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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9)화 (9/500)

9화. 가족이 다 모이기는 했는데(3)

윤리오의 걱정은 타당했다.

윤리타는 모르지만, 나는 윤리오와 함께 던전에 갇혔다가 빠져나온 몸이었다.

그것도 S급 던전에서 말이다.

고작 이틀 전에 일어난 일.

그러니 윤리오가 저런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윤리오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리사는 진짜 괜찮은데!”

“……하지만.”

“진짜 진짜 괜찮아!”

하지만이고 자시고 한 번만 더 그 소리 꺼내 봐, ‘내 말이나 들어라’를 사용해 버릴 거니까.

다행히도 윤리오는 더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한국인의 인내심이 끊길 뻔했는데, 다행이다.

그 사이에 현관문을 연 윤리타가 윤리오를 보며 씨익 웃었다.

“리사가 괜찮다고 하잖아. 그리고 리사가 유치원 가기 싫다고 해도, 누가 리사를 봐 주겠어?”

“혜원이 누나도 있고, 화홍이 형도 있잖아.”

“혜원이 누나가 잘도 봐 주겠다.”

집을 나오기 무섭게 윤리오가 나를 안아 들었다. 그러곤 내 뺨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내가 보면 되잖아.”

“너 그러다 진짜 유급해.”

그러나 더 이상 내 귀에는 윤리오와 윤리타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윤리오가 내 뺨에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해 줬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스킨쉽은 굉장히 오예지만 아직 내외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미운 일곱 살은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윤리오에게 물었다.

“유급이 뭐야?”

“한 학년 꿇는 거.”

답해 준 건 윤리타였다.

앞서 걷던 윤리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리사?”

안다, 이 자식아.

나는 아무 말 않고 뚱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윤리타가 키득거리며 웃더니 내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애 얼굴에 함부로 손대지 마. 손이나 씻고 만지든가.”

윤리오가 짜증스레 말했다.

“손 씻을 곳이 어디 있다고.”

“여기 있지!”

쾌활한 목소리에 윤리오가 화들짝 놀랐다. 나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보이는 건 싱그러운 녹음의 색을 띤 머리칼과 두 눈이었다.

자연을 그대로 한 폭에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싱그러운 색은 청(淸) 가문 출신의 사람들만이 가지는 색이었다.

“청해진, 놀랐잖아!”

청해진.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에 두 눈을 끔뻑였다.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친근하게 굴 정도의 사람이면, 『각성, 그 후』에서 나올 법도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각성, 그 후』 내에서 청 가문을 주요하게 다룬 에피소드도 있는데 말이다.

미간을 살포시 좁히고는, 작가가 쥐여 준 텍스트 본에 ‘청해진’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 대상] : 청해진

[↳연관 검색어 : 청해솔 | 윤리타 | 백� | 초랭이 | 비나리고등학교 | 春]

나타난 여러 이름 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청해솔.’

남해 청(淸) 가문을 최후까지 이끌었던 나태한 용왕.

유랑단과의 싸움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용왕의 이름이 ‘청해진’의 이름과 함께 나타난 것은 왜일까.

의문도 잠시, 청해진이 윤리타를 보며 짓궂게 물었다.

“그보다 윤리타, 너 당번이면서 이렇게 늦장 부려도 돼?”

“나 당번이야?”

청해진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오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걸 보니, 윤리오는 윤리타가 당번인 걸 알았나 보다.

“윤리오! 너 알고 있었지?!”

“나는 말해 줬었어. 네가 아버지 기다린다고 정신 나가 있어서 못 들은 것뿐이지.”

“누가 누구보고 정신이 나가 있었다는 거야?!”

윤리타는 그렇게 말하면서 걸어가고 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몸을 돌렸다.

“리사! 유치원 잘 다녀와!”

“맞아, 잘 다녀와! 네 오빠는 내가 학교까지 잘 모셔다 줄게, 리사!”

“리사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윤리타의 쨍한 목소리에 청해진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둘은 그렇게 우리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뛰어가지 마! 그러다 넘어져!”

윤리오가 그런 둘을 향해 외쳤으나, 둘은 손만 대충 흔들며 뛰어갈 뿐이었다.

윤리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고개를 들고선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오빠가 다니는 학교가 어디야?”

“비나리 고등학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네.

청해진도 쌍둥이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던 걸 보면, 그도 같은 고등학교를 재학 중일 거다.

‘비나리 고등학교’와 함께 뜬, 한 글자의 검색어는 봄을 뜻하는 한자였는데…….

봄과 고등학교.

보통 이맘때에 고등학교에서는 체육 대회를 열었다. 간혹, 축제를 여는 학교도 있었다.

그런 행사 중에 사고라도 있었나? 그것 때문에 청해진이 『각성, 그 후』에서 나오지 않은 거고?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리사.”

의문도 잠시, 윤리오가 나를 품에서 내려 주었다. 그러곤 한쪽 무릎을 굽혀 앉고선 내 손목에 뭔가를 채워 줬다.

“이게 뭐야?”

“오빠가 주는 선물.”

윤리오가 준 선물이란, 내 손가락의 아래쪽 마디 하나 정도 되는 넓이의 연보라색 팔찌였다.

정중앙에 토끼가 그려진 것이 꽤 앙증맞았다.

“토끼 보여, 리사?”

“웅.”

“누가 괴롭히거나, 리사를 위협하면 이 토끼를 누르는 거야.”

그림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뭘 누르라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아들었다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윤리오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 새끼인지 얼굴 한번 잘났다.

“애들이랑 잘 놀고.”

“선생님 말 잘 듣고!”

윤리오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지.

나는 씨익 웃어 주고는 윤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사 가방!”

윤리오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에 가방을 메 주었다.

“알겠지, 리사? 무슨 일 있으면 꼭 눌러야 해.”

“웅!”

“뭘 눌러야 한다고?”

“토끼!”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나는 힘차게 대답해 주고는 어떻게 봐도 유치원인 곳을 향해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뛰어갔다.

윤리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리오가 넘어진다면서 앞을 보란다. 나는 배시시 웃어 주고는 그대로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

“리사, 왔니?”

“네!”

나이 열아홉 먹고 유치원이라니, 새삼스레 미운 일곱 살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서 교실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아직 등원 시간이라 그런지, 교실에는 아이들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일찍 등원한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유치원 가방을 벗고서, 낯 뜨거운 말이지만,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뭐야?”

“윤리사, 왜 와?”

그런데 이 친구들,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리사는 여기 오면 안 돼?”

“안 돼!”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저렇게 단호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데, 모여 있던 아이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남자애가 입술을 씰룩이며 물었다.

“너 토요일에 죽을 뻔했다면서?”

“누가 그래?”

“우리 아빠가!”

‘우성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남자애가 방긋 웃으면서 아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는 DMO에서 일하고 계시거든! 윤리사, 너 DMO가 어딘지 알아?!”

“아는데.”

“거짓말!”

우성운이란 남자애가 내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그 탓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지만, 아픔을 느낄 새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또 안다고 하지, 윤리사?”

“맞아! 앞니도 없는 게!”

“……!”

무슨, 그런 말을!

차라리 엄마가 없다고 해라! 그리고 너희는 그 앞니가 영원할 줄 알지? 유치(乳齒)는 언제든 빠지기 마련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아!

나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내게 내밀어진 손이 보였다.

“리사야, 괜찮아?”

내게 손을 내민 아이는 순하게 생긴 인상의, 미래가 기대되는 남자 아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은빛 머리칼을 어깨까지 기른 여자애도 다가왔다.

“성운아.”

또랑또랑하면서도 나긋한 목소리.

‘한단예’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여자애가 하늘색 두 눈을 휘게 접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앞니가 흔들린다지 않았니? 그런데 리사한테 앞니가 없다니, 뭐니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맞아! 자기도 곧 없어질 거면서 윤리사한테 왜 그래?”

여자애의 말을 거든 건, ‘한단아’라는 이름표를 가진 또 다른 여자애였다. 똑같은 은빛 머리칼로 보아 서로 자매지간인 듯 보였다.

그러나 한단예와는 달리, 연두색 눈을 지난 한단아가 사악하게 웃으며 나를 밀쳤던 남자애를 위협했다.

“아니면 내가 없애 줄까?”

아주 살벌하게 말이다.

한단아의 말에 우성운이 흠칫하고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그에 단아가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없애 주기 전에 꺼져.”

“셋째야, 꺼지라니.”

‘셋째’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형제가 한 명 더 있나 보다.

문득, 세쌍둥이 손주가 있었던 『각성, 그 후』의 등장인물 한 명이 떠올랐다.

한 정당의 대표로 있던 국회의원.

우리 최애님과 언제나 대립하던 그 사람은 끔찍하게 암살당하며 『각성, 그 후』에서 퇴장했더란다.

지금에서야 없는 일일 테지만.

어쨌거나 우성운은 한단아의 말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멍하니 두 눈만 끔벅이고 있는데, 미래가 기대되는 남자애가 나를 일으켜줬다.

“다친 곳 없어, 리사야? 선생님 부를까?”

“우웅, 아니. 괜찮아.”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나를 도와준 아이들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를 도와준 아이들이 못 들을 거라고 들은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다행히도 나는 금방 깨닫게 되었다.

“윤리사, 이상해! 우성운 말대로 진짜 죽을 뻔했나 봐! 아니면, 죽을 때가 다 된 거 아니야?!”

단예더러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달라진다고 말하지 않았냐면서, 단아라는 아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

우성운과 함께 모여 있던 아이들의 행동에서 예상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윤리사의 유치원 생활은 평탄치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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