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셋에서 넷, 넷에서 다섯(1)
소중한 막내 아이를 잃을 뻔했던 날의 밤.
“세상이 오빠를 리사 동생으로 삼고 싶어.”
“……응?”
“세상이 오빠를 리사 동생으로 삼고 싶다고! 세상이 오빠가 리사 지켜 줬는데, 리사도 세상이 오빠를 지켜 주고 싶어!”
아이가 꺼낸 이야기에 윤사해는 당황했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설마 저런 부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리사, 그건…….”
“아빠, 리사가 말하는 거 모두 들어준다고 했으면서. 또 거짓말한 거야?”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맑은 눈에 윤사해는 애써 웃었다.
“거짓말이라니, 리사? 아빠가 리사랑 한 약속을 어떻게 어길까.”
그렇게 말했지만, 곤란했다.
섣불리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거니와, 그 아이를 제대로 지켜 줄 자신 또한 없었다.
그러나.
“장천의 회장님께서 AMO 쪽에 아이와의 면담을 계속 요청 중이랍니다.”
“아이라면…….”
“저세상 군 말입니다.”
서차웅이 건네 준 정보를 듣자 아이를 거두기로 했다.
‘장천의 회장이 부모 없는 고아에게 관심을 가지다니.’
손익을 계산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이는 인간이 보일 행동이 아니었다.
‘살펴 볼 필요가 있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곁에 둬야했다.
딸아이와 약속한 것도 있으니.
***
“……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 주마. 필요한 건 뭐든 지원해 줄 생각이란다.”
이어진 말에 저세상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다소 겁에 질린 듯한 얼굴.
그러나 윤사해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자리를 비켜 준 아이들은 윤리오와 윤리타, 내 아들들인데…….”
“오빠들도 괜찮다고 했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한 것을 보니 내 뜻대로 해도 좋다는 의미일 거다.
“그리고 우리 리사도 네가 좋다는 구나. 동생으로, 아니. 오빠로 삼고 싶을 만큼.”
아닌데, 나는 이 새끼를 오빠로 인정할 수 없는데.
저세상이 손톱의 끝을 뜯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을 멈추고 고개를 홱 들었다.
“저는…….”
끝이 흐려졌던 목소리가, 이내 명확해졌다.
“데려가 주세요, 아무런 폐도 안 끼치고 조용히 살게요.”
들려온 대답에 윤사해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마음껏 폐를 끼쳐도 된단다.”
윤사해의 말에 저세상이 그럴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저세상을, 윤사해가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침체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해맑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와! 리사한테도 동생 생겼어! 세상이 오빠는 오늘부터 리사 동생이야!”
“그게 뭔…….”
저세상이 윤사해의 눈치를 살피고선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나는 활짝 웃었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저세상이 싫다고 거절했으면, 뺨이라도 때려서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말이지.
나는 저세상을 한 번, 그리고 윤사해를 한 번 번갈아가며 보았다.
윤사해가 단순히 나와의 약속 때문에 저세상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저세상에게 향한 윤사해의 두 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동정이기도 했고, 연민이기도 했다.
왜 저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거지?
드는 의문도 잠시.
“윤사해 길드장님.”
“왔군. 이야기 좀 나누지.”
백시진의 등장에 윤사해는 저세상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선 말했다.
“리사, 세상이랑 안에 들어가서 놀고 있으렴. 아빠는 앞에서 이 아저씨와 이야기 좀 나누고 있으마.”
“응!”
나는 저세상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의 작은 손을 꼭 잡고서 저세상의 병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이 닫히기 무섭게 저세상이 내 손을 뿌리쳤다.
“놔.”
까칠하기는.
“세상이 오빠.”
“새삼스레 왜 오빠라고 불러? ‘야’라고 부른다며.”
“아빠가 있었으니까 오빠라고 불렀지? 이제 ‘야’라고 부를 거야.”
저세상이 뭐 이런 애가 다 있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야.”
한쪽 눈가를 찡그리는 얼굴에 대고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너는 돌아온 거야?”
저세상을 만나고 나서 줄곧 궁금했던 것.
저세상이 검은 두 눈을 나에게로 향했다. 상처가 가득한 손톱 끝도 만지지 않았다.
한 번, 달싹인 입술 끝에서 저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답으로 돌아온 것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질문.
그러나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그 미소에서 보이는 씁쓸함에서 거짓을 느낄 수 있었다.
***
해가 저무는 저녁.
AMO와 협력을 맺고 있는 병원을 찾은 장천의는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말해 주시겠습니까? 아이를 누가 데리고 갔다고요?”
“아이는 이매망량의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데리고 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천의 회장님.”
백시진의 대답에 장천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와 아는 사이입니까?”
“아마도요.”
분명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백시진이 탐색하듯, 장천의를 보았다. 장천의가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선 미소 지었다.
“저희 쪽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습니까?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찾아오신 거군요.”
“네, 저희가 맡고 있던 아이가 유랑단에 의해 실종됐었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꽤 곤란해지니 말입니다.”
장천의는 회사의 이미지라거나, 책임감 등등을 운운하며 주절댔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백시진이 입을 열었다.
“사람을 보내시지 않고요. 아니면, 저희 쪽으로 연락을 주셔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에이, 바쁜 분들을 여기서 더 귀찮게 만들면 곤란하지요. 그리고 이런 일은 제가 직접 처리하는 게 편해서 말입니다.”
장천의가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고객님께서 데리고 가셨다니…….”
아무래도 자신이 착각했던 것 같다면서 장천의는 말했다.
“고객님께서 워낙 철저하신 분이니 말입니다. 저희 쪽 아이였으면 진작 연락이 왔을 테지요.”
그러곤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시진 팀장님. 저는 이만 가 봐야겠군요.”
“네, 살펴 들어가십시오.”
백시진이 멀어지고 있는 장천의의 뒷모습을 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세상이 병원을 탈출하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던 모습.
“……설마.”
아니겠지.
백시진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텅 빈 병실로부터 걸음을 돌렸다.
***
주말의 끝.
달그락거리며 숟가락과 젓가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식구가 한 명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윤사해가 매일 저녁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늘어난 식구.
윤사해의 후원 아래 함께하게 된 저세상은 지금…….
“왜 그렇게 물을 많이 마셔?”
“죄, 죄송해요.”
체한 것 같은 얼굴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저세상이 윤리오를 흘긋거리며 컵을 내려놓자,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눈치 주는 게 아니라, 밥 먹을 때 물 마시면 몸에 안 좋아서 하는 말이야.”
“네에…….”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윤리오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저세상을 보았다.
“국이 짜니까 애가 물을 자꾸 마시잖아. 윤리오, 내일부터 요리하지 마. 내가 할래.”
“리타 오빠, 요리 못 하잖아.”
“너보다는 요리 잘하거든?”
내 나이 일곱 살.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모래로 만든 주먹밥밖에 없는 나이.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리사보다 요리를 못하면, 오빠는 나이를 헛으로 먹은 거겠지?”
“뭐……?”
윤리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그 시선을 간단히 무시했다. 오늘도 기분 좋게 윤리타를 놀렸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밥숟갈을 하나 크게 뜰 때, 윤사해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단다, 요리는 내일부터는 내가 하마.”
그 말에 윤리오가 비딱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요?”
“어……?”
윤사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윤리오를 본다.
그 시선에 윤리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나 윤리타야 점심은 학교에서 해결하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리사랑 세상이는요?”
“리사는 내일부터 유치원 가서 괜찮은데? 그리고 세상이 오빠도 곧 초등학교 가잖아!”
내 말에 윤리타가 물었다.
“아버지, 세상이 학교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금요일에 알아본다고 세상이 데리고 나갔었잖아요.”
“아, 그게…….”
윤사해가 난처하다는 듯이 어색하게 미소를 그렸다. 그에 저세상이 몸을 크게 움찔거리고는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뭐야, 왜 이래?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입학이 보류됐단다.”
“네? 왜요?”
윤사해가 윤리오에게 시험지 몇 장을 내밀었다.
윤리오 옆에서 저녁을 먹던 나는 좋아라 하며 시험지를 함께 봤다.
[국어]
질문: 아래 보기와 같이, 말을 이어 보시오.
<보기>
[포도 ⇒ 도시 ⇒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