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3)
[검색 대상] : 종장(終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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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기 친 거였다.
“시바…….”
텍스트본의 제목에서부터 깨져 있는 글자는 알 수 있었지만, 숫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망할 작가 새…… 끼님.”
그럼 그렇지, 제대로 완결을 냈을 리가 없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다른 것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 대상] : 윤사해
[이매망량(魑魅魍魎).
그림자를 벗 삼아 움직이는 도깨비들의 두목이 말하였다.
“내가 너를 거두겠다.”]
“미친…….”
이름만 등장하던 윤사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면.
세상에, 사기를 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야?
[말끔히 차려입은 정장, 그 위에 하늘거리는 하얀색 두루마기 코트.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 머리칼과 대조적인 그것에는 12공방의 장인들이 혼을 넣어 그려 넣었다는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윤사해.”
이름을 불린 자가 미소를 짓는다.
“어린 녀석이 버릇없구나.”]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리고, 보일 리 없는 얼굴이 보였던 그 장면이다.
나는 숨을 들이켜 삼키고는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다른 거 또… 다른 거 또 보여 줘……!”
우리 차애님의 모든 순간을 볼 수 있다니!
나는 본격적으로 특수 스킬을 사용해 보기 시작했다.
[“아저씨, 알잖아요. 그 자식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에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아들이란다, 세상아.”
“…….”
“나 때문에 엇나간, 그래서 내가 바로잡아 줘야 할 내 아들.”]
“아니야, 사해야!”
저건 분명 얼굴만 참한 아들,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인 백정의 ‘윤리오’가 이매망량을 공격한 뒤 벌어진 상황이다.
저세상이 윤리오가 윤사해의 아들이란 것을 알고는 실망감을 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네가 뭔데!”
우리 차애님처럼 얼굴이 잘났어, 아님 목소리가 잘났어?!
그때의 울분이 다시금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 마음, 심호흡하며 다스려야지.
“후우…….”
아직 볼 건 많았다.
[이매망량의 주인은, 참 쉽게도 목숨을 버렸다.]
“시바! 작작 튀어나와!”
우리 차애님, 안 죽었다고!
나는 씩씩거리며 스킬 사용을 멈췄다. 아니, 멈추려고 했다.
[검색 대상] : 윤사해
[↳연관 검색어 : | 밳� | 윤리타 | 1101 | 젃�上 | 자살 | 死 | 이매망량 | 유랑단 | ……]
“……이게 뭐야.”
시야를 가득 가리는 키워드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자살’이란 단어였다.
자살이라고 함은, 윤사해의 죽음과 관련된 말일 테다.
그런데 왜, 키워드에 ‘자살’과 죽음을 뜻하는 한자인 ‘死’가 같이 있는 거지?
두 단어 모두 ‘죽음’을 뜻하는 말이잖아.
불안한 마음에 시야에 들어온 여러 개의 키워드 중에서 하나를 눌러보았다.
누른 것은 윤사해의 둘째 아들, ‘윤리타’였다.
[검색 대상] : 윤리타
[↳연관 검색어 : | 윤사해 | 밳� | 1101 | 젃�上 | 자살 | 이매망량 | 유랑단 |……]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윤리타와 관련된 검색어 중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살’이라니?
윤리타는 죽지 않았었다.
적어도 윤사해가 죽었던 451편까지, 그는 죽지 않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각씪_긌後_완성본txt>
내게 보내진 건, 완결이 나지 않은 줄만 알았던 이야기의 완성본.
즉, 완결이 난 이야기다.
왜인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나는 드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윤리타의 이름과 함께 뜬 ‘자살’이라는 검색어를 눌러 보았다.
부디, 윤사해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를 바라며.
[검색 대상] : 자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알아.”]
깨진 글자라고는 없는, 말끔한 문장이 두 눈에 들어왔다.
첫 문장을 뗀 것은 윤리타일 것이고, 그에 답한 사람은 윤리오일 것이다.
쌍둥이인 두 형제간의 대화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더니, 기어코 그 새끼의 손에 죽어 버렸다며?”
“윤리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에 울컥, 울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달려드는 이도 보이는 것만 같다.
윤리사의 죽음과 함께 윤사해에게 실망하여 그의 곁을 떠난 윤리오.
그런 그를 어떻게든 붙잡아 다시금 가족의 울타리로 두르고자 했던 윤리타.
[“아버지가, 너를! 너를 얼마나……!”
“몰라.”
윤리오가 붙잡은 손을 뿌리치며 웃음을 지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울타리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는데도, 윤리타는 다시 울타리를 세우고자 했다.
자신을 봐 주지 않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떠나 버린 형제를 붙잡고자 했다.
[“나도…… 네 동생이잖아.”]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고, 형제 역시 자신이 내미는 손을 뿌리쳤다.
윤리타가 세우고자 했던 울타리는 무너진 그대로 썩어 들어갔을 거다.
[“다들 너무하기도 하지…….”
짧은 총성이 울렸다.
그것을 끝으로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윤리타의 ‘죽음.’
그 단어에 관한 검색 결과는 저것이 끝이었다.
“……국.”
숨죽인 목소리 끝에서 나온 말이었다.
“파국이다아앗!”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작가 새끼를 향해 빼액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나 화병 나서 죽는 꼴 보고 싶지?! 그런 거지, 작가 새끼야!”
그게 아니면 이야기를 이딴 식으로 전개했을 리가 없었다.
“리타야!”
내 새끼는 아니지만, 우리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해!
이렇게 된 이상, 윤씨 가족 무조건 해피엔딩이다.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고, 윤사해는 무조건 살릴 거다.
“세상이나 저세상에 가라고 해!”
나는 특수 스킬의 사용을 멈추고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답이 없어…….”
그러나 굴러가던 머리는 금방 멈추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던전을 탈출하는 방법이 문제였다.
던전을 탈출할 방법은 총 두 가지.
안전 구역 내에서 ‘탈출용 스크롤’을 사용하거나, 던전의 주인인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뿐인데…….
“하핫, X 됐네.”
내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맨손으로 던전의 주인인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다가는 꼼짝없이 죽어서 주님이랑 하이파이브해야 한다.
하지만.
“……리사야! 윤리사!”
구원자가 등장했다.
아직 변성기도 겪지 못한 듯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나는 저 목소리의 주인이 윤사해이기를 바라며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리사!”
그러나 윤사해 대신 나타난 앳된 남자애의 얼굴에 시무룩…… 해하기는 개뿔.
“……와씨, 쏘 프리티.”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옅게 분홍빛이 도는 머리카락,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보라색 눈동자.
거무죽죽한 점액질로 덮인 모습이라고 하나, 외모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리사야, 윤리사!”
네, 제가 바로 당신이 찾는 ‘윤리사’이옵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남자애는 끝내 눈물을 흘리며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
윤리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저 청순가련한 애는 분명…….
남자애가 쥐고 있는 검에 눈길이 갔다.
검신에 새겨져 있는 보라색 문양.
윤리오가 저세상을 상대할 때만 꺼내들었던, 윤사해에게 받았던 검.
나는 벌렸던 두 팔을 얼른 내렸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빠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리사야!”
그런 나를 윤리오가 붙잡는다.
그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뒷걸음칠 치던 것을 멈추고 윤리오를 빤히 쳐다봤다.
윤리오가 검을 내려놓고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리사야, 오빠야. 리오 오빠.”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리오 오빠?”
“응, 리오 오빠.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괜찮으니까, 도망가지 말고.”
윤리오가 히끅, 숨을 삼키고는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집에 돌아가자, 리사야…….”
그 목소리에 나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뒤가 아닌, 앞으로.
윤리사의 가족인 윤리오를 향해.
“……리오 오빠?”
“응.”
어색하게 부른 이름에 윤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나는 ‘윤리사’가 아니다.
그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등을 떠밀어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F, 숙련 가능] 윤리사는 미운 ?? 살>이 활성화됩니다.】
나를 놀리듯이 뒤늦게 나타난 메시지였다.
‘숙련 가능’이란 말은, 말 그대로 스킬의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올릴 수 있는 최대 등급은 A급까지였고 이를 올리는 방법 역시 극한의 노가다였다.
그 때문에 숙련을 할 수 있더라도 사람들 대부분이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스킬이라고 『각성, 그 후』에서 그랬었다.
<-남아 있는 ‘윤리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당 나이에 맞는 아이들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에 맞게 행동하게 합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숙련도를 올려야겠다.
열아홉의 사고방식으로 유치원생을 흉내 내는 것은 회귀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니까.
……회귀한다고 될 일인가?
어쨌든.
<※ 본인(윤리사)의 사고(思考)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 해당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말고는 본인(윤리사)의 자유입니다.>
‘마리아’란 이름 대신 적혀 있는 ‘윤리사’란 이름.
그리고 나를 그리 부르는 윤리오.
이 몸의 진짜 주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윤리사’의 이름을 가지기로 했다.
“리오 오빠.”
이야기에 개입하여, 바꿔 버리겠다고 했었으니까.
꿈이라 여긴 것은 사실 꿈이 아니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나는 멈췄던 걸음을 떼고는 윤리오를 향해 달려갔다.
벌어졌던 두 팔 사이로 안기자마자 윤리오가 나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처음 느껴 보는 가족의 진심 어린 온기였다.
<‘윤리사’는 미운 7살입니다.>
나는 진짜 윤리사가 아닌데, 이 온기를 누려도 될까 고민이 되었다.
그보다 일곱 살이었다니.
일곱 살 어린애가 원래 이렇게 작나 싶었다.
어쨌거나 구원자를 만난 나는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윤리오를 톡톡 건드렸다.
“리오 오빠, 리사 나가고 싶어.”
윤리오가 울음을 참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나가자.”
그러고는 찢긴 겉옷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던전 탈출용 스크롤이었다.
함께 탈출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네 명, 등급은 L급.
아이템에 붙일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윤리오는 나를 한쪽 팔로 안아 들고선 이를 미련 없이 찢어 버렸다.
환하게 터지는 빛에 윤리오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련님! 아가씨!”
그러다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슬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담요! 아니, 누가 들것 좀 가지고 와!”
“광혜원 헌터는 어디 있어?!”
“광혜원 헌터, 지금 화홍이가 찾아다니는 중이에요!”
야단법석(野壇法席).
정말이지, 고사성어 하나가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주파수 높은 목소리들에 윤리오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도련님께서 DMO(Dungeon Management Organization) 쪽에 연락을 취하셨잖아요?”
“그러니 온 거 아니겠니, 윤리오.”
명랑한 목소리의 뒤를 이은 건, 스산하게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였다.
“조용.”
나지막하게 울린 목소리에 소란을 떨어대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내려앉은 고요에서 울린 목소리는 단 하나.
“헉, 미친! 사해야!”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