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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화 (33/500)

33화. 좋아지나 했더니(4)

우리 아버지가 말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뺨을 때려서 얼버무린 대답과 서커스에 대한 것을 듣기로 하고, 나는 저세상과 함께 순순히 놀이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놀이방은.

“우와……!”

대박, 이게 다 뭐야?

절로 탄성을 자아내는 크기였다.

놀이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저씨가 윤사해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서 비서.”

서 비서, 본명, 서차웅이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는 놀이방은 고급 리조트 내에서나 볼 법한 놀이방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노릇이다.

윤사해가 서차웅에게 우리가 간다고 연락을 한 지, 30분도 채 안 되었는데 말이다.

윤사해가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오와 리타가 어렸을 적에 놀던 곳이란다.”

아하, 원래 마련되어 있던 곳을 한껏 꾸며 놓은 것뿐이구나?

그렇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최신 장난감을 구비해 놓다니.

서차웅이 괜히 윤사해의 비서를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리사, 세상이 오빠와 사이좋게 놀고 있으렴.”

“아빠는?”

“여기 있을 거란다.”

윤사해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차웅이 건넨 서류와 함께 구석 자리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꽤 익숙한 모양새였다. 서차웅이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리오 도련님과 리타 도련님이 어렸을 적에, 길드장님께서 종종 저렇게 앉아 서류를 보시곤 했습니다. 도련님들을 돌보면서요.”

“오빠들을 돌보면서요? 엄청 힘들었을 것 같은데.”

“두 분 도련님께서 길드장님이 계시지 않을 때마다 사고를 치셨거든요. 도련님들의 사고를 막으려면 길드장님이 계셔야 했습니다.”

애들이 사고를 치면 얼마나 크게 친다고.

윤리오와 윤리타.

듬직하기 그지없는 우리 오빠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데, 서차웅이 아련하게 추억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도련님들께서 길드원들의 명패를 모조리 빼앗아 불태워 버렸던 게 생각나는군요.”

뭘 빼앗아? 뭘 불태워?

내 얼굴에 떠오른 경악이 보이지 않는지 서차웅이 그리움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든 길드원들의 명패가 다시 만들어지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는데, 그동안 의식주를 길드 안에서 해결해야했죠.”

그중 ‘식’의 경우, 명패 없이도 길드의 바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던 윤사해가 담당했었다며 서차웅이 웃었다.

저기요, 서 비서님. 웃으면서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서 비서, 잠깐 와 보게나.”

“네, 길드장님.”

쌍둥이들의 어린 시절을 흘리듯이 이야기해 준 서차웅이 나와 저세상의 손에 도미노 패를 하나씩 쥐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의 소악마 시절을 잠깐 떠올리고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아빠는 오빠들한테 왜 경호를 붙여 놨을까?”

내 말에, 서차웅의 이야기를 듣고 잠깐 넋이 나가 있던 저세상이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화홍이 형은 이동계 각성자라고 했어.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형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길 수 있는 최적의 각성자니까 붙여 놨겠지.”

“리사는 화홍이 오빠가 왜 오빠들의 경호를 맡게 됐는지를 물은 게 아니야. 너도 사야 언니가 하는 말 들었잖아?”

저세상이 도미노 패 하나를 바닥에 가지런히 세우고는 나를 보았다.

“화홍이 형이 실수할까 봐 걱정되니까 그 누나가 형들 경호를 맡겠다고 한 거?”

“아니.”

나는 저세상이 세워 놓은 도미노 패 앞에 내 것을 놓고는 말했다.

“서커스.”

저세상이 몸을 작게 움찔거리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리사는 아빠가 갑자기 ‘왜’ 오빠들에게 이미 붙어 있는 경호 인력을 한 명 더 늘린 건지 궁금해. 그게 ‘서커스’랑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도.”

그리고 그 이유는 그리 머지않은 때에 알 수 있었다.

***

늦은 오후.

윤사해의 두 아들과 청(淸)가의 자제가 사이좋게 귀가 중이었다.

“망할, 도대체 축제 같은 걸 왜 하는 거야?”

겉보기에만 그랬다는 거였다.

윤사해의 두 아들 중 첫째인 윤리오는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비나리 고등학교의 축제 준비로 인해, 귀가 시간이 두 시간이나 늦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이렇게 늦어도 하나뿐인 여동생이 혼자 있지 않을 거라는 점.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했지.’

언제나 매몰차게 자신들을 대해 왔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갑작스럽게 태도가 돌변한 아버지, 윤사해.

‘어느 순간은 아니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 윤리사가 던전에 갇혔던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리오는 제 아버지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왜.’

만약, 윤리사가 죽을 뻔했기 때문이라면 윤사해는 진작 변했어야했다. 아니, 변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이 죽을 뻔했던 그날에, 그렇게 변하지 말았어야 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버거워지는 기억에 윤리오가 입술을 꾹 깨물 때였다.

“윤리오, 축제 열리는 게 그렇게 불만이야? 얼굴 좀 펴.”

“내가 뭐 어쨌다고.”

윤리오의 말에 그와 함께 걷고 있던 청해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도 축제 같은 걸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해진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는 윤리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높으신 분들께 보여 주고 싶겠지. 우리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 잘도 논다는 걸.”

높으신 분들이라고 함은, 비나리 고등학교를 설립한 AMO의 고위 공직자들을 말했다.

또한, 학교를 후원 중인 여러 길드의 간부진을 말했고.

비나리 고등학교를 후원 중인 여러 길드 중 하나.

귀수산의 이매망량을 떠올린 윤리오가 얼굴을 사납게 찌푸렸다.

“쓸데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윤리오가 처음부터 순순히 학교의 축제 준비를 도왔던 건 아니었다.

비나리 고등학교 역사상 최악의 망나니라 불리는 윤리오였다.

그런 그가 학교의 축제 준비를 돕기 시작한 건, 자신과는 달리 희대의 모범생이라 불리는 쌍둥이 동생의 우는 소리 때문이었다.

‘형아가 리타를 도와주지 않으면, 리타는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가겠지. 그렇게 혼자 외롭게 축제 준비를 하다가 또 몸살이 나서…….’

‘알았어! 도와주면 되잖아!’

하여튼, 자기 필요할 때만 형이지.

윤리오가 윤리타를 한 번 째려보고는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리사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빠랑 노느라 윤리오, 너는 생각도 안 하고 있을걸?”

“닥쳐, 윤리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윤리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청해진, 들었어? 윤리오가 나보고 닥치래! 녹음해서 우리 리사한테 들려줬어야 하는데!”

“닥치라고 했지!”

“악……!”

윤리오가 윤리타의 옆구리를 세게 가격했다.

윤리타가 가격 당한 옆구리를 부여잡고는 끙끙 앓으며 청해진에게 칭얼거렸다.

“청해진, 윤리오가 나 때렸어!”

“응, 봤어. 복수는 안 해 줄게.”

“청해진!”

윤리타의 우는 목소리에 청해진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그런데 너희, 리사 말고 동생이 한 명 더 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이름이 이세상이라고 하던가?”

“저세상.”

윤리타가 청해진의 말을 고쳐 주고는 입을 열었다.

“세상이는 우리를 아직 어려워하거든.”

“우리가 아니라 나만 어려워하는 거잖아. 너한테는 잘도 ‘형’ 소리 하던데?”

윤리오의 말에 윤리타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윤리타가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이번 축제에서는 선후배 교류전 안 열린다더라?”

선후배 교류전.

비나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와 재학 중인 후배 간에 열리는 친목 도모회였다.

서로 힘을 맞겨루면서 말이다.

윤리타의 말에 청해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그래?”

“학생회장님이 말해 주셨어.”

평소 학생회와 자주 교류하고 있는 윤리타가 입을 열었다.

“열지, 말지로 학생회 내부에서 한창 말싸움을 벌이더니 결국 열지 않기로 했나 봐.”

그 말에 청해진이 크게 안도했다.

“안 열려서 다행이다! 교류전 열렸어 봐! 누구를 초대했겠어?”

“너희 누나?”

윤리타의 대답에 청해진이 질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누나는 나를 지목했겠지. 한 번 싸워 보자면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이 청해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별일이네? 선후배 교류전은 축제의 메인 이벤트잖아.”

“이번에 우리 학교 축제가 지역 축제랑 같이 열리잖아.”

“그게 왜?”

“구청장이 학교 쪽에 너무 시선이 몰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교장한테 말했었나 봐.”

윤리타의 설명에 청해진이 작게 감탄했다.

“윤리타, 너는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듣는 거야?”

“주워듣는 게 아니라, 학생회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거야.”

윤리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윤리오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학생회에 들어가지 그랬어? 아니면 지금이라도 들어가겠다고 학생회장한테 말해 봐. 좋아할 것 같은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윤리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학생회는 일이 너무 많단 말이야. 지금처럼 가볍게 일을 도와주는 걸로 만족할래.”

그리고.

“너희랑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싫다고!”

윤리타가 칭얼거리면서 청해진과 윤리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에 청해진이 짓궂게 웃었다.

“윤리타, 너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좋냐?!”

“너보다는 윤리오가 좋아.”

“망할 새끼…….”

청해진이 실망했다는 듯이 윤리타를 보며 중얼거릴 때였다.

윤리타의 팔을 성가시다는 얼굴로 치워내던 윤리오가 뒤를 돌아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윤리오?”

윤리타가 그런 윤리오를 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거기 누구 있어?”

그 말에 청해진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윤리오가 노려보고 있는 쪽을 쳐다봤다.

“아무도 없는데? 귀신이라도 봤냐, 윤리오?”

윤리오가 피식 웃었다.

“귀신은 아니고, 사람을 봤어.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을.”

그 말을 끝으로, 윤리오는 순식간에 윤리타와 청해진의 곁에서 사라졌다.

“야! 윤리오!”

옅게 남은 잔상에 윤리타가 다급하게 윤리오의 흔적을 쫓았다,

윤리오가 모습을 드러낸 건, 어느 전원주택의 담장 위에서였다.

“여기서 뭐하세요, 화홍이 형?”

“으아아악!”

마찬가지로 담장 위에 서 있던 류화홍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윤리오가 당장에라도 떨어질 듯이 구는 류화홍의 팔을 붙잡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술 마셨어요? 술 냄새 나는데.”

“헉! 냄새 나? 샤워 엄청 열심히 하고 나왔는데.”

“네, 냄새 나요. 그보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냐니까요?”

짜증이 가득한 질문에 류화홍이 두 눈을 데굴 굴렀다.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는 모습에 윤리오가 한 쪽 눈가를 찡그렸다.

“아버지가 시켰어요? 나랑 윤리타, 우리 둘이 무슨 사고 안 치나 감시하라고?”

“감시가 아니라…….”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실소하며 말했다.

“아버지가 시켜서 이러고 있는 건 맞다는 거네요.”

“잠깐만, 리오야!”

류화홍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에 남은 건 옅게 일렁이는 보랏빛 그림자뿐.

그가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망했다…….”

죄송해요, 길드장님.

애들 경호를 맡자마자 이렇게 들켜 버렸네요.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말이에요.

수명이 단축되는 소리가 들리는 류화홍이었다.

***

오늘은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윤사해와 함께 이매망량에 방문했고, 고급 리조트에서나 볼 법한 놀이방에서 즐겁게 놀기도 했다.

비록, 저세상도 함께였지만!

어쨌든 아빠와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는 말이다.

그랬는데.

“화홍이 형을 왜 우리한테 붙여 놓은 건지 지금 당장 설명해요!”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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