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2)
어쨌거나 ‘YES’를 누르든, ‘수락’을 누르든 그거나 그거였다.
나는 부디 작가님께서 보낸 선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권’ 이기를 바라면서 ‘YES’를 눌렀다.
【‘윤리사’의 이름이 각성자로 기록됩니다!】
하하!
귀환권이라니,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선물이기는 했다.
『각성, 그 후』에서 한 사람이 ‘각성자’인지, ‘비각성자’인지 판가름이 나는 시기는 열일곱 살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 각성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열에 열이 각성자였다.
다만, 열일곱 살까지는 비각성자의 삶을 살 뿐이었지.
“그런데 각성자라…….”
스킬이라고는 없이, 이름뿐인 그런 건 아니겠지?
작가님이 그런 빅엿을 주지는 않았다고 믿으며 눈앞에 나타난 이름에 주목했다.
[윤리사]
내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먼저 윤씨.
어느 본관의 어느 윤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본관(本貫)이라고 하여, 시조의 거주지를 알 수 있는 성씨는 이 세계에서 내가 아는 한 남해의 청(淸)가뿐이었기 때문이다.
남해 용왕의 후손들.
‘거주자’의 후손들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곳은 암만 봐도 『각성, 그 후』의 세계고, 이곳에서 내가 아는 윤씨는 단 세 명뿐이었다.
바로, 우리 차애님과 그의 두 아드님이다.
사실 한 명 더 있었다.
“그렇지만 죽었다고 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어릴 적 죽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각성, 그 후』에서는 이름만 등장했던,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였다.
“에이, 설마! 내가 윤리사겠어?”
이런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아무래도 불의의 사고로 죽어 버렸다는 ‘윤리사’가 된 것 같다.
이름이 ‘리사’잖아.
윤사해의 두 아들인 윤리오와 윤리타, 그 두 사람이 ‘리’자 돌림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막을 수 있었어요.”
“리오야.”
“리사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요.”」
얼굴만 참한, 윤사해의 아들인 윤리오가 그 이름을 불렀었다.
그런데 그 애가 당한 ‘불의의 사고’가 뭐였더라?
“……시, 시바.”
‘던전’이라 불리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그것에게 잡아먹혔다고 한 것 같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는 건 동굴을 밝히고 있는 횃불뿐.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몬스터가 접근할 수 없는 안전 구역인 듯했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아무리 많게 잡아도 일곱 살로 보이는 이 몸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님.
“어서 선물 더 내놔!”
각성자로 기록됐다고만 하면 어떻게 해! 여기서 어떻게 살아나가라고!
그렇게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에 응답하듯 푸른 창에 적힌 문구가 바뀌었다.
【각성자, ‘윤리사’의 스킬을 개방합니다.】
그 말과 함께 여러 개의 창이 눈앞을 빼곡하게 채워 나갔다.
【<[특수 스킬] : C+F=검색창>이 활성화됩니다.】
특수 스킬이라고 하면,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스킬을 말한다.
조금 전에 말했던 남해 청가의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특수 스킬] : 청(淸)하리다>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와…….”
작가님, 좋은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한데 던전 공략에는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무너진 천장에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활성화된 스킬은 하나가 아니었다.
【<[S, 숙련 불가] 이게 바로 박력이라는 거다>가 활성화됩니다.】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가 활성화됩니다.】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활성화됩니다.】
【<[S, 숙련 불가] 클리셰면 뭐 어때 현자의 눈!>을 개방합니다.】
아니다. 내 천장은 무너져서 아주 그냥 폭삭 가라앉아 버렸다.
“박력 뭐야…….”
저게 무슨 스킬인지 감이 안 잡힌다. 하나 다행이라면 ‘S’라는 등급이었다.
『각성, 그 후』에서는 스킬의 등급이 곧 각성자의 등급이었다.
보육원에 종종 봉사활동을 오던 대학생 언니가 말하기를 ‘F’는 가장 안 좋은 점수라던데, 그건 『각성, 그 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밑바닥 등급인 F에서부터 E 그리고 D, C, B, A 마지막으로 S에 이르기까지.
각성자의 등급은 총 일곱 가지로 나누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 인생 폈잖아…….”
귀하다는 S급 각성자였다.
스킬의 등급이 곧 각성자의 등급이라고 하지만, S급 스킬은 보기가 힘들었다.
『각성, 그 후』 내에서도 S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각성자는 다섯 명뿐이었다.
윤사해, 이운조, 최설윤, 강산에.
그리고 저세상.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리자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매망량의 주인은, 참 쉽게도 목숨을 버렸다.」
주인공에게 목숨을 던졌던 나의 차애님.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다.
【『각성, 그 후』의 이야기에 개입하기를 원하십니까?】
‘YES’와 ‘수락’뿐이던 답안지가 생각났다.
떠오른 기억에 하나 확신했다.
두 자리 중 하나에 ‘NO’나 ‘거절’이 적혀 있었어도, 나는 기꺼이 이야기에 개입하고자 했을 거라고.
이야기에 개입한다는 방식이 이런 걸 줄 알았으면 잠깐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미 벌어진 일.
‘마리아’로 있던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더는 귀환을 부르짖지 않을 거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눈앞에 나타난 스킬을 살펴보고자 했다.
먼저 박력이다.
특수 스킬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원래 더 눈길이 가는 걸 봐야 했다.
<[S, 숙련 불가] 이게 바로 박력이라는 거다>
-원하는 대상 혹은 집단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 발동 조건: “마! 자신 있나!”
※ 크게 외칠수록 스킬 효율이 올라갑니다.
“……?”
잘못 본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볐다. 뭘 외쳐?
<※ 발동 조건: “마! 자신 있나!”>
잠깐만, 귀환을 부르짖지 않을 거라는 거 취소할래. 작가님, 죄송한데 저 좀 돌려보내 주세요.
물론, 이런 내 간절한 마음에 응답해 주실 작가 양반이 아니었다.
“뭐 이런 스킬이 다 있어? 이게 왜 S급인데?!”
이건 무조건 봉인이다.
나는 굳게 결심하고는 황급히 다른 스킬을 살펴보기로 했다.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
-적용 대상자의 스킬 ‘하나’의 등급을 한 단계 높입니다.
-스킬 사용 시에 상대의 대상 스킬을 자신 또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경우 ‘상대의 대상 스킬’은 본 등급으로 사용됩니다.
다행히 박력 스킬처럼 뭔가를 외쳐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다.
다만.
<※ 단, 적용하고자 하는 대상의 ‘스킬’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 단, 스킬이 적용된 대상자는 본인(윤리사)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 단, 신체끼리 접촉해 있는 상태라면 상관없습니다.>
발동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그럼 시간이랑 재사용 대기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대상자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흘러가는 건가? 아무래도 스킬을 사용해서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S급 스킬에 이걸 걸면 어떻게 되는데? 특수 스킬에는?”
설명이 굉장히 불친절했다. 이것 역시 스킬을 사용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좋은 스킬을 얻어 다행이었다. 설명이 불친절하기는 했지만, 이건 경험을 쌓으면서 극복하면 되는 거고.
나는 그렇게 좋게 좋게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
-지능을 가진 생명체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발동 조건: 뺨을 때리면서 원하는 바를 말하십시오.
※ 소리 나게 때릴수록 스킬 효율이 올라갑니다.
“……시, 시바.”
좋은 걸 얻었다 싶었더니, 바로 이런 썩을 스킬이 등장해 버렸다.
남의 뺨을 때려서 발동하는 스킬이라니! 작가 양반, 뺨이라니요.
이 작은 손으로 누구를 때리라고 이딴 스킬을 선물이랍시고 내려 준 겁니까?!
애초에 당신, 내가 아는 작가님이 맞기는 한 거야?
나는 질색하며 눈앞에 나타난 푸른 창을 지워 버렸다.
다른 설명이 아래로 더 있었지만, 이걸 사용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S, 숙련 불가] 클리셰면 뭐 어때 현자의 눈!>
어차피 이건 보나마나일 것 같지만, 그래도 봐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상대의 각성 여부, 신체 능력치, 스킬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 따라가는 스킬이었다.
<※ 단, 스킬의 구체적인 정보 및 상세 특성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흠이라면, 스킬의 이름만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알고 있는걸.”
주요 등장인물의 정보는 머릿속에 생생히 박혀 있었다.
여러 번의 정주행 끝에 습득한 지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건,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특수 스킬이었다.
<[특수 스킬]: C+F=검색창>
-검색하고자 하는 것과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보여 드립니다.
어떤 인물을 검색하라는 건지,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나타난 것이 있었다.
-《‘1110’님께서 ‘윤리사’ 양의 앞으로 선물을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또?”
이번에도 나타난 건, ‘YES’와 ‘수락’뿐.
나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선택만 하면 된다는 망할 작가님께 엿을 준 뒤 둘 중 하나를 골랐다.
그러기 무섭게 나타난 건…….
-《ZG-00으로부터 전해진 데이터입니다.》
-《권외 밖으로부터 날아와 손상 정도가 심각합니다.》
-《그래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확인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질질 끌지 말고 어서 보여 줘요!”
내가 참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1등을 발표하는 순간에 ‘1분 후에 발표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광고를 틀어 주는 거였다.
나는 씩씩거리며 푸른 창을 향해 삿대질했다.
“빨리 해! 빨리 하라고!”
한국의 국가 번호가 왜 ‘82’겠어?!
‘YES’와 ‘수락’.
의미는 같으나 다른 말인 두 가지 중 하나를 누르자마자 푸른 창이 노이즈가 낀 듯 지지직거린다.
맛이 가려는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던 찰나.
<각씪_긌後_완성본txt>
……광고 좀 틀어 주고 보여 주지 그랬어요. 그보다 완성본이라니요? 작가님, 당신이 언제 완결을 냈다고 그러는 거야?
<※ <[특수 스킬] : C+F=검색창>의 활용에서만 읽기가 가능합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눈살이 절로 찌푸렸다. 깨진 글자는 둘째 치고, 스킬 사용에만 읽기가 가능한 텍스트본이라니.
“같은 동네 다른 작품은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보다.
“작가님, 사기도 상대를 보고 치셔야죠.”
이 망할 작가님이 완결도 안 쳤으면서 누구를 상대로 약을 팔려고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