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가족이 다 모이기는 했는데(4)
“우리 셋째 말 너무 귀담아듣지 마, 리사야.”
“응?”
“셋째가 이상한 것만 잘 기억하더라고.”
“아니거든! 나는 이상한 것 말고도 다른 것도 잘 기억하거든?! 한단예, 이 바보야!”
단아의 말에 단예가 나긋나긋하게 묻는다.
“다른 거 뭘 기억하고 있는데, 셋째야?”
“백도윤이 바보라는 거!”
“나 바보 아니야!”
화들짝 놀란 아이는 아까 나를 일으켜 준 남자아이였다.
도윤이의 말에 단아가 코웃음을 쳤다. 팔짱을 낀 모습이 영락없는 소악마처럼 보였다.
“백도윤, 너 바보 맞잖아! 구구단도 못하면서!”
잠깐만, 일곱 살인데 구구단을 외워? 나는 못 했었던 것 같은데……?
역시, 요즘 애들은 다르다.
“단아도 구구단 못하잖아!”
아닌가.
요즘 애들도 나 때랑 똑같나.
도윤이의 말에 단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흥, 한단예한테 배웠거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7 곱하기 6은?”
“41!”
순간 맞았다고 할 뻔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나를 보는 표정을 보아,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3 곱하기 2는?”
“18!”
“…….”
발음이 세서 순간 욱할 뻔했다.
단아는 어디 한번 계속 문제를 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단아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얌전히 대단하다며 손뼉을 쳐 주려고 했다.
“셋째야. 7 곱하기 6은 42고, 3 곱하기 2는 6이란다.”
“뭐?!”
단아가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손바닥을 쫙 펼쳤다. 그걸 펼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단아의 모습에 도윤이가 쌤통이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보고 바보라더니, 단아도 구구단 못 외우니까 바보지?”
“누구보고 바보래!”
“아야! 흐아아앙!”
저것이 바로 내로남불.
자라나는 새싹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폭력성에 감탄하고 있는데, 단예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도 다행이야, 리사.”
“응?”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무사해서 말이야.”
나긋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리사는 다친 곳 하나도 없이 괜찮아!”
“윤리사가 또 고맙다고 했어!”
단아가 도윤이를 언제 울렸냐는 듯이, 도윤이와 함께 부둥켜안은 자세로 놀라 물었다.
자세를 보아하니 유치원 선생님께서 둘이 싸우는 걸 보고 억지로 시킨 것 같았다. 단아뿐만 아니라 도윤이도 훌쩍이면서도 놀란 얼굴이었다.
윤리사는 애들한테 도대체 어떤 이미지인가 싶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든 상관없었다.
“리사가 고맙다고 하는 게 이상해, 단아야?”
바꿔 버리면 되니까.
오물조물 입술을 움직이며 묻는데, 단아가 커다란 눈을 끔뻑이다가 도윤이의 손을 잡고 구석으로 달려가 버렸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
구석으로 달려간 단아가 도윤이와 함께 장난감 블록으로 성을 쌓더니 빼액 소리를 지른다.
“너 윤리사 아니지!”
“…….”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앙증맞은 손을 주먹 쥐고선 부들부들 떠는데, 단예가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참아, 리사야. 큰일을 겪은 몸이지 않니? 우리 셋째한테 괜한 힘을 썼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세상에 이런 일이’는 뭐하는 거야? 여기 영재가 있다고.
단예의 뒤에서 광채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주먹 쥔 손을 풀고서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단예는 리사가 큰일을 겪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응?”
우성운이란 애는 아빠가 DMO의 직원이라서 알았다지만, 단예는 어떻게 안 거지?
들었던 의문을 해소해 준 건 구석에 성을 쌓아 놓은 단아였다.
“우리 할배가 말해 줬거든!”
“할배……?”
고개를 갸웃거리자 단아가 씨익 웃으며 저 멀리서 외쳤다.
“꼰대지만 너희 아빠보다 훨씬 더 좋다? 너희 아빠는 너한테 무슨 일이 있든 데리러 오지도 않잖아!”
괜히 시무룩해진다. 두 뺨을 빠방하게 부풀고서 고개를 숙이자 단아가 쭈뼛거렸다.
“그…… 우리 할배도 잘은 안 데리러 와! 너도 알잖아!”
“리사는 모르는데.”
“이익! 그래도 넌 아빠라도 있잖아! 우리는 없어!”
아니, 이야기가 갑자기 그렇게 튄다고?
놀란 내 얼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단예가 단아의 말을 웃으며 거들었다.
“우리는 어머니도 안 계신단다, 리사야.”
기억도 안 나는 시절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며, 단예는 조곤조곤 자신의 가정사를 설명해 줬다.
여기에 도윤이가 더했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만해, 얘들아…….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웅얼거렸다.
“……리사가 미안해.”
뭔가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응, 갑자기.”
단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껏 머리를 숙였다.
그런 나를 고개 들게 만든 건 단아였다.
“그리고 윤리사! 너는 오빠들이 곁에 있잖아! 우리 오빠는 아파서 저기 바다 건너 있단 말이야!”
“게다가 첫째는 우리보다 작기도 하지.”
“맞아! 난쟁이 똥자루만 해!”
난쟁이 똥자루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단예랑 단아한테도 오빠가 있어?”
“응! 한단이라고 엄청 약해!”
“병을 앓고 있어서 말이야. 우리와 같이 일곱 살이란다.”
사실은 세쌍둥이라면서, 단예는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을 웃으면서 말해줬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병을 앓고 있는 약한 오빠.
그리고 세쌍둥이.
설마, 아니겠지 싶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게 『각성, 그 후』의 세계였다.
[검색 대상] : 한태극
[“우리 손주들 생각하면 죽고 싶어도 내 죽지 못한다네.”
한태극이 피어난 꽃에 물을 뿌리며 잔잔히 목소리를 이었다.
“내가 가면 피지도 못한 우리 손주들의 무덤을 누가 돌봐 주겠나?”
“제가 돌봐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내가 보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한태극의 손주들에 관한 죽음, 그것을 찾고자 이리저리 두 눈을 굴렀다.
[“가끔 생각한다네. 그날, 아이들과 함께였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 아닙니까.”
윤사해의 말에 한태극은 비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그리 치부할 수 있는가? 자네 친우의 아들도 나 때문에 죽었지 않나.”]
아오! 이것도 아니야!
그보다, 뭐? 친우의 아들?
나는 홱 고개를 들어 단아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도윤이를 쳐다봤다.
처음부터 단예와 단아와 함께 있던 도윤이.
이번에도 설마, 아니겠지를 시전하며 다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권력이 무엇이라고, 우리 단예와 단아가 그렇게 될 동안에 그리 떠들고 있었어…….”]
망할.
한태극의 입에서 나온 적 있는 이름들이었구나.
“리사야? 조금 전부터 말이 없는데, 괜찮니?”
단예의 말에 단아가 성벽에서 고개를 빼꼼 들고는 물었다.
“……뭐야, 윤리사 아파?”
“리사가 아프다고?”
그 옆에서 도윤이도 같이 고개를 빼꼼 들고는 걱정스레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시선에 나는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시바…….”
“윤리사!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나지막하게 내뱉은 나의 욕설을, 불행히도 간식을 들고 오던 유치원 선생님께서 들어 버렸다.
***
비나리 고등학교.
각성자 관리 기구인 AMO(Awake Management Organization)가 설립했으며, 한국의 내로라하는 길드들이 후원 중인 고등학교다.
오직 각성자로 판가름이 난 학생만이 들어올 수 있는 최고의 교육 기관.
이곳에서 어린 각성자는 AMO의 보호 아래 자신의 스킬을 연마했으며, 각 길드는 추후 자신의 길드로 영입할 인재가 있을지 눈독을 들였다.
물론, 그중에도 스킬을 연마하는 것에도, 각 길드의 인재 영입에도 관심이 없는 학생이 있었다.
“윤리오!”
윤사해의 첫째 아들이 그 경우였다.
쌍둥이 동생의 화난 목소리에 윤리오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리타는 발을 쿵쾅 굴리며 윤리오에게 걸어왔다.
“어떤 학생이 점심시간 끝나고 등교를 해!”
삿대질은 덤이었다.
옆에서 청해진이 크게 하품을 하고는 졸린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학생 많은데? 우리 누나는 수업 중간에 튀기도 하고 그래.”
“청해진, 너는 조용히 있어! 그리고 너희 누나는 대학생이잖아!”
청해진이 입술을 삐죽였다. 윤리오 앞에 선 윤리타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아빠 부른다더라.”
“부르라고 해. 어차피 오지도 않을 텐데.”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윤리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는 진짜 부르시려는 것 같았어. 이매망량까지 찾아가실 것 같았단 말이야.”
“이매망량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그러셔?”
내로라하는 길드 중에서도 손꼽히는 네 개의 길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매망량(魑魅魍魎).
동해 앞바다를 떠다니는 귀수산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 이 길드는, 길드원이 아니고서야 접근이 쉽지 않았다.
비딱하게 지은 웃음에 윤리타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윤리오, 우리 담임선생님 제자 중 한 명이 화홍이 형이야.”
“…….”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동계 각성자의 도움이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얼굴을 구겼다. 그 얼굴에 이번에는 윤리타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리사가 오늘 ‘유급’이 뭔지 물어보는 거 봤지? 애한테 네가 학교에서 어떻게 하는지…….”
“간다, 가. 가면 될 거 아니야?”
윤리오가 단정하게 묶여 있는 연분홍색 머리칼을 사납게 헤집고는 다리를 움직였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청해진이 졸린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리사가 만병통치약이네.”
“쟤한테는 리사가 전부거든.”
가족이라 여겼던 사람의 배신.
그로 인해 윤리타는 윤리오와 함께 지하 길드에 납치를 당했었다.
다행이라면, 윤리타는 아주 운이 좋게도 도중에 구출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윤리오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구조가 되었다.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었다.
그 일로 윤리오는 말하는 법을 잠시 잊었으나,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어린 동생 덕분에 다시 입을 열었었다.
그 동생이 바로 윤리사였다.
성큼성큼, 복도를 걷던 윤리오가 걸음을 멈췄다.
“리사 이야기는 왜 꺼내, 진짜.”
내다 본 창밖에는 벚꽃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짜증나.”
빌어먹을 봄이었다.
***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유치원의 오후, 아이들은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어쩌지?”
그리고 나 혼자 말짱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곤히 잠든 단예였다. 그 품을 단아가 파고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윤이가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중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이 귀엽기 그지없다.
문제라면.
“진짜 어쩌지……?”
만난 지, 하루.
기가 막힌 친화력에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자라나는 새싹들이 곧 죽을 거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