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7)화 (17/500)

17화. 최악의 생일 파티(1)

“어제 가위 눌렸어.”

윤리오의 말에 윤리타가 시금치 된장국을 뜨다 말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끙끙거렸구나.”

“들었으면 좀 깨워 주지 그랬어?”

“나는 좋은 꿈을 꾸고 있었거든.”

“리사도!”

나는 윤리오 몰래 시금치를 뱉어내고는 활짝 웃었다.

“아빠랑 오빠들이랑 다 같이 놀러가는 꿈 꿨어.”

“그래……?”

윤리오의 두 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리사! 오빠가 편식하면 안 된다고 했지!”

시금치 버린 게 들통 나고 말았다. 나는 뚱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시금치 맛없어!”

“맛없어도 먹어야 키 크는데.”

“리사는 안 커도 돼.”

“그래, 그러고 나중에 후회하겠지. 어릴 때 시금치 잘 먹을 걸 그랬다면서 말이야.”

“아니거든! 리타 오빠, 바보!”

사실, 걱정되기는 했다.

윤리사는 또래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단예와 단아, 도윤이와 한 뼘 반 정도 차이가 나고 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어쨌든 애들은 큰다.

나는 씩씩하게 밥숟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두고 봐! 언젠가 오빠들보다 클 테니까!”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볼 거다.

안다. 꿈만 같은 이야기인 거.

한창 성장기인 윤리오와 윤리타의 키는 170cm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남자들은 군대 가도 큰다는데, 우리 오빠들은 얼마나 더 클는지.

군대는 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리사, 다 먹었으면…….”

“치카치카하고 나갈 준비!”

윤리오가 웃으면서 내 입가에 붙은 밥풀을 떼어 주었다. 나는 활짝 웃어 주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단예와 단아의 생일이 있는 일요일이었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단예와 단아의 생일 파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건 아니겠지만 괜찮을 거야.”

나는 소매로 가려진 손목 부근을 흘긋거렸다.

윤리오가 내게 채워 줬던 팔찌는, 억지로 풀어서 단예의 선물 사이에 끼워 넣은 상태였다.

다시 포장하느라 얼마나 낑낑댔는지 모른다. 감쪽같이 포장한다고 힘들었지.

나는 양치물을 퉤 하고 뱉어내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이미 외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가자, 리사.”

“응!”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도착한 쇼핑센터.

단예와 단아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도레미 피자 가게의 앞.

윤리타가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내게 넘기며 말했다.

“윤리사,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내게는 폰이 없다. 하지만 윤리타가 걱정된다면서 내게 자신의 폰을 쥐여 줬다.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말한다.

“그 전에 오빠가 준 거 있지? 그거 꾹 눌러.”

윤리오가 준 거라면, 단예의 선물 사이에 넣어 둔 그 팔찌다.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끼?”

“응, 토끼.”

윤리오가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윤사해와 닮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오빠들은 근처에 있을게. 단예랑 단아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 줘, 리사.”

“응! 오빠들도 재미있게 놀아!”

나는 크게 손을 한번 흔든 뒤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단예와 단아의 선물 상자를 들고 있기 때문일까?

가게의 종업원이 나를 곧장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줬다.

“단예야, 단아야!”

“윤리사!”

나를 먼저 반긴 건, 단아였다.

눈가가 붉게 짓물러 있는 것이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리사, 안녕. 와 줘서 고마워.”

“리사야말로 초대해 줘서 고마워!”

나는 방긋 웃으며 단예와 단아에게 선물 상자를 내밀려다가.

“……?”

도로 거뒀다.

선물 상자를 받으려던 단예와 단아가 들었던 손을 뻘쭘하게 내렸다.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생일 파티에 온 지 너무 오래돼서 고민이 됐다.

선물을 언제 주면 좋은지, 그 타이밍에 대한 고민 말이다.

선물을 원래 만나자마자 바로 줬었나? 아니면, 생일 케이크의 초를 불고 줬었나?

잘 모르겠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단예야, 단아야! 생일 축하해!”

“고마워, 도윤아.”

“여기 선물! 내가 고른 거야!”

바로 주는 건가 보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주다 말았던 선물을 다시 주려고 했다.

“안녕, 얘들아.”

도윤이의 뒤에서 등장한 시준이 아저씨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늘도 흐뭇한 외모네요.

시준이 아저씨가 단예와 단아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단예와 단아니?”

“네, 안녕하세요.”

단예의 인사에 시준이 아저씨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생일 축하한단다.”

단예가 고개를 꾸벅였고, 단아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시준이 아저씨를 노려보기만 했다.

“셋째야.”

단예의 나긋한 목소리에도 털이 잔뜩 선 고양이 같은 태도를 취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단예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죄송해요, 셋째가 버릇이 좀 없어요.”

“그래? 잘 모르겠는데?”

시준이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랑 사이좋게 지내 주렴. 리사도.”

시준이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내 옆에 앉은 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시준이 아저씨도 쌍둥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쇼핑센터 내를 서성일 거다.

내가 그러도록 만들었으니까.

바라는 건 하나다.

선비의 등장과 함께 쇼핑센터의 폐쇄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

이 과정에서 윤사해가 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 망할 아버님은 소식이 없으시다.

아니, 소식은 있었지. 지난밤에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어쨌든.

“셋째야, 계속 그렇게 토라져 있을 거니? 애들이 기껏 우리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왔는데 말이야.”

“할배가 없잖아.”

“할아버지는 급한 일을 끝마치고 오실 거란다, 셋째야.”

지금은 단예와 단아를 축하해 줄 때다. 나는 뿔난 다람쥐마냥 두 뺨을 부풀리고 있는 단아에게 말했다.

“단아야, 그러지 말고 리사가 준 선물 풀어 봐!”

“내 것도!”

나와 도윤이의 말에 단아가 입술을 씰룩이고는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 단예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저 포장을 다 뜯은 것은 단예였다. 내가 선물한 책을 보고 미소를 그린 단예가 표지 위에 놓인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사, 이건……?”

“팔찌!”

“팔찌……?”

단예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내 손목 부근을 쳐다봤다. 나는 괜히 소매를 내리며 활짝 웃었다.

“응! 누가 단예나 단아 괴롭히려고 하면 토끼 누르면 돼! 그럼, 강한 어른이 구하러 온다고 했어!”

“……그래? 고마워, 리사.”

단예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단아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윤리사! 나는 왜 안 줘!”

“그, 그게…….”

미안, 단아야. 윤리오한테 받은 게 하나뿐이었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리는데 단예가 나를 구원해 줬다.

“셋째야, 나랑 번갈아가며 끼면 되잖니.”

그렇게 말하고는 단예가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라고 내게 준 거지, 리사?”

“으, 응.”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단아가 화가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셋째야, 그러지 말고 이것 좀 보렴.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잘 어울릴 것 같으면 내놔.”

“오늘은 내가 낄 거란다.”

“그러는 게 어디 있어!”

버럭 지르는 말에 단예가 어깨를 으쓱였다.

“생일이니까.”

“내 생일이기도 하거든?!”

그렇게 단예와 단아가 도윤이의 선물은 풀지도 않고 옥신각신 다툴 때였다.

“아가씨들, 이제 케이크 촛불 불까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가게의 종업원이 우리들 머리 하나는 될 법한 크기의 케이크를 들고 왔다.

일곱 개가 놓인 초에 불이 붙어 있었다.

종업원은 폰을 들어 우리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태극이 부탁한 일인가 보지.

나와 도윤이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이내 손뼉을 치며 해맑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의 끝.

단예와 단아가 생일의 초를 끄기 위해 입술을 오므리던 순간.

“아, 이런.”

불청객은 소리도 없이 등장했다.

“다 묻어 버렸네.”

……이 시바 새끼가?

케이크를 건네려던 종업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덕분에 멀쩡했던 케이크가 한 사내의 발에 뚝 떨어졌다.

코가 큰 탈을 뒤집어 쓴 새끼가 케이크가 묻은 신발을 보며 난처하다는 듯이 굴었다.

선비 새끼다.

귀차니즘 맥스를 찍는 환자분께서 이 자리에 직접 행차하셨다.

단예가 단아를 꼭 끌어안고는 선비 새끼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윤이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두 눈을 끔뻑이고만 있고.

영상을 찍고 있던 종업원뿐만 아니라 가게 내의 다른 사람들 역시 온데 간데 보이지가 않는다.

사라진 건 아닐 거다.

선비 새끼가 공간을 분리시키고 있는 거겠지.

“……아저씨, 누구세요?”

“아저씨라…….”

도윤이의 물음에 선비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턱 아래를 쓰다듬으면서 말이다.

그 몸짓에 나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가 발동됩니다.】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의 필요조건은 모두 충족되어 있었다.

<※ 단, 스킬이 적용된 대상자는 본인(윤리사)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스킬이 적용될 대상자인 선비 새끼가 내 시야에 있었고.

<※ 단, 대상자의 ‘스킬’을 알고 있어야 본 스킬이 적용됩니다.>

그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적용 대상, 고독(孤獨).>

고독.

선비의 공간계 이동 스킬 중 하나인 그것은, 스킬 시전자인 ‘나’는 제외하고 대상만 이동시키는 A급의 공간계 스킬이었다.

이윽고 뜬 메시지는 내가 선비의 스킬을 원래의 등급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당혹감이 깃든 목소리가 들렸다. 선비에게는 등급이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겠지.

나는 선비 새끼가 당황한 틈을 타서 단예와 단아, 도윤이를 이동시키기로 했다.

자신의 스킬이 사용되는 기운을 느꼈는지, 선비 새끼가 곧장 정신을 차리고 ‘고독’을 시전했다.

등급이 달라졌다고 하나, 같은 효과를 지닌 두 개의 스킬이 동시에 사용됐다.

부딪히는 금빛의 기(氣)가 보인다.

그것이 일그러지는 순간, 나의 시야도 동시에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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