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1)
자, 크게 심호흡하고.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
【던전은 당신에게 위험합니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다.
위험을 알리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님, 제가 아무리 신세 한탄을 거하게 했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아니, 애초에 이건 잘못을 떠나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머리를 있는 힘껏 끌어 잡고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
【던전은 당신에게 위험합니다.】
“시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는 스스로를 한 번 되돌아보기로 했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예정이었다.
비록, 보육원 퇴소를 앞둔 나에게 아버지란 작자가 찾아와 내 지원금을 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소중한 내 돈, 두 눈 뜨고 빼앗길 정도로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바! 이건 아니잖아!”
어린애가 되어 버렸다.
***
곧, 만 18세.
19살의 생일을 앞둔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가난에 쫓겨 보육원에 맡겨졌었다.
나를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긴 부모는 그 후로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었는데, 일주일 전에 난데없이 찾아왔다.
나의 보육원 퇴소와 함께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리아야, 아빠 얼굴 기억나니?”
정확히는, ‘아버지’만 찾아왔었다.
이혼한 지 진즉 됐다면서, 이제야 나를 데리고 올 형편이 돼서 찾아 왔다던데…….
“리아 아버님, 신용 불량자라고 하더군요.”
“부인분과 헤어진 이유는 가정 폭력 때문이라던데요?”
그게 아니었다.
신용 불량자에 폭력을 일삼는 무식한 인간에게 갈 수야 없지!
나는 자신의 얼굴이 기억나느냐면서 한 번 더 나를 찾아온 아버지란 작자에게 말했다.
“아니요,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요? 그리고 저 아저씨 따라갈 생각 없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온 건 손찌검이었다.
“리아야!”
“뭐 하는 짓이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요!”
선생님들이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머리채가 잡혔거나 뺨을 한 대 더 맞았을 테다.
“경찰? 경찰은 무슨 경찰! 내가 내 자식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누구를 부른다는 거야?!”
나를 자식으로 여긴다면, 한 번이라도 내 얼굴을 보러 왔었어야지.
‘가족’이란 이름에 가지는 환상 따위 버린 지 오래였지만, 미련은 가지고 있었다.
“애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년, 내가 교육 좀 하겠다는데 너희가 뭔데 난리야!”
“내 가족이다, 이 망할 아저씨야!”
“……!”
이제 미련조차 가지지 않게 됐지마는 말이다.
나는 아버지라는, 빌어먹을 새끼한테 가운뎃손가락을 날려 준 뒤 도망치듯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와장창,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보급형 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누른 번호는 112.
“네, 경찰서죠? 여기 희어나리 보육원인데요…….”
그렇게 아버지란 놈을 경찰에게 넘겼다.
선처고 나발이고 속이 홀가분해서 뿌듯하게 웃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보육원 선생님들 눈에는 이상하게 여겨졌나 보다.
“리아야, 오늘 네가 좋아하는 치킨 시켜 먹을까……?”
“치킨이요? 괜찮아요, 그 돈으로 애들 간식이나 사 주세요.”
후원자분들의 돈을 엄한 데 쓸 수야 없었다. 가뜩이나 재정도 안 좋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나는 희어나리 보육원의 맏이다운 면모를 보여 준 뒤,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1110’작가님의 『각성, 그 후』 451편이 등록되었습니다.]
때맞춰 올라온 것은 즐겨 읽고 있는 웹소설인 『각성, 그 후』였다.
“드디어 올라왔네!”
일주일이 넘도록 업로드가 되지 않아 정주행만 여러 차례 하던 중이었다.
인기도 없어 이대로 연재 중지하는 것은 아니겠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나는 화면을 눌렀다.
“사해야, 너 괜찮지? 세상이 새끼한테 당한 거 아니지? 그치?”
최애님이 생사불명 되고 나에게 남은 건, 차애님.
하지만 우리 차애님께서는 『각성, 그 후』에서 착실히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중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취급하던 둘째 아들에게 갑자기 살갑게 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세상이 새끼 조지고 주인공 되자, 사해야. 중년 아저씨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는 거야!”
『각성, 그 후』의 최신 화 조회수가 ‘10’ 이하가 된 지는 오래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각성, 그 후』.
비각성자였던 주인공, ‘저세상’이 각성자가 되면서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기는 개뿔.
지금까지 죽어 나간 조주연의 숫자만 하더라도 스무 명이 넘는다.
엑스트라가 아닌, 작품에서 비중 좀 있다 싶었던 조연과 주연들 말이다.
[이런 미친, 해솔이 죽였냐 작가 ♬♪♬야.]
[아니, ♪♬ 우리 운조 언니 살려내요! 흐어나ㅓ아!]
[삼애 죽고, 차애 죽더니 이제 최애까지 죽어버렸네요! 하차한다 ♬♪ㅎ]
다른 작품들은 죽는가 싶었더니 안 죽어서 난리라는데, 여기는 이제 좀 사나 싶었더니 죽어 버렸다.
재미라도 있으면 몰라,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작품을 왜 읽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아버님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윤사해.
『각성, 그 후』에서 꽤 비중 있게 나오는 인물로, 작품 내 등장하는 4대 길드 중 하나인 이매망량(魑魅魍魎)의 주인 되시는 분이다.
참한 아들 한 명과 얼굴만 참한 아들 한 명, 이렇게 자식 둘을 두고 계시는 우리 아버님.
참한 아드님과 함께 장수하셔야 하는데 말이다.
[이매망량(魑魅魍魎)의 주인은 검을 놓아 버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른 것 같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황급히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그림자를 벗 삼아 움직이던 자의 몸이, 기울어졌다.]
이런, 시바. 아니야, 아닐 거야.
사해야, 너 스킬 좋은 거 많이 가지고 있잖아! 그거 써먹어야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세상아.”
윤사해의 부름에 저세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윤사해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억지로 들어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군가는 아들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아버지라 생각했다.
“……고맙다.”
꺼져가는 숨 사이로 내뱉어진 마지막 말에 저세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매망량의 주인은, 참 쉽게도 목숨을 버렸다.]
“…….”
스크롤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해 봤지만, 마지막 문장은 변하지 않았다.
[이매망량의 주인은, 참 쉽게도 목숨을 버렸다.]
“아니, 사해야……!”
너 누가 그렇게 목숨 막 버리래! 작가님, 당신은 이게 진정 최선이었습니까!
분노의 욕설을 쏟아내기 위해 댓글 창을 열었지만, 손가락은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하…. 시바…….”
그냥 허무하기만 했다.
나는 침대 위에 털썩 눕고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우리 차애님의 행복을 바랐다.
자식들과 쌓인 오해를 풀고 정답게 지내기를, 내가 그럴 수 없는 만큼 행복해지기를 바랐었다.
“주님, 저 싫어하죠?”
수녀원 휘하의 보육원, 매일 새벽에 있는 미사 시간을 나는 종종 빠지고는 했다.
어차피 기도해 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는데.”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긴 것 같은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로도 애꿎은 주님께 열심히 화풀이를 했다.
정확히는, 내 인생 왜 이러냐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처음에는 『각성, 그 후』의 망할 작가님을 욕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신세 한탄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바쁜 주님을 붙잡고 신세 한탄을 한 게 잘못이었나 보다.
***
【당신은 비각성자입니다.】
【던전은 당신에게 위험합니다.】
“시바… 내 인생 왜 이래…….”
처음에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실제로도 나는 『각성, 그 후』의 꿈을 꾸고 있었다.
-《ZG-01의 ‘1110’님께서 ZG-00의 ‘마리아’ 양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권외 밖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입니다.》
-《응답 시간은 10초입니다.》
연달아 나타난 푸른빛의 윈도우 창, 그 위로 보다 진한 색의 메시지가 떴다.
【『각성, 그 후』의 이야기에 개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YES’를 눌렀었다.
인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준비된 답안이 ‘YES’와 ‘수락’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YES’를 눌렀더니 이 상황이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는 동굴, 그 안을 울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
오싹하게 이는 감정을 꾹 누르고서 나는 소리 질렀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그렇게 소리 지르는 내 목소리는 천장을 뚫을 기세로 높디높았다. 더욱이 앞니도 없어서 발음이 자꾸만 새는 기분이 들었다.
“시바!”
주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암만 생각해도 이 동굴은 ‘던전’이라고 하여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 같았다.
그런 곳에 어린아이의 몸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중이다.
“죽으라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헤드뱅잉을 하던 중이었다.
-《‘1110’님께서 ‘윤리사’ 양의 앞으로 선물을 보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까?》
나를 이곳에 던져 버린 게 분명한, 빌어먹을 작가 새끼가 등장하셨다.
“……작가님?”
작가 맞겠지.
떨리는 목소리로 작가 새끼를 불러보는데, 돌아오는 답장이 없다.
대신, 푸른 윈도우 창이 적혀 있던 글자를 바꾸었다.
-《YES | 수락》
꿈에서 봤던 것과 똑같다.
‘YES’ 혹은 ‘수락’.
글자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답안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순순히 답을 선택할 수 없었다.
“시바, 작가 새끼야! 집으로 돌려보내 줘!”
수녀원 휘하 보육원, 그곳이 집이라면 집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말이 우습다는 듯, 앞말을 빼먹고서 뒷말만이 남아 동굴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보내 줘어-
줘어-
올해 겨우 19살, 내 인생 대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