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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4) (250/250)


신세계 (4)
2022.08.08.


선택권이 생겼다.

소멸까진 아니었지만, 지구에서 게이트를 없앨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수확이었다.

실제로 주민성은 영혼 재배치를 통해 상당한 이득을 보기도 했다.

비록 하위 차원이 전쟁터가 되긴 했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악령들도 날뛰지 않고 있었고.

“일단 테스트부터 해보자.”

“네. 형.”

우선은 여의도에 형성된 게이트를 마포구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 준비 과정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근방에 깔린 게 아기 고블린이었으니까.

“응애.”

다섯 마리의 아기 고블린이면 게이트에서 새로운 변종 보스가 탄생한다 해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전력이었다.

“시작할게요.”

최선호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게이트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방대한 양이었다.

‘선호가 이렇게까지 성장했구나…….’

추방자 능력의 잠재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다.

딱히 부럽지는 않았다.

노력 대비 소득으로 따지면 건물주보다 좋은 능력은 없었으니까.

치지직.

어느 순간부터 여의도 주변을 휘감는 반투명한 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아마도 게이트의 본모습이리라.

팟!

그리고 최선호가 출력을 높임과 동시에 게이트의 형체가 사라졌다.

“된 거야?”

“네. 정확히는 24시간 이내에 재배치를 마쳐야 해요. 제한 시간 초과하면 추방했던 게이트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요.”

“그렇군.”

재배치는 소유물 복제와 비슷한 규칙이 적용되는 능력이었다.

“이동하자.”

“네.”

주민성은 최선호와 함께 마포구로 이동했다.

도약 몇 번이면 닿을 거리였기에 간단했다.

치지지지!

재배치가 시작됐다.

지금의 시도는 여의도 게이트를 마포구 게이트에 덧씌우는 거나 마찬가지인 작업이었다.

게이트를 특정 구역으로 밀집시킬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일 테니까.

치직! 치직!

다시금 게이트의 형체가 드러나고, 두 개의 게이트가 겹쳐지기 시작했다.

“될 것 같은데요?”

처음엔 충돌하던 두 게이트였지만 어느 순간부턴 충돌조차도 사라졌다.

마포구 게이트가 여의도 게이트를 흡수하는 형국으로 전환됐다.

치이이!

“됐어요.”

무언가 많은 메시지들이 떠올랐는지 최선호는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응?”

“이거 되게 쓸 만한데요?”

“왜?”

“아예 지정된 장소만 게이트로 만들어서 등급별로 나누면 원하는 등급의 재료들만 골라서 파밍할 수 있겠어요. 맞는 등급 게이트로만 입장하면 훨씬 안전해질 테고.”

최선호는 이미 대격변 종식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쯤이면 게이트는 광산 같은 느낌이리라.

“캬우우우!”

쾅!

재배치된 마포구 게이트에선 원래라면 여의도에서 나타났어야 할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진짜 성공했네.”

“대박이죠?”

“이 정도면 미국 측에 확답도 할 수 있겠어. 고생했다. 선호야.”

“에이. 아니에요.”

“오후쯤 미국 건너갈 건데, 아니면 내일 갈까?”

“괜찮아요.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솔직히 하나도 안 힘들어요.”

“다행이네. 그럼 일단 쉬었다가 이따 보자.”

“넵.”

***

주민성과 최선호의 활약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부처 길드는 만장일치로 주민성의 의향에 따랐으며 국토 절반을 뒤덮었던 게이트를 재배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이….”

“그래도 만능은 아닙니다. 기존 게이트에 남아있던 몬스터는 직접 처리하셔야 하거든요.”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게 문제 아닌 문제군요….”

스미스는 허탈하게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남아있는 보스 몬스터라고 해 봐야, 부처 길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제…. 모두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주민성 세력은 또 한 번의 어마어마한 후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는 부처 길드를 떠나 미국 내 존재하는 전체 세력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에이. 뭘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재회를 약속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능력 구매 때문이었다.

“정말로…. 모든 능력을 사버릴 생각입니까?”

“네.”

주민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자들의 능력을 구매하기로 계획했다.

보통이라면 어마어마한 반발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게이트를 치워주는 것에 대한 조건으로 이용료 청구가 붙어있었다.

그것만으로 정보의 유출과 할 수 있는 모든 반발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 있었다.

능력 구매를 100회 달성하고 얻은 능력 임대 능력이었다.

[지정한 건물에 임대 가능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해당 건물 이용자는 건물 이용 기간 동안 능력을 임대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건물주의 궁극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이 수단 덕분에 다른 세력은 물론이고 아군 세력원들조차도 흔쾌히 주민성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었다.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세력원은 건물 이용료를 90%까지 할인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직 10%만 먹는 장사.

그럼에도 주민성에겐 남는 장사였다.

건물 이용은 하루 단위였으니까.

터무니없이 비싼 능력 구매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전 세계가 상대라면 몇 년 만에 메꿀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한 달 후에 뵙겠습니다.”

***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정상화된 국가는 없지만, 적어도 화폐 생산시설의 경우엔 각 나라마다 최우선으로 복구됐다.

오직 주민성만을 위한 조치였다.

자신의 국가에 속한 게이트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혹은 생존자들의 지지를 받아 국가의 수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저마다의 욕망을 불태운 결과였다.

그런 덕분에 주민성은 돈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게 무엇인지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지구 최고의 부자가 되어버렸군.”

“무식하긴 해도 멋있으니까 괜찮아. 그래야 내 남친이지.”

큰 변화는 또 있었다.

주민성은 성아영과 연애를 시작했다.

제대로 시간을 아끼며 휴식할 수 있는 곳이라곤 인벤토리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성아영과 자연스럽게 썸을 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꽤 험하게 대했음에도 한결같이 헌신적인 데다 자신을 위해 사소한 점이라도 도움 되려고 노력하는 점이 상당히 컸다.

물론 성아영과는 악연으로 시작했던 만큼 주위의 후폭풍도 존재했다.

연애 사실이 밝혀지고 봉춘향에게도 고백받게 된 건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5년 안에 넘어오게 만들겠다며 당찬 도전장까지 던지는 모습이 여간 귀여울 뿐이었지만, 주변 분위기가 생각보다 진지해 도전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보다 게이트 있잖아. 한곳에 몰아도 괜찮아?”

“솔직히 불안하긴 한데, 성공만 하면 효율이 획기적으로 올라가서 일단은 지켜보려구.”

다른 국가들에게서 수집한 게이트는 전부 한국에 몰아뒀다.

그렇다고 국내의 생존자들이 위험해지는 방법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다른 게이트를 옮겨버렸으니까.

태양의 순례지로 영혼들을 재배치했던 경험에서 따온 아이디어였다.

“아직까진 자기들끼리 신나게 싸우더라고.”

주민성은 차원 이동 시스템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카오스 게이트의 원래 주민들은 인간이든 몬스터든 지분이 없는 상대라면 전부 공격했다.

지분이라고 해봐야 주민성과 신명철 등의 극소수의 인간과 악마들만 가지고 있던 것이었기에 게이트를 통해 건너오는 모든 몬스터가 혼돈의 존재와는 적대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1년 정도만 지켜보려구. 문제 생기면 그땐 분산 배치해야겠지만.”

“맞다. 싹둑이가 제주도에 게이트 둘 정도만 더 늘려달라더라. SS급으로.”

“지금도 다섯 개 중첩일 텐데?”

참고로 싹둑이는 임진석의 별명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성아영의 능력은 3000조 원에 육박하는 무식한 가격을 자랑해서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

임진석의 능력도 전부 사려면 500조 이상은 투자해야 해서 미뤄둔 상태.

“콩이는 진짜 끝도 없이 세지는구나.”

절대 을은 단순한 절대 을이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건물주 등급이 높아질수록 절대 을의 성장 한계도 대폭 늘어나는 구조였다.

그리고 지금의 콩이는 혼자서 SS급 몬스터를 여유 있게 사냥할 정도로 먼치킨 데빌도그가 되었다.

임진석은 그냥 콩이 집사였고.

그리고 또 하나의 절대 을 크룩스는 튜토리얼 탑의 전문 교관이 되었다.

주민성 세력으로 전향한 몬스터는 튜토리얼 탑을 크룩스의 안내에 따라 졸업하고 인류에게 도움될 수 있게끔 교육하는 역할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아기 고블린보다도 강해졌다.

“이제 다들 알아서 움직이니 좋긴 하네.”

주민성은 누워서 우튜브를 켰다.

지금의 우튜브는 완벽하게 주민성에게 극도로 친화적인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세력원이 켜는 방송은 최상단에 노출되는 적폐 시스템도 새로 생겨났지만, 콘텐츠 진행자 수준이 워낙 높다보니 별다른 불만도 없었다.

-오늘은 블록 5000만 개만 사용해서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 볼 거예요.

최선호 역시 소원을 이뤘다.

건축 우튜버라는 부캐도 함께 얻었고.

추방자 능력과 수많은 중첩 게이트에서의 파밍으로 자신만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콘텐츠로 한창 인기 몰이중이다.

또한, 랜드마크는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또 입가 씰룩인다.”

“후후후….”

최선호의 랜드마크를 감상하는 주민성의 입가는 쉴 새 없이 씰룩이고 있었다.

랜드마크 방문 수익 일부가 주민성에게 들어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대격변을 종식시키고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진정한 건물주의 삶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라 어쩔 수가 없어….”

재주는 누가 부리든 좋았다.

건물주는 건물주로서의 권리만 챙기면 될 뿐.

심지어 지금에 와선 FFF급이라는 등급도 딱히 필요 없었다.

전 세계 그 누구도 주민성을 부정하지 않으니까.

반년 전쯤이었을 터였다.

최선아가 제대로 정체를 밝혀보자고 권유했던 건.

-정말 괜찮아요! 지금 민성 씨 민심이 나락에 가려야 갈 수가 없는 수준이라니까요?

반신반의했지만, 최선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드디어 응원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며 본격적이고 어마어마한 후원이 약속된 것이다.

깨알 같지만 주민성이 소유권을 챙긴 텐트나 컨테이너는 최고의 효자 수출 상품이 된 것은 덤.

탈모까지 치료해주는 사기적인 성능에 프리미엄이 무지막지하게 붙어버렸다.

심지어 굿즈 살 돈이 없어 노동력으로 충당하겠다며 한국으로 건너오는 사람도 무지막지하게 많다.

“입 찢어진다. 찢어져.”

“괜찮아. 찢어져도 금방 나으니까.”

“말이라도 못하면. 아휴.”

“맞다. 미국은 안 가봐도 돼? 너네 오빠 벌써 자리 잡은 모양이던데.”

“아….”

성아영의 친오빠 성우혁은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 다음으로 살기 좋은 나라인 데다 성씨 가문 자체가 원래부터 미국 혼혈이었기에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거주중인 인구수만 수억대.

성우혁은 국내 어딜 가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인기를 몰고 다녔다.

성씨 가문 특유의 미인 유전자에 대격변까지 끝나 말끔해진 모습까지 더해지니 인기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아직 어색하긴 한데….”

“정 그러면 다음 미국 일정 때 나랑 같이 가든가.”

“그럼 갈래!”

이전의 대답을 끝으로 잠시 대화가 끊겼다.

성아영은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가족 얘기 나와서 말인데….”

“응?”

“아이 이름은 내가 지으면 안 돼?”

“갑자기?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름 못 부를 거 아냐. 아이 이름이라도 미리 짓고 싶어서.”

“아아…. 그런 거라면 확실히. 생각한 이름은 뭔데?”

“아들이면 리앙. 딸이면 리아.”

“…응?”

“너 주 씨잖아. 그러면 줄리앙, 줄리아. 이렇게 부를 수 있어.”

“…그게 그렇게 되나?”

그 순간 주민성은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줄리아?”

“응! 이름 예쁘지?”

“…….”

잠시 잊고 있었던 평행세계도 떠올렸다.

미국의 SSS급 건물주의 이름도 줄리아였다.

“우리 할머니가 미국인이래. 이런 이름이라면 부르기도 쉬울 것 같아.”

“…그랬던 거구나.”

“응? 뭐가?”

“아냐. 아무것도.”

“뭐야. 김빠지게.”

주민성은 운명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정확히 들어맞는다.

원래 주민성의 꿈은 최첨단 지하 벙커에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이니까.

협회장이 주민성을 괴롭히지 않는 세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주민성은 미국의 최첨단 벙커를 구매하는 목표를 세웠을 터였다.

온전히 부모님 밑에서 곱게 자라기도 했을 테고.

건물주 능력만 있다면 가능성이 없지도 않은 일이다.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에! 이름 지었잖아!”

“아아.”

“반응해주라고!”

“…그렇게 하자. 줄리앙. 줄리아.”

“헤헤.”

“그래도 자녀 계획은 진짜 나중 일이다? 당장 쌓여있는 일정부터 소화해야지.”

“당연하지! 아무튼 너도 동의했다?”

“그래. 그때쯤 되면 세력에서도 은퇴하고 한가하고 풍요롭게 살고 있을 거야. 기대해.”

“…흥. 능력 각성한 지 2년도 안 됐으면서.”

“…그러네.”

건물주 능력을 각성하고 1년하고도 반년쯤 지난 상태였다.

누구보다도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한때 임시 권한으로나마 체험했던 전성기의 건물주.

지금의 주민성은 전성기 건물주의 모든 능력도 해금한 상태였다.

그러고도 아직 팔팔한 20대다.

“뭐 어때. 앞으로도 부자고, 건물주 능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없었어도 너한테 반했을걸?”

“알아.”

“그, 그걸 어떻게 알아!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진심인 거 안다고.”

“씨이….”

주민성은 나름대로 계획을 크게 바꿨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건 변함없었지만, 스케일을 키웠다.

모두 다 같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선 아직 몇 년은 더 바쁘게 시간을 보내야했다.

“슬슬 나가봐야겠다. 호출 부탁할게.”

“…알았어.”

“삐지지 말구. 어차피 나가서도 옆에 있을 거잖아.”

“그래야지. 그 옆자리 안 지키면 누가 지킨다고.”

FFF급 건물주의 삶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건물주의 일생이 펼쳐져 있을 뿐.

주민성은 더욱 큰 행복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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