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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1)화 (11/500)

11화. 사이좋게 한 걸음을 떼려고 했는데(1)

한태극의 손주, 한단예와 한단아.

둘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각성, 그 후』에 나온 적이 없다.

둘의 쌍둥이 오빠인 한단이는 건강이 악화되어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단예와 단아의 죽음으로 건강이 악화된 거겠지.

“아오오!”

빌어먹을 『각성, 그 후』 같으니라고! 천사같이 자는 중인 저 아이들에 대해 조금만 더 서술해 주지!

“……리사야?”

“으, 응?”

곤히 자고 있던 도윤이가 졸린 눈을 끔뻑이며 묻는다.

“무슨 일 이써……?”

잠결에 묻는 것 같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도윤이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아니야, 아무 일 없어. 도윤이 어서 자.”

그래야 무럭무럭 자라서 그 잘난 얼굴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예와 단아의 죽음에 도윤이는 또 어떻게 휘말리게 된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있는데……!

모르겠다.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어.

『각성, 그 후』에서 도윤이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었단 말이야.

하지만 도윤이는 한태극이 말한 ‘자네 친우의 아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윤사해에게 친구라니.

“아빠한테 물어볼까?”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 것 같지만, ‘내 말이나 들어라’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 전에 그 인간이 집에 들어와야 할 텐데.

“에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리사……?”

그러나 땅이 꺼져라 푹 내쉰 한숨이 단예를 깨워 버렸다.

“안 자니?”

“잠이 안 와서. 미안해, 단예야. 리사 때문에 깼어?”

“리사 때문에 깬 건 아니야.”

단예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더 안 자, 단예야?”

“셋째 때문에 잠이 다 깨 버려서 말이야. 불편해서 못 잘 것 같네.”

불편하면 밀어내도 될 텐데, 단예는 그러지 않았다.

단아가 칭얼거리면서 품을 파고들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단예야.”

“응?”

“……단예네 할아버지는 많이 바쁘시지?”

“우리 할아버지?”

“응, 단예네 할아버지도 우리 아빠처럼 바쁘신 것 같아서.”

두서없이 물어보는 거라, 어색하게 들리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단예는 이내 방긋 웃으며 답해 줬다.

“그런 편이시지. 하지만 괜찮아.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고는 단아를 보며 말했다.

“나한테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첫째랑 셋째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면서 단예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리사랑 도윤이도 있고.”

“……리사도?”

“응.”

단예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잠든 단아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말했다.

“나랑 셋째가 너랑 얼마나 친해지고 싶었는지 모르지?”

모른다.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자 단예가 소리 없이 웃는다.

“그래서 지금 무척 기뻐.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거든.”

나도 몰랐다.

우성운인지 뭔지, 걔를 물리쳐 줘서 고맙다고 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우리뿐이니까 많이 외로우실 거야.”

“그래?”

“응, 셋째가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니, 리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예와 단아의 할아버지, 한태극은 괴팍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단아의 성격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 별난 구석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 줘야 해.”

일곱 살이란 나이에 저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한태극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 손주 대견스럽다면서 눈물을 흘렸을 거다.

“아, 맞아. 그거 알아, 리사? 첫째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거.”

“단예네 오빠가?”

의외의 이야기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예가 그런 나를 보고는 잔잔히 미소를 짓는다.

“응, 셋째가 네 이야기를 첫째한테 많이 들려주고 있거든.”

그 말에 나는 활짝 웃었다.

단아가 쌍둥이 오빠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내 이야기가 분명 좋은 이야기일 거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이가 빨리 건강해져서 꼭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게. 첫째가 어서 건강해졌으면 좋겠네.”

나와 단예는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우리를, 누가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

윤사해는 CCTV 화면에 비치는 아이들을 빤히 쳐다봤다. 정확히는, 소중한 딸아이의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를 말이다.

윤사해의 시선을 의식한 자라나리 유치원의 꽃님반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한단예라고, 한태극 의원님의 손녀분이세요.”

“압니다.”

윤사해가 CCTV 화면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곤 말했다.

“지난번에 이야기를 나눴을 때는, 리사에게 친구가 없다는 말을 들어서 걱정이었는데 말입니다.”

“리사가 드디어 친구들에게 마음을 연 것 같더라고요.”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그 ‘친구’라는 아이가 성격이 지랄 맞기로 유명한 한태극 의원의 손주라는 것이 걸리지만 말이다.

“옆의 아이는?”

“백도윤이라고, 단예와 단아랑 친하게 지내는 아이인데…….”

“우리 리사에게 너무 추근거리는 것 같군요.”

“네?”

윤사해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곤히 자고 있던 남자아이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딸아이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감히.’

윤사해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꽃님반 선생님에게 말했다.

“애들을 좀 떨어뜨려 주셨으면 하군요. 저 아이의 아버지랑은 제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아… 그게…….”

“괜찮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백도윤’이라고 했지요? 아이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입니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그에 꽃님반 선생님께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두 눈만 데구르르 굴릴 때였다.

<귀하에게 적용된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윤사해의 눈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가 그가 의식하기도 전에 모습을 감췄다.

“……?”

의문도 잠시, 윤사해는 순간적으로 드는 현기증에 머리를 쥐었다.

“리사 아버님?”

“아니요, 잠깐…….”

윤사해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길드 소속 헌터인 류화홍에게 아이의 선생님과 상담을 잡아 달라고는 했었다. 하지만 유치원까지 직접 올 생각은 없었다.

물론, 오고 싶었다.

오고 싶었지마는 보는 눈이 어디에 있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아이의 선생님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리사 아버님? 괜찮으세요?”

“아…… 괜찮습니다.”

윤사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고개를 꾸벅였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이야기를 나눈 게 없는데요?

꽃님반 선생님께서 당혹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윤사해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윤사해가 짐짓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이한테는 제가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꽃님반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윤사해가 그에 만족스러워하며 다시 한번 더 고개를 꾸벅였다.

“그럼, 우리 애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윤사해가 유치원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아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윤사해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

시바! 숨차서 뒈질 것 같네!

“리사야! 멋대로 교실을 나오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소녀에게 급한 일이 있었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국보로 지정해서 보존해야할 외모를 소유 중인 우리 아버님을 쳐다봤다.

【각성자, ‘윤사해’에게 적용된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해제됩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각성, 그 후』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내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것도 잠시.

잠에서 깨어난 도윤이와 신나게 놀고 있었단 말이야!

“……윤리사.”

스킬이 해제된 윤사해는 첫 만남 때 봤던, 그 개차반으로 돌아와 있었다.

성가시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반가워하고 있을 거면서 연기 한번 정말 잘한다 싶었다.

그보다 망할 스킬 같으니라고! 도대체 왜 해제된 거야!

머리를 감싸 매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리사, 교실로 돌아가렴.”

그럴 수야 없지!

나는 두 뺨을 빵빵하게 부풀리고는 윤사해에게 말했다.

“아빠, 미워.”

내 말에 윤사해가 작게 움찔거렸다. 오직 나만이 알아차렸을 몸짓이었다.

차애님, 네가 연기를 암만 잘해도 내 손바닥 안이란다.

나는 흐뭇하게 나오는 웃음을 감추며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했으면서 약속 안 지켰어.”

“그건…….”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면서 리사도 안 보고 가려고 했어.”

“지금 보고 있잖니.”

그걸 말이라고!

순간 욱해서 저 고운 뺨을 한 대 때릴 뻔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나는 코를 훌쩍이고는 말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도 아빠 기다렸는데.”

“…….”

윤사해의 두 눈이 떨렸다.

나는 눈물을 닦는 척, 두 손을 들고는 최대한 불쌍하게 웅얼거렸다.

“리사는 아빠랑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유치원 끝나려면 아직 멀었잖니, 윤리사.”

다소 부드러워진 음성.

윤사해는 지금 속으로 무척이나 전전긍긍하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앓고 있을 거다.

내가 울고 있는 줄 알고 말이다.

나는 눈물을 쥐어짜내면서 쨍하게 소리 질렀다.

“끝날 시간 됐어도 아빠는 리사랑 같이 집에 안 갈 거잖아!”

윤사해가 들켰다는 듯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보였다.

좋아, 밀어 붙이자!

“아빠는 리사가 쓸쓸하게 혼자서 집에 돌아갔으면 하는 거지?”

“뭐?”

윤사해가 미간을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윤리사, 어차피 네 오빠가…….”

“데리러 오기 전에 리사 혼자 집에 가 버려야지.”

“이상한 고집 부리지 마렴.”

단호하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에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윤사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응, 아빠한테는 안 부릴게!”

“……?”

윤사해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는 때마침 유치원을 찾아온 택배 기사님께 달려갔다.

“삼촌!”

그러고는 귀염장한 외모를 최대한 살려 방긋방긋 웃으며 택배 기사님께 말을 붙였다.

“이거 안 무거워요? 리사가 음료수 들고 올게요!”

“어? 그럴 필요는…….”

“윤리사!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하니!”

윤사해가 뒤늦게 나를 잡으러 왔지만, 나는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아저씨, 누구세요?”

“……!”

크게 충격을 먹었는지 보라색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윤사해에게 한 번 더 카운터를 날렸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모르는 사람이랑은 대화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윤리사.”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 부르면 무시하라고도 했는데.”

그런 말은 한 적 없지만, 나는 즐겁게 윤리오와 윤리타의 이름을 팔면서 윤사해를 쳐다봤다.

“…….”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윤사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네? 네.”

“우리 애 좀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앗싸, 내가 이겼다!

윤사해, 너는 내 손바닥 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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