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2)
윤사해는 결국 저녁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윤리타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윤리오는 기대도 안 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끝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리사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윤리타.”
“너야말로 우리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윤리오.”
우리 삼남매는 쇼핑센터로 쇼핑 겸 나들이를 나왔다. 나는 윤리타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해맑게 웃었다.
“리타 오빠나 리사 데리고 딴 길로 새지 않게 조심해!”
“……!”
윤리타가 충격을 먹은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 뒤, 윤리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윤리오가 윤리타에게서 나를 안아 들고서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리사, 친구들 생일 선물부터 살까?”
“응!”
“우리 옷부터 사면…….”
“안 돼.”
윤리오가 윤리타의 말을 단호하게 끊고는 내게 물었다.
“단예랑 단아라고 했지? 친구들이 뭐 좋아하는지 알아, 리사?”
“우움…….”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단예는 책을 좋아하고, 단아는 싸우는 걸 좋아해!”
내 말에 윤리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애매하게 미소를 지었다.
“……싸우는 걸 좋아한다고?”
“응!”
“저거 사 주면 되겠네.”
윤리타가 가리킨 것은, 각성자 전용 숍(Shop)의 가판대에 설치되어 있는 광선검이었다.
“장난해?”
윤리오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 옆에 있던 것을 들었다.
“이건 어때, 리사?”
……장난하십니까, 오라버니.
윤리오가 든 건, 성인 남성의 주먹 정도 되는 해머였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윤리오의 손에서 해머를 내려놓았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단아도 충분히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충분히 들 거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가 아홉 시 뉴스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누가 일곱 살 어린애한테 해머를 선물해 줘?!
그런데 윤리오는 일곱 살 어린애한테 해머를 선물해 줘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마음에 안 들어, 리사?”
윤사해를 닮은 국보급 외모를 보니,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말을 최대한 돌려가며 대답해 줬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리사가 고르고 싶어서!”
그렇게 내가 고른 것은 어린이용 에어 펀치백이었다.
이거라면 단아가 아홉 시 뉴스에 등장할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선물 상자를 들었다.
“오빠한테 줘.”
“응!”
달라는데 줘야지.
나는 윤리타에게 단아의 선물을 넘기고는, 서점에 들어가 단예의 생일 선물을 골랐다.
“이거면 돼?”
“응!”
그렇게 단예의 선물도 고른 후, 우리는 중앙 광장으로 나왔다.
단예와 단아의 선물을 사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윤리오가 근처 맛집을 검색하기 위해 폰을 들었다. 나는 윤리타와 발장난을 치며, 윤리오가 빨리 맛집을 찾아 주기를 기다렸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야!”
“……도윤이?”
“진짜 리사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번쩍 들었다.
“도윤이, 안녕!”
“안녕!”
내 앞에 멈춰 선 도윤이가 해맑은 얼굴로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형아들도 안녕하세요.”
“어…… 안녕.”
답해 준 건 윤리타뿐이었다. 윤리오는 언짢다는 얼굴로 도윤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도윤이가 주춤거렸다.
어허, 우리 여린 도윤이한테 왜 그래? 오라버니, 어서 두 눈에 힘 푸세요!
하지만 내가 타박하기도 전에 윤리오는 두 눈에서 힘을 풀었다.
“백도윤! 내가 그렇게 뛰어가지 말라고 했지!”
“……시진이 삼촌?”
윤리오가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리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미간을 한껏 좁혔다.
‘시진’이라…….
하지만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다른 이의 목소리에 끊겼다.
“리사가 반가워서 뛰어간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 시진아.”
“아빠!”
도윤이가 훤칠하게 잘생긴 아저씨의 품에 꼭 안겼다. 아저씨는 그대로 도윤이를 안아 들고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얘들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초면에 죄송하지만 왜 그렇게 잘생기셨나요?
***
[백시준 : 나중에 화내지 말기:D]
난데없는 메시지에 윤사해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뭔 헛소리야?”
“넹?”
폐건물 곳곳을 수색 중이던 류화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사해가 그런 그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러고는 물었다.
“건진 게 있나, 류화홍 헌터?”
“건진 거요…….”
류화홍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여기요!”
“히이익!”
다시 나타났을 때는, 거지 몰골을 한 남자와 함께였다.
류화홍이 남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제압하고는 활짝 웃는다.
윤사해가 잘했다는 듯이 옅게 미소를 지어 주고는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윤사해와 시선을 마주친 남자가 몸을 파드득 떨었다.
“나, 나는 몰라! 아무것도 몰라!”
“그래, 그러시겠지.”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윤사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곧장 입을 열었다.
“서커스.”
남자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다. 윤사해가 그에 입꼬리를 올리고선 물었다.
“그들이 이곳에 있었나?”
미소를 짓고 있다고는 하나, 보라색 두 눈은 차가울 만치 내려앉아 있었다.
***
도레미 피자 유영점.
나는 베이컨 포테이토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며 눈앞의 두 형제를 쳐다봤다.
백시준과 백시진.
이름 한번 헷갈리는 두 형제는 도윤이가 친구들 생일 선물 고르는 것을 도와줄 겸, 쇼핑을 나온 거라고 했다.
“우리 도윤이가 선물 고르는 센스가 좀 없거든.”
시준이 아저씨의 말에 도윤이가 두 뺨을 부풀렸다.
아저씨가 그런 도윤이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백시준.
도윤이의 아버지이자 윤사해의 친구로, 이달의 선행상을 받을 법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런 외모의 소유자가! 『각성, 그 후』에서 이름 한번 등장하지 않았었어! 도윤이랑 같이 말이야!
이게 말이 돼?
나는 작가 새끼를 욕하면서 두 눈에 힘을 줬다. 그런데 시준이 아저씨를 너무 힘줘서 쳐다봤나 보다.
“……리사?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니?”
“네! 잘생김이 묻었어요!”
그러니까 선하게 잘생겼다는 말이었다. 윤사해는 사납게 잘생겼거든!
내 말에 윤리오가 격하게 헛기침을 터트렸고, 윤리타는 소리 없이 경악했다. 백시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왜 그래? 나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시준이 아저씨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리사 옆에 앉아 있는 오빠들 얼굴에도 잘생김이 묻어 있는데?”
크으, 아저씨. 뭘 좀 아시네요?
윤리오와 윤리타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시준이 아저씨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사해랑 얼굴은 똑 닮았는데, 성격이 너무 다르네.”
“내가 말했잖아, 다르다고.”
시준이 아저씨와 백시진의 말에 윤리타가 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시준이 아저씨? 저희 아버지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시진이 삼촌은 아는데…….”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시준이 아저씨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였단다.”
그러고는 피클 하나를 콕 집으며 물었다.
“지금도 연락하고는 있는데, 사해가 내 이야기는 해 준 적 없지?”
“네…….”
“그러겠지.”
다소 씁쓸한 목소리였다.
그 이유를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윤사해와 고등학교 때 친구라면, 그 인간과도 친구였을 거다.
서차윤.
윤사해를 배신하고, 윤리오와 윤리타를 지하 길드에 넘겼던 이매망량의 부길드장.
「“아저씨네 길드에는 왜 ‘부길드장’이 없어요? 처음에는 서 비서님이 부길드장님이신가 했는데, 아니라면서요?”」
나 역시 윤사해의 곁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서차웅이 이매망량의 부길드장인 줄 알았었다.
저세상의 질문에 윤사해가 어떻게 대답했더라.
「“똑같은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네.”」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나는 콜라 한 잔을 원샷하고는 피자 한 조각을 뜯었다.
시준이 아저씨와 백시진이 우리 삼 남매에게 점심을 사 주겠다며 근처 가게로 데리고 온 참이었다.
윤리오가 둘의 호의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내가 사해에 대해 잘 알거든. 시진이는 말해 주지 않을 테지만, 나는 뭐든 말해 줄게.”
그 말에 호의를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혹하는 말이기는 했다.
어쨌든, 두 사람이 데리고 온 가게는 피자 가게였다.
“내일도 여기서 피자 먹을 건데!”
단예와 단아의 생일 파티가 열릴, 그 피자 가게 말이다.
도윤이의 말에 시준이 아저씨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들, 맛있게 잘 먹네?”
“아빠가 사 주는 거니까!”
도윤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 안에 든 것을 그대로 꿀꺽 삼켰다.
시준이 아저씨가 도윤이의 잔에 콜라를 따라 주고는 우리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네?”
“사해에 대해 궁금한 게 뭐니?”
윤리오와 윤리타가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시준이 아저씨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든 가르쳐 줄게.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성적이…….”
“형, 대화는 나중에 해.”
백시진이 시준이 아저씨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리오랑 리타,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
“아.”
시준이 아저씨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둘 다 눈치 보지 마음껏 먹으렴. 리사도…….”
물론 나는 눈치 따윈 보고 있지 않았다.
“잘 먹고 있네.”
방긋 웃으며 피자 한 조각을 단숨에 해치웠다. 윤리오가 냅킨을 뽑아서 내 입가를 닦아 줬다.
그 손길에 배시시 웃는데 시준이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진아, 애들 좀 보고 있어 줘.”
“어디가?”
“화장실 좀.”
시준이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화장실을 가려면 가게의 밖을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시준이 아저씨가 사라진 쪽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사도 화장실 갈래!”
내 말에 윤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혼자 갈 거야!”
“……리사, 혼자 갈 수 있겠어?”
“응!”
“진짜?”
“응! 진짜!”
나는 윤리오와 윤리타가 따라올까 싶어 후다닥 자리를 빠져나왔다.
모퉁이를 돌기 무섭게 시준이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리사?”
벽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던 시준이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화장실은 밖에 있는데.”
나는 배시시 웃어 주고는 시준이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다.
잘생기기는 진짜 잘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낯선 사람은 경계해야 했다.
그 사람이 윤사해의 친구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만나자마자 사용했던 스킬이 있었다.
<[S, 숙련 불가] 클리셰면 뭐 어때 현자의 눈!>
현자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하나 보인 것이 있었다.
“지금, 뭐 지우고 있어요?”
“……!”
백시준.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
<[특수 스킬] : Delete>
그것은, 『각성, 그 후』의 주인공. 저세상이 가지고 있던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