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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1)화 (21/500)

21화. 그래도(1)

소멸됐다.

아니, 해방됐다는 것이 맞을 거다. 숲에 모아 뒀던 질 좋은 사령(死靈)들을 누군가가 달래 주었다.

‘그 애새끼가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다.

한낱 어린애한테 그런 힘이 있다니, 말이 되지가 않는다.

‘선비 새끼가 나를 엿 먹이려고 사령들을 놓아 줬다는 게 훨씬 더 일리가 있지.’

수십 분 전, 사령의 숲에 들어선 선비의 기운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새끼, 수장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이곳저곳에서 설쳐대고 있는 꼴이란.’

구겨지려는 얼굴도 잠시.

“설아? 설아!”

부르는 목소리에 여자가 선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미소를 걸었다.

“네, 제인.”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왜 그렇게 멍을 때려요?”

“아…….”

때를 맞춰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창밖을 지나갔다.

여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바깥이 시끄러워서 잠깐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렸었네요. 미안해요, 제인.”

여자의 사과에 제인 아일리가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 말아요, 설아. 오히려 제가 더 미안하죠! 바쁘실 텐데 제가 괜히 만나자고 해서…….”

“아니에요, 연락 주셔서 기뻤는걸요? 그간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었잖아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저희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죠? 한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인?”

그 말에 제인 아일리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우리 자기가 반차를 반려당하고, 외근을 나가 버렸다는 불쌍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죠.”

“그렇게 데이트가 무산된 제인은 저에게 연락을 했고요.”

“정답.”

제인 아일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여자 역시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여자의 신경은 여전히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었다.

‘귀찮게 됐네…….’

숲의 근간을 이루던 사령들이 사라졌다. 그러니 숲은 곧 무너질 터.

하지만 괜찮다.

영혼이야 다시 모으면 되는 것이고, 숲이야 다시 가꿔 나가면 되는 것이니.

당장, 눈앞에도 좋은 먹잇감이 있지 않은가?

다만…….

‘애새끼만 좋게 됐네. 빼돌리지 말고 공양으로 바칠걸 그랬어.’

숲이 무너지면, 유희 삼아 숲에 넣어 뒀던 아이는 도망칠 거다.

‘잡지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아이를 사령의 숲에 넣어 뒀던 것은 ‘유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 됐어. 사령들에게 좋은 먹이가 됐을 텐데.’

유랑단 아홉 탈 중 하나, 할미.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

사라졌다.

나와 저세상을 향해 손을 뻗어대던 아귀(餓鬼)와도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귀신들을 몰아낸 사람은,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우리 차애님이셨다.

“아빠…….”

윤사해의 보라색 두 눈이 일순 흔들리는가 싶더니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그러나 윤사해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그 표정을 숨겼다.

“……괜찮니, 리사?”

“응.”

사실, 괜찮지 않았다.

많이 무서웠고 또 두려웠다.

하지만 나를 꼭 끌어안고 있는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말했다.

“리사는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그랬는데 누군가가 우리 차애님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우냐, 울어?〗

“안 운다네.”

〖응, 거짓말. 그렇게나 성질을 내며 네 따님 좀 찾아내라고 나를 불러내 닦달하더니, 이제 울기까지 하는군?〗

“운 적 없다니까!”

윤사해가 짜증스레 소리 지르고는 눈가를 박박 문질렀다.

그 모습에 윤사해보다 톤이 낮은 목소리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시겠지.〗

윤사해에게 꼭 안겨 있는 터라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윤사해에게 반말을 해대는 것을 보니 이매망량의 길드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윤사해, 네 따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는데.〗

그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윤사해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저세상!”

“저세상……?”

의문으로 가득한 윤사해의 목소리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름 한번 기가 막히는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세상은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지키려다가 사령의 손에 당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저세상! 야, 일어나 봐!”

어깨를 세게 잡고 흔드는데 반응이 없다. 뺨이라도 때릴까 싶었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아빠! 얘가 이상해!”

내 다급한 외침에 윤사해가 한달음에 다가왔다.

그때, 동굴 한 구석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힌 것 아니냐?〗

“아니거든요?!”

저세상의 얼굴은 사령들에게 뜯긴 곳 없이 아주 멀쩡했다.

내 말에 얼굴 모를 아저씨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윤사해 따님 맞기는 한가 보군, 저놈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그대로 닮았어.〗

윤사해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어둠 속을 째려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나를 향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친구는 괜찮을 거란다, 리사.”

친구 아닌데.

하지만 나는 윤사해가 머뭇거리며 내민 손을 아무 말 없이 끌어 잡았다.

손을 꼭 쥐자 윤사해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우선, 밖으로 나가자꾸나.”

윤사해는 그렇게 한 손으로 저세상을 가볍게 안고선,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사령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했는데도, 괜히 겁이 났다.

나는 윤사해의 옷자락을 꼭 잡고선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나를 윤사해가 달래 줬다.

“리사, 괜찮단다. 이젠 다 괜찮아. 무서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어.”

어느새 머리 위에 윤사해의 하얀 두루마기 코트가 아닌, 그의 커다란 손이 얹어져 있었다.

따뜻하다.

그 생각이 들기 무섭게, 윤사해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손길이었지만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아무렴, 괜찮아야지. 내가 네 따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망할 아저씨가 모처럼의 훈훈한 분위기를 깨 버렸다.

홱 고개를 돌려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데, 숲을 비추고 있던 붉은 달이 조각나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신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숲이 고운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사령의 숲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각나 부서져 내리는 붉은 달 뒤로 감춰져 있던 해님이 보인다.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서히 드러나는 해님에게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 때문인 걸까?

“리사!”

강하게 이는 현기증에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두 눈도 감긴다.

“리사, 아가!”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해 주려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두 눈이 감겨 버리면서도 나는 오직 하나를 바랐다.

윤사해가, 아니.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리 아빠가 내 곁에 계속 있어 주기를.

***

“사해가 딸아이를 찾았다는구나.”

“다행이군요.”

한단예와 한단아, 백도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리사.

사라졌던 네 아이를 모두 찾았다.

백시준이 긴장감으로 굳어져 있던 몸을 그제야 풀었다.

“그래서?”

그에 AMO의 본부장, 강산에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자네는 이 사태를 어떻게 예견하고 나를 찾아온 겐가?”

날아든 질문에 백시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한애국당의 내부 분열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죠. 그게 이번 전당 대회에서 터진 것뿐입니다.”

“예견되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터지는 날을 예측하는 건, 아무리 자네라도 불가능했을 텐데?”

“봤습니다.”

“흐음……?”

강산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에 백시준이 입을 열었다.

“한태극 의원님의 손주분들께서 저희 아들과 친하거든요.”

“그러니 같이 휘말린 거겠지.”

휘말렸다.

그 말에 백시준이 입 안 가득 씁쓸함을 머금고는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일 파티가 예정되어 있던 장소를 방문했었습니다.”

“그 피자집에?”

“네, 그곳에 선비의 스킬이 펼쳐져 있더군요. 곧바로 그 스킬은 지웠지만…….”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선비라면, 스킬이 지워진 것을 알고서 다시 움직이려고 할 테니 말이었다.

그래서 한태극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윤사해와 함께 대책을 세우려고 했었다.

그 피자 가게에 선비의 스킬이 걸려 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백시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후 1시, AMO의 사람들을 움직여서 이 피자 가게가 위치한 쇼핑센터의 문을 모두 통제해 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AMO의 본부장에게 쇼핑센터의 통제를 요청하고 있었다.

아니, 정신은 줄곧 차리고 있었다.

하고자 했던 일 대신, 다른 일을 했을 뿐이지.

백시준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세뇌라도 당했던 걸까?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로 정밀 검사를 받아 봐야할 것 같았다.

백시준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우리에게 알린 이유는? 자네들 쪽에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에 백시준이 난처하다는 듯이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세뇌를 당해 AMO로 찾아왔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백시준은 말했다.

“저희는 AMO만큼 유능하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그 말, 자네 국장한테는 비밀로 해 주지.”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백시준이 그렇게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많이 놀랐을 텐데, 어서 데리러 가야했다.

“백시준 부서장.”

그런 그를 강산에가 붙잡았다.

“AMO로 올 생각은 아직인가?”

걸음을 붙잡는 질문에 백시준이 잔잔히 미소를 그렸다.

“시진이로 만족해 주십시오, 강산에 본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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