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1)
오늘은 금요일.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 울었니, 셋째야?”
“운 적 없거든?!”
막을 거다.
정답게 서로를 보듬어 주고 있는 단예와 단아의 죽음을.
“한단예! 저리 꺼져!”
음……. 정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맞아, 단아는 운 적 없어!”
그리고 도윤이의 죽음을.
이 세상에서 처음 사귄, 내 친구들의 죽음을 기필코 막을 거다.
***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
윤사해의 막내딸인 윤리사가 그런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길드장님, 여기도 서명해 주셔야 합니다.”
윤사해는 지친 낯으로 업무를 처리 중이었다.
며칠 째인지 모르는 철야.
“……서 비서, 오늘이 금요일인가?”
“네, 금요일입니다.”
“벌써?”
윤사해가 놀란 눈으로 서차웅을 쳐다보았다.
서차웅이 윤사해에게 서류 하나를 건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딱히 없네만…….”
윤사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만년필을 들었다.
‘딸기 더 사 놓을게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버지.’
‘아빠! 빨리 오기!’
배웅을 해 주던 어린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빼꼼, 고개를 내밀던 큰아들의 얼굴도 말이다.
“후우…….”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중충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서차웅이 끼고 있던 안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꼴을 보아하니, 온종일 저러실 것 같다.
‘업무에 지장이 가겠지.’
처리해야할 서류는 산더미.
서차웅이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저…… 길드장님.”
멀리서나마 아가씨와 도련님들을 보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그리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길드장님! 다녀왔어요!”
귀하다는 공간 이동계열 각성자.
윤사해를 포함하여 이매망량 내에서 단 셋뿐인 S급 각성자, 류화홍이 해맑게 웃으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당탕, 요란한 착지에 서차웅이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류화홍 헌터님! 제가 분명 문으로 다니라고……!”
“됐네, 서 비서.”
윤사해가 서차웅의 말을 끊고서 사고뭉치 길드원에게 물었다.
“시킨 일은?”
“다 끝내고 왔죠!”
류화홍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윤사해에게 밀봉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기요.”
그러고는 널찍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재잘재잘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금이현 본부장님께서 신규 던전 공략에 저희 길드 다시는 안 끼워 줄 거라고 전해 달래요.”
“흠.”
윤사해가 봉투를 뜯고서 내용물을 살폈다. 이번에 공략된 신규 S급 던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렇다 할 특이 사항은 없군.”
보고서를 정리한 DMO의 연구 직원이 들었더라면, 격분했을 간단한 소감이었다.
“그리고 여기요.”
윤사해가 허공에서 나타난 봉투 하나를 가볍게 잡고서는 물었다.
“이건 뭔가?”
“DMO에서 백시진 팀장님을 마주쳤거든요. 길드장님께 전해 주면 좋아할 거라던데요?”
“내가?”
“넵.”
하지만 백시진은 AMO의 사람이다.
‘그 녀석이 왜 DMO에…….’
생각도 잠시, 윤사해는 자기가 알 바는 아니라며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서류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서커스’가 현재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파악되는 바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커스.
10년 전, 아이들을 납치했던 지하 길드. 모조리 죽이기 위해 쫓았으나 결국 놓쳤던 이들.
그들이 돌아왔다고 한다.
글자를 읽어가는 윤사해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제가 괜히 전해 줬나 봐요. 안 좋아하시는데?”
“류화홍 헌터님, 그런 건 제발 속으로 생각하십시오.”
류화홍과 서차웅이 그렇게 서로 속닥거릴 때였다.
“서 비서.”
“네, 길드장님.”
서차웅이 언제 류화홍과 노닥거렸냐는 듯이, 몸가짐을 바로하고는 윤사해를 쳐다보았다.
그에 윤사해가 물었다.
“대한애국당의 전당 대회가 이번 주 일요일에 열린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내가 굳이 갈 필요는 없겠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서차웅이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한태극 의원님께서 길드장님이 전당 대회가 열리는 그 장소를 지켜 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그 얼굴에 서차웅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길드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한태극 의원님께서는 유력한…….”
“당 대표 후보시지.”
윤사해가 서차웅의 말을 끊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내 일이 더 급하네.”
한태극이 들었다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면서 혀를 찼을 소리였다.
“그 장소를 지키는 건 사야에게 맡기도록 하지.”
들린 이름에 류화홍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저도요! 저한테도 맡겨 주세요, 길드장님!”
“기각.”
윤사해가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류화홍 헌터, 자네는 나와 일 좀 하지.”
“싫은데요.”
“…….”
단호한 목소리에, 기껏 지었던 윤사해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에서 경련이 일어날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네가 너무 고생했잖아!”
“별로 고생 안 했어, 윤리타.”
“아니야, 윤리오. 오늘만큼은 내가 네 고생을 덜어 줄게.”
윤리오가 걸음을 멈췄다.
“피자를 먹자는 게 어떻게 내 고생을 덜어 주는 게 되는 건데?!”
이게 바로, 윤리오와 윤리타가 조금 전부터 싸웠던 주제다. 그 말에 윤리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음식 준비한다고 장 안 봐도 되고, 요리 안 해도 되고! 그리고 설거지 안 해도 되잖아!”
그러고는 윤리오를 붙잡고 빌기 시작했다.
“피자가 안 되면 햄버거! 불고기 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
“안 돼.”
“형, 제발!”
“인스턴트 절대로 안 돼!”
윤리오의 단호한 대답에 윤리타가 네 큰 오빠 좀 어떻게 해 보란 듯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입술을 다물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윤리사, 너……!”
윤리타가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나를 쳐다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둘 다 너무해…….”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이, 애교를 거부당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윤리오가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저녁에 아버지가 오실 수도 있잖아, 이 바보야.”
“……아버지? 우리 아빠?”
“그래. 저녁 먹으러 오실 수도 있는데, 피자 먹을 거야? 아님 우리끼리 햄버거?”
“아니!”
윤리타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고갯짓에 윤리오가 눈웃음을 지었다.
“인스턴트는 다음에.”
“응!”
……윤리오, 윤리타 길들이기 만렙이구나.
“리오 오빠, 대단해.”
“응?”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윤리오의 손을 꼭 쥐었다.
윤리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윤리오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윤리오가 웃음을 터트렸고, 윤리타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리사, 나도 칭찬해 줘.”
나는 살포시 엄지를 접었다.
“윤리사~!”
윤리타가 우는 소리를 냈지만, 이번에도 가볍게 무시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윤리오는 곧장 저녁 준비를 했고, 윤리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선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단예하고 단아하고 도윤이하고 놀았어.”
“오늘도 그 친구들이랑 놀았어? 다른 친구들이랑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이라…….
“다른 친구들은 리사랑 안 놀려고 하는걸?”
“…….”
내 말에 윤리타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오라버니.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나는 윤리타의 품에 꼭 안기며 배시시 웃었다.
“리사한테는 단예하고 단아하고 도윤이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나는 유치원 가방 깊숙한 곳에서 초대장을 꺼내서 윤리타에게 보여 줬다.
“짜안!”
“이게 뭐야?”
“초대장!”
“초대장?”
“응! 단예하고 단아가 일요일에 생일인데, 생일 파티에 리사를 초대해 줬어!”
나는 활짝 웃고는 윤리타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리오 오빠한테도 보여 줘야지!”
그렇게 윤리오에게 달려가 초대장을 보여 줬다. 윤리오가 초대장을 읽고는 웃었다.
“우리 리사, 좋겠네?”
“응! 그래서 말인데, 리사 내일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어딘데?”
윤리타가 나를 안아들며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초대장에 적힌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레미 피자 유영점>
윤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피자 가게? 리사, 내일 피자 먹으러 가고 싶어?”
“아니!”
나는 그 밑의 주소를 가리켰다.
<성동구 유영광장로 17>
내가 알기로, 단예와 단아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피자 가게가 위치한 곳은 꽤 큰 쇼핑센터라고 했다.
“리사는 여기 가고 싶다고 한 건데! 여기에서 친구들 생일 선물 사고 싶어!”
내 말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서로를 보더니,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래, 리사. 내일 오빠들이랑 나가자.”
“겸사겸사 우리 여름옷도 사면 되겠다.”
“너무 이르지 않아?”
윤리오의 물음에 윤리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활짝 웃으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쇼핑센터에 가자고 한 것은, 단예와 단아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한 것도 있다.
하지만.
‘……피자 가게? 리사, 내일 피자 먹으러 가고 싶어?’
생일 파티가 열리는 그 장소를, 먼저 탐색하고 싶어서인 것도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바로 그 가게일 것 같아서였다.
앞으로 남은 시간, 이틀.
아니, 하루라고 봐야겠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움직일 예정이었다.
내 친구들의 행복한 생일 파티를 위해서 말이다.
“오, 윤리오! 이것 봐봐! 여기 유명한 햄버거 가게 있어! 수제 버거라는데, 쇼핑 끝나고 여기 가자!”
“내가 인스턴트 안 된다고 했지, 윤리타?!”
“수제 버거는 괜찮잖아!”
“안 돼! 안 괜찮아!”
그걸 위해, 우리 윤씨네의 평화는 살짝 뒤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