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9)화 (19/500)

19화. 최악의 생일 파티(3)

‘미쳤나?’

윤리사의 박력에 대한 저세상의 소감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 숲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던 웃음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

‘곧 사령들이 몰려올 거다.’

저세상은 씩씩거리고 있는 아이를 무시하고서 다시 내달리려고 했다.

하지만.

“……?”

왜인지 모르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

망할 박력.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저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성공했다.

나는 화끈하게 달아오른 뺨을 진정시키고는 저세상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싫어.”

내 말에 저세상이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그에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도망가면 사령을 부를 거야.”

“……이미 네 목소리 때문에 몰려오고 있을 텐데.”

그건 아닐 거다. 나는 ‘저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만 원했기 때문이다.

사령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괜찮을 거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너,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아?”

“응, 리사가 하는 말 못 들었어? 도망가면 사령을 부를 거라고 했잖아. 리사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

“알고도 그렇게…….”

“소리 질렀어.”

나는 저세상의 말을 가볍게 끊고서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목소리는 잔뜩 낮추고선 말이다.

“그야, 리사가 계속 부르는데도 네가 도망쳤잖아!”

“그런다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 자신 있냐고?”

시, 시바.

망할 박력 때문에 내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도망가지 마.”

“누가 도망갔다고.”

도망갔으면서 저러네.

나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저세상 앞에 멈춰 섰다.

구름에 살짝 가려졌던 붉은 달이 완전히 드러난 순간, 저세상의 검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 외모를 보고 놀랐나 보다.

하긴, 윤리사가 윤사해를 오죽 닮았어야지.

윤리사의 잘난 외모에 뿌듯하게 웃고 있는데, 저세상에게 멱살이 잡히고 말았다.

아니, 이 새끼가?

당혹감도 잠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왜 살아 있어?”

내가 왜 살아 있냐니…….

“아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그때였다.

-키키킥!

-거기 있니? 거기 있구나!

-키힉, 키히힉!

온몸의 털이 쭈뼛 설 만큼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저세상이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가는데!”

“여기서 가장 안전한 곳.”

사령의 숲에서 안전한 곳이라니, 그런 곳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런 곳이 존재했다면…….

백시진이, 악귀가 된 제 연인의 손에 허무하게 얼굴을 잃고 죽지 않았을 거다.

‘시진’이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익숙한가 했다. 사령들에게 쫓기는 순간, 기억났다.

백시진은 저세상이 처음 만났던 AMO의 각성자였다. 저세상에게 각성자 사회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준 인물이기도 했다.

“죽게 놔 두지 않을 거야.”

어투만 다를 뿐, 백시진이 저세상에게 했던 말과 똑같다.

백시진은 저세상과 함께 사령의 숲에 잡혀 온 후, 스스로 미끼가 됐었다.

「“유랑단을 상대한 경험은 제가 월등히 더 많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그러다 실종됐었던 제 연인을 만나, 그 손에 죽어 버렸지.

그때 저세상이 하려다 만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릴 적에 ‘사령의 숲’에 잡혀 온 경험이 있다고 말하려 했었나 보다.

나는 내 손을 꽉 쥔 상처투성이 손을 흘긋거렸다. 뿌리칠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키히힉? 키히히?

뒤를 쫓아오고 있는 사령들의 웃음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저세상의 표정이, 너무 절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푸르게 빛나는 돌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동굴이었다.

“여기는 어디야?”

“영석(永石)을 모아 둔 곳.”

“영석?”

“귀신을 물리치는 돌. 저 푸른빛에 그 힘이 있어.”

“그런 게 사령의 숲에 왜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저세상이 짜증스레 말을 덧붙였다.

“할미가 한때 취미로 수집했던 건데, 이 동굴에 모아 두고선 잊어버렸지.”

『각성, 그 후』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내용.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특수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검색 대상] : 사령의 숲

[“여, 여긴…….”

“사령의 숲입니다. 유령단의 할미가 가꾸는 숲인데, 이거 곤란하게 됐군요.”

백시진의 말에 저세상이 겁에 질린 얼굴을 보였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나는 ‘사령의 숲’ 밑에 존재하는 연관 검색어를 확인해 보았다.

[검색 대상] : 사령의 숲

[↳연관 검색어 : 할미 | 영石 | 백시진 | 제인 아일리 | 死靈 | 악귀 | ……]

……다뤄진 적이 있었다고?

연재분 이후의 원고에서 언급이 된 내용인가?

텍스트 파일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은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동굴 바깥을 쳐다보았다.

귀신을 물리치는 돌이란 말이 사실인지, 사령들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동굴 한쪽에 털썩 주저앉고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사령의 숲에 이런 곳이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있었어?”

“너에게 답해 줄 의무 따윈 없어.”

싸가지하고는.

나는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아까 리사한테 했던 말은 무슨 말이야?”

“꼬맹이는 알 필요 없어.”

자기도 꼬맹이면서 무슨 소리래.

나는 굴러다니던 영석 하나를 주워서 저세상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따악-!

나이스 샷이다.

“아야! 이게 무슨 짓이야?!”

“대답 안 해 주면 네 머리에 하나 더 던져 버릴 거야.”

“던져 보든가!”

따-악!

영석이 저세상의 머리에 부딪치며 영롱한 소리를 내었다.

“너……!”

저세상이 머리를 부여잡고는 씩씩거렸다.

눈가에 찔끔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말해.”

안 그러면 하나 더 던져야지.

영석 하나를 손에 꼭 쥐자, 저세상이 몸을 움찔거리고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던 거야.”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저세상이 손톱 끝을 뜯으면서 나를 흘긋거렸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저세상은 내 최애님도 차애님도 아니었지만, 『각성, 그 후』의 주인공님이셨다.

몇 번이나 정주행을 했던 소설.

그 이야기의 주인공님이니, 나는 저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싫어도 말이다.

그리고.

“너는 리사가 누군지 알고 있지?”

저세상 역시 내가 누구인지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저세상은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몰라.”

또 거짓말.

두 번씩이나 거짓말하는 주인공님께 영석을 한 번 더 던지려다가 활짝 웃기로 했다.

“나는 리사야, 윤리사.”

저세상이 새삼스레 웬 자기소개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간단히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야?”

저세상은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의 이름으로는 너무한 이름이었다.

***

“하하, 이게 무슨 난리랍니까?”

CW(Clock Work).

4대 길드 중,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따지면 가장 제일(第一)인 그곳의 주인, ‘장천의’가 난처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외부 통신도 불가능하니, 나 원.”

“죄송합니다, 회장님. AMO 쪽에서 파견 나온 직원에게 사정을 구해 보려고 했지만…….”

“들어줄 수 없다고 하지요?”

장천의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에 그를 보좌하는 수행비서가 더욱 고개를 숙였다.

“너무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미안해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하지만.”

“하지만이 아닙니다. 건물의 통제가 언제 풀릴지 모르겠으니, 근처 카페라도 가 있을까요?”

장천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있는 곳.

성동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이 쇼핑센터는, 현재 바깥으로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AMO 쪽에서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 건지 이야기 안 해 주셨지요?”

“네, 회장님.”

비서의 대답에, 장천의가 묘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유랑단’과 같은 지하 길드의 소행으로 뭔가 일이 벌어졌다면, 진작 도움을 요청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고.’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러는 걸까?

‘도로의 통제가 아닌, 건물의 통제라니.’

그런 의문과 함께, 장천의가 카페의 문을 직접 열려고 할 때였다.

삐빅- 삐빅-

그가 차고 있던 고급 손목시계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난데없이 울리는 소리에 장천의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회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요, 딱히 무슨 일은 없습니다만…….”

시곗바늘 아래에 나타난 문구가 보였다.

[SD_G-1544-17]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한 좌표.

그것은, 현재 장천의가 서 있는 곳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에 장천의가 입꼬리를 올렸다.

귓가에 들리는 경고음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네?”

비서의 의문에 장천의는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시계에서 나고 있는 소리.

이것은, 그가 만든 호신용 아이템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아이템의 착용자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

‘분명, 리오 군에게 선물로 줬었지. 중학교 입학 선물로.’

버린 줄 알았는데, 기특하게도 착용하고 다녔었나 보다.

장천의가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사라졌다니, 개소리하지 마!”

“……!”

가까이서 들리는 윤리오의 목소리에 장천의가 놀란 눈을 보였다.

윤리오는 근처 피자 가게의 종업원을 위협 중이었다.

아주 멀쩡한 상태로 말이다.

“윤리오, 진정해!”

그런 그를 쌍둥이 동생인 윤리타가 말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장천의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럼, 이 신호는…….’

윤리오와 윤리타.

둘 사이에 비어 있는 존재. 장천의가 어렵지 않게 그 존재를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통제된 상태이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겠군요?”

“……네?”

보통은 둘 다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회장님?

하지만 장천의는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안 된다고 해도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