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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2)화 (12/500)

12화. 사이좋게 한 걸음을 떼려고 했는데(2)

내 생에 아빠와 함께 하교하는 날이 올 줄이야. 거기에 그 ‘아빠’가 차애님이시다!

최애님이셨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랬다가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을 거야.

나는 윤사해의 손을 꼭 잡고서 싱글벙글 웃었다.

“그래서 도윤이랑……!”

“그 아이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렴.”

“왜?”

우리 도윤이가 얼마나 착한데!

뚱한 얼굴로 쳐다보자 윤사해가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모습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빠 친구 아들이라서?”

“윤리사…! 그걸 어떻게……!”

윤사해가 화들짝 놀라더니 내게 속닥거리며 물었다.

“그 아이 아버지가 너를 만나러 왔었니?”

“아니, 없었는데.”

“정말 없었니?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주렴.”

어딘지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착하니까 사실대로 말해 주기로 했다.

“정말인데! 리사는 아빠랑 다르게 거짓말할 줄 모르거든!”

“…….”

윤사해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나는 방긋방긋 웃어 줄 뿐이었다.

왜, 사실이잖아.

던전 공략 빨리 끝내고 집에 온다더니, 오지도 않고.

윤사해가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손목에 그건 어디서 났니?”

“이거? 리오 오빠가 준 거!”

“……리오가?”

“웅!”

윤사해가 가리킨 건, 정중앙에 토끼가 그려져 있는 연보라색 팔찌였다. 누가 괴롭히거나 위협하면 누르라고 했는데 말이지.

“아빠 줄까?”

“아니, 필요 없단다.”

고민도 없이 답하는 목소리에 살짝 상처받을 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오 오빠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윤리오의 모습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윤사해는 파드득 놀랐지만 말이다.

그보다, 잠깐. 윤리오가 왜 여기서 등장하는 거지?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

뒤늦게 당혹감이 밀려왔지만,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윤리오에게 달려갔다.

“리오 오빠!”

“리사?”

윤리오가 놀란 듯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유치원은! 유치원은 어쩌고 혼자 돌아다니고 있어?!”

“아빠랑 같이 쨌어!”

“뭐라고……?”

윤리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검지를 들어 주었다.

“저~기에 아빠 있는데!”

내 손가락 끝을 따라간 윤리오가 표정을 굳혔다. 윤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

“…….”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저기, 오라버니? 아버지?

둘이 무슨 이야기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 소녀 숨 막혀서 뒈질 것 같은데요.

다행히도 내가 질식사하기 전에 윤리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를 다 하셨대요?”

답이 없는 윤사해에게 윤리오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던전 공략은 다 끝내고 오신 거죠, 아버지?”

“그러니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니겠니.”

무덤덤한 목소리에 윤리오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내 손을 잡았다.

“가자, 리사.”

“아빠도……!”

“아버지는 바쁘셔.”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나는 빼액 소리 질렀다.

“아니야! 안 바빠!”

돌고래도 울고 갈 나의 고주파 목소리에 윤리오가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나는 그 틈을 타서 그대로 윤사해에게 달려갔다.

“리사!”

윤리오가 뒤늦게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윤사해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고는 외쳤다.

“우리 아빠 백수야!”

“…….”

이매망량과 가호, 그리고 아래아와 CW.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길드 중에서도 으뜸이라 불리는 이매망량(魑魅魍魎).

나는 그곳의 주인을 아주 간단하게 백수로 만들어 버렸다. 윤사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뭐! 내가 백수라면 백수라는 거다, 이 아버지야!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한층 더 방긋방긋 웃으면서 윤사해를 쳐다봤다.

“그치, 아빠?”

물끄러미 나를 보던 윤사해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나를 밀어내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밀어냈으면 곧바로 뺨을 때려 버렸을 거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이를 깨뜨린 건 윤리오였다.

“……그래, 리사. 네 마음대로 해.”

윤리오는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고는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떻게 붙잡을 새도 없이 멀어지는 모습에 입만 뻐금거렸다.

윤사해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윤리오의 뒤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담겨 있는 윤사해의 감정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윤사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빠, 우리도 가자.”

“……그래.”

윤사해는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

그렇게 도착한 집.

뽀득뽀득 손을 씻고 나온 나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집안의 공기에 헛숨을 들이켜 마셨다.

가죽 소파의 양 끄트머리에 앉은 부자(父子)가 보였다.

그 앞에는 누가 가져다 놨는지 모를 블록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설마, 나보고 저거 가지고 놀라는 건가? 이 숨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리사.”

맞나 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윤리오가 건넨 블록 장난감을 쥐었다. 그러기 무섭게 윤사해와 윤리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바……! 저기요, 뒤통수가 뚫릴 것 같은데요.

저는 알아서 놀고 있을 테니 두 분께서는 대화란 것을 나누는 게 어떨까요?

“…….”

“…….”

시바, 턱도 없지.

내려앉은 공기,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 누가 저 좀 살려 주세요, 썸바디 헬프미.

블록이 나를 쌓는 건지, 내가 블록을 쌓는 건지 모를 지경에 달했을 때였다.

“윤리오! 너 내가 학교 째지 말라고 했지?!”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윤리타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너 진짜 이러면 아빠한테 연락 간다니까……!”

윤리타가 윤사해를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아버지…….”

“왔니.”

단조로운 인사에 윤리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윤리오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윤사해가 그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윤리오.”

“듣기 싫어요.”

그 아드님께서 매몰차게 이어질 말을 막았지만 말이다.

날선 목소리를 내뱉은 윤리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기 전에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잊지 않고 말이지.

쾅, 닫힌 문에 윤사해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이 윤리타의 눈에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나 보다.

“저…… 아버지.”

저렇게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말이다. 윤사해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윤리타에게 말했다.

“손 씻으렴.”

“네? 아, 네…….”

그것이 전부였다.

윤사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길드로 가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달칵, 문이 닫히자 윤리타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리사,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리타 오빠는 잘못한 거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

“진짜……?”

“응, 진짜.”

내 말에도 윤리타는 시무룩한 얼굴을 보였다.

이 빌어먹을 집구석.

아빠고 오빠고 뭐고 뺨 한 대씩 갈겨서 대화의 장을 마련해 버릴까 보다.

나는 가족 문제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게 많이 있단 말이야!

***

윤사해는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안락함과 편안함의 공간이어야 할 집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도 똑같은 생각 중이겠지.’

내가 집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윤사해는 지친 낯을 문지르며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에 그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왜 리사의 손을 거부하지 못했던 걸까?’

언제나 그랬듯이 작디작은 아이의 손을 무시하고 길드로 돌아가면 됐는데…….

윤사해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거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건지, 윤사해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스킬이 해제됐다는 메시지를 본 것 같지만…….’

찰나의 순간 동안 나타났던 것이라 긴가민가하다.

윤사해가 그렇게 드는 의문에 대해 고민할 때였다.

우웅-

진동이 울려 윤사해가 폰을 들었다. 그러나 화면에 뜬 이름에 윤사해의 얼굴이 사납게 찌푸려졌다.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할까 했지만, 윤사해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전화를 받아 들었다.

“뭐야.”

-사해야. 오랜만에 전화한 건데, 인사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본론이나 빨리 말하고 끊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윤사해에게 전화를 건 상대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려, 윤사해는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백시준.”

-응?

“너한테 할애할 시간 따윈 없으니까 빨리 본론이나 말해.”

-친구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친구는 무슨.”

윤사해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희 아들, 유치원 반 바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백도윤, 네 아들이잖아.”

-그치? 그런데 반은 갑자기 왜?

윤사해가 안락의자에 앉고서는 말했다.

“네 아들이 우리 애한테 너무 추근거려.”

자라나리 유치원 꽃님반을 다니고 있는 백도윤의 아버지, 백시준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미쳤나 봐.

“누구 보고 미쳤다는 거야?”

-내가 누구한테 하는 말 같니, 사해야?

윤사해가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 너머의 상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해야, 나이를 먹었으면 그만큼 철 좀 들어 줄래? 너 지금 우리 도윤이가 리사랑 사이좋게 지낸다고 반을 바꿔 달라는 거지?

“잘 알아들었군.”

탄식하며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윤사해가 그에 얼굴을 찌푸릴 때였다.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윤사해 길드장님.

“너…….”

윤사해가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경고를 내뱉으려던 순간.

-그보다 한태극 의원님 경호는 어떻게 할 건지 정했어?

백시준이 말을 돌렸다.

“괜히 말 돌리지 말고.”

-말 돌리는 거 아니야.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 열리는 대한애국당의 전당 대회, 이매망량 쪽에서 경호 인력 지원하기로 했다며?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대외적으로 비밀인 내용이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망할 놈.’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캐물어도 입 닫고 웃기만 하겠지.

윤사해와 함께 비나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백시준은 그에게 있어서는 악우(惡友)나 다름없었다.

안전관리보장국(全企管理保障局)이라고 하던가.

소위 ‘안보국’이라 불리며, 뒤가 구린 일을 도맡아 하는 곳에 어느 날 들어가더니 이렇게 정보를 속속 빼내고 있었다.

윤사해가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끊어. 네 아들 간수나 잘해.”

-응, 사해야~! 너는 아버지 노릇 좀 잘하고~!

“야……!”

뚝, 끊긴 전화에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전화가 끊긴 폰에 대고 욕을 해 봤자 입만 아프다.

윤사해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달력을 들었다.

한태극이 속해 있는 대한애국당의 전당 대회가 이번 주 일요일에 열린다고 했을 터였다.

“……그래서 서 비서가 죽어가고 있었군.”

서 비서, 본명은 서차웅인 그는 윤사해가 벌인 일을 처리하느라 날밤을 지새우는 중이었다. DMO의 본부장인 금이현과 함께 말이다.

여의도 한강 공원에 생겼던 신규 S급 던전의 일만으로도 벅찬데, 외부에서 들어온 전당 대회 경호 인력을 나누기도 해야 했다.

몸이 세 개라도 벅찰 일이었으나, 윤사해는 서차웅의 능력을 믿었다.

‘그래도 도와주러 가야겠지.’

한 길드의 수장이란 자가 일을 남에게 떠맡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윤사해가 길드로 돌아가고자 할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아…… 아버지.”

빼꼼, 고개를 내미는 아들의 모습에 윤사해는 심장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곤 물었다.

“무슨 일이니?”

“저… 그게…….”

“아빠! 딸기 먹자!”

윤리타 아래로 막내딸이 고개를 내밀었다.

윤사해는 당장에라도 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고서는 말했다.

“너희끼리 먹으렴.”

“……안 먹을 거야?”

잔뜩 실망한 어린 딸의 얼굴에 윤사해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도 거절해야 한다. 외면하고 길드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리사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뽀드득뽀드득 아빠 주려고 딸기 맛있게 씻었는데…….”

거절하는 거야?

“…….”

올망졸망 두 눈을 뜨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윤사해는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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