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0)화 (20/500)

20화. 최악의 생일 파티(4)

삐이이-

전화가 가는가 싶더니 결국 끊기고 말았다.

“여기서 신호가 잡힐 것 같아?”

저세상의 비아냥 섞인 목소리에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사령의 숲이 할미가 만든 인위적인 공간이라 할지라도, 전화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거 말이다.

물론, 보다시피 폰은 먹통이었다.

나는 윤리타가 쥐여 줬던 휴대폰의 전원을 꺼 버렸다.

“세상이 오빠.”

“징그러, 그렇게 부르지 마.”

아니, 이 새끼가?

눈앞에 있는 이 싸가지 없는 어린 아이의 이름은 저세상. 내 또래로 보이나, 올해 아홉 살이란다.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으니, 지금은 소설이 시작되기 11년 전의 세계일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소설 속 세계에 빙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각성, 그 후』의 이야기에 개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메시지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이상하지.

“뭘 봐?”

아무래도 저세상 때문인 것 같다.

저세상.

적이 아닌 모두에게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 그래서 호구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주인공님이시다.

“뭘 보냐니까?”

지금은 하악질해대는 애기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세상은 나를 알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윤사해도 말이다. 윤사해야 공인(公人)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왜 살아 있어?’

내가 살아 있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물음.

그건 마치, 내가 이미 죽었어야 했음을 암시하고 던진 질문인 것 같았다.

혼잣말에 가까웠던 것 같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나는 저세상을 빤히 쳐다보다가, 주인공님 옆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뭐야? 오지 마!”

저세상이 질색했지만 무시했다.

“저세상, 너는 여기에 어쩌다 잡혀 온 거야?”

“왜 갑자기 반말이야?”

“징그럽다며? 다시 오빠라고 불러 줄까? 세상이 오빠, 사람이 왜 그렇게 제멋대로야?”

“……제멋대로라서 그것 참 미안하네. 너 좋을 대로 불러라, 불러.”

아이고, 고마워라.

나는 방긋 웃어 주고는 저세상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쩌다 잡혀 온 건데?”

“잡혀 온 거 아니야.”

“그럼?”

돌아오는 답이 없다.

저세상은 입을 굳게 다물고는 내게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확, 뺨이라도 때릴까 보다.

자고로 생각이란 것은 실행하라고 있는 법. 나는 저세상의 뺨을 있는 힘껏 때리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렇게 손을 휘두르려고 할 때.

“너는 어떻게 잡혀 온 건데? 아니, 왜 잡혀 온 거야?”

나는 들었던 손을 재빨리 아래로 내리고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리사도 잡혀 온 거 아닌데.”

“……?”

저세상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에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들 구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것뿐이야.”

“그러니까 잡혀 왔다는 거잖아?”

“아니라고!”

망할 선비 새끼랑 같이 이동된 것뿐이지, 잡혀 온 게 아니다!

나는 저세상을 향해 영석을 집어 던졌다.

머리에 몇 번 맞아 봤다고, 저세상은 내가 던진 영석을 능숙하게 피해 버렸다.

얄미워.

그렇게 씩씩거리는데, 저세상이 비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구했어?”

“응, 아마도.”

“아마도?”

저세상이 얼굴을 구기더니 이내 콧방귀를 꼈다.

“그게 뭐야? 구하려다가 이렇게 됐다며? 그럼 구했어야지.”

“구했을 거라니까?”

“그랬을 거라는 건, 확실하지 않다는 거잖아.”

아오! 뭔 아홉 살이 말을 저렇게 잘해?!

나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못된 아저씨의 손에서 벗어나게는 만들었는데, 어디로 벗어났는지 모르겠어.”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동굴 바깥을 쳐다봤다.

숲을 비추고 있는 붉은 달.

-키히힉…….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귀신들의 웃음소리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영석 하나를 손에 꽉 쥐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리사 친구들은 괜찮을 거야, 무조건.”

“그걸 어떻게 확신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아니, 그렇게 만들 거니까.

***

뚝, 뚝-

천장에서 새는 빗방울이 아이의 말간 뺨 위로 떨어졌다.

흠칫, 몸을 떠는 아이를 그보다 작은 아이가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셋째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한단예는 그렇게 쌍둥이 동생을 진정시키며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흘긋거렸다.

손목 정중앙, 토끼의 붉은 눈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응! 누가 단예나 단아 괴롭히려고 하면 토끼 누르면 돼! 그럼, 강한 어른이 구하러 온다고 했어!’

친구인 윤리사가 선물로 준 것.

그것은, 윤리사가 어느 순간부터 손목에 차고 다녔던 팔찌였다.

그런데 그걸 선물로 줬다.

‘우연일까?’

한단예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망할 애새끼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가까이서 들리는 성난 목소리에 한단아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 옆에 있는 백도윤 역시 마찬가지.

“이쪽에 있다는 거 맞아?”

“이쪽에 있을 거라잖아.”

“10분이 넘도록 찾고 있는데 보이지가 않잖아!”

한단예는 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었다.

쉿.

그 소리 없는 말에 한단이와 백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까치를 통해 선비 새끼한테 연락 좀 넣어 봐! 도대체 여기 어디에 있다는 거야?!”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까치가 사라져 버렸어.”

“망할!”

험한 욕설과 함께 깡통이 걷어차였다. 팅,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던 것이 한쪽 구석,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상자의 벽에 부딪혀 멈췄다.

그 안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편, 지하 길드의 길드원들은 아이들이 커다란 상자 안쪽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도 선비가 이곳에 있다고 했으니까 잘 찾아보자고.”

“10분이나 넘게 찾았는데도 보이지가 않잖아!”

“나가는 것도 보지 못했지.”

그 말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욕설을 지껄였다.

“그런데 찾는다고 해도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 철밥통 새끼들이 건물을 모조리 막아 버렸잖아?”

지하 길드, 함(艦).

이들은 대한애국당 내 여러 정치인의 사주로 한태극의 손주들을 납치하기로 했었다.

전당 대회 날에 맞춰서 말이다.

“들킨 건 아니겠지.”

“도시 곳곳에 검문이 들어갔다는 걸 보면, 작전대로 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작전?”

다소 낮은, 그러나 여자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대화를 가르고 들어왔다.

파지직-!

여자의 주위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캡 모자를 푹 눌러 쓴 여자가 입 안의 막대 사탕을 데굴 굴리며 물었다.

“무슨 작전인지 말해 줄 생각 없지, 너희들?”

내려앉은 침묵.

그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철컥, 총구들이 하나같이 여자를 향했다. 그러나 방아쇠가 채 당겨지기도 전에.

“……!”

내리친 전격에 모두가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쓰러져 버렸다.

“흐으음.”

여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이내 몸을 바로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걸음이 멈춘 곳은 먼지가 가득 쌓인 상자의 앞이었다.

한단예와 한단아, 백도윤이 몸을 숨긴 바로 그곳.

여자는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열었다. 그러기 무섭게 보이는 건 아이들의 겁에 질린 눈.

‘X발 새끼들.’

여자가 쓰러져 있는 여럿의 장정을 향해 얼굴을 구겼다. 그것도 잠시, 여자는 친절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 얘들아. 혹시 너희들뿐이야? 다른 애는 없어?”

상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들은 총 셋.

이 중, 찾던 아이는 없었다.

***

쫘악-!

눈앞이 번쩍 뜨일 만큼의 날카로운 통증이 뺨에서 느껴졌다.

사령의 숲이라고 해도, 안전한 곳에 있다고 그새 잠들었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

“……아야.”

누가 감히 내 뺨을 때린 거야?!

나는 뺨을 부여잡고는 한 번 더 빼액 소리 질렀다.

“아야!”

동굴에 있는 사람은 나와 저세상뿐. 그러니 내 뺨을 때릴 사람은 저세상뿐이었다.

“저세상 이 망할 새끼야!”

“그러게 부를 때 일어나지! 그보다, 뭐? 망할 새끼?!”

망할 새끼고 자시고 나는 저세상을 그대로 쓰러뜨렸다.

“그런다고 뺨을 때려?!”

잠든 사람의 뺨을 때려 깨우는 건 『각성, 그 후』에서 성격 더럽기로 유명했던 ‘이운조’나 할 짓이었다.

“몇 번을 흔들어도 안 깨어난 건 너야! 그러게 누가 그렇게 끙끙 앓으래?!”

“리사는 끙끙 앓은 적 없거든!”

“방금 전까지 끙끙 앓아 댔거든!”

저세상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억울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몽이라도 꿨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암만 봐도 저세상, 이 망할 새끼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나는 손바닥을 쫙 펼치고는 하늘 높이 들었다.

“너도 맞아.”

“맞기는 뭘 맞아?! 이게 기껏 깨워 줬더니!”

저세상이 요리조리 내 손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꿎은 흙바닥만 때려댔다.

“한 대만 맞아 줘! 딱 한 대만!”

“너라면 맞겠냐?!”

그렇게 티격태격할 때였다.

“영석!”

갑자기 저세상이 나를 밀치고는 소리 질렀다.

“영석의 불빛이 꺼졌어!”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담아 푸르게 빛나는 돌.

그 빛이 꺼졌다는 말은 더는 귀신을 물리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거기 있니, 아이야?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와 함께 내 얼굴을 향하는 옅은 손이 보였다.

“안 돼! 저리 꺼져!”

저세상이 나를 꼭 끌어안으며 소리 질렀다.

그 품에 안기며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난밤, 나를 찾아와 약속했었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오른 탓이었다.

윤사해, 거짓말쟁이.

‘너희가 어디 있든.’

꼭 지켜 줄 거라고 했으면서……!

온 사방에서 웃어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키키킥.

-키힉, 키히힉.

불쾌한 웃음소리.

나와 저세상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손.

S급이라는 스킬이 있는데, 그 무엇도 사용할 수가 없다. 코앞에 다가선 ‘죽음’의 공포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형체가 없는 검은 것이 나와 저세상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

머리 위로 내려앉은 무언가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보이는 건, 바닥 아래로 늘어진 하얀 두루마기 코트 자락.

그리고.

“꺼지거라, 빌어먹을 잡것들아.”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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