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2)
(246/250)
준비 (2)
(246/250)
준비 (2)
2022.08.04.
다른 길드의 참여는 주민성에게 익숙했다.
아린 길드와 서풍 길드와 이미 함께하기도 했고.
게다가 한때 하성이 이끌던 일살 역시도 반절 이상의 길드원들이 세력에 합류한 상태였다.
다만 다국적 길드인 서풍에 비해 부처 길드는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있었다.
“잠시만 고민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후원 금액과 비교해 상당히 약소한 조건이긴 했다.
볼모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납득가는 수준.
여기서 문제는 부처 길드가 이미 한 국가의 주도 세력에 속한다는 것.
단순히 주민성 세력의 노하우를 배워 간다기엔 지금도 부처는 잘 돌아가는 길드에 해당했다.
게다가 길드명도 괜히 찝찝해진다.
‘이를 통해 얻으려는 게 뭘까.’
Butcher.
명사로는 정육점 주인, 혹은 도살자의 의미다.
동사로는 잔인하게 살해하다, 학살하다 등의 뜻으로도 해석된다.
심지어 제대로 등록도 되지 않은 음지 속 길드였다.
비공식 길드 치곤 지나치게 강력했고.
또한, 이들이 본격적으로 양지에 올라온 시기는 대격변이었다.
타이밍이 너무나도 묘했다.
‘처음부터 준비되었던 길드였어. 그리고 신성과 은밀한 접점까지 있었고.’
게다가 신우빈이 주로 거래하는 상대는 서풍이었지, 신성은 회장인 아버지의 영향이 강력한 길드에 해당하기도 했다.
이러면 평행세계의 미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신성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장소는 북아프리카. 부처는 미국에 자리를 잡았지만, 핵심은 줄리아였다.’
결과적으로 평행세계의 부처는 상처뿐인 성공의 미래를 그렸다고 볼 수 있었다.
신성과는 모종의 이유로 갈라선다.
그리고 미국 역시 줄리아의 활약 덕분에 살아남았지, 부처의 활약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었다.
주민성은 결국 스미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스미스 씨. 줄리아라는 아이를 아십니까?”
“……줄리아요?”
“네.”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이었을까.
진심으로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글쎄요……. 제가 아는 줄리아는 아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인이죠. 모른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래요?”
정말로 모르는 듯한 표정.
그렇다면 스미스는 좀 더 나중에 줄리아라는 아이를 알게 되는 걸까.
아직까진 이것만으론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의 스미스는 줄리아라는 아이를 모른다는 것.
‘미국행은 역시 나쁘지 않겠어.’
만약 우연이라도 줄리아라는 아이를 알게 된다면, 혹은 그 부모를 알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선점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잘 놀아주는 삼촌 포지션만 챙겨도 안전할 테고.
“스미스 씨. 저희 세력에 참여할 길드원분들은 누구죠?”
“많지 않습니다. 저희도 여력이 여력인지라 한계는 있거든요. 여기 레나와 크리스를 합류시킬 계획이긴 합니다.”
스미스는 두 여성을 가리켰다.
여태 말이 없던 미녀들이었다.
“크리스예요. 잘 부탁드려요.”
“레나입니다.”
그리고 다시 스미스가 말을 이어갔다.
“레나와 크리스 둘 다 SS급으로 건물주에게 제법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은요?”
“아……. 하하……. 일단 놀라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노력하겠습니다.”
스미스는 잠시 뜸을 들이곤 말했다.
“레나는 영주. 그리고 크리스는 교주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주와 영주라니.
아무리 스미스가 물주였다지만, 다른 길드원들까지 주 돌림을 쓴다는건 주민성도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아니 무슨 주라는 주는 다 있네. 이러다가 공주까지 있는 건….”
“…….”
“…….”
스미스가 경악했다.
진짜로 공주는 존재하던 모양이다.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미국에 남아계신 분. 그분의 능력이 공주입니다. 부길드장이기도 하고요.”
“세상에나…….”
능력명은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건물주가 오히려 무난하게 보여 오히려 좋기도 했고.
당장의 문제는 합류하는 외국인들이 자신의 세력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였다.
‘영주에 교주. 건물주처럼 악용한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능력을 쓸 텐데.’
둘 다 건물주보다 더욱 사람을 상대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명이었다.
광신도를 만드는 사이비 교주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악덕 영주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결국, 주민성도 마찬가지로 조건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가장 깔끔한 건 계약 관계니까.
“제 세력에 합류하시려면, 건물 이용자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그게 아무리 임시더라도요.”
“…….”
이용료 청구는 일시적으로 파훼가 가능한 능력.
다만, 영주와 교주 둘 다 순간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용료 청구를 통해 건물 이용자로서 구속해 두면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조건은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레나와 크리스는 당신 능력에 매료된 사람들이니까!”
“…….”
둘 다 무뚝뚝한 줄 알았더니, 팬심을 밝히기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바였다.
주민성도 노아의 팬이었고, 생각해보면 이들과 같은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탁월한 선택.”
협상은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
긍정적인 얘기들이 오가는 덕분에 경직되었던 분위기도 거의 풀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레나와 크리스에겐 레지던스 96층을 양보했다.
당연히 이용료 청구도 끝마쳤고.
이젠 순수하게 고위 능력자로서의 대우를 해줄 뿐이다.
스미스를 비롯한 미국 능력자들에겐 생존자 인기 상품들을 두둑하게 챙겨줘서 돌려보냈다.
다음 접선은 게이트 소멸 능력을 제대로 확보한 이후가 되리라.
“형. 저 이제 가 볼게요.”
“그래.”
오늘은 최선호가 튜토리얼 탑을 등반하는 날이었다.
김정남과 유호영도 당연히 함께였지만, 여기에 파격적인 멤버 한명이 추가됐다.
바로 넥스트 길드 출신의 이경수였다.
“제, 제, 제, 제가 정말 같이 가도 되는 겁니까? 뭔가! 뭔가 이상해요!”
이경수는 진심으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되묻고 있었다.
주민성으로선 시큰둥할 수밖에.
이경수의 참여는 김정남의 적극적인 요청 덕분이었다.
실제로 이경수의 근육 파열 능력과 김정남의 신체 강화 능력, 그리고 김정남의 지독한 운동 중독은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에이. 제 은인이신데 당연히 함께하셔야죠! 경수씨는 제 목숨을 걸고 책임지겠습니다!”
“으아아! 그러지 마세요! 제발!”
나중에 가선 이경수도 전력으로 김정남의 근육을 파열시켰다는데 김정남은 그것마저도 이겨내고 적응해서 몇단계는 훌쩍 성장해버린 에피소드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대장님. 반드시 좋은 능력을 챙겨서 돌아오겠습니다.”
“예.”
능력 심사 자체가 사라진 대격변이었지만, 주민성도 확실히 알아차렸다.
지금의 김정남은 SSS급 그 이상.
천마와도 비슷한 경지로 올라서 있었다는 걸.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대, 대장님! 안 됩니다! 무서워요!”
“에이. 이 정도면 경수 씨도 SSS급 버퍼죠. 두 분의 동행. 허락하겠습니다.”
“크윽!”
좋은 소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카르파크를 필두로 한 튜토리얼 탑 최초의 오크 졸업생이 탄생했다.
강해진 건 기본이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한층 더 두드러지었지만,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세력원들과 생존자들에겐 환영받았다.
주민성 세력 내에서의 오크와 고블린은 호감 그 자체였으니까.
아기 고블린들의 외모도 한몫했고.
하지만 제르취는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더 강한 녀석들을 상대하겠다며 중국에서 죽고 죽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르취와 차크취도 마찬가지.
이 녀석들은 너무 게을러져서 어지간하면 움직이지도 않는데, 지금도 졸업생들만큼 강해서 예외였다.
“아무튼 잘될 겁니다. 파이팅.”
“으아아…….”
물리 내성이 강력한 몬스터는 유호영이.
속성 내성이 강력한 몬스터는 김정남이.
거기에 양쪽 모두 커버 가능한 최선호가 있으니 탑 공략은 아주 수월할 터였다.
최선호 일행이 떠나고도 바쁜 일정은 계속됐다.
물론 여의도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이현의 활약에 세계 능력자들과의 연결고리가 쉴새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장님. 인도 마우리아 길드에서 현금을 보내왔습니다.”
“오. 그래?”
돈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이젠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오는 수준이다.
공기값을 치러주는 건 당연했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식의 로비 금액은 수십배에 달했다.
게다가 세력 내 게이트에서 이뤄지는 경제활동 또한 전부 수익이었다.
“현금 수송 차량은 어디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냥 관리자 있는 가까운 게이트로 보내줘.”
“알겠습니다.”
게다가 게이트 거래소 덕분에 편의성까지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
건물주는 거래소 인벤토리에 수납된 금액을 얼마든지 꺼낼 수 있었으니까.
“이제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군.”
다른 차원에 경매로 등록한 텐트, 그리고 다른 나라에 팔아치운 공기값에 온갖 부가 수익이 쏟아졌다.
이쯤이면 주민성도 선언할 수 있었다.
자신이 떼부자가 되었음을.
“춘향아.”
“네.”
“우리 딱히 부족한 거 없지?”
“……저로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대격변 이전에 비해선 형편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도, 대상도 잘못됐다.
판자촌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봉춘향은 아직 도시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으니까.
“아아. 그렇지…….”
인터넷 회선도 강화됐다.
국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전력 생산 시설들을 이현의 도움을 받아 전부 챙겨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선호의 용도 변경을 통해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되어 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마석을 전력으로 치환하는 시설마저도 관리자를 따로 파견해둔 상태였고.
“이제 원래 세상으로만 돌아가면 되긴 하는데…….”
여전히 황폐한 세상이지만, 정작 주민성만 부족함을 못 느낀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아이러니했다.
“대격변이 종식된다고 해도 많은 것들이 바뀔 것입니다.”
“그렇긴 해…….”
이제 능력자 협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생존자만 있을 뿐.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주민성이 없는 또 다른 미래에선 봉춘향이 정부를 자처해 국가를 이끌었지만, 여기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렵네.”
지금은 심지어 그렇다 할 위기도 없었다.
한 달 뒤 발생하기로 했던,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혼돈의 존재 이벤트도 허무하게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혼돈의 존재를 쭉 재워두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아버렸다.
“……너무 건물에만 틀어박혀서 그런가.”
무언가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할 요소가 없었다.
설령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세상이 망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차원으로의 도피도 가능하다.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차원도 존재한다.
어디서든 적응할 수는 있으리라.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심각하게 느끼는 위기도 주민성에겐 나름의 해결법이 존재했다.
그 순간, 봉춘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님. 아무래도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뭔데?”
“이번에 합류한 미국 측 능력자들이 특이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호.”
레나와 크리스.
영주와 교주라는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당연히 이용료 청구도 해뒀다.
그럼에도 페널티가 부여된다는 등의 별다른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어쩐지 레지던스보단 인천이 좋다더니만. 뭘 하고 있대?”
“그, 그게…….”
“뭔데. 말해 봐.”
무려 SS급의 능력자들이었다.
인벤토리까지 가진 특별한.
“돈이 없다며 능력을 사용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
봉춘향의 분신이 직접 보고받아서 하는 말이니 사실일 터였다.
여기서 더욱 믿기 힘든 건, 이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300만 원씩 지급해줬다는 사실.
하루 만에 300만 원을 탕진하기엔 인천 게이트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굉장히 저렴한 편이었기에 더 어이없었다.
“……덕분에 돈 쓸 일이 생겼군.”
“설마 추가로 활동비를 지급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전혀. 더 좋은 생각이 났거든.”
의도가 어찌 되었건 이들의 행동은 명백한 트롤링이나 마찬가지.
심지어 몬스터도 깨트리지 못하는 평화를 능력자가 깨트리고 있는, 능력자가 몬스터만도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사야겠어.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
주민성은 차원 경매장 능력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