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래도(2)
짹짹-
잠을 깨우는 참새 울음소리에 두 눈을 비볐다.
벌써 아침인가? 언제 잠들었지? 잠든 기억이 없는데…….
대신.
“헉, 시바!”
정신을 잃었었다.
바로 윤사해 앞에서.
‘리사, 아가!’
애타게 불러대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그때는 감기는 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여기는 어디지? 윤사해는 어디 갔고? 저세상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X발?〗
“리사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내 말에 현대로맨스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을 할 것처럼 생긴 오빠가 눈살을 찌푸렸다.
〖들은 게 있는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니?〗
오빠가 아니었네.
사령의 숲에서 줄곧 목소리만 들었던 아저씨였다.
잘도 나와 윤사해간의 훈훈한 분위기를 계속 방해했겠다?
나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리사는 진짜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아저씨, 귀 나빠요? 리사가 보청기 하나 해 줄까요?”
〖허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저씨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좋아, 네 아비한테는 비밀로 해 주마.〗
“뭐를요?”
〖그건 네가 알겠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 주고는 간의 침대에서 내려오고자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어.〗
“아빠 찾으러 갈 거예요.”
〖네 아비는 곧 돌아올 테니 그냥 누워 있거라, 윤사해의 따님.〗
아저씨는 그 말을 하고선 뿅뿅, 화면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쥐고 있는 폰이 왜인지 모르게 익숙해서 봤더니.
“그거 아빠 거.”
윤사해의 것이었다.
〖잠깐 빌렸다.〗
윤사해는 자신의 물건을 남들에게 함부로 빌려 주지 않는데…….
나는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끝이 붉게 물들어 있는 밝은 회색의 머리칼.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은 붉었다.
눈이 붉은 사람이야,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으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눈에서 중요한 건.
“아저씨, 도깨비죠?”
길쭉하게 세로로 찢어져 있는 동공이었다.
흡사 짐승과도 같은 눈.
인간의 것과는 다른 눈을 지닌 존재는, 윤사해의 곁에 하나뿐이었다.
‘도깨비.’
어느 순간, 이 땅에서 쫓겨나 미지 영역이란 공간에서 거주하게 된 ‘거주자’ 중 하나.
내 물음에 아저씨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다만?〗
“도깨비같이 안 생겼어.”
〖도깨비같이 생겨야하는 건 어떻게 생겨야하는 건지?〗
의문을 표하는 말에,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기로 했다.
“먼저,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머리에 뿔 달려 있는 놈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제 뿔을 떼어내고 싶어 하더군.〗
“왜요?”
박치기 한 번이면 상대를 골로 보낼 수 있는 좋은 무기인데!
내 질문에 아저씨가 휴대폰의 화면을 열심히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오니’랑 착각하는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오니라면, 일본의 요괴.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오니의 뿔을 다 떼어내면 되잖아요! 왜 아저씨들이 뿔을 떼어내야 해요?”
〖하하, 윤사해의 따님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것 하고는.〗
아저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는 아저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줌마도 있다는 것을 알아 두고.〗
“만나면 언니라고 불러야지.”
〖…….〗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도 잠시, 아저씨는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그것들의 뿔을 떼어내면 될 일이지.〗
“그런데?”
〖그걸 원치 않는 분이 계셔서 말이다.〗
원치 않는 분이라니.
도깨비들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이루며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일 텐데?
거주자에 관해서는 『각성, 그 후』에서 다뤄진 내용이 적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검색창 스킬을 사용해서 알아보기로 하고, 나는 아저씨에게 다른 것을 물어 보았다.
“아저씨, 씨름 좋아해요?”
〖싫어해. 그보다 자꾸 말 좀 시키지 말지? 내가 뭐하고 있는지 안 보여?〗
뿅뿅, 발랄하게 터지는 효과음을 보니 100% 게임 중일 거다.
하지만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안 보여요!”
아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지만, 무시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런데 우리 아빠는 어디 갔어요? 언제 돌아와요? 리사 버리고 또 일하러 간 거 아니죠?”
〖어디 갔는지는 나도 모르겠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일하러 간 건 맞아. 그러나 너를 버린 건 아니지.〗
“그럼?”
〖자세한 건 모르겠고, 너랑 같이 있던 인간을…… 아, 진짜! 너 때문에 죽었잖아!〗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나는 뚱한 얼굴로 외쳤다.
“다시 하면 되잖아요!”
〖신기록 세우고 있었단 말이다!〗
게임에 영혼을 팔아 버릴 도깨비 같으니라고.
아저씨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윤사해의 폰을 두드렸다.
〖이것도 꺼졌네. 야, 이거 켤 수 있어?〗
아저씨가 내게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내밀었다.
“켤 수 있지만, 안 켜 줄래요.”
〖이 녀석이…….〗
아저씨의 붉은 눈에 짜증이 서린다. 그것도 잠시, 아저씨는 단숨에 내게 다가와서는 위협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윤사해의 따님이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만.〗
미간을 꾹꾹 누르는 손길에 나는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안 봐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어떻게 할 것 같으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요.”
미지 영역의 거주자.
그들은 원래 이 세상에 개입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인간과 계약을 맺어서까지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존재가 몇몇 있었는데, 눈앞의 ‘도깨비’가 그런 경우였다.
그렇게 인간과 계약을 맺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거주자들에게는 몇 가지 제약이 가해졌다.
그 중 하나가 인간을 절대로 해칠 수 없다는 것.
나는 내 미간을 누르던 아저씨의 손을 꼭 잡고선 웃었다.
“리사 말이 맞죠, 아저씨? 아무것도 못하죠?”
〖윤사해 따님 아니랄까봐, 성격 한번 지랄 맞군.〗
지랄 맞다니!
저급한 어휘에 경악하고 있는데,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랑야, 게임 그만하고 잠깐 나 좀…….”
안으로 들어오던 윤사해가 나를 보고선 놀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나는 그런 아빠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아빠!”
“리사……!”
윤사해가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이곳저곳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리사, 괜찮니? 아빠가, 아니.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응, 우리 아빠잖아!”
윤사해의 두 눈이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윤사해를 밀어내고는 말했다.
“아빠 못됐어.”
윤사해의 몸이 움찔, 작게 떨렸다. 나는 두 눈에 보인 그 동요를 애써 무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리사는 아빠 계속 기다렸는데, 오빠들도 아빠가 집에 오기를 계속 기다렸는데.”
“…….”
윤사해의 얼굴이 죄책감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윤사해를 꼭 끌어안고선 말했다.
“하지만 안 미워할 거야, 리사랑 한 약속 지켜 줬으니까.”
“……리사, 나는.”
“아빠야, 아빠!”
계속 ‘나’라고 억지로 말하지 마!
나는 빼액 소리 지르고는 말했다.
“아빠는 리사 찾아 줬어! 그리고 지켜 줬다고!”
내 말이 이어질수록, 윤사해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일그러졌다.
나와 똑같은 보라색 두 눈에 눈물도 가득했다. 나는 그대로 윤사해의 뺨을 꼭 잡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리사는 아빠 안 미워할 거야.”
윤사해의 두 눈에 차올랐던 눈물이 기어코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우리 아빠, 눈물도 많지. 이 험난한 세상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시려고 그러세요!
아빠의 어깨 너머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좋은 구경 했다, 윤사해의 따님.〗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
윤사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내게만 들렸던 것 같았다.
괜히 아저씨를 보며 두 뺨을 부풀리는데, 바깥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요, 리사! 윤리사! 제 동생이 여기 있다고 들었어요!”
다급한 목소리.
“리오 오빠다!”
내 말에 윤사해가 황급히 두 눈을 닦았다. 아저씨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윤사해의 품에서 빠져나와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리사, 뛰지 말고……!”
윤사해가 나를 잡으려고 따라왔지만, 내가 문을 활짝 여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AMO의 직원을 닦달하고 있던 쌍둥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리사!”
그리고 둘은 그대로 나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윤리타에게 뺨이 붙잡혔다.
“괜찮아? 다친 곳 없어?”
“응, 없어.”
“없기는?! 여기 다친 건 뭐야!”
윤리타가 가리킨 곳은 무릎에 나있는 상처였다.
저세상이 밀쳐서 난 건데, 이미 딱지가 앉아 있었다. 치료도 되어 있었고.
“리사는 하나도 안 아픈데.”
하지만 내 말에도 윤리타는 속상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윤리오는 나를 꼭 끌어안고선, 감사하다느니 고맙다느니 누구에게 보내는지 알 수 없는 말을 해댔다.
그때였다.
〖뭐야, 큰 아드님 많이 컸네? 작은 아드님도 많이 크셨고.〗
웃음기 섞인 아저씨의 목소리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고개를 들었다.
“랑야님?”
놀란 눈도 잠시, 윤리오와 윤리타는 아저씨의 옆에 있는 윤사해를 보고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려앉은 침묵.
그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윤리오였다.
“리사 때문에 랑야님을 부르신 거예요? 리사를 찾으려고?”
윤사해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이내 결심한 듯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 말에 윤리오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리사가 던전에 갇혔을 때도 좀 불러 주시지 그랬어요?”
〖큰 아드님, 우리는 ‘그곳’에서 아무런 힘도 못 써. 알지 않나?〗
윤리오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저런 말을 한 건, 윤사해가 단지 원망스러워서겠지.
어색하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 윤사해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윤사해의 비서인 서차웅이었다.
서차웅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전해 듣던 윤사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곤 우리를 본다.
“아빠, 이제 가?”
“……그래, 가 봐야겠구나.”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리사. 오늘은 꼭 집에 들어가마.”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홱 들고선 두 눈을 반짝였다.
“진짜? 리사랑 약속할 거야?”
“그래.”
윤사해가 한쪽 무릎을 굽혀 안고선 나와 눈을 맞췄다.
“몇 번이고 약속하마, 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