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변화 (3) (244/250)


변화 (3)
2022.08.02.


어느덧 오후 1시.

주민성은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백삼빌딩 1층 로비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스미스 일행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곧 도착한다는 소식입니다.”

“응.”

이번에 오는 사람은 스미스뿐만이 아니었다.

부처 길드 멤버 대부분이 온다고 한다.

극소수의 멤버만을 남겨두고 한국까지 찾아온다는 건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자신감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춘향아. 혹시 스미스 일행 중에 아기는 없어?”

“……아기 말씀이십니까? 일단은 없습니다.”

“응.”

“혹시 아기가 가지고 싶으십니까? 당장은 곤란합니다. 최소한 4년은 더 지나야…….”

“……어? 잠깐만.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지?”

단순히 주민성이 궁금했던 건, 다른 차원의 이현이 말했던 줄리아라는 아이의 존재였다.

그 아이 또한 주민성과 마찬가지로 건물주 능력자가 될 예정이었으니까.

심지어 시작부터 SSS급이다.

“아기를 갖고 싶은 건 아니고…….”

“……갖기 싫으십니까?”

“따로 알아본 정보 중에 미국 측에도 건물주 능력자가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렇습니까.”

굳이 다른 차원의 이현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얻어낸 정보만 공유했다.

또 다른 건물주에 대한 봉춘향의 견해는 꽤 도움이 될 테니까.

“정통 건물주입니까? 임시가 아닌…….”

“맞아.”

봉춘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장님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건물주라면 확실히 경계 대상입니다. 그 건물주. 아기가 맞습니까?”

“응.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긴 해.”

“최선책은 입양입니다. 어떻게 성장하냐에 따라 치명적인 상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입양이라.”

“만약 입양하시겠다면, 저도 육아를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봉춘향이라면 육아도 잘 해낼 터였다.

자리를 비운다 하더라도 분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지금도 봉춘향의 업무량은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굳이 책임을 지겠다면, 주민성 자신이 책임지고 아이를 기르는 게 옳았다.

물론 아이 입양에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아직 김칫국 마실 필요 없어. 상대 쪽에서 내어주겠다고 한 적도 없고, 그 아이에게도 부모는 있을 테니까. 상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결정해 보자.”

“알겠습니다. 여차하면 아이의 부모를 암살하는 선택지도…….”

“그건 안 된다. 알지?”

“……죄송합니다. 너무 나섰습니다.”

대격변은 지금도 사람들의 상식을 바꿔 놓고 있었다.

봉춘향 역시 능력을 각성한 이후론 수많은 몬스터를 사살하고 있었고, 죽임에 익숙해졌다.

때문에 대격변은 빨리 끝나야 했다.

그것만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10분 후 도착한답니다.”

“오케이.”

곧이어 리무진 두 대가 연달아 도착했다.

요즘 엄청 바빠진 신우빈이 챙겨준 차량이었다.

“꽤 많이 왔나 보네?”

“총 일곱 명입니다.”

“흐음. 이 부분을 따로 알아봐야 한다는 거군.”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이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험악한 용병 인상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말끔한 차림이었다.

‘아마도 진짜 부처 길드의 핵심들이겠지.’

일행 중엔 스미스도 보였다.

주민성은 로비에서 이동해 건물 입구 방향으로 이동했다.

물론 맞이는 건물 내부에서 할 예정이었다.

만물 소통의 발동 조건도 있었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스르릉.

문이 열리고, 부처 길드원들이 입장했다.

“오오! 반갑습니다! 건물주!”

“오랜만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오기까지 상당히 고생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들에게선 조금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건물 부가효과는 지금도 잘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이제 악마들을 보기 힘들다는 정도의 차이?”

“그쪽에서도 악마가 활개 치던 모양이네요?”

“아아. 물론이죠. 대도시 녀석들은 나름대로 제압했지만, 땅덩이가 워낙 커서 전부 감당하긴 힘들었거든요.”

스미스의 눈빛에선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다.

“전부 당신 덕분입니다. 건물주.”

“이현 씨가 활약해준 덕분이죠.”

“아아. 그렇죠. 그에게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필요한 장소마다 나타나시더군요. 그 역시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스미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줬다.

“저희 길드의 핵심 간부들입니다. 모두 자기만의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죠.”

스미스가 신호를 보내자 부처 길드원들은 제각각 자신의 인벤토리를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저격수들을 배치해 뒀으니 주민성은 마음 편히 이들의 인벤토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다른 색깔이군요,”

“그렇습니다. 주황과 녹색이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요.”

“아, 그분들은 미국에 남아 있나 보군요.”

“정확히는 녹색만이 남았지요. 주황의 엘레나는 안타깝게도 악마들에게 당했습니다.”

“이런…….”

미국 역시 마냥 승승장구하던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컨테이너는 한정되어 있으니 누군가는 멀리서 지역을 관리해야 했을 테고.

“그녀의 희생 덕분에 큰 위기는 모면했습니다만……. 안타까운 일이죠.”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전염병을 개발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주민성에 대한 소문이 너무나도 부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런 멤버로 찾아온 걸까.’

일단 방문단 스펙부터가 지나치게 화려하다.

당장 주민성 세력의 핵심 능력자들도 이렇게까지 모이기엔 쉽지 않은 상황.

스미스 역시 상당히 무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 개발이라. 정확하지도, 틀리지도 않은 이야기네요.”

전염병은 정확히 말해 개발한 것이 아닌, 혼돈에 소원을 빌어 만들어진 무언가였다.

이는 어떻게 정의할 수도 없는 부분.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핵심으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말씀하세요.”

스미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무한한 신뢰에서, 이젠 작은 곤란함이 섞여있었다.

“혹시 전염병 백신은 없습니까?”

“……백신이요?”

“예.”

전염병은 철저히 악마들만을 공략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악마들은 인류에게 해악 그 자체.

여기서 백신을 물어본다는 건, 백신 보유 여부를 떠나 상대의 의중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백신을 찾으시는지요.”

주민성은 냉랭하게 답했다.

이런 식의 요구라면, 부처 길드와는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테니까.

“……송구합니다만, 살려야 하는 악마가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아마 3일도 버티지 못하겠지요.”

“…….”

“물론 설명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들어보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황당하긴 했지만, 상대는 최악의 상황마저도 각오하고 찾아온 느낌이었기에.

당연히 주민성으로선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나름 손님으로 모셨는데, 특이한 제안을 들고 오셨군요.”

“저도 난처할 따름입니다. 물론 억지스러운 제안을 들고 온 대가는 확실히 치를 생각입니다. 부처 길드는 앞으로도 건물주에게 무한한 이득을 안겨드릴 수 있습니다. 약속하지요.”

“……그렇습니까?”

“예.”

여기선 신중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놓는 게 옳다.

여차하면 바로 전쟁이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하다.

봉춘향의 초점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분명 분신들을 집중해서 다룰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시간 조금 괜찮겠습니까? 커피 한잔할 시간은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주민성은 침착하게 인벤토리에서 보온병과 머그잔을 꺼내 부처 길드원들에게 건넸다.

“믹스 커피는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한국의 믹스 커피는 참을 수 없지요. 감사합니다.”

부처 길드의 한 능력자가 나서서 커피를 조사했다.

독이라도 탔을까 걱정하는 듯하다.

당연히 독은 없었기에 부처 길드 입장에선 주민성의 평가가 추가로 상승하는 계기가 됐지만.

“……잘 마시겠습니다.”

“네.”

주민성은 커피를 홀짝이며 스미스에게 말했다.

“악마를 굳이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까 동료분도 악마에게 당하셨다고 하셨는데.”

“물론 저 역시 악마를 증오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확보한 악마 중에선 인류에게 도움 되는 악마.”

‘도착했군.’

부처 길드도 눈치챈 모양이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지닌 몬스터의 접근을.

“과연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세력답군요. 이 정도로 빠른 대처라니…….”

“대격변이지 않습니까. 일단 살아야지요.”

팽팽한 긴장감이 생길만도 하지만 양 측 모두 건물 부가효과엔 익숙하다.

이성적인 판단력은 흐려지지 않으리라.

‘이 정도면 부처 길드도 살아서 도망갈 수 없다. 물리적인 충돌은 억제할 수 있겠어.’

직접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근처에 당도한 몬스터들의 정체가 아기 고블린 부대라는 것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익숙해진 기운들이었다.

물론 수석 졸업생인 불룽이는 없을 터였다.

녀석은 지역 정벌에 한창이니까.

이 정도 물량이면 아무리 인벤토리 능력자의 모임인 부처 길드도 곱게는 돌아가지 못한다.

“자. 보상은 둘째치고. 얘기해 봅시다. 살려야 하는 악마는 누구인지. 그 악마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혹시, 협상을 제안해 온 악마인지.”

우선은 자신이 얼마나 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를 어필했다.

악마라면 이제 지긋지긋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버린 주민성이었다.

“……얘기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좋네요.”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은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중입니다. 저희 부처 길드는 동부를 장악중이고, 상대 측은 서부를 장악했죠. 그쪽 대표가 악마입니다.”

“……음.”

여기서 주민성이 알고 있는 정보라면 미국 서부를 장악한 세력이 부처 길드에게 밀리고 있다는 정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저 상황에서 부처 길드에게 이득 되는 방향은 악마가 죽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 악마는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예? 그게 가능합니까?”

“저 역시도 믿고 싶진 않지만……. 사실입니다. 직접 겪어봤거든요. 그 점 때문에 저희도 서부 세력을 쉽사리 장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서부는……. 생존자들이 악마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주민성이어도 악마를 살리는 쪽을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게이트의 소멸은 대격변의 종식을 의미하니까.

문제는 그 능력을 가진 녀석이 악마라는 것.

“게이트 소멸이 환각계 능력일 가능성은 있습니까?”

“어지간한 환각 능력은 저희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길드는 비공식이지만 가장 많은 SSS급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허……. 자유롭게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으면……. 그 악마가 얻는 이득이 뭡니까?”

악마에게 대격변은 유희 그 자체였다.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 지분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현신했는데 기껏 한다는 행동이 게이트의 소멸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녀석은 게이트 소멸을 앞세워 사람들을 부리고 있습니다. 괴상한 행사까지도 준비했었죠. 생존자들끼리 서로 죽이는 잔혹한 게임을.”

“아아. 그러면 일단 정상 악마는 맞는 거네요.”

“예. 그렇습니다. 놈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능력입니다만…. 인류에겐 게이트 소멸 능력이 필요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가진 악마가 있었다.

원래라면 부처 길드에서 악마의 컨트롤을 위해 주민성을 초청할 예정이었겠지만, 지금은 일단 살리고 보자는 느낌이랄까.
여러모로 급한 상황임에는 맞았다.

“건물주는 돈이 가장 필요하신 걸로 압니다. 저 역시 물주라서 잘 알고 있지요. 백신만 내어주신다면 원하는 만큼 후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흐음…. 잠시만요. 고민 좀 해봅시다.”

“예.”

주민성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 악마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는지, 아니면 튜토리얼 탑에서 게이트를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수 있는지.

“……게이트 소멸이라. 좋은 능력을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스미스 씨.”

“……예?”

고민이 끝났다.

당연히 타개책도 존재한다.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으리라.

주민성은 자신 있게 말했다.

“백신. 필요 없습니다. 악마한테 매달리지 않아도 게이트 소멸은 가능할 거고요.”

1659447280810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