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가족이 다 모이기는 했는데(1)
DMO(Dungeon Management Organization).
한국의 던전 관리 기구인 이곳은, 국내의 모든 던전을 관리하며 던전 내 생태계와 관리 체계를 연구 중인 곳이었다.
『각성, 그 후』에서는 던전 연구 분야에서 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라고 나왔으나, 그것은 4대 길드 중 하나였던 CW(Clock Work)가 몰락한 뒤에 일어날 일.
지금의 DMO는 부족한 인력으로 이곳저곳에서 치이는 중이었다.
“저… 윤사해 길드장님, 저희도 체면이란 게 있는데…….”
“그 체면, 고이 접어서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겠나.”
바로, 지금과 같이 말이다.
DMO의 본부장 금이현은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자신과 독대 중인 남자는 이매망량(魑魅魍魎)의 길드장, 윤사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남자였다.
날 좋은 오후에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본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전과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도대체 던전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그 어린 애들이 던전에 들어간단 말인가……!’
난데없이 나타난 신규 던전이었다. 그런 던전을 어떻게 관리했냐고 따져 물으니 억울한 마음만 가득했었다.
그러나 금이현은 젊은 나이에 본부장에 오른 자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는 윤사해를 향해 상냥함 가득한 미소를 보여 줬었다.
‘윤사해 길드장님, 최선을 다하여 자제분들을 구조하겠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시고…….’
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윤사해는 그가 데리고 온 길드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게 바로 몇 시간 전의 일.
해가 져 버린 저녁, 금이현이 물끄러미 윤사해를 쳐다보았다.
‘애들이 나왔었다고 했지.’
윤리오가 CW에서 100개밖에 만들지 않았던 L급의 던전 탈출용 비상 스크롤을 수중에 가지고 있던 게 다행인 일이었다.
금이현은 오후에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고는 미소를 그렸다.
“어쨌든 안 됩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신규 던전은 우선 저희가 먼저 공략을…….”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금이현 본부장.”
단호하게 말을 끊는 목소리에 금이현의 가슴이 답답하게 일기 시작했다.
윤사해가 금이현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윤리오와 윤리사가 휘말렸던 신규 던전의 공략에 관한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허락해 주지 않으면, 본부를 한 번 더 뒤엎어 버릴 기세구만.’
그런 기세를 말릴 힘이 없는 금이현이 최대한 상냥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말입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모든 던전은 저희의 관리하에…….”
“있을 뿐이지. 모든 던전이 자네들 소유인 건 아닐 텐데?”
윤사해가 금이현의 말을 한 번 더 끊고서는 말을 이었다.
“귀수산의 던전은 우리의 것이고, 금강산에 있는 것들은 아래아의 것이지.”
어쩜, 저리 얄밉게 사실만을 말할 수가 있을까?
윤사해의 말에서 틀린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DMO는 모든 던전을 ‘관리’할 뿐이지, 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금이현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히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윤사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공략만 하고 나오겠네.”
“그러니까…….”
“공략 후 얻게 되는 모든 것들을 DMO에 넘긴다는 말이지.”
공략에 실패한다는 전제란 상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금이현 역시 윤사해가 공략에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듯이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거주자의 부산물이 나와도 말입니까?”
거주자.
일찍이 역사(歷史)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이 땅을 지배해 오던 자들.
그러나 어느 순간, 땅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인세(人世)에 간섭할 수 없게 된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하나 그들 중 몇은 제약을 감내하며 인간과 함께 어울리고자 했다.
그런 그들과 어울리고 있는 인간 중 한 명이 윤사해였다.
‘부산물이 탐날 텐데.’
거주자가 남긴 유산.
흔히 부산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각성자라면 모두가 탐내는 것이었다.
‘그런 걸 우리에게 넘겨주겠다고……?’
금이현은 고민했다.
이번에 생성된 신규 던전은 5년 만에 새로이 나타난, 추정 등급 S급 던전이었다.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모를 던전, 그러나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던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사해의 제안은 꽤 달콤했다.
DMO 쪽의 위험 부담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고민을 끝낸 금이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이번 신규 던전 공략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끝에 들린 말에 윤사해가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저희 쪽 연구원을 한 명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나 이어진 말에 윤사해는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윤사해는 만족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이현이 그를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공략은 언제 들어가실 겁니까?”
윤사해의 일정에 맞춰 그와 함께 움직일 연구원도 뽑고, 얻어낼 데이터도 뽑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9시 정도로 생각 중이네만.”
“예?”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연구원도 뽑고 얻어낼 데이터도 추리기는 개뿔, 저녁도 거르고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금이현이 입을 뻐금거렸다.
“아니… 그게…….”
저녁은 꿈에도 못 꾸고, 잘못하면 야근해야 한다는 그런 문제가 있기는 한데 말이에요.
당신이 알 바는 아니겠지.
금이현이 눈물을 머금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
망할 윤사해.
나는 뚱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 중이다.
“윤리사, 아빠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화 좀 풀어.”
윤리타는 한 시간 전에도 저 말을 했었다.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리사한테 괜한 기대감 심어 주지 마, 윤리타.”
윤리오가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나선 윤리타의 말을 끊어냈다.
“아버지가 언제 약속 지키시는 걸 본 적 있어? 없잖아.”
윤리오는 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랑 약속을 한 적도 없지만.”
“오늘 했어! 너는 못 들었겠지만, 아빠가 오늘 돌아온다고 했다고!”
윤리타의 말에 윤리오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돌아오셨어?”
윤리타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윤리오는 그에 비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싸해지는 분위기에 두 손을 주먹 쥐고 나서기로 했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싸우지 마! 아빠 돌아오실 거란 말이야!”
“싸운 거 아니야, 리사.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 기다리지 마.”
윤리오가 나와 눈을 맞추고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빠는 우리 리사가 실망하는 거 싫거든.”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실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띠리릭-
경쾌한 기계음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조심스레 신을 벗고 들어오는 차애님이 보였다.
“아빠!”
그대로 윤사해를 끌어안고선 웃음을 터트렸다. 윤사해가 몸을 작게 움찔거리고는 걱정스레 묻는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아빠가 잡아 주면 되잖아!”
내 말에 윤사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다.
“다녀오셨어요……?”
윤리타가 기쁜 얼굴을 애써 감추며 다가왔다. 윤사해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윤리타에게 사과했다.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윤사해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윤리타는 그렇게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리오야.”
“무슨 일로 약속을 다하시고, 그걸 또 지키셨어요?”
윤사해가 입을 다문다. 윤리타는 둘의 눈치를 살피다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리사는 아빠랑 있고 싶은데.”
윤리타가 내게 속닥거렸다.
“아빠가 윤리오랑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대.”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어디서 거짓말을……?
하지만 저 부자(父子)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 말 없이 윤리타의 손을 잡고서 방으로 향했다.
달칵, 문이 닫히기 무섭게 윤리오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윤리타가 눈가를 찡그렸다.
“오빠.”
언제 눈가를 찡그렸다는 듯이, 윤리타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만 놀고 있어, 리사. 간식 가져다줄게.”
조심스레 방을 나서는 걸 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윽고 윤리타가 윤리오를 말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윤사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 차애님, 내가 분명 있는 대로 표현하라고 했을 텐데…….
다음에는 뺨을 더 세게 때려 봐야겠다.
그렇게 침대 위에 풀썩 몸을 눕히는데 책상 위에 뭔가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놓여 있던 건, 가족을 그린 그림이었다.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네 사람 위에 서툰 한글이 적혀 있었다.
<♥아빠랑 오빠들이 친하게 지냇으면 좋겟어요♥>
“…….”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지끈거렸다. 나는 가족이 그려진 그림을 접고서 곧장 방문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만!”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빠랑 리오 오빠! 둘이 사이좋게 안 지내면, 리사는 집 나가 버릴 거야!”
“리사……!”
모여 있던 삼부자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콧김을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아빠랑 리오 오빠!”
윤사해와 윤리오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한 번만 더 리사 앞에서 그렇게 싸우기만 해 봐. 진짜로 다른 아빠랑 오빠 찾아서 가 버릴 거야!”
윤리오가 입을 뻐금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윤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윤사해는 억울할 거다.
윤리오와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화풀이를 당한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업보다.
그리고 윤사해는, 그 업보를 청산해야 했다.
나는 두 부자가 대화를 나눌 장을 만들어 주고자 뿌듯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빠, 오늘 집에 있을 거지?”
윤사해가 대답 없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왜인지 모르게 불안해져서 울상을 지을 때였다.
“길드장님! 던전 공략 들어가시기로 했잖아요!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
청천벽력과도 같은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