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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3) (248/250)


신세계 (3)
2022.08.07.


하루가 흘렀다.

북아프리카 연합은 그대로 주민성 세력에 흡수됐다.

몇몇 능력자를 파견 보내는 것으로 저항 자체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상대 세력 일부는 한국에서의 거주를 희망했다.

이용료 청구와 능력 구매라는 까다로운 조건까지 걸었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정착 자금을 얻었다며, 지긋지긋한 몬스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제 일으키지 말고요. 일으키기도 힘들겠지만.”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제대로 살겠습니다!”

그리고 주민성은 북아프리카에 도착해 있었다.

신성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

“…하. 여기서만큼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알아.”

신성의 진짜 수장이자 신우빈의 아버지인 신명철과 얽힌 문제였다.

악마를 통해 무얼 얻으려 했든, 북아프리카 연합이 신성의 주사기를 사용한 것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 추궁해도 관리 부실 아니면 뒷공작으로 결론이 날 상황이다.

“아버지는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건지 대체….”

신우빈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건 주민성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여태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거대한 산이 갈라지고 있는 그런 사건이었기에.

“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쓸데없는 충돌은 일으키지 않았다.

애초에 아는 얼굴도 몇몇 보여 손쓰기도 애매했고.

그렇게 주민성은 하이패스로 신명철 회장과 독대할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자네군.”

“처음 뵙겠습니다.”

“…….”

신명철 앞에선 딱히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상대 쪽에서 진작 주민성을 알고 있었다.

“상황은 알고 계시지요.”

“…물론일세.”

“그럼 해명 듣겠습니다.”

“…….”

한때 거인처럼 보였던 신명철도 이젠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왜요. 따로 기다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

신명철 역시 나름의 저항을 준비했다.

주민성이 건물 내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파훼 됐지만.

지구 최강의 건물주는 이제 어떤 건물에 들어가도 소유권을 챙겨올 수 있었다.

“아. 저 벽이 왜 가만히 있느냐가 궁금하시다면.”

주민성이 팔을 뻗자 건물 내부의 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벽 전체가 위장 설비였다.

실체는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한 포탑이다.

키리릭.

“아직 침입자를 규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타겟을 정한다면 이렇게 되겠죠.”

철컥.

어느새 모든 총구가 신명철을 향해 있었다.

“포기하고 해명합시다. 신우빈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봐 드리는 거니까.”

“…….”

이젠 신명철이 숨겨둔 카드가 협회장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면 주민성도 위협할 수 없다.

그 정도로 건물주는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이대로 끝난 건가.”

“네.”

신명철은 허탈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네.”

“…높이요?”

“분명 최고가 되기로 했고 최고를 위해 달려왔어. 그런데 결과가 이렇지 뭔가. 협회장이 튀어나오고 이젠 자네라는 존재가 또 튀어 올랐지.”

“…….”

넋두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만년 이인자가 싫었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주민성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성은 최고의 기업이었으니까.

“적어도 이곳에선 신처럼 군림할 수 있었지. 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가능했어. 게다가 악마조차도 우리 아래였었네.”

“…악마라.”

“그래. 악마가 남긴 물건들을 회수했다는 건 거짓일세. 사실은 협력관계였지.”

신명철은 주민성의 표정을 잠시 동안 관찰했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북아프리카 연합을 흡수했다지.”

“네.”

“실험이었네. 악마를 부활시키는 실험.”

멱살이라도 잡을까 했지만, 이야기는 끝까지 듣기로 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제공했던 약물은 유물의 역할을 하는 약물이었어. 실제로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악마도 함께 배양되는 약물이었네.”

“…….”

“전염병에는 면역되고, 우리에겐 협력적인 악마가 탄생한다면 대격변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예상되나?”

“네.”

“당연히 예상 못…. 으음?”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와서일까.

처음으로 신명철이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상되는 걸 넘어서 결과까지 보입니다.”

“…무, 무슨!”

“악마한테 뒤통수 거하게 맞을 겁니다. 뭐,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요. 정말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르며 견디는 게 고작이겠죠.”

“…아직 우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아는 게 중요합니까? 신성이 안일하다는 게 중요하지.”

“우리 재계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있네. 아주 긴밀하게.”

“그래도 망한다니까요.”

적어도 주민성이 활약하지 않는 세계는 그러했다.

당장 이베리카부터 시작해 한국산 토종 보스 몬스터들조차 토벌하지 못하는 그런 세계가 펼쳐진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북부 일부만을 남기고 싸그리 게이트에 집어삼켜지는 미래가 확정되어 있었다.

“악마 박멸한 것. 감사하게 생각하십쇼. 카오스 게이트도 대략적으론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투자도 하셨었고.”

“…….”

최철진과 더불어 신명철은 카오스 게이트와 지분에 대해서 아는 인물이었다.

주민성을 제외한다면 유일한 인간이었고.

“다 예상대로일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벌써부터 예상 어긋났잖습니까. 북아프리카 연합 반절 이상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마당에.”

“크흠….”

더 이상의 많은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제 핵심을 전달할 시간.

“이제 그만 회사 넘기시죠.”

“…해산하면 했지, 넘길 수는 없네. 신성은 말이야….”

“저 말고 신우빈한테 넘기세요. 전 여기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회사 운영이라니. 끔찍해라.”

“…….”

주민성이 이곳에 직접 찾아온 이유는, 신성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신성이라는 기업의 포지션이 주민성에게 크게 적대적이지도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신명철 또한 나름대로 대격변을 벗어나는 방향성을 유지했었고.

“은퇴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희 측 생존자분들 중에 재계에 계셨던 분들 꽤나 계신 거 알잖아요.”

“…모르는 건 아닐세.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이러는 게지.”

“대격변 아니어도 선 넘은 거 맞습니다. 휠체어 타고 법정 출두하셨겠죠.”

“끄응….”

“그리고 완전 은퇴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릴 위해서 재능기부 한번 해주시죠. 오신다면 송도로 모셔드리겠습니다.”

신명철은 이수길에게 붙여줄 생각이었다.

이수길의 인망에 신명철의 실력을 더한다면 꽤 좋은 시너지가 나올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식사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원하는 식재료들도 즉각적으로 공수해드릴 수도 있고요.”

“내 입맛은 상당히 까다롭네.”

“제가 제공해드리는 음식도 똑같습니다.”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마지막 무기를 꺼내 들었다.

수백 번의 개선을 거치고 완성된 장 박사의 궁극 라면을.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라면이라니.”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저 한입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까.

“소화도 잘 안될 것 같은데…. 쯧.”

“여기 김치도 있습니다.”

“…….”

주민성이 손수 나서서 완성한 상차림이었다.

신명철로선 거절한 명분조차도 없다.

그저 먹을 수밖에.

호록.

결과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가겠네.”

“인수인계 기간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일주일 정도면 되겠지.”

“좋습니다. 이용료 청구.”

“…….”

“능력 구매.”

“…….”

새로운 콤보까지 선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소소한 반전이 밝혀졌다.

[측정된 가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상 능력: 23조 원]

[구매하시겠습니까?]

등급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신명철에게서 범상치 않은 능력이 튀어나왔다는 반전이었다.

“…인벤토리도 쓸 줄 아셨습니까?”

“…….”

“무서운 분이셨네.”

신명철 또한 차원 경매장에 거의 도달했던 인물이었다.

“하…. 23억 당장 만들기는 좀 그렇고. 조만간 값 치러드리겠습니다.”

“그럴 것 없네. 자금도 일주일 안에 모아줄 테니.”

“…….”

라면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홀가분하게 은퇴할 수 있어서일까.

왜인지 23조라는 초거금을 직접 치러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세계의 구원자는 자네니까. 이게 맞겠지.”

“…….”

“앞으로도 신성을 잘 봐줬으면 좋겠군.”

일단은 로비라는 명목으로 건네주려는 모양이다.

“어…. 음…. 감사합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능력은 아니었다.

건물주 능력과 합쳐진다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리라.

“그, 그럼 가볼게요.”

무식하게 시작한 북아프리카행이었지만, 결과는 상당히 깔끔하고 스마트했다.

유혈사태가 없었던 것만으로도 그런 결과를 내릴 수 있었다.

“축하드림다. 새로운 신성 회장님.”

“…미친놈.”

신우빈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회장이 될 준비는 진작에 되어 있었다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전개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올 테니 공부 잘하고.”

“…가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가라고.”

“오냐.”

마지막에서야 고맙다는 말을 작게나마 듣긴 했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현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뇨. 아직 부족합니다. 여태껏 끼친 민폐들만 생각하면….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예. 오늘 푹 쉬시고요.”

주민성은 홀가분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사건은 노아를 통해 적당히 퍼뜨리기로 했다.

물론 과격하지 않고, 적당히 묵직하게.

북아프리카 연합이 한국 세력에 통합되었다는 정도로 전달되었다.

“대장님. 연락 왔습니다.”

“드디어….”

시간은 계속 흘러 고대하던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최선호 일행의 튜토리얼 탑 졸업 소식이었다.

당연히 주민성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튜토리얼 탑으로 이동했다.

최선호의 탑 등반은 대격변을 타파할 희망 그 자체였으니까.

‘제발 게이트와 관련된 능력이 나와야 할 텐데….’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지금 상황엔 광휘의 날개를 아낄 필요가 없었기에.

튜토리얼 탑 앞엔 시원스런 표정의 최선호가 주민성에게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형! 여기예요!”

주민성 역시 최선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고생 많았다. 진짜로.”

“저 혼자였으면 진짜 위험할 뻔했어요. 고층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이상해지더라고요.”

“어쩐지 살짝 늦은 감이 있긴 했지. 전에 말했던 그 능력은 나왔어?”

최선호는 살짝 심술궂은 표정으로 질문을 회피했다.

“저는 마지막에 알려드릴게요. 저 말고도 다들 엄청 좋은 능력만 골라서 얻었거든요.”

“그래?”

주민성은 근처의 김정남을 바라봤다.

“하하…. 정말 만족스러운 등반이었습니다. 저는 위기모면이라는 능력을 얻었어요. 죽기 일보 직전에 몸 상태가 완벽하게 회복되는 능력이고요.”

“헐….”

이름은 위기모면이었지만, 사람을 불사조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죽다 살아난다는 측면에선 적절한 네이밍이긴 했지만.

“저는 원소력 강화 능력이요. 출력이 한 30배정도 증가한 것 같아요. 쓸 수 없던 속성도 사용할 수 있게 됐고요.”

“대박….”

“조금 무리하면 날씨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더 대박….”

당장은 비밀이지만, 유호영은 이것으로 농림부장관 확정이었다.

원하는 시기에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수 씨는요?”

“저, 저는 조금 엉뚱한 능력이 나왔습니다. 소멸 능력이요.”

“…소멸이요?”

혹여나 게이트 소멸을 암시하는 걸까.

어쩌면 앞으로의 일정에 이경수가 활약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제 존재 자체를 잠시나마 없애는 능력입니다.”

“…….”

안타깝게도 주민성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셀프로 사라지는 능력이라니.

능력을 얻게 된 계기도 불 보듯 뻔했다.

김정남의 닦달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길 반복해 부여된 능력이리라.

“…축하드립니다.”

“크흠….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젠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선호의 차례.

주민성은 설레는 표정으로 최선호를 바라봤다.

“후후…. 저희 계획이 맞았어요. 재배치 능력을 얻었거든요.”

“재배치?”

뭔가 익숙한 이름이다.

주민성에겐 영혼 재배치라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네. 지정된 대상을 추방하고, 원하는 장소에 재배치하는 능력이에요.”

“…그럼 설마.”

최선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게이트도 대상에 포함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지금 있는 이 게이트. 추방해서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할 수도 있어요.”

“나이스….”

최선호의 능력은 대격변의 종식을 알리는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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