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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2) (243/250)


변화 (2)
2022.08.01.


일주일이 흘렀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다만, 주민성에겐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일단 튜토리얼 탑 몬스터 졸업생이 생겼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전부 S급 이상의 보스 몬스터급이었다.

그리고 다음 졸업생은 최선호와 유호영, 그리고 강화 오크들로 정해졌다.

물론 정신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인력이 부족하다.

아직까지 등반은 보류된 상황이었다.

이현도 복귀했다.

하성을 잠식하던 악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카오스 게이트에서 얻은 악연이 최종적으론 기연이 된 케이스였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따로 있었다.

국내의 악마들이 모조리 소멸했다는 사건이었다.

뜬금없게도 마지막 악마의 소멸 소식은 가르취와 차크치가 지배 중인 게이트에서 들려왔다.

나름대로 철저하게 악마들을 사육해 오다가 중국에서 침입해온 악마들에게 감염됐단다.

아무튼, 이제 국내에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여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터였다.

혼돈을 통해 만들어진 전염병은 공기 중으로도 전염되니까.

대충 한국에 방문해 숨만 쉬어도 감염되는 원리였다.

그리고 이현이 제공한 정보로 보아 머지않아 중국과 일본 전역에도 전염병이 퍼질 예정이었다.

“후우……. 좋구만.”

“응? 불렀어?”

“아냐. 아무것도.”

주민성은 굳이 아침밥을 차려 주겠다는 성아영의 레지던스에 머물고 있었다.

왜인지 봉춘향도 내려와 돕고 있었고.

지금은 영향력이 워낙 커진 탓에 사냥보단 해외 유명 인사들과의 만남 일정이 가득하다.

당분간은 계속 레지던스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점심까지 최대한 누워 있어야지.”

처음엔 인천에 있는 부모님에게 찾아가 머물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모님들은 주민성만 보면 감정이 심각하리만큼 격해져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지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전문의의 처방이었다.

아무튼 모처럼의 휴식이었기에 주민성은 이를 열심히 누리고 있었다.

“……팝콘이나 꺼내 먹을까.”

“밥 거의 다 됐으니까 기다려!”

“……응.”

악마 없는 대격변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몬스터는 능력자들 선에서 제압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유물의 힘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시대였다.

설령 악마가 당첨되었다 한들, 일주일 안에 죽는다.

“대장님. 방금 또 입국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엔 모로코입니다.”

“그래? 모로코면 북아프리카 맞지?”

“그렇습니다.”

“북아프리카면 프리패스지. 허가해줘.”

“알겠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해외 세력들이 극성이었다.

대격변 속에서도 터무니없이 평화로워진 대한민국의 소식이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부풀려지고 있다.

“……그냥 봉투만 잔뜩 챙겨 와서 공기만 담아가도 될 텐데 뭐 이리 극성인지.”

K-공기.

황당하게도 대한민국의 공기는 국위선양의 대표 주자였다.

유사품으로 J-공기와 C-공기도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효과를 자랑하는 게 바로 K-공기였다.

물론 악마들도 이에 대항해 열심히 혼돈을 만들고 있었다.

이 부분마저도 주민성이 확실히 대응해뒀다는 게 문제일 뿐.

-집에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누가 찾아오면 공격하시고요. 쫓아내세요.

-그런데도 집착하면 그놈은 악마입니다. 그냥 집 밖에 나오는 사람은 다 악마니까 지역 커뮤니티에 위치 공유하시고요.

-자가 격리가 최곱니다.

단순한 몇 마디였지만,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주민성이 방송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젠 서울의 왕이라고 불러 주지도 않았다.

대격변의 구원자라는 거창한 칭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 결과, 세계에선 별의별 사건이 다 벌어졌다.

생존자 사냥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악마부터, 한국에 다녀왔다는 허세를 부리며 악마를 협박하는 생존자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마냥 허세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구원자는 이현 씨일 텐데.”

실제로 주민성은 이현에게 세계 순회를 부탁해 전염병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방문한 적 없는 국가의 경우는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빠르게 공기를 담아가고 있었고.

덕분에 전염병 한번 걸리면 영원히 죽어버리는 악마들은 진정한 지옥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대안이라면 혼돈을 완성해 전염병을 물리치는 것인데, 그조차도 악마들 입장에선 목숨을 걸어야 했다.

혼돈을 완성하려면 어떻게든 인간을 희생시켜야 하는데, 자칫하다 전염병이 붙어있는 인간이라도 데려오면 그대로 전멸이니까.

“춘향아. 오늘은 누가 온대?”

“미국의 부처 길드, 그리고 호주의 국방부 장관, 영국 근위대 단장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화려하구만.”

하나같이 SSS급 능력자들이었다.

애초에 그 정도가 아니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조차도 버겁기 때문이다.

“부처 길드에선 따로 여의도까지 방문하고 싶다고 요청해 왔습니다. 일단은 점심시간으로 예정되어 있기에 보류해 둔 상태입니다.”

“찾아오는 거라면……. 오케이. 오라고 해. 부처 길드라면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미국만큼은 주민성에게도 특별했다.

극복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주민성이 없는 세상에서도 자력으로 마지막까지 버텨냈던 나라 중 하나였기에.

게다가 미국은 둘째치고 부처 길드만큼은 유일한 해외 동맹 세력에도 해당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벤토리 사용자의 집단.

주민성은 이 기회를 토대로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밥 먹자!”

어느덧 성아영의 요리도 완성되어 있었다.

주민성은 느릿하게 식탁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어……?”

놀랍게도 아침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팔크라스 특유의 은은하고 고소한 냄새가 도는 걸로 보아 상당한 양의 고기가 들어간 모양이다.

“김치찌개도 할 줄 알았어?”

“대충 영상 보고 배웠지! 진심으로 공부하면 이 정도는 한다 이 말이야!”

“김치는 어디서 구했고?”

“거래소에 김장김치 있던데?”

“어라? 어떻게 구했지? 분명 편의점 김치뿐일 텐데…….”

의문은 봉춘향이 대신 해결해줬다.

“해남에서 배추 농사짓는 분들이 합류했거든요. 배추만 열 트럭 넘게 들어와서 전부 사들였어요.”

“대박……. 잘됐다 진짜. 해남 배추 엄청 유명한데.”

“그래요? 거기까진 몰랐는데 배추 상태는 엄청 좋더라고요. 솔직히 먹어본 김치 중에 가장 맛있었어요.”

“당연하지. 배추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잖아. 황토에서 해풍 받으며 크는 애들이라 걔들 상대하려면 강원도 고랭지에서 S급 관리는 받아줘야 할걸?”

“오빠는 아는 것도 많네요?”

“최고의 김치도 내 미래 계획에 있으니까.”

주민성에겐 꿈이 있었다.

안락한 지하 벙커에서 최고의 라면과 최고의 김치를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겠다는 꿈이.

방금의 지식은 언젠가 이뤄낼 꿈을 위해서 배워둔 내용이었다.

“…이름 부르기 전에 밥 먹어라.”

“앗…. 넵….”

김치 수다는 성아영의 제지로 빠르게 종결됐다.

왜인지 봉춘향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걸로 했다.

“잘 먹을게.”

“응!”

주민성은 김치찌개를 덜어 조심스레 한 입 떠먹었다.

맛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감동 그 자체였으니까.

“아아…. 이거지….”

최고의 김치를 사용해서 끓인 김치찌개였다.

숙련도는 둘째 치더라도, 원재료가 워낙 좋아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끓였기에 더욱 자극적이었고.

한때 목표로 하던 그 맛이 맞았다.

“맛있지?”

“응…. 최고다….”

공정을 거쳐 양산되는 편의점 김치와는 다르다.

봉춘향도 김치찌개 맛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정통파 배추 농사꾼들이 재배하고 김장해낸 김치는 대격변 시국만 아니었어도 포기당 수십만 원 대의 가격에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리라.

“이것도 드셔 보세요. 오빠.”

“…어? 응.”

그러고 보니 봉춘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딱딱한 느낌의 다나까는 이제 일할 때만 쓰려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적응이었기에 주민성으로선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주민성은 내밀어진 반찬 접시를 바라봤다.

제법 종류가 많다.

가장 많은 건 무침류.

“이건 뭐야?”

“생존자분들이 어망 하우스 주변에 농경지를 만들었거든요. 왜인지 그쪽엔 해충도 발생하지 않고 성장도 빨라서 애용하고 있어요.”

“세상에.”

어망 하우스는 한때 주민성이 파멸적으로 만들어낸 농경지였다.

지금쯤 맹독성 푸푸 열매도 양산되었을 텐데, 아직 제대로 써먹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반찬까지 키워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나중에 한 번 들르긴 해야겠다.”

“괜찮아요. 고블린들이 열심히 키우고 있으니까요. 꽃블린이 제자들을 뽑은 것 같더라고요.”

“별일이 다 있었네?”

“고블린들의 경우엔 선아 언니가 엄청 세심하게 관리하거든요.”

괜히 고블린들에게 성녀로 불리는 게 아니었는지, 최선아의 고블린 케어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인 모양이다.

“그보다 해충이 발생하지 않는다라……. 완전 유기농이잖아?”

“맞아요. 저는 아까 미리 먹어 봤는데 맛도 되게 좋아요. 한번 드셔보세요.”

“오케이.”

주민성은 반찬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맛이었다.

주민성은 다른 반찬을 연달아 집었다.

콩나물 무침부터 시작해서 고춧잎 무침, 두릅 된장 무침 등등 전부 맛봤다.

식탁엔 실패작 반찬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괜찮죠? 반찬 종류도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아예 반찬 가게 컨테이너도 생기고 있고요. 일단은 밥이랑 가장 어울리는 것들로 준비해봤어요.”

“오오……!”

이 정도면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도 호화롭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김치찌개랑은 궁합이 살짝 애매하다는 정도.

지금의 성아영과 봉춘향의 관계처럼.

둘 다 매콤하고 고소한 재료가 사용되어 이를 중화해주는 요리가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맛이 깡패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와…….”

주민성은 정신없이 아침 식사를 마쳤다.

해치운 밥공기만 무려 다섯.

이미 탈인간급 몸뚱이를 가졌기에 먹을 수 있는 양도 많았다.

물론 더 먹을 수도 있었지만, 차후 일정을 고려하자면 이쯤에서 끊는 게 옳았다.

“잘 먹었어. 정말로.”

다행히 둘 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정작 가장 만족한 사람은 주민성이었지만.

“생존자들을 받은 게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은 줄은 몰랐어.”

“단순히 입만 늘어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요즘은 단순 파밍 대신, 아예 자리잡고 자기 특기를 살리는 생존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예요.”

“그래?”

어느새 주민성의 앞엔 작은 커피 잔이 내밀어져 있었다.

이 역시도 전문 바리스타가 우려낸 커피로 추정된다.

“강릉에서 오신 카페 사장님이 솜씨를 발휘해주셨어요.”

“우와…….”

더할 나위 없었다.

대격변의 구원자라는 거창한 명예보단,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쪽이 주민성의 취향에 맞았다.

“사람 늘어나는 게 좋긴 좋구나…….”

“덕분에 몇 주 정도만 더 지나면 국내 전역이 전부 밝혀질 거예요.”

임진석을 비롯한 몇몇 외곽 책임자들은 국토 순회에 나섰다.

천상의 안개를 뿌리기 위함이었다.

기존 지역은 튜토리얼 탑을 졸업한 아기 고블린들이 알아서 지켜주고 있었기에 커버할 수 있는 범위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봐야했다.

당장 불룽이만 하더라도 혼자서 북부 지방을 장악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위쪽 지역이면 뱀파이어 출몰지 아냐?”

“맞아요. 과거 북한이 만든 지하 설비에 숨어있었더라고요.”

예전 북한 영토는 송몽룡을 대표로 한 판자촌 원정대가 수복에 나섰다.

총기 사용자 다수가 엄호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강력한 보스는 송몽룡이 직접 처리하는 방식이었고.

방어력 면에서도 딱히 문제없었다.

원정대 쪽엔 투혼 갑옷을 두 개나 배분했으니까.

“제법 고전했다더라고요. 수십 번쯤 되살아나는 뱀파이어들이 증식하고 있었거든요.”

“와…….”

“한 달 정도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어요. 뱀파이어들은 같은 몬스터도 구분 없이 전부 사냥해서 유물을 모으고 있었거든요.”

“다행이네. 노획한 유물은 인천으로 보내서 해주 작업 꼭 해주고.”

“네.”

한때 웨어울프들이 북부를 도모하려던 이유가 있었다.

비밀 파훼 소식이 속속들이 밝혀지며, 긍정적인 시간이 이어졌다.

“좋다…. 전부 잘 풀리고 있어서.”

문득 다른 차원이 떠올랐다.

같은 대격변임에도, 주민성이 있는 세상은 확연히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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