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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6)화 (16/500)

16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3)

특수 스킬.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이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A급 각성자보다는 흔하나 S급 각성자보다는 드물었다.

이 스킬의 소유자는 거주자의 후손들이나 세계를 관리하는 시스템에게 선택받은 자들뿐.

즉, 나 역시 시스템에게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1110’님께서 ‘윤리사’ 양의 앞으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우리 작가님, 능력도 좋으시지.

이성(理性)이라곤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스템을 움직일 수 있으시다니 말이야.

뭐하는 양반인지 궁금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뭐라고…….”

놀라 눈을 크게 뜬 백시준에게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지잖아요!”

“응?”

“벽! 지지!”

“아…….”

시준이 아저씨가 황급히 벽에서 손을 떼었다. 그 순간, 보이는 것이 있었다.

옅게 일렁이는 금색의 기(氣).

누군가의 스킬이 해제된 것이다.

시준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특수 스킬, ‘Delete’는 그 이름 그대로 상대의 스킬을 삭제.

즉, 해제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시준이 아저씨가 내 시선을 의식한 모양인지, 벽을 가리며 말했다.

“현기증이 잠깐 나서 말이야. 걱정할 건 없단다.”

현기증이 났다니! 소녀의 이 작은 어깨를 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아저씨, 잠깐만요.”

“왜 그러니, 리사?”

나는 시준이 아저씨가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추게 하였다.

그러곤 곧장.

쫘악-!

흑흑, 미안해요. 하지만 이 빌어먹을 스킬을 사용하려면 뺨을 때려야 한다고 하네요.

아저씨의 뺨을 찰지게 때려 버린 나는 눈물을 머금고서 원하는 바를 말했다.

“아저씨, 어떤 스킬을 해제한 건지 말해 주세요.”

내 말에 시준이 아저씨가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간계 전이 스킬.”

공간계 전이 스킬이라니.

특정 공간에 있는 모두를 통째로 이동시키는 스킬이잖아? 그런 걸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누가 그런 스킬을 걸어 놨는데요?”

“아무래도 유랑단이 펼쳐 놓은 것 같구나.”

“유랑단이요?”

“응, 다루기 까다로운 공간계 스킬을 이렇게 정교하게 펼쳐 놓는 사람은 그쪽에 한 명뿐이거든.”

망할.

설마가 역시나가 되었다.

유랑단 내에서 공간계 스킬을 가진 각성자는 한 명뿐이다.

아홉 탈 중 한 명인 선비.

그 지독한 귀차니스트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니.

“대답이 됐니, 리사?”

“네? 네, 됐어요.”

그 대답과 함께 시야 앞으로 나타나는 메시지가 있었다.

【각성자, ‘백시준’에게 적용된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해제됩니다.】

내가 원한 것을 시준이 아저씨가 들어주니, 아저씨에게 걸린 스킬이 해제된 모양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윤사해의 스킬은 풀린 거지?

우리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내가 원한 대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리사?”

“네?”

시준이 아저씨가 나를 빤히 보더니 이내 싱긋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피자 먹으러 갈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 것 같네.”

“아, 잠깐만요!”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는 대신, 한 번 더 아저씨의 뺨을 때려 버렸다.

지나가던 종업원이 놀라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어쩌다 보니 우리 아빠보다 더 많이 때렸네요. 우리 아빠를 더 많이 때려야 하는데 말이에요.

나는 시준이 아저씨를 향한 미안함에 울상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리사가 하는 말 잘 듣고, 내일 그대로 따라 주세요.”

뒤늦게 중첩 사용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백시준’입니다.】

나타나는 메시지를 보아하니, 가능한가 보다.

***

마약 유통은 기본, 인신매매에 주어진 돈에 따라 살인까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사회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는 이들이 속한 곳을 사람들은 ‘지하 길드’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법이 통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에 따른 통제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 지하 길드가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유랑단(流浪團).

정해진 거점은 없다.

수장이 원하는 곳이 곧 그들이 머무는 곳이 되며, 수장이 원하는 바는 수십, 수백의 피를 묻혀서라도 이루는 곳.

그곳이 바로 유랑단이었다.

백정과 양반, 선비와 이매. 각시와 부네, 할미와 중, 그리고 초랭이.

아홉 탈로 이뤄진 수장의 근위대.

그들 중 하나, ‘선비’는 지금 굉장히 언짢은 상태였다.

삐빅- 삐비빅-

텅 빈 광장을 울리는 소리에 골이 지끈거렸다. 선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이봐요. 그 망할 피에로 좀 어떻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정중하나 날선 말투.

그에 작은 피에로들을 부리던 남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친구들은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서.”

그 말에 선비가 단검을 한 번 휘둘렀다. 단검이 베고 간 공간에 피에로들의 목이 단숨에 날아갔다.

적막이 내려앉은 공간에 선비가 만족스러워하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피에로를 부리던 남자는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를 함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웃는 낯으로 선비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답지 않게 날이 섰군요.”

“누군가 제가 걸어 둔 스킬을 해제시켰습니다.”

“흐음.”

남자는 선비가 맡고 있는 일을 떠올리곤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선비 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웃기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선비가 비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밤중에 가서 다시 설치해 놓으면 됩니다. 아니면…….”

“아니면?”

“모습을 그냥 드러내든가요.”

그 말에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경호가 붙어 있을 텐데요.”

“제가 그것들 하나 처리하지 못할 것 같습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방긋 웃음을 지었다. 능청스런 태도에 선비가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당신은 윤사해, 그 인간한테 들키지 않도록 몸이나 사리십시오.”

이미 들킨 것 같던데.

남자가 소리 없이 중얼거리고는 웃음을 지었다.

***

도윤이네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리사, 안 피곤해?”

“응, 안 피곤해.”

나는 방긋 웃으며 윤리오의 손을 꼭 쥐었다.

윤리타도 내 손을 잡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윤리타의 양손에는 단예와 단아의 선물뿐만이 아니라 다른 쇼핑백도 가득이었다.

“윤리오, 좀 거들어 주면 안 돼? 남는 손 있잖아.”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나를 안아 들었다.

“이제 남는 손 없어.”

“…….”

윤리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윤리오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윤리오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윤리오, 야! 내가 짐꾼이야?!”

“짐꾼 좀 하면 어때서? 사달라는 거 다 사 줬잖아.”

“햄버거 안 사 줬잖아!”

“그 망할 햄버거!”

쌍둥이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나는 시준이 아저씨와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준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특수 스킬, ‘Delete’.

그것은 저세상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정확히는,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인 ‘양반’으로부터 강탈한 것이었다.

저세상이 처음으로 쓰러트린 유랑단의 아홉 탈.

그는 양반을 죽인 뒤,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그에게서 스킬 하나를 빼앗았다.

그것이 바로 특수 스킬인 ‘Delete’.

“알았어! 하나 들어 주면 되잖아!”

윤리오가 결국 윤리타의 짐을 들어주기로 했나 보다.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여전히 쇼핑 센터였다.

나는 현자의 눈을 사용하여, 센터 내 어떠한 스킬이 걸려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피자 가게에서 봤던 금빛의 기운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선비의 것이 분명했던 그 기운.

시준이 아저씨가 그 기운이 깃든 스킬을 해제했으니, 이제 괜찮은 걸까?

아니, 아무도 없는 밤중에 선비가 다시 그 스킬을 걸 수도 있다. 선비 새끼가 자신의 스킬이 해제됐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귀차니즘 맥스를 찍은 환자가 과연 움직일까……?”

“응? 누가 귀찮아?”

아차차, 혼잣말.

“리사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거짓말.”

윤리타가 씨익 웃더니 윤리오를 쳐다본다.

“네가 귀찮나 봐.”

“닥쳐, 윤리타.”

그 말에 윤리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억! 리사, 지금 들었어? 네 큰 오빠가 나보고 닥치래! 닥치란 게 뭔 말이냐면……!”

“조용히 하라는 말이야, 리사.”

윤리오가 윤리타의 발을 콱 밟고는 웃었다.

“아악! 망할 윤리오!”

윤리타가 고통을 못 이겨 자리에 주저앉고는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다짐했다. 혼잣말하는 버릇, 진짜 고치자고 말이다.

어쨌든,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은 선비의 농락에 여러 번 걸려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선비는 말했다.

귀찮으니, 다음에 처리하겠다고.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해제된 스킬을 다시 걸려고 움직인다?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지만, 『각성, 그 후』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많이 아파?”

그때, 병 주고 약 준다고 윤리오가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윤리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그에 윤리타가 이를 으득 갈며 소리 질렀다.

“금 갔을 거야!”

“소리 지르는 걸 보니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

윤리오가 윤리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절뚝거리며 몸을 일으킨 윤리타가 울먹거렸다.

“리사, 봤지? 네 큰 오빠가 이렇게나 나를…….”

“아끼네! 리오 오빠, 착해!”

“……그래.”

윤리타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긋 웃고는 윤리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쇼핑센터를 나와 있었다. 분명, 아침 일찍 쇼핑하러 나왔었는데 해가 지고 있다.

“아빠가 데리러 오면 좋을 텐데.”

“우리가 쇼핑하러 나온 줄도 모르고 계실걸.”

윤리오의 말에 윤리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윤사해는 모르고 있을까?

***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경호 인력을 정당 대회가 열린 쪽으로 돌려놨기 때문이었다.

대신 윤사해, 본인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 있기로 했었다.

‘서커스’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라는 말이었다.

“젠장…….”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

윤사해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설마 아이들끼리 쇼핑하러 갈 줄 몰랐다. 주말 일정을 알았다면, 서커스의 거점으로 사용된 곳을 괜히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을 거다.

윤사해가 쌍둥이 아들들의 방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된 쇼핑백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깜짝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들들이 깰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윤사해는 그대로 막내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웬 선물이.”

그런데 높낮이가 낮은 책상 위에 포장된 선물이 두 개 있었다. 윤사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아빠아…….”

졸음이 가득한 아이의 목소리에 윤사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을 더듬거렸다.

“미, 미안하단다, 리사! 아빠 때문에…….”

윤사해가 황급히 말을 멈추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나 때문에 깼니?”

“으움.”

윤사해의 어린 딸, 삼남매 중 막내인 윤리사가 졸음이 가득한 두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아빠는…… 리사 지켜 줄 거지?”

들린 말에 숨이 막혔다.

윤사해가 아이의 침대 끝 가장자리에 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들도……?”

“그래.”

차마 아이의 뺨을 만질 수가 없었다. 윤사해는 떨리는 손을 주먹 쥐고는 말했다.

“너희가 어디 있든.”

그렇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꼭 지켜 줄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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