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좋아지나 했더니(3)
내 나이 일곱 살.
아이마다 다르다지만, 일곱 살이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해져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나이다.
또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지.
나는 뚱한 얼굴로 윤사해를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혜원이 언니는 아빠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이매망량의 길드원! 그리고 아빠는 이매망량의 길드장이지!”
윤사해가 내 시선을 피하는 걸 멈추고, 기특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물었다.
“길드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리사. 유치원에서 가르쳐 주지는 않았을 테고, 오빠들이 가르쳐 줬니?”
“응!”
내게 길드의 개념을 가르쳐 준 건 『각성, 그 후』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윤사해가 훈훈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보였다.
“오빠들이 리사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줬나 보구나. 리사가 지금 알기에는 어려운 개념인데.”
그렇죠, 아버님의 딸이 이렇게나 똑똑하고 훌륭하답니다. 물론, 아버님의 아들들도요.
아니, 잠깐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선 빼액 소리를 질렀다.
“리사는 아빠의 하나뿐인 딸이지! 그러니까 아빠 가족!”
내 말에 윤사해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리사는 아빠의 하나뿐인 딸이자 소중한 가족이지.”
“그러니까 리사한테도 줘야 해!”
저세상이 결론이 왜 그렇게 나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윤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말했다.
“아빠 가족이 아닌 혜원이 언니는 명패를 가질 수 있는데, 아빠 가족인 리사가 명패를 가질 수 없는 건 말이 안 돼!”
“그건, 혜원이 언니가 아빠의 길드원이니까…….”
“가족보다 길드원인 거야?!”
윤사해가 최우선으로 두는 건 ‘가족’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따르는 길드원들도 꽤 많이 아꼈다.
아빠, 이런 선택지를 줘서 미안해. 미운 일곱 살이 이렇게 일을 잘할 줄은 몰랐어!
내뱉은 말을 어떻게 철회해야하나 고민하는데, 윤사해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나를 달랬다.
“조금 더 크면 주마.”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더 커야 하는데?”
“리사가 리오 오빠와 리타 오빠를 따라잡을 만큼 키가 크면.”
그거, 안 주겠다는 거 아니야?
성장기인 윤리오와 윤리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중이었다.
윤리타는 머지않아 180cm가 훌쩍 넘는 윤사해를 따라잡을 것 같았고.
그런 둘의 키를, 나보고 따라잡아보라고? 장난합니까, 아버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윤사해를 쳐다보는데, 저세상이 다가와서는 내게 속닥거렸다.
“아저씨는 네가 걱정돼서 안 주려는 거야.”
이매망량이 위치한 귀수산에는 ‘미물’이라 뭉뚱그려 칭해지는 온갖 것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들은 청사초롱이 떠다니고 있는 이매망량의 대저택 가까이로는 접근하지 않았지만, 대저택 바깥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환각을 보여 주거나, 죽었을 이의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귀수산의 미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저택 바깥을 나서는 이들을 괴롭혀댔다.
때문에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은 귀수산을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에는 짙게 깔려 있는 안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든, 뭣 모르는 일곱 살 아이에게 이매망량을 함부로 넘나들 수 있는 명패를 줬다가는…….
좋아라하며 대저택 바깥을 돌아다니려고 했을 테지.
하지만 나는 뭣 모르는 일곱 살 아이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철부지 어린 아이처럼 보이겠지만, 아무튼 아니란 말이야!
나는 퉁명스레 입술을 삐죽였다.
“리사도 알아.”
“아는데 그렇게 고집을 부린 거야? 아저씨 힘들게?”
이 망할 주인공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잔소리야?
나는 저세상의 발목을 빠르고 강하게 차 버렸다.
“아야!”
“세상아?”
윤사해가 황급히 몸을 숙이고는 저세상을 살폈다.
자신을 살피는 따뜻한 손길에 저세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저씨. 발에 뭐가 걸려서…….”
그 말에 윤사해가 미간을 좁히고는 바닥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저세상을 발을 아프게 한 건 찾지 못할 거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세상의 발을 아프게 만든 건 내 발이었으니까 말이다!
윤사해 몰래 저세상을 한껏 비웃어 주고 있는데, 등에 묵직한 뭔가가 닿아 몸이 휘청거렸다.
“리사!”
윤사해가 넘어지려는 나를 급하게 안아 들었다. 어느새 저세상도 함께였다.
나와 저세상이 반응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안아든 윤사해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소리 질렀다.
“강호! 애들이 놀랐잖나! 사야는 어디 가고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크르릉!
호랑이다.
윤사해의 몸집만한 거대한 호랑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귀수산에 동물원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여기에 왜 호랑이가?
……라는 의문은 쉽게 해소가 됐다.
“마수…….”
저세상이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는 호랑이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마수.
몬스터와는 달리,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인간을 따르는 미물이었다.
눈앞의 호랑이가 마수라면, 그를 사육하는 각성자가 있기 마련.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하지만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강호는 단지 낯선 기척을 확인하려 한 것뿐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마수의 사육자로 보이는 언니가 나타났다.
“사야.”
그렇게 불린 언니는 곱슬기가 도는 하얀 머리칼을 느슨하게 위로 틀어 올린 예쁜 언니였다.
살짝 내려간 눈매, 그 속에 자리한 붉은 눈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였다.
누구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사야의 붉은 눈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그보다 화홍이는 어디 가고 세상 도련님을 모시고 오셨습니까? 리사 아가씨도 함께이시고요.”
사야의 품에는 어느새 몸집을 줄인 호랑이가 꼭 안겨 있었다.
저렇게 보니 귀엽다.
만져 보고 싶어서 손을 뻗는데, 윤사해가 나와 저세상을 바닥에 내려 주고는 말했다.
“류화홍 헌터가 술병이 났다면서 세상이를 못 보겠다고 하더군.”
“저런, 한계도 모르고 술을 들이켰었나 보네요.”
사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옥이 굴러가는 듯한 맑은 웃음소리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언니, 얼굴도 고우신데 목소리는 왜 또 그렇게 고우셔요?
“윤리사, 정신 차려.”
저세상이 내 정신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야를 보고 있었을 거다.
황급히 입가를 닦는데, 머리 위에서 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 도련님은 그렇다고 해도, 리사 아가씨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모시고 오셨나요?”
윤사해가 답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번쩍 들고는 말했다.
“리사도 세상이 오빠랑 같이 이매망량에 오고 싶어서 아빠 졸랐어요!”
내 대답에 사야가 붉은 눈을 휘게 접고는 말했다.
“그랬나요? 부디, 길드장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미친, 반할 것 같아.
나는 심장 부근을 꼭 부여잡고는 밝게 대답했다.
“네, 언니!”
저세상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사야. 나는 이만 가 보지. 따로 전할 말이 있으면 집무실로 오게나.”
“잠시만요, 길드장님.”
사야가 우리를 데리고 자리를 뜨려는 윤사해를 붙잡았다.
“화홍이가 오늘부터 ‘서커스’와 관련하여 도련님들의 호위를 맡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서커스?
그리고 윤리오와 윤리타의 호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윤사해는 나와 저세상이 들어도 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사야가 몸집이 줄어든 호랑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그 호위, 오늘만큼은 제가 가도 될는지요? 화홍이가 실수할까 걱정이 되어서요.”
그 말에 윤사해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네, 사야. 류화홍 헌터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화홍이가요?”
사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윤사해는 듣지 못한, 나와 저세상만이 들은 목소리였다.
사야는 그렇게 입가를 한 번 쓸어내리고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제가 귀한 시간을 많이 앗은 것 같네요.”
아니에요, 언니! 언니라면 아빠의 시간을 더 뺏어 줘도 되는데요!
사야를 향해 애타는 시선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내 시선은 사야에게 닿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리사 아가씨, 세상 도련님. 길드장님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정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윤사해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사야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크흥!
사야의 곁에 있는 작은 호랑이가 자신의 주인에게 함부로 인사하지 말라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위협적으로 흔드는 꼬리는 덤이었다.
오호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머지않아 마수의 뺨을 향해 손을 휘두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사야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마자 윤사해의 옷자락을 꾹꾹 당기며 물었다.
“아빠. 오빠들한테 무슨 일 있어? 화홍이 오빠가 왜 오빠들의 호위를 맡는다는 거야?”
그리고 서커스.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등장하는지, 나는 치밀어 오르는 의문을 애써 삼켰다.
저세상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윤사해를 올려다보았다.
우리들의 시선에 윤사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리사, ‘호위’가 무슨 말인지 아나 보구나.”
“응! 리사는 똑똑하거든!”
“그럼, 누구 딸인데.”
윤사해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조심스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어서 놀이방에나 가자꾸나. 서 비서가 공을 들여 꾸며 놓았다는 것 같으니.”
윤사해의 말대로 나는 똑똑한 아이였다.
그렇기에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윤사해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러 피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왜’ 피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