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가족이 다 모이기는 했는데(2)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은 ‘류화홍’이라고 불리던 오빠였다.
제대로 이름을 기억한 게 맞나 싶었지만.
“화홍이 형!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무래도 제대로 기억한 것 같다. 윤리타의 말에 류화홍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소리기는, 말 그대로 길드장님께서 던전 공략하러 가기로 했다는 말이지.”
“무슨 던전이요? 아빠…….”
윤리타가 윤사해의 눈치를 살피곤 말을 바꿨다.
“아버지가 굳이 가야 할 정도의 던전이에요?”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류화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추정 등급은 S급, 리오랑 리사 아가씨가 갇혔던…….”
“류화홍 헌터!”
윤사해가 벌과도 같이 빠른 속도로 류화홍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불대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등 위로 핏줄이 돋아난 게 보였다.
절로 개안(開眼)하는 광경이었지만, 류화홍의 턱이 걱정됐다.
하지만 나만 걱정됐나 보다.
윤리타는 류화홍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윤사해를 보며 물었다.
“S급 던전에 들어가셔요? 왜요? 아빠…… 아니, 아버지가 직접 들어가셔야 하는 곳이에요?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인 거예요?”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란다.”
이전에도 몇 번 공략해 본 적이 있는 곳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윤사해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럴수록 윤리오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윤사해의 거짓말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거다.
윤사해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윤사해의 옷깃을 붙잡고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빠, 가야 해?”
그러나 윤사해는 토끼 같은 자식을 억지로 두고서 출근하는 부모와도 같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금방 돌아올 거란다, 리사.”
그 말에 윤리오가 걸음을 돌리고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닫히는 문에 윤사해가 울상을 지었다.
“아버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괜히 걱정해서 저러는 거예요.”
윤리타의 말에 윤사해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그런 윤사해의 팔을 억세게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웁! 우우웁!”
류화홍이었다.
모두가 류화홍의 존재를 잠깐 잊고 있었다.
윤사해가 류화홍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떼고선 무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류화홍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턱이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고요!”
“그냥 으스…… 크흠. 그러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화를 자초하나.”
“쓸데없는 소리라니요?! 길드장님께서 도련님들과 아가씨께 미처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말해 주려는……!”
류화홍 오빠는 다시 한번 더 입이 틀어 막혔다.
윤리타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나 역시 다른 의미로 입을 벌렸다.
우리 차애님께서, 길드장으로서의 위엄을 보여 주고 있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데, 윤사해가 몸을 낮추고서 류화홍의 귓가에 음산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입 닥치고, 그만 가지.”
나와 윤리타를 의식해서 최대한 조용하게 말한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듣고 말았다.
그런 사실을 모를 윤사해가 나와 윤리타를 보곤 미소 지었다.
“다녀오마.”
그 말과 함께 윤사해는 류화홍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러기 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윤사해의 시선이 윤리오의 방문으로 향한 것을 보고 말았다.
“……아빠 바보.”
“응?”
“리오 오빠도 바보.”
윤리타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나를 타일렀다.
“윤리사, 내가 그런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지?”
흥이다.
나는 입술을 씰룩이며 생각했다.
오늘 중으로 안 들어오면, 윤사해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려 버릴 거다.
***
해가 어둑해진 공원.
그 한가운데 생성된 신규 던전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등급 측정도 제대로 안 된 곳을, 뭐 하러 S급이라 말한 건가?”
이매망량의 길드장, 윤사해.
그의 말에 그를 따르는 이동계 각성자인 류화홍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S급으로 확정됐다고 했단 말이에요!”
“도대체 누가.”
“제가 그랬습니다.”
대답한 건 금이현이었다.
공원 한 쪽에 서 있던 금이현이 피곤한 낯을 문지르며 윤사해에게 다가갔다.
“S급이라고 확정 났습니다.”
“……S급.”
각성자의 등급이 S급에서 F급까지, 총 일곱 단계로 구분되는 것처럼 던전 역시 그렇게 구분이 됐다.
던전의 경우, S급에서 E급까지 총 여섯 단계였지만 말이다.
귀하다는 S급.
그건 던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롭게 공략에 도전했다가, 세이프존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자가 숱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이들이 갇혔었다.
S급 던전은 L급의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서야 공략 도중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던전이었다.
이러한 L급의 던전 탈출용 스크롤을 만든 곳이 있으니, 바로 CW그룹이었다.
‘장천의 회장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군.’
윤사해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던전 앞에 모여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 공략을 위해, 특별히 차출한 인원이었다.
“바로 들어가실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나.”
금이현이 윤사해의 뒤를 따르며 초조함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류화홍 헌터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생성된 던전은 ‘S급’입니다.”
“그래서?”
“S급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아시죠, 윤사해 길드장님?”
금이현이 걱정하는 것은, 5년 만에 나타난 S급 던전이 회복 불가의 피해로 폐쇄되는 것이었다.
윤사해는 금이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선 소리 없이 웃었다.
“걱정하지 말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금이현은 걱정을 안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을 건넬 용기가 없어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네, 믿습니다.”
“믿어 줘서 고맙군.”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나 금이현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일 보러 가시게나.”
마음 같아서는 윤사해의 던전 공략에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나 DMO의 본부장이란 위치는 쉽게 자리를 비워도 되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금이현은 윤사해에게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윤사해 역시 금이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길드원들을 이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윤사해와 그의 길드원들이 던전 안으로 사라지기 무섭게 철창이 그 입구를 막아 버렸다.
금이현이 부디 던전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던전 공략 팀에는 함께하지 못한 류화홍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길드장님께서 지금 화가 많이 나셨거든요. 본부장님께서 이해 좀 해 주세요.”
“그래요, 제가 이해해야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요.
금이현은 뒷말을 삼키고선 다시 한번 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을 공략한다는 게, 듣기에는 쉬운 일이지만 실상은 목숨을 내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S급에 가까워질수록 어려워지는 난이도, 그와 함께 늘어나는 공략 기간.
하물며 윤사해가 들어간 던전은 공략법이 존재하지 않는 신규 던전이었다.
“무사해야 할 텐데.”
“에이, 저희 길드장님이 얼마나 강한지 아시면서!”
댁네 길드장을 걱정하는 거 아닌데요. 우리 새로 태어난 S급 던전을 걱정하는 건데요.
금이현은 류화홍의 오해를 고쳐 줄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
그렇게 윤사해가 S급 던전으로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난 월요일.
“본부장님,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던전 공략에 성공하셨답니다!”
반가운 소식이 DMO로 날아 들어왔다. 그러나 금이현의 환희에 찬 얼굴도 잠시.
“아무래도 던전을 폐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상된 정도가 너무 심해, 더는 몬스터의 리젠(Regen)이 이뤄질 것 같지 않다면서 연구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망할 윤사해!’
금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이현은 머리를 헤집으며 윤사해를 저주했다.
***
『각성, 그 후』.
그 이야기를 바꿔 버리기 위해 이 세계에서 ‘윤리사’의 몸으로 눈을 뜬 지 이틀째.
“아빠 바보.”
윤사해는 약속을 어겼다.
금방 돌아올 거라면서, 어떻게 주말이 다 가도록 오지를 않아!
설마 내 말이나 들어라, 해제됐나? 그런 메시지는 안 나타났는데?
아님…….
우리 차애님 지금 던전에서 구르는 중?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교복을 갖춰 입은 윤리타가 내 신발을 신겨 주며 엄하게 타일렀다.
“아빠한테 바보라니. 그런 말 쓰면 안 된다고 했지, 윤리사.”
나는 냉큼 말을 바꿨다.
“아빠는 머리가 나빠. 머리가 너무 나빠서 리사랑 한 약속도 까먹고, 막 그래.”
아주 장년 치매가 제대로 오셨어.
삼킨 뒷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도, 윤리타가 얼굴을 찌푸렸다.
노란색의 작은 가방을 든 윤리오는 윤리타와는 다르게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윤리타, 네가 머리가 나쁜 이유는 아버지를 닮아서인가 봐.”
“나보다 네가 더 머리 나쁘잖아!”
“뭐래. 너보다 똑똑하거든? 공부를 안 할 뿐이야.”
윤리오와 윤리타는 둘 다 머리가 나쁜가 보다.
서로 네가 더 머리가 나쁘니, 네가 더 아버지를 닮았느니 뭐니 하는 유치한 싸움에는 이제 익숙해져 버렸다.
그보다 우리 쌍둥이들. 줄인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교복인데,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지?
차애님을 닮은 훤칠한 얼굴들을 열심히 구경 중인데, 윤리오가 내게 물었다.
“리사, 너는 어떻게 생각해? 오빠랑 리타 오빠 둘 중에 누가 더 머리가 나쁜 것 같아?”
이렇게 내게 묻는 것도 익숙해져 버렸고.
윤리오의 물음에 나는 고민하는 얼굴을 보이다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리타 오빠!”
“윤리사……!”
『각성, 그 후』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윤리타는 은근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윤리타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에 나는 배시시 웃었다.
“리타 오빠가 아빠 더 많이 닮았다는 말인데!”
“……진짜?”
“웅!”
조금 전에 분명, 윤사해를 닮아서 머리가 나쁘다는 것으로 싸우고 있지 않았었나?
하지만 윤리타는 내 말에 기분이 좋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어댔다.
윤리오가 한심하다는 듯이 짧게 혀를 찼다.
“돌아오지도 않는 아버지가 그렇게나 좋아?”
“그렇게나 좋은 건 아니거든.”
거짓말 치시네.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했으면 믿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윤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리오가 내 손을 잡고선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리사?”
왜 저런 질문을 하냐면.
“윤리오, 너 지금 그 질문만 열 번째가 넘어가. 리사가 괜찮다는데 왜 그렇게 걱정이 많아?”
“유치원에 갔다가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내가 유치원에 가는 게 걱정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