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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화 (4/500)

4화. 차애님을 만났는데 말입니다(1)

망했다.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 아니, 그렇지만 제 말 좀 들어봐 주세요.

죽었을 차애님께서 눈앞에 잘생긴 얼굴을 들이밀면서 서 있는데 누가 안 놀래요?!

우리 차애님께서 고운 미간을 좁히더니 듣기 좋은 미성을 흘렸다.

“……미친?”

도와주세요, 미운 일곱 살.

숙련 가능, F급 스킬의 힘을 믿으며 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빠, 못된 말.”

“…….”

차애님께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 얼굴에 윤리오가 나를 꼭 끌어안고서 말했다.

“잘못 들으신 거예요.”

아닌데.

“우리 리사는 그런 말 안 쓰거든요, 아버지.”

이제부터 자주 쓰게 될 것 같아.

암 쏘 쏘리 브라더.

그보다 미운 일곱 살의 효과는 굉장했다. 설마 내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이야.

눈앞의 차애님께서는 애 셋 딸린 유부남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아, 실수.

유부남이 아니라 이혼남이다.

하지만 유부남이면 어떻고, 이혼남이면 어떠리.

보기 좋고,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윤리오, 윤리사.”

부르는 목소리에 윤리오는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네에!”

나는 해맑게 대답했다. 우리 차애님이 부르는데 대답해야지!

그런데, 너무 해맑게 대답했나 보다. 윤사해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것도 잠시, 윤사해는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곤 말했다.

“됐다, 말을 말지. 그간 얌전히 지내는가 싶었더니 이런 사고를 치는구나.”

아니, 저런 싸가지가!

윤사해를 데리고 온 것처럼 보이는 오빠가 ‘어휴, 저 인간 또 저런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나를 안고 있는 윤리오는.

“……그게 끝이에요?”

빡쳤다.

“아버지는 리사가 왜 던전에 들어갔는지 모르시죠?”

윤리오는 윤사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난 목소리를 이었다.

“모르겠죠. 아니, 관심이 없겠지.”

끝에 들린 말에서 윤사해를 향한 원망이 느껴졌다.

윤사해도 이걸 느낀 걸까?

그가 느릿하게 몸을 돌리고선 우리를 쳐다보았다. 닿는 시선에서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윤리오, 내가 네 동생이 던전에 들어간 이유를 꼭 알아야 하니?”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를 안고 있는 윤리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아프지는 않을 정도로, 딱 그 정도의 힘으로 나를 끌어안으며 윤리오는 윤사해를 노려봤다.

윤사해와 윤리오의 관계가 왜 파탄이 났는지 아주 잘 알겠다.

하지만 윤사해의 진심은 저게 아니다. 나는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물었다.

“아빠, DMO 갔다 왔지?”

한국의 던전 관리 기구, DMO(Dungeon Management Organization).

국내 모든 던전을 관리 중인 이곳은, 던전 내 생태계 혹은 관리 체계에 관한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곳이었다.

윤사해가 곱디고운 미간을 좁히며 내게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빠, DMO 아저씨랑 언니들한테 던전 문 좀 열어 보라고 땡깡 부렸지?”

“……뭔 깡?”

아차, 말실수.

“지랄했지?”

“…….”

단어 선택을 잘못했나 보다.

윤사해의 표정이 기이해지더니, 옆에 있는 오빠한테 고개를 숙이곤 속삭였다.

거리가 멀어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윤사해가 말을 끝내자, 오빠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알겠어요! 리사 아가씨 유치원 선생님과 면담을 잡아달라고요? 가능한 한 빨리!”

“내가 언제……!”

“이런 건 후딱 해치워야겠죠? 그러니까 다녀올게요, 길드장님!”

“류화홍 헌터!”

와우, 오빠 나이스.

‘류화홍’이라고 불린 오빠는, 우리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휑하니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우리를 따스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침묵이 가득 내려앉은 가운데, 윤사해가 우리에게서 다시 등을 돌리곤 말했다.

“서 비서가 곧 올 거란다. 서 비서와 함께 집에 돌아가렴. 광혜원 헌터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싫어요.”

“윤리오.”

부르는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이, 윤리오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린다.

“언제부터 우리를 신경 썼다고 그러세요? 리사가 왜 던전에 들어갔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곤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보렴. 네 동생이 왜 던전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윤리사.”

“웅!”

“네가 말해 보겠니?”

“……?”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말해!

나는 윤리사가 던전에서 죽었다는 것만 알지, 왜 던전에 들어갔는지 모른다고!

그보다 저 아저씨가 지금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온 딸에게 뭘 묻고 있는 거야!

“아버지!”

윤리오가 버럭 소리 질렀다.

“리사가 어디서 발견됐는지 아세요? 세이프 존이에요! 이 어린애가, 괴수종이 득실거리는 곳을 뚫고 거기 있었다고요!”

“……그래서?”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윤리오가 욱하여 뭐라 소리를 내려다가 멈췄다.

그러고는 일그러진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됐어요. 당신한테는 아무것도 말 안 해 줄 거야.”

‘아버지’에서 ‘당신’으로 칭호가 격하되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살아 있어도 윤리오는 악역 루트를 밟을 것 같았다. 그럴 수야 없지!

“오빠, 리사 내려 줘.”

윤리오가 고개를 젓는다. 그 고갯짓에 나는 뚱하게 말했다.

“오빠 더러워서 리사 내리고 싶어. 내려 줘.”

“……!”

윤리오가 충격 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올망졸망하게 두 눈을 뜨고는 윤리오의 뺨을 가리켰다.

“더러워.”

윤리오의 뺨에는 정체 모를 검은 점액질이 묻어 있었다.

윤리오가 뒤늦게 자신의 뺨에 묻은 것을 알고는 나를 내려줬다.

“다, 닦는다고 닦았는데, 이게 왜……. 미안해, 리사.”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 오히려 내가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럽다고 말했지만, 윤리오의 뺨에 묻은 것은 윤리오의 외모를 더욱 찬란하게 빛낼 뿐이었다.

누구 새끼인지 얼굴 참 잘났다.

나는 윤리오가 보지 않는 틈을 타 흐뭇한 얼굴을 한번 보여 주고는 곧장 윤사해를 쳐다봤다.

윤사해는 우리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중이었다.

“아빠!”

분명 내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윤사해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다 보였다.

내 목소리에, 윤사해가 작게 어깨를 움찔거리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대로 윤사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리사!”

윤리오가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지!

“아가씨! 그렇게 뛰시다 넘어지십니다!”

“그냥 달리세요! 달려서 저 인간 잡아 버려요!”

걱정하는 목소리 반,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응원하는 목소리 반이 들려왔다.

이매망량이 원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길드였던가?

‘아닌데.’

온갖 잡스러운 것들의 소굴답게 아주 음침하고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일품인 길드였다.

그런 길드를 그나마 환하게 만들어 준 게 윤리타와 저세상이었지.

백정의 정체를 알게 된 저세상이 이매망량을 탈퇴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가씨, 윤사해 저 인간 잡아 버려요! 잡으면 잡힐 사람이야.”

이매망량에는 이매망량의 주인 되는 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길드원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윤사해와 관련된 검색어에 ‘이매망량 몰락’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각성, 그 후』에서와는 달리 서로 허물없어 보이는 길드.

원래 이매망량은 이런 분위기였을 거다.

이렇게 분위기 좋던 길드가 가을 저녁의 을씨년스러운 공동묘지 같은 분위기를 가지게 된다니.

“아빠!”

나는 있는 힘껏 윤사해를 부르며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하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아지지 않았고, 나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아빠! 리사 넘어질 거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 도로의 무법자는 자해 공갈단이었다고 들었다.

“뭐……?”

차애님,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리사!”

막상, 지면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치면 그래도 치료해 주겠지?

치료해 줄 거야. 이것보다 더 개차반이었던 윤사해의 중년 시절에도 윤리타가 다쳤을 때는 꼬박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행히도 내가 다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사, 너……!”

분명, 멀리 떨어져 있던 윤사해가 순식간에 내 옆구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윤사해 뒤로 아스라이 흩어지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리사! 괜찮아?!”

다급하게 달려오는 윤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윤리오를 향해 배시시 웃어 주고는 나를 살피느라 정신없는 윤사해를 불렀다.

“아빠.”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보다.

“아빠!”

안 들리면 더 크게 불러 줘야지.

아이의 높디높은 목소리가 쨍하니 길드 안을 울렸다. 내 목소리에 윤사해가 화들짝 놀라 나를 보았다.

“리사는 괜찮은데.”

“아…….”

윤사해가 멍청한 소리를 내고는 나를 조심스레 내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윤사해를 붙잡았다.

내게 옷깃을 붙잡힌 윤사해가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을 보이더니,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윤리사, 이거 놓으렴.”

“싫어.”

“윤리사.”

엄하게 타이르는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물었다.

“아빠는 리사랑 리오 오빠가 싫어?”

“…….”

예기치 못한 질문에 놀란 듯 크게 떠진 두 눈이 보였다. 나는 그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리사는 아빠 좋은데.”

그리고 너도 나랑 윤리오 좋아하잖아. 아니, 사랑하잖아.

우리 둘만이 아니라,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를 윤리타도.

“그러니까 표현 좀 해.”

윤사해가 왜 자식들에게 이렇게 매몰차게 구는지,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파탄 난 관계를 맞이할 테니까.

그러니까 미안, 차애님. 이건 당신 복지를 위해 행하는 행동이야.

나는 허망한 눈을 보이는 윤사해의 뺨에 손을 올렸다. 내 손길에 윤사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런 얼굴 보이면 어떻게 때려!

물론, 때릴 거다.

“알겠지?! 우리한테……!”

쫘악-!

“아빠 마음 싹 다 표현하는 거야!”

잠깐, 이렇게 세게 때려 버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윤사해’입니다.】

그보다, 저 망할 스킬.

절대로 안 쓸 거라고 다짐했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역시 다짐이란 것은 작심삼일, 아니. 1시간도 가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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