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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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1)
2022.08.03.
게이트 소멸.
굳이 악마에게만 허용된 능력은 아닐 터였다.
애초에 악마 역시 똑같은 혼돈 건물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
강함만 다를 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주민성은 생각했다.
“……악마 없이도 해결 가능한 문제였습니까?”
스미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미치겠군……. 우리 길드는 게이트 소멸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요?”
“쉽진 않았는데요…….”
심리는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
인벤토리 능력을 각성해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며 설레던 적도 있었을 테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다른 차원의 이현도, 봉춘향도 나중에 가선 인벤토리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리고 차원 경매장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아마도 지금의 부처 길드는 아직 인벤토리에 대해서만 알고 있으리라.
“언젠간 알게 될 겁니다. 인벤토리가 끝이 아니라는 걸. 아마도 저와는 다른 확실한 성과를 거두리란 것도요.”
주민성은 전부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애초에 게이트 소멸은 건물주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게이트 소멸이 아닌 지배력을 얻었어.’
게이트의 완전한 소멸은 손해였다.
오히려 적당한 수의 게이트를 유지하는 쪽이 인류를 위해서도 도움 되는 방향이기도 했고.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마석은 이미 인류와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성은 마석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또한, 다른 차원에서 게이트를 통해 이동하면, 심장에 마석이 생성되지.’
마석은 몬스터들에게 있어 참가비 같은 개념이었다.
반대로 인간은 위협을 물리쳐낸 대가를 얻는 방식이다.
안전한 토벌이라면, 주민성도 굳이 반대하진 않았다.
몬스터의 증식량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저 약육강식의 논리였다.
“인벤토리가 끝이 아니란 건…….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그 증거겠죠. 다른 사람의 말도 아니고 대격변 구원자의 말이니까요…….”
이들이 나름의 각오를 다진 것도 전부 의미 없었다.
이럴 시간에 인벤토리 활용법이나 연구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지금도 악마를 살려야겠습니까?”
“……아닙니다.”
“미국에도 순혈 악마는 조금이나마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빙의한 녀석들이에요. 몸을 빼앗긴 사람을 구하는 방법은 그뿐입니다.”
“…….”
굳이 거창한 사과는 받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언제나 그렇듯, 물주에겐 물질적인 지원을 받는 게 최선이었다.
“오신 김에 얘기해 봅시다. 어떤 후원이 가능하십니까.”
“흐음…….”
“하루라도 빨리 게이트 소멸 능력을 배워야 합니다. 제 능력 활용엔 자금이 들어가고요. 아시죠?”
“계산할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괜찮습니까?”
“네.”
“아, 그리고 오신 김에 제대로 된 식사도 해보시죠.”
이번 일정엔 주민성도 진심이었다.
텐트와 컨테이너를 팔아 어마어마한 세력 기반을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이쪽입니다.”
“와우…….”
주민성은 부처 길드원을 빌딩 식당으로 안내했다.
세팅은 이미 끝마쳐진 상태.
주민성은 인천의 생존자들 중 호텔에서 일했었던 사람들을 섭외해뒀다.
당연히 외국어도 능통하다.
“이, 이게 바로 팔크라스……!”
당연히 팔크라스 고기는 전 세계의 생존자들 대부분 아는 환상의 고기였다.
노아 덕분에 홍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됐다.
이는 나름 미끼이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차원 경매장에서 구했음을 알아차리고 접근해온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팔크라스 스테이크입니다. 그리고 느끼함을 잡아줄 특제 라면도 있죠. 다른 채소는 입맛대로 곁들이면 되겠습니다.”
“한국의 라면……!”
K-공기처럼 터무니없는 카드가 아니었다.
둘 다 검증된 히트상품이었다.
물론 라면엔 외국인인 걸 고려해 얼큰한 맛을 살짝 줄이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 달라고 장 박사에게 요청해둔 상황이다.
농사도 제대로 활성화되면 팔크라스 버거도 자급자족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후원 건은 식사 이후에 편안히 얘기해보도록 하죠. 점심시간은 두 시간 정도 드리면 될까요?”
“예. 충분합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기타 서비스는 직원들이 알아서 할 예정이었기에 빠져주는 게 정답이었다.
주민성은 그대로 레지던스로 올라가지 않고 빌딩 바깥으로 향했다.
아기 고블린들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응애.”
아기 고블린은 건물 입구 근처의 나무 뒤에서 숨어있었다.
머리를 빼꼼 내미는 모습이 여간 귀엽다.
“그래. 덕분에 편하게 갔다.”
주민성은 아기 고블린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줬다.
“응애!”
굳이 만물 소통이 적용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과정을 전부 지켜봤으니까.
아기 고블린은 마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쳐 자동 강화가 가능했다.
“미안. 마석으론 못 두드려 줘.”
“응애…….”
“나중에 괜찮은 게이트에 배속시켜 줄 테니까 너무 시무룩하진 말고.”
“응애!”
미래를 위한 게이트 관리 준비는 끝마쳐졌다.
게이트마다 튜토리얼 탑 졸업생 아기 고블린을 배치해 보스급으로 배치해 둘 심산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위협적인 보스 몬스터는 전부 아기 고블린의 소중한 강화 재료가 되리라.
“대장님.”
“응?”
말없이 주민성을 따라다니던 봉춘향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일단 죄송합니다. 부처 길드라면 여러모로 호의적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에이. 괜찮아. 애초에 사람 잘 믿는 건 나도 똑같았는데.”
둘 다 많은 나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아직 어린 10대와 20대였다.
평범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 상대는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야. 죽지만 않으면, 뭐든 만회할 수 있어.”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었다.
이젠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능력까지 있었으니까.
물론 죽어도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가정하는 것 자체부터가 끔찍했다.
“분신 조정 때문에 힘들잖아. 일단 쉬고 있어. 점심 시간 끝나면 부를게.”
“알겠습니다…….”
봉춘향이 물러나고, 주민성은 아기 고블린들과 놀면서 튜토리얼 탑을 바라봤다.
현 시점에선 능력자들이 저마다 바쁘게 움직여 당분간은 고블린이나 오크 위주의 졸업생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점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게이트 소멸이라는 단서를 얻은 이상, 누구에게 게이트 소멸 능력을 유도할지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임자는 역시 선호인가.”
주민성은 건물주로서 게이트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탑 졸업까지 이미 끝마친 상황.
반면 최선호는 주민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기존의 건물을 유의미하게 리폼하는 방향으로 성장했기에 게이트의 재활용이라는 측면과도 잘 어울렸다.
“아니면 춘향이일 테고.”
봉춘향 역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도 SSS급으로 각성한 데다 다른 미래의 차원에선 국가를 이끌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방법이군. 공략 과정에서 게이트 소멸과 관련된 업적을 쌓아야 하는데.”
일단 1층부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편법은 지양해야 했다.
게이트 소멸과는 관련된 행동이 아니니까.
크룩스를 이용한 졸업은 단순히 말도 안 되게 강해지는 능력을 선사할 뿐이었다.
“추방자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라고 조언하는 게 최선이겠군.”
주민성은 그대로 최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
“지금 바빠?”
-괜찮아요. 지역만 달라졌지, 재료 수집하면서 건물 파밍하는 건 똑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튜토리얼 탑 공략 일정 때문에 연락했거든.”
-아아! 정해진 건가요?
“대충은. 지금 부처 길드에서 온 건 알지?”
-네네.
주민성은 부처 길드에게 들었던 제안들을 공유했다.
-헐? 게이트 소멸이요? 그게 가능해요?
“응. 그렇다더라.”
-어어……. 이거 대박이라고 하기엔 조금 씁쓸하기도 하네요. 게이트 없으면 얻을 수 있는 재료도 한정되고.
최선호 역시 주민성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손해임을 인지했다.
그 대상이 인류이건, 개인이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다행이네요. 그래도 형 쪽에서 먼저 제안한 건 진짜 좋은 선택 같아요.
“그래?”
-네. 추방자 능력 중에 비슷한 게 있거든요.
“……어어?”
놀랍게도 최선호에겐 확신이 있었다.
-하급 추방이라고 몬스터들 쫓아내는 능력이거든요? 혹시 몰라서 데리고 건물에 들어와 봤더니 그대로 사라지더라고요.
“대박.”
안 본 사이 최선호는 어마어마하게 성장된 상태였다.
일단은 건물주 능력과 결합되어 방어로 활용하기 좋은 능력이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보스 몬스터를 소멸시키며 차근차근 등반하면 될 테니까.
특히, 히드라를 상대할 때 매우 유용해 보이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걸로 하자. 될 수 있으면 하급 추방만 사용해서 몬스터를 잡으면 돼.”
처음부터 불특정 다수를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대상만 지정할 수 있다면, 언젠간 게이트도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있으리라.
-그거 말고도 자랑하고 싶은 능력은 많은데……. 다음에 꼭 보여드릴게요.
“오케이. 그럼 오늘은 거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합류해줘.”
-넵!
이것으로 게이트 소멸을 위한 핵심 카드도 확보했다.
생각도 주민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주민성이 마석의 편의성을 염려하든, 최선호의 물욕이든 전부 긍정적인 방향이었으니까.
“후우.”
통화를 마친 주민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는 일마다 전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건물주가 대단하긴 하구나.”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왜 이런 좋은 능력을 지금 독점하고 있는지도.
능력이 유전의 영향이었다면, 더더욱 그랬다.
부모님이 건물주였던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이상하게 주민성에게만, 그리고 어딘가에 있다고 추정되는 줄리아라는 아기에게만 건물주 능력이 계승됐다.
“그렇지. 줄리아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지.”
확실한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스미스의 표정 변화,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의 반응을 주목하기로 계획했다.
지금의 발달한 감각은 사소한 변화도 잡아낼 수 있으니까.
남는 시간은 아기 고블린들과 보냈다.
응애거리면서 운 좋게 빌딩 근처까지 진입한 몬스터의 뚝배기를 깨버리는 모습이 볼만했기 때문이다.
근육이 별달리 발달하지도 않았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났다.
이쪽의 구경도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음식 맛에 감동해 황홀한 표정과 협상안을 나름대로 잘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점심은 괜찮았나요?”
“……대격변 동안 먹어본 것 중 최고였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형편이 좋았을 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쯤 컨테이너엔 사람 한 명 들어갈 공간을 제외하곤 배급을 위한 식품들이 잔뜩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대화하기 좀 더 편한 곳으로 가시죠.”
“예.”
주민성은 부처 길드 일행을 20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은 미국 측 제안이었다.
“건물주에게 가장 필요하신 건 현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맞춰 드릴 수 있는 액수는 2000만 달러고요.”
2000만 달러.
대격변만 아니었어도 230억 정도의 초 거금이었다.
과연 물주다운 씀씀이였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신우빈이라는 사기급 재벌도 존재한다.
주민성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지자 스미스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이트 소멸 이후엔 10억 달러 이상으로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
갑작스레 국가 자산급의 규모가 언급됐다.
이것이 아마도 부처 길드에서 내세울 수 있는 저력이리라.
“돈은 그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겠군요.”
심지어 주민성에겐 장사 수단도 차고 넘쳤다.
당장 팔크라스 고기만 해도 한국에서도 오직 주민성 세력 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으니까.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희 측 요구사항입니다. 저희는 미국의 게이트를 우선적으로 소멸시켜 줄 것을 요청합니다.”
“흐음…….”
의외의 제안이다.
이 또한 주민성이 바라던 바였다.
다소 귀찮음은 있겠지만, 드넓은 땅덩이는 이용 가치가 상당히 컸다.
당장 한국은 최철진이 죽기만 해도 국토 전역이 어둠에 뒤덮일 정도였으니까.
때문에 미국 우선권은 혹시 모를 변수를 방지하기에 최고였다.
“또한, 게이트 소멸 연구에 있어 저희 측 길드원 일부를 당신의 세력에 참여시켜 줬으면 합니다.”
“……,”
어쩐지 너무 좋은 제안뿐이었다.
부처 길드도 분명 이득을 추구하고 있었다.
방금이 핵심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