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5)화 (5/500)

5화. 차애님을 만났는데 말입니다(2)

“방금, 아가씨가 길드장님의 뺨을…….”

“아니야, 네가 잘못 본 거야.”

“그, 그치? 내가 잘못 본 거지?”

아닙니다, 이름 모를 길드원님.

당신은 제대로 본 거랍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윤사해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이렇게 세게 때릴 생각은 아니었다.

하하, 모르겠다! 어린애 손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윤리사.”

하지만 하얗고 고운 우리 차애님 뺨에 빨갛게 자국이 남아 버렸다.

윤사해 씨, 당신 S급 각성자잖아.

‘금강불괴(金剛不壞)’와 비슷한 스킬도 가지고 있으면서 피부 왜 그렇게 연약해?

윤사해가 멍하니 손을 올려 내게 한 대 맞은 뺨을 어루만졌다.

마, 많이 아팠나 보다.

그보다 스킬은 제대로 걸린 거야? 걸렸으면 응답해 달라!

“으… 흐, 흑…….”

“……?”

응답하라고 했지, 울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스킬이 이상하게 걸린 것 같다.

“아빠……?”

내 손이 그렇게 많이 아팠어?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으, 흡,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왜 들어갔어! 저 위험한 곳을 왜!”

윤사해가 내 어깨를 잡고선 그대로 품에 안았다.

앗싸, 스킬 한 번 제대로 걸렸고.

나는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윤리오를 흘긋거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꿈인가 현실인가 혼란이 온 것 같은 얼굴이다.

그 혼란, 제가 가라앉혀 주죠.

“아빠, 리오 오빠 아야 하는데.”

“……!”

내 말에 윤사해가 고개를 퍼뜩 뜬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보라색 눈과 시선이 마주친 윤리오가 몸을 움찔거렸다.

“리오 오빠, 아야.”

“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윤리오가 뒷걸음질 쳤다.

“리오.”

그런 아들을 윤사해가 붙잡았다.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에 윤리오는 그대로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을 향해 말했다.

“누구, 혜원이 누나 좀 불러 주세요. 아니면, 서 비서님이요. 아버지 노망나신 것 같아요.”

저놈 새끼!

『각성, 그 후』에서의 윤사해는 40대였다. 하지만 ‘윤리사’가 살아 있는 이 시점에서는 30대일 거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님, 노망날 나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윤리오의 말에 길드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네가 연락 좀 해 보라고 서로의 옆구리도 찌르고 있다.

환장하겠네!

“우리 아빠, 노망 안 났어!”

“…….”

윤사해가 기특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뿌듯하게 마주 웃어 주고는 말했다.

“아빠! 리오 오빠, 아야 한다니까?!”

윤리오를 향해 정확하게 검지를 들기도 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본 윤사해가 나를 안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언제부터 저를 그렇게 친근하게 불렀다고 그러세요?”

윤사해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윤리오와 윤리타.

둘은 윤사해의 나이 스물에 얻은 자식이었다.

길드를 이어받기 위해 간부진이 정해 준 여자와 한 정략혼.

서로 애정이라고 없었으나, 윤사해는 태어난 자식들을 꽤 아꼈다.

그러나 윤사해는 제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아직도 차윤이를 원망하고 있니, 사해야?”

“증오하고 있습니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윤사해는 윤리오와 윤리타를 잃을 뻔했다.

‘유랑단’으로 대표되는 지하 길드의 소행이었다.

지하 길드란, 마약 유통이나 인신 매매 등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는 길드를 말한다.

어쨌든, 윤사해는 그렇게 아이들을 잃을 뻔한 이후에 한 가지 결심했다.

제 아이들과의 관계를 억지로 끊어내기로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이 노려진 이유가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옳은 생각이었지.’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윤사해가 윤리사를 잃었다는 거다.

고개를 숙이고선 눈물을 뚝뚝 흘리던 윤사해가 얼굴을 들었다.

세상에. 주님, 한 명 갑니다.

“……리오야.”

한 번 더 갑니다.

어쩜 목소리가 저렇게 절절 끓을 수가 있지?

마음을 애달프게 만드는 목소리에 가슴이 지끈거리는데, 윤리오는 그렇지 않나 보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날선 목소리.

그에 윤사해가 다시금 고개를 숙이려고 했다.

아니야! 고개 들어!

네 얼굴은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하는 얼굴이란 말이야!

안 되겠다. 우리 차애님, 이렇게 둘 수는 없다.

아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겠다.

그걸 위해서는 먼저 부자(父子)가 한 공간에 있어야하는 법!

“리오 오빠, 아야…….”

하니까 집에 가자고,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윤리오가 싱긋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안 해, 리사.”

좋아, 다른 방법이다.

“리사는 집에 가고 싶은데.”

나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코를 훌쩍였다.

“오빠가 리사한테 집에 같이 가기로 했잖아. 근데 왜 안 가려고 해?”

“그건…….”

“리사가 싫어?”

“아니야, 리사! 오빠가 왜 너를 싫어해!”

윤리오가 펄쩍 뛰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 모습에 나는 배시시 웃으며 윤리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리사랑 같이 집에 가자, 리오 오빠.”

내가 내민 손에 윤리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천천히 내게 다가온 윤리오가 윤사해한테서 나를 빼앗아 안아 들고는 말했다.

“아버지는 가세요.”

“리오야.”

“서 비서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라면서요.”

망할! 차애님, 저 말은 왜 했어?!

윤리오가 비딱하게 웃으며 윤사해를 비아냥거린다.

“서 비서님과 함께 돌아갈 테니까 아버지는 일 보러 가시라고요.”

“…….”

아오, 답답하네!

나는 윤리오의 뺨을 두 손으로 붙잡고는 외쳤다.

“리사는 아빠랑 갈 거야! 오빠도 같이야!”

“응……?”

당혹감에 물든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을 향해. 정확히는, 검은 점액질이 묻어 있는 뺨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리사랑 같이 가야 해!”

쫘악-!

이번에도 힘 조절에는 실패했다.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윤리오’입니다.】

윤리오가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한 발자국, 우리와 떨어져 있던 윤사해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리… 리오야? 리사야, 너 지금…….”

“뭐 하세요, 아버지?”

그 목소리를 윤리오가 끊었다.

“리사가 같이 돌아가자고 하잖아요. 어서 앞장서세요.”

그 말에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윤사해를 쳐다봤다.

“아빠! 어서 집에 가자!”

윤사해가 떨떠름한 얼굴을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윤사해 뒤로 두 개의 장승이 솟아났다.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흔히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세워진다는 이 장승들은, 길가에 세워져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 앞에 나타난 것들은 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곳으로 소리 없이 안내해 주는 윤사해의 이동 스킬.

<[S, 숙련 불가] 장승 행차>

두 장승 사이로 낡은 대문이 나타났다.

“가자꾸나.”

윤사해는 그 말과 함께 쇠로 만들어진 문고리를 잡아 이를 열었다.

끼익, 불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사이로 가득 찬 안개가 보였다.

전설의 고향 초입부가 딱 이랬던 것 같은데…….

윤사해는 무섭지도 않은지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갔다.

하긴, 자기 스킬인데 뭐가 무섭겠어! 몇 걸음 앞서 나간 윤사해가 우리를 보았다.

미안함과 애정이 뒤섞인 눈으로.

“리오야, 리사.”

우리를 불렀다.

나는 윤리오의 품에서 내려가 윤사해를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윤사해의 다리에 찰싹 붙어서는 윤리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빠! 어서!”

주저하던 윤리오가 걸음을 옮겼다. 두 장승 사이에 열려 있던 문은 윤리오가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닫혔다.

희뿌옇게 들어찬 안개 속에서 윤사해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을 거절했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면서 말이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윤사해의 손을 잡았다.

“……리사야.”

감격에 젖은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좋아, 더 불러 봐.

하지만 윤사해는 더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부른 것은 아들의 이름이었다.

“리오야…….”

“앞장서시라니까요. 알아서 따라갈 거예요.”

매몰찬 목소리에 윤사해가 시무룩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그런 윤사해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아빠! 빨리!”

“……그래.”

윤사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기 무섭게 여러 개의 청사초롱이 나타나 안개 속을 밝히기 시작했다.

“와…….”

절로 감탄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마음에 드니, 리사?”

“응? 웅!”

나와 함께 걸음을 맞춰 걷고 있던 윤사해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종종 함께 걷자꾸나.”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아버님.

그렇게 차애님과 정다운 분위기를 연출 중이었는데.

“리사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

윤리오가 이 분위기를 깼다.

하지만 윤사해는 윤리오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애 아프지 않게 조심히 들고요.”

“알겠단다.”

들면 부서질까 싶어 조심스레 안고 있는데, 아플 리가 없었다.

그것으로 부자(父子)간의 대화는 끝이었다.

숨 막힐 듯 내려앉은 정적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돌연, 희뿌연 안개 속을 밝히던 청사초롱이 사라지면서 시야가 맑게 개였다.

나타난 건 대저택.

“여…… 여기가 우리 집이야?”

내 말에 윤사해가 놀란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리사,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니? 응?”

모르겠다고 답하면 억장이 무너져 주저앉을 기세였다.

그런 모습도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랬다가는 윤리오도 함께 무너져 주저앉을 것 같아 나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우리 집이잖아!”

내 말에 윤사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 있던 윤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까르르 웃고는 윤사해를 졸랐다.

“빨리 가자! 리사, 빨리……!”

“윤리사! 윤리오! 나 버리고 둘이서만 놀러 갔다 오니까 좋았냐?!”

리타 오빠 보고 싶은데, 왜 말하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거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