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악화일로(1)
학교 축제 준비로 귀가가 늦어진다더니,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저거였다.
“설명하라고요, 아버지!”
윤리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화홍이가 오늘부터 도련님들의 호위를 맡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 호위, 오늘만큼은 제가 가도 될는지요. 화홍이가 실수할까 걱정이 되어서요.’
‘거절하겠네, 사야. 류화홍 헌터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화홍이가요?’
윤리오와 윤리타의 호위를 맡게 됐다는 류화홍.
그리고 그런 그를 걱정했던 사야.
지금 생각해 보니, 사야는 류화홍을 걱정한 게 아니라 그가 맡은 일을 실패할 걸 걱정했던 것 같다.
“아버지!”
윤리오가 류화홍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그가 저렇게 나올 줄 알고서 말이다.
윤사해가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리오야, 나는 그저…….”
“나랑 윤리타가 어릴 때처럼 아버지 관심 끌려고 사고라도 칠까 걱정됐어요? 갑자기?”
“아니야! 절대 아니란다!”
윤사해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리오야, 나는 단지 리타와 너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뿐이란다.”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는 얼굴로, 윤사해는 윤리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게 닿는 시선에 윤리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윤사해에게 물었다.
“누구한테서요?”
묻는 말에 윤사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윤리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다시 한 번 더 윤사해에게 물었다.
“누구한테서 우리를 지키려고 그런 건데요?”
이번에도 윤사해는 답이 없었다.
윤리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윤사해를 힐난하는 어조로 말을 쏟아냈다.
“다 죽였잖아요. 우리를 가지고 자기를 귀찮게 했다면서, 그렇게 다 처리한 거 아니었어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윤리오와 윤리타를 납치했던 ‘서커스’를 처리하면서 윤사해가 그렇게 말했었다는 거야?
윤리오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소리 질렀다.
“내가 그날 이후로, 아버지한테 얼마나……!”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대신,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윤사해를 불렀다.
“아버지! 제발, 뭐라고 좀 말해 달란 말이에요! 제발……!”
그 순간, 윤사해를 다그치려던 윤리오가 황망한 얼굴로 숨이 뒤섞인 목소리를 뱉어냈다.
“아니었구나.”
윤사해가 어떤 이유로 자신과 윤리타에게 류화홍을 붙여 놓은 건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서차윤, 그 인간만 죽였던 거였어. 다른 새끼들은 다 놓치고…….”
윤리오의 입에서 나온 이름 하나에 윤사해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윤리오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랬으면서 나를 그렇게 대한 거였어요?”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에 윤사해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리오야, 나는.”
그러나 목소리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고, 윤리오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리오야! 윤리오!”
윤사해가 황급히 윤리오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나선 사람이 있었다.
“야! 윤리오, 어디 가!”
뒤늦게 귀가한 윤리타였다.
윤리타는 현관문 너머로 사라지는 윤리오와 낯빛이 새파래진 윤사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 소리쳤다.
“아빠는 애들이랑 계세요! 제가 달래서 데리고 올게요!”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렸나 보다.
그렇게 윤리타도 윤리오를 쫓아 현관문 너머로 사라지게 됐다.
폭풍이 지나간 것만 같다.
찾아온 정적에 윤사해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윤사해의 얼굴은 괴롭게 일그러져있었으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이마에 맞대고선 입술을 꾹 깨물기만 했다.
거실 한쪽에 얌전히 앉아 있던 나와 저세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사해에게 다가갔다.
“아빠.”
“아저씨.”
윤사해가 우리를 보고는 애써 웃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윤사해를 꼭 끌어안았다.
윤사해의 몸이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손이 머리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윤사해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끌어안았다. 누군가의 울음이 그칠 시간 동안만큼만, 그렇게 한참을.
***
“윤리오! 야!”
윤리오는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자신들 주변에 경호가 붙어 있는 건 어렴풋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납치라도 당해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저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류화홍의 기척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매망량 내에서 단 셋뿐인 S급 각성자 중 한 명, 귀하다는 공간계 각성자.
그런 그를 자신들에게 붙여 놓은 이유가 뭘까?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그리고 그 일은 높은 확률로 윤사해를 귀찮게 만들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어린 시절을 악몽으로 만든 인간들이 살아 있단다. 붉은 천막, 그 안에 가득했던 피에로 인형들.
서커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빠오는 숨에 윤리오가 제 목 부근을 끌어 잡으려 할 때.
“잡았다, 윤리오!”
윤리타에게 팔이 잡혔다.
윤리오가 헛숨을 들이마시고는 떨리는 눈으로 제 쌍둥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윤리오를 몇 번이나 부르면서 뛰어온 탓에 숨이 가쁜지, 윤리타는 몇 번이나 호흡을 고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윤리오, 아빠도 우리가 걱정돼서 …….”
“네가 뭘 알아!”
윤사해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듣기 역겨웠다. 윤리오가 붙잡힌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러나 휘두른 팔에 윤리타가 맞고 말았다.
쫘악, 살갗을 올려붙이는 소리에 윤리오가 얼어붙었다.
손톱에라도 긁힌 듯, 쌍둥이 동생의 뺨에 길게 난 생채기가 보였다. 이내 피가 뺨을 타고 흐르자 윤리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 미안해. 미안해, 리타야.”
“윤리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알잖아? 나한테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윤리타가 정신 차리라는 듯, 윤리오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고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형.”
달래는 목소리에 윤리오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리타야, 어쩌지……?”
윤리타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윤리오의 두 눈에 차올랐던 것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윤리오는 제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아빠가 다 죽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나만 잊으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이렇게 또, 또 아빠한테 걸림돌이 돼서…….”
그 어린 날, 서커스에 잡혀갔던 아이처럼 윤리오는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흐느끼던 윤리오가 불현 듯 어린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윤리타의 옷깃을 끌어 잡았다.
“우리 리사 노리면 어떻게 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우리 리사가 노려지면.”
“그런 일 없을 거야.”
아빠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윤리타는 그 말을 삼키며 윤리오를 꼭 끌어안았다. 윤리오 역시 윤리타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멈추고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기에 둘은 몰랐다.
-이봐요, 모자 장수. 지금 어디 있습니까?
자신들을 구경 중인 사람이 있을 거란 것을.
그림자 진 높은 곳.
그곳에 서 있던 서커스의 주인, 이름 없는 모자 장수가 두 눈을 휘게 접었다.
“눈물 겨운 우애의 현장을 보고 있답니다, 선비 씨.”
저걸 어떻게 갈라놓으면 좋을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면서.
모자 장수는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
해는 저문 지 오래고, 찾아온 늦은 밤. 윤씨네에서는 때 아닌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찾으란 말이네! 어디에도 안 보인다는 소린 그만하고!”
윤리오와 윤리타가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귀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사해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는 거실 한가운데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에 윤사해의 앞에 안절부절 못 한 얼굴로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길드장님. 리오가 그렇게 빨리 알아차릴 줄 몰랐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류화홍 헌터.”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
류화홍이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류화홍의 부모님이 윤사해의 후견인이었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윤사해는 류화홍의 실수에도 아랑곳 않고 인자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리 아들이 자네보다 뛰어난 것을 어떻게 하겠나.”
기운 내라고 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류화홍도 그렇게 느꼈는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그것도 잠시뿐.
자신이 저지른 실책을 깨닫고는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말이다.
“그보다 류화홍 헌터, 자네는 이만 돌아가 보게.”
“네? 하지만…….”
윤사해가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류화홍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류화홍이 움찔거리고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알겠어요, 길드장님. 리오하고 리타 소식 들어오면 전해 주셔야 해요? 알겠죠? 꼭이에요!”
“생각해 보고.”
안타깝게도 류화홍은 윤사해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윤사해가 말하기도 전에 사라진 탓이다.
류화홍이 길드로 돌아가기 무섭게 윤사해는 소파에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축 늘어져 있는 모습에 나와 저세상은 두 손 가득 간식을 쥐고서 윤사해에게 다가갔다.
“아빠, 이거 먹어.”
“아저씨, 드세요.”
우리가 내민 것에 윤사해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지친 낯으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단다, 너희 먹으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꽁꽁 싸매져 있는 계피맛 사탕 껍질을 뜯으려고 했지만, 윤사해가 내 손에서 사탕을 뺏어갔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그러기야, 아빠?
두 눈을 올망졸망 뜨고서 윤사해를 쳐다보는데, 수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빠, 리사가 오빠들 돌아오면 혼내 줄게.”
“……정말?”
“응!”
돌아오면 뺨이라도 한 대씩 때려 줄까 보다. 가출 같은 거 생각하지 못하도록 말이지.
윤사해의 기분을 풀어 주고자 한껏 애교를 부리려고 했지만.
“저…… 아저씨.”
쭈뼛거리며 다가온 저세상에 의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저세상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해진이 형한테 전화해 보는 건 어때요? 형들이랑 같이 있을 것 같아서요.”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윤사해를 닮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청해진.
윤리오와 윤리타를 허물없이 대하던 맑은 얼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