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8)화 (18/500)

18화. 최악의 생일 파티(2)

“고얀 놈.”

한태극.

대한애국당의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인 그는 현재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열 명 중 다섯이 각성자인 사회.

여기서 정계에서 활동 중인 정치인을 살펴보면, 백이면 백이 각성자인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태극은 비각성자의 몸으로 온갖 암투가 벌어지는 정계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이제 앞으로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내딛으면 어린 손주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윤사해, 그놈이 안 올 줄이야!’

전당 대회와 같은 정치적 행사가 열릴 때마다, 여러 정당은 4대 길드 중 하나를 경호 인력으로 고용해 왔다.

경쟁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니와 내부에서 각 후보끼리 벌어질 암투를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한애국당이 이번 전당 대회에 경호 인력으로 고용한 길드는 바로 이매망량.

한태극은, 비각성자로서 이매망량 내 가장 주요한 인력의 경호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경호할, 그 주요한 인력이 ‘윤사해’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윤사해는 이러한 정치적 행사에 빠짐없이 모습을 비추던 남자였으니 말이다.

‘그랬는데……!’

연륜에서 비롯된 믿음이 빗나가 버렸다. 한태극이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테이블을 몇 번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자네 길드장은 지금 뭐하고 있다나?”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알지 못한답니다, 어르신.”

윤사해 대신 온 사람은 거주자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매망량의 길드원이었다.

긴 시간이 흘러 거주자의 피가 옅어진 남해 청(淸)가와는 다르게, 거주자의 자식이라고 알려진 자.

한태극이 주름진 미간을 좁혔다.

‘예의 한 번 바르군.’

자신보다 반백 살은 훌쩍 넘은 나이일 텐데 말이다.

한태극의 시선을 의식한 이매망량의 길드원, 거주자의 후손인 ‘사야’가 붉은 눈을 휘게 접었다.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에 한태극이 짧게 혀를 차고는 비서에게 물었다.

“애들은 지금 즐겁게 놀고 있다나? 단아, 그 녀석은 인제 눈물 뚝 그쳤고?”

“네, 아가씨들께서 놀고 계시는 영상을 보내 달라고 할까요?”

“아니, 연설 끝나고 보겠네.”

그 말을 끝으로 한태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째 녀석은 어젯밤 몸이 안 좋다고 연락이 왔으니, 파티 같은 거 하지 말고 쉬게 두라고 말해 놓게.”

“네, 의원님.”

“그럼, 가 볼까.”

달칵, 문이 닫히기 무섭게 안쪽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각성자든, 각성자든 인간이라면 듣지 못할 작은 소음이었다.

“…….”

거주자의 피가 섞인 사야가 문을 한 번 흘긋거렸다가 아무 말 없이 한태극의 뒤를 따랐다.

받은 명령은, 그저 저 늙은 인간을 지키라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

쑤욱-!

몸이 빨려가는 느낌도 잠시, 흙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야야……!”

아래서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두 눈에 눈물을 찔끔 흘러나왔다.

“시바!”

나는 엉덩이를 한번 문지르고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나무와 풀이 잔뜩 우거져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사람의 인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단예야? 단아야?”

즐거운 생일을 맞이했어야 할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도윤아?”

도윤이 역시 마찬가지.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참,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니,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나와 함께 이동된 선비 새끼를 쳐다봤다.

“당신 짓입니까?”

탈 아래로 구겨진 얼굴이 언뜻 보인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고는 말했다.

“……아저씨, 착한 사람이네요? 리사 같은 어린애한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해 주고.”

내 말에 선비가 웃음을 흘렸다.

“겉모습으로 나이를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자연스레 어느 인간에게든 존중을 표하게 되더군요.”

그러고는 작게 키득거렸다.

“그보다 당신은 얌전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왜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나는 입꼬리를 비딱하게 올리며 물었다.

“내가 아빠 딸이라서?”

“잘 아는군요.”

역시, 선비 새끼는 내가 누군지 바로 알아봤나 보다.

이매망량의 주인, 윤사해.

그 유명세와 달리, 그의 자식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윤사해가 철저히 우리들의 정보를 검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눈앞의 선비 새끼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윤사해, 그 인간은 건드리지 않는 게 이득이죠.”

“우리 아빠가 강해서요?”

의기양양하게 웃는데, 선비 새끼가 재미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성격이 워낙 지랄 맞으니 말입니다.”

누가 누구보고 지랄 맞대!

씩씩거리며 두 손을 주먹 쥐는데, 선비 새끼가 난처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쩐담…….”

어쩌기는, 돌려보내 주시죠. 그게 곤란하다면 저 혼자서라도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고독’을 사용하기도 전에, 선비 새끼가 아래턱을 문지르며 웃음을 흘렸다.

“사고로 치죠.”

“사고……?”

“네, 사고요. 사건이 아니면 되니 말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데, 선비 새끼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또래 친구도 있겠다,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잠깐만!”

잡을 새도 없이 선비 새끼가 모습을 감췄다.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의 적용 대상, ‘■■■’가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런, 시바.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가 해제됩니다.】

망했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또래 친구가 있다고 했지?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다.

-킥… 키킥…….

곳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붉은 달만이 떠오른 하늘.

나는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쓰러져 있는 내 또래의 어린아이가 보였다.

덥수룩하게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 눈가 아래의 점 하나.

햇볕이라고는 본 적 없는 것 같은 하얀 피부.

“……저세상?”

나도 모르게 내뱉은 이름이었다.

저세상일 리가 없다.

하지만, 『각성, 그 후』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읽은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아이는, 내가 그토록 읽어 내려갔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물론, 있을 수도 있다.

【‘저세상’의 이름이 각성자로 기록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한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의 과거는 단 한 번도 자세하게 풀린 적이 없다.

적어도 연재분에서는 그랬다.

그러니 저세상의 과거에 관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저세상은 지하 길드에 크나큰 증오를 품고 있었다.

특히, ‘유랑단’에 말이다.

“왜 그랬는지 인제 알겠네.”

그 이유를 지금 알 것 같다.

-키킥, 킥…….

-키히힉.

-킥… 키히힉…….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어서 몰랐는데, 정신을 다잡고 보니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이 갔다.

사령(死靈)의 숲.

산 자에게서 억지로 분리된 영혼들을 모아 놓은 ‘할미’의 숲일 거다.

이곳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일 뿐, 진짜 숲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한 곳이었다.

왜 위험하냐고?

이곳에 모여 있는 영혼들은 원래 살아 있어야 할 사람들의 것이다.

그것들이 억지로 제 몸에게서 분리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이 불길한 숲에 붙잡혀 있으니.

-키히히.

원한이 얼마나 강하겠어?

그러니까 사령의 숲은, 악귀를 만드는 숲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나는 숨을 잔뜩 죽이고는 저세상에게 다가갔다.

사령에게 존재를 들키는 순간, 그것들은 내 몸을 먹으려고 달려들 테니 말이다.

“……먹힌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

사령에게 먹혔다면, 얼굴이 없어야 하는데 내 눈에는 저세상의 고운 얼굴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새끼 판소 주인공 할 만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저세상의 어깨를 가볍게 발로 찼다.

“야, 일어나 봐.”

미동이 없다.

“야아!”

저세상에게 들릴 만큼만,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나는 주인공님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다.

그 순간이었다.

“……!”

번쩍 뜨인 검은 두 눈이 보이기 무섭게 몸이 옆으로 밀쳐졌다.

“아야!”

흙바닥에 쓸린 무릎이 까진 모양이다. 살짝 피가 배는 바람에 나는 울상을 지었다.

“아파라……!”

그 사이에 저세상은 저 멀리 도망친 뒤였다.

저 망할 주인공 새끼가?

나는 아픔도 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저세상을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사령의 숲에서는, 말했듯이 목소리를 크게 내서는 안 된다.

-……?

악귀가 되어가고 있는 영혼들이, 내 몸을 먹고자 달려들려고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야!”

이대로 저세상 새끼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망할 주인공 새끼! 나랑 똑같은 어린애면서 더럽게 빠르네! 저게 바로 주인공 보정인가?

“헉……! 시바, 못 뛰겠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에 멈춰 서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복부에 빵빵하게 힘을 줬다.

목소리를 내뱉기 전에, 잠깐 고민이 되었다.

꼭… 이래야 할까……?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뭣보다 이 빌어먹을 숲에서 혼자 남겨지기 싫었다.

길고 길었던 고민을 끝마친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마! 자신 있나아!”

“……?!”

저 멀리 달려가던 저세상이 놀라 걸음을 멈춘다.

나라도 그럴 거다.

【‘윤리사’의 박력이 ‘사령의 숲’에 울려 퍼집니다!】

시바, 망할 스킬 같으니라고!

내 박력, 마음대로 울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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