는 건재했고. 지금 와서 윤리오와 윤리타를 다시 노리고 있구나?”
정확히는, 첫째 아들 윤리오를.
윤사해는 이를 알고서 류화홍을 쌍둥이에게 붙여 놓았던 거다. 그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지만.
“그 오빠는 윤리오한테 왜 들켜서 이 사달을 만든 거야?”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고는 중얼거렸다.
“축제, 엎을 수는 없겠지?”
서커스는 높은 확률로 축제가 열리는 날에 윤리오를 노릴 게 뻔했다.
그리고 그날, 청해진 역시 초랭이에게 노려지겠지.
“골치 아프네.”
머릿속으로 축제를 엎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떠올랐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축제가 엎어진다고 해도 서커스는 어떻게든 윤리오를 노릴 게 뻔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유추해낼 수 없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럴 바에야 적의 손아귀에서 짜인 판을 엎어 버리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어찌됐든, 이 순간에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나는 시야를 채우고 있던 것들을 모두 지워 버린 후, 두 손을 주먹 쥐며 외쳤다.
“윤씨네의 평화는 내가 지킨다!”
“뭘 지켜?”
“으아아악!”
“쉿!”
자그마한 손이 내 입을 덮었다.
놀라 두 눈을 끔벅이니,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저세상!”
빌어먹을 주인공님이셨다.
나는 내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걷어치우곤 씩씩거렸다.
“저세상, 너……!”
“쉿, 아저씨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셔.”
그 말에 절로 입이 다물렸다.
“창문도 안 잠그고 뭐하고 있었던 거야?”
다행히도, 저세상은 내가 스킬을 사용하고 있던 광경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잠자는 숙녀의 방에 함부로…….”
“잠, 안 자고 계시고.”
저세상이 성큼 다가와서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숙녀님도 아니시지.”
망할 주인공 새끼가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보다 조용히 해. 거실에서 아저씨 자고 있다니까?”
그래서 창문으로 들어왔나 보다.
나는 한껏 목소리를 낮춘 뒤 저세상에게 물었다.
“왜 온 거야?”
“오늘, 리오…… 형이 아저씨한테 왜 그랬는지 알아?”
당연히 알지.
하지만 나는 시무룩하게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몰라, 세상이 오빠는 알아?”
“아니, 알면 너한테 물었겠어?”
그래요, 주인공님. 알면 저한테 안 물어봤겠죠.
못마땅한 얼굴로 저세상을 쳐다보는데, 주인공님께서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의 축제는 어떻게든 열릴 거야.”
“응……?”
“아저씨가 막아 보려고 하겠지만, 안 될 테지.”
저기요, 잠깐만요?
내가 할 말을 잃고 입만 뻐금거리는 중에도 저세상은 태평하게 말을 이어갔다.
“축제는 총 삼 일 동안 진행돼. 원래 이틀인데, 지역 축제랑 함께 열린다고 하루가 더 늘어났거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난데없이 내 방을 찾아온 주인공님께서 지난 회차의 이야기를, 아니. 그와 관련된 정보를 내게 술술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역 축제는 무시해도 돼, 어디에나 있는 벚꽃 축제니까.”
“그, 그런데 왜 같이 하는데?”
“축제가 열리는 시민 공원이 비나리 고등학교 근처라서 그래.”
“오, 그래서 애들…….”
크흠! 황급히 말을 고쳤다.
“언니들이랑 오빠들 부려먹으려고 함께 열기로 한 거구나?”
“그래, 부려먹으려고.”
저세상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나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윤리오랑 윤리타도 부려지겠지? 망할 어른들, 감히 누구를 부려먹으려고!
씩씩거리는데, 저세상이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윤리사, 형들은 축제 내내 학교에만 있을 거라고 했어. 외부 인력으로 차출되지 않았다더라고.”
오, 다행이다.
“어쨌든, 첫째 날은 학교에서 개막식이 열릴 거야. 이매망량을 비롯한 여러 길드의 주요 인사들이 귀빈으로서 참석할 거고.”
그 말에 나는 안심했다. 적어도 첫 번째 날에는 서커스의 습격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저세상이 검지에 이어 중지를 들고서 말했다.
“둘째 날은 지역 주민들에게 학교가 개방될 거야. 신원이 확실하게 보장된 사람들한테만.”
그러겠지.
무턱대고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했다가는, 어떤 인간이 섞여 들어올지 모르니까.
어느새 나는 저세상이 건네주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원래 이 날에 ‘선후배 교류전’이라는, 축제의 메인 이벤트가 진행되는데 열리지 않을 거야.”
“왜?”
“그건 나도 몰라.”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셋째 날은 폐막식. 외빈 참석은 없을 예정이고, 저녁에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대.”
그러면서 저세상은 말했다.
“개막식과는 달리, 폐막식은 구청에서 맡기로 해서 참석이 자유롭다더라고.”
지금까지의 정보를 토대로 가정을 하나 세워 보자면, 서커스는 둘째 날에 비나리 고등학교에 침입을 시도할 것 같았다.
첫째 날은 외부 인사에 대한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셋째 날은 쌍둥이의 행동을 유추할 수가 없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저세상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축제 마지막 날에 우리가 오면 불꽃놀이를 볼 거래.”
“누가?”
“누구기는 누구야? 형들이 그랬어. 너랑 내가 축제 구경 오면 축제 마지막 날에 그럴 거라고.”
그 말에 나는 눈가를 찡그렸다.
“오빠들이 언제 그랬는데? 리사는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당연히 들은 적 없겠지. 네가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들은 말이니까.”
저세상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이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있잖아, 윤리사. 내가 걱정돼서 물어보는 건데, 너 친구가 있기는 하지?”
나는 그대로 저세상의 발목을 걷어차 버렸다.
“악……! 진짜, 너는 애가 왜 그렇게 폭력적이야!”
“리사는 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오빠가 리사의 성질을 자꾸 건드리는 걸?”
그러니 어떻게 해, 폭력성을 내보여야지.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방긋 웃어 주고는, 두 눈을 낮게 내리깔았다.
“리사는 세상이 오빠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너랑 같이 축제 보러 갈 생각?”
우리 주인공님이 미치셨나 보다.
저세상이 질겁하는 내 얼굴에 키득거리고는 미소를 그렸다.
“내가 너에게 무슨 ‘정보’를 전해 준 건지, 부디 알아들었기를 바라. 윤리사.”
끝에서 들린 나의 이름에 나는 삐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리사는 세상이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그래, 그러시겠지.”
저세상이 그렇게 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심드렁한 얼굴을 보이곤 몸을 돌렸다.
그대로 넓은 창을 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세상이 오빠.”
멈춰선 주인공을 보며 굿 나잇 인사를 전했다.
“잘 자, 리사 꿈 꿔.”
저세상은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넓은 창을 닫으며 말했다.
“문이나 잠가, 바보야.”
저게 누구한테 바보래?
나는 저세상을 향해 중지를 들어 준 뒤, 창문을 꼭꼭 잠가 버렸다.
***
저세상은 창문을 꼭꼭 잠그고 있는 윤리사를 흘긋거리고는 중얼거렸다.
“믿는 건 아니겠지?”
자신이 전해 준 정보는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 뒤의 말.
‘너랑 같이 축제 보러 갈 생각?’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됐다.
저세상은 윤리사와 함께 축제를 보러 갈 생각은 추후도 없었다.
“아저씨랑 같이면 몰라.”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저세상이 걷던 것을 멈추고 넓은 창 안 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테라스의 넓은 창 안으로 누군가의 인영이 흐릿하게 잡혔다.
가출한 아들들을 기다리다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버린 윤사해였다.
저세상이 그 모습을 애잔하게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바꿀 힘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바꿔 봐, 윤리사.”
나는 아직 그럴 힘이 없으니까.
그래서 네게 빌어먹을 백정의 뒤를 캐내면서 얻을 것들을 전해 준 거니까.
“그러니까 꼭 바꿔야 할 거야.”
네가 진정 아저씨의 딸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