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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4) (241/250)


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4)
2022.07.30.


혼돈화가 끝났다.

이제 병원은 혼돈 그 자체였다.

다른 건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혼돈이 끝난 순간부터 건물의 단면부터 내부 구조까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생각하는 게 그대로 이뤄질 것 같은.

위험하고도 달콤한.

기이한 기분이었다.

주민성은 차분하게 최초 보상 메시지를 확인했다.

[최초로 혼돈 등급 건물 소유에 성공합니다.]

[혼돈의 기원 권한이 해금됩니다.]

[제물을 소모해 강제력을 발현합니다.]

[제물과 관련된 강제력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

강제력.

난해한 보상이었다.

‘단어에 답이 있겠지.’

메시지에 연속적으로 들어간 단어는 제물과 강제력 둘뿐이었다.

우선은 제물부터 이해해보기로 했다.

‘제물은 악마. 혹은 악마의 영혼. 또는 감정.’

그리고 강제력은 말 그대로 강제로 행사하는 힘이다.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테스트를 시작했다.

‘악마한테 강제적으로 뭔가를 하면 되는 거겠군.’

당연히 상대는 기사단이다.

이 녀석들은 기사임에도 백작급을 아득히 능가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갑옷 내놔.”

“……!”

[강제력을 행사합니다.]

[제물의 속성이 일치합니다.]

[제물이 소모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물 역시 소모됐고.

그렇다는 건, 제대로 능력이 적용되었다는 뜻.

치이이이……!

악마 기사들의 갑옷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쿵! 쿵!

갑옷이 제멋대로 형태를 바꾸며 바닥에 떨어졌다.

황당한 변화에 갑옷을 잃은 악마들이 격정적인 표정으로 덤벼왔다.

“오호?”

대부분의 방어 동작을 방어구빨로 대체하던 녀석들이다.

7번 세입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콰직! 콰지지직!

악마들이 단번에 찢겨나갔다.

“속이 다 시원하구먼.”

이번 판은 끝났다.

병원에 모인 악마들이 저항의 의지를 잃었으니까.

남은 것은 포로뿐.

이 녀석들은 제물이 아닌 혼돈의 기원 테스트용으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창밖에선 넥스트 길드원들이 고급 차량들을 신나게 견인하고 있었다.

남은 악마들 입장에선 할 말이 없었다.

명백히 당했으니까.

“이, 이봐. 서울의 왕! 인간은 공개 입찰권을 쓸 수 없다. 누군가에겐 반드시 넘겨야 할 텐데?”

“아. 그거?”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와 손을 잡자!”

“공개 입찰권 그거 뻥이야. 없어. 그런 걸 뭐 하러 사냐.”

“……응?”

“너네 다 속았다고.”

악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자신을 포로로 만들었으니 일부러 놀리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이런 황당한 행사를 개최한 건지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 아닐 거야……. 분명 공개 입찰권은…….”

“그렇겠지. 나도 처음엔 많이 억울했어.”

“……처음엔?”

세상 모두가 사기꾼으로 보이던 시기는 분명 주민성에게도 있었다.

세계 최약의 능력자라는 조롱성 프레임에 잡아먹히던 시기가.

나름대로 극복하고 얻은 교훈이라면, 앞통수든 뒤통수든 일단 치겠다면 확실히 치자였다.

뒤탈 없이.

그래서 주민성은 이번에도 강제력을 응용해보기로 했다.

‘오로지 악마에게만 감염되는 치료 및 면역 불가의 치사성 전염병. 사망까지 걸리는 소요 시간은 1주에서 1개월 정도.’

입맛대로의 전염병을 떠올려 봤다.

능력 사용법은 이미 깨달았다.

혼돈 안에서 쓸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이어졌다.

[강제력을 행사합니다.]

[제물의 속성이 일치합니다.]

[제물이 대폭 소모됩니다.]

제물이 소모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오른손에 묘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진 않는다.

주민성은 싱긋 미소 짓곤 구석에 박혀 있는 악마에게 다가갔다.

“뭐, 뭐냐! 다가오지 마!”

“안 때려. 너무 실망해서 때릴 가치도 못 느꼈거든.”

한때 김대위가 입에 달고 살던 중대장은 제군들에게 실망했다는 뉘앙스로 악마를 다독였다.

토닥. 토닥.

‘이 정도면 되겠지?’

이물감이 살짝 덜어졌다.

주민성은 빈사 상태의 악마도 일으켜 토닥였다.

“너도 기운 차리고. 백작쯤 된다는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냐?”

“크윽…….”

급박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그제야 악마들도 주민성이 달리 보이는지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강자가 약자에게 내리는 자비는 이런 효과가 있었다.

“돌아가라. 강해져서 돌아와라.”

“저, 정말인가?”

“너희들 솔직히 너무 약해서 실망했거든. 아 참고로 너네 타고 왔던 차들은 전부 노획했거든? 돈은 있니?”

“물론 돈이야 있다만…….”

서울의 왕은 화폐의 가치를 되살린 인간이었다.

이건 악마들에게도 상식.

지갑 정도는 저마다 챙겨온 상태였다.

“일단은 이게 전부다. 나머지는 집사가 들고 있다만…….”

“아. 집사?”

악마가 말하는 집사는 이미 아래층에서 제물이 된 지 오래였다.

“걔들 전부 죽었는데……. 에휴. 기분이다. 이 정도로 봐주마. 그냥 가라.”

“……고맙다.”

주민성은 넥스트 길드원들에게 전화해 가장 출력 좋고 속도 빠른 차량 두 대를 병원 입구에 주차 시켰다.

전염병을 최대한 빠르고 멀리 퍼트리려면 운송수단만큼은 최고로 챙겨주는 게 효율적이니까.

“멀리 안 나간다.”

“……서울의 왕. 마지막 질문이 있다.”

“뭔데.”

“혹시 2차 행사도 개최할 계획인가?”

“음……. 봐서? 혹시라도 생각나면 방송 때 언급해 둘게.”

“좋다. 다음엔 더욱 확실히 준비해서 돌아오겠다.”

“그래. 열심히 준비해 봐.”

“……네가 악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 좋다. 그럼 가겠다.”

“오냐.”

악마는 무언가 크게 착각한 모양이다.

주민성과 악마 사이에 유대라도 생긴 것처럼 씁쓸한 표정이었다.

차량 두 대가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갔다.

개인의 강함은 둘째 치고, 세력 하나는 끝내주게 큰 녀석들이다.

하나는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 중국의 악마들과도 연계되었던 녀석.

나머지 하나는 일본과 호주 세력과도 연결되었던 녀석이었으니까.

“홀가분하구만.”

“…….”

“그래. 너희가 있었지.”

“그렇습니다…….”

이제 넥스트 길드의 잔당 악마들이 남았다.

떠나는 악마를 보니 상당히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제약만 간단하게 걸고 방생해야겠군.’

주민성은 악마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떠나라.”

“저, 정말입니까!”

“그래. 일도 잘해 줬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 너희끼리 붙어 다니지 마. 각자 살길을 모색해.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한국을 떠나라. 그게 조건이다.”

“물론입니다! 기사의 긍지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긍지까지야……. 아무튼 가라.”

토닥. 토닥. 토닥.

드디어 손에 남은 이물감이 사라졌다.

다섯 악마의 방생.

악마들에겐 지독하고 잔인한 독이겠지만, 지구에겐 백신 그 자체였다.

‘혼돈 건물도 수집 대상에 올려야겠군. 고작 하나 얻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소원을 빌고 투혼 갑옷을 얻었다.

무려 7개씩이나.

이 정도면 지역별 거래소 관리자나 대표급 능력자에게 공용 관리를 맡겨도 될 정도였다.

부작용은 없을 터였다.

어차피 갑옷에 걸린 저주는 제대로 해제하고 분배할 생각이었으니까.

물론 공짜도 아니다.

적절한 가격을 책정해 달마다 임대료를 받으며 마일리지를 적립시켜 줄 예정이었다.

“어차피 내 건 있으니까 적당한 시점에 양도하자.”

관리자들에게 동기 부여와 책임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계획이었다.

“다음은 혼돈 건물이 관건인데…….”

세상에 사기급 능력은 너무나도 많았다.

혼돈 건물은 그중에서도 거인의 머리 한 개쯤은 더 튀어나온 먼치킨에 해당했다.

소원을 빌면, 적당히 제물을 소모하고 이뤄주는.

“기사단도 소원의 결과였겠지.”

건물은 건물주에게만 능력을 선사하지 않는다.

진작에 밝혀진 사실이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튜토리얼 탑이 있었다.

따라서 악마들의 규칙에서 벗어난 제란 공작의 기사단 역시 혼돈의 기원을 통해 소환되었다고 거의 확신했다.

“……최대한 챙겨 보자. 대격변은 악마가 전부가 아니니까.”

주민성은 악마들이 멸종해가는 시점을 노리기로 했다.

위기에 놓인 악마들이 개미처럼 혼돈화 건물을 마련해주는 타이밍은 분명 있을 테니까.

“희망이 보인다.”

주민성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 * *

한편, 튜토리얼 탑에선 2차 졸업자 맞이가 한창이었다.

“나, 나온다!”

“오오!”

쿠르르르……!

도개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크룩스는 튜토리얼 탑 안에서 배웅할 뿐.

탑을 빠져나오는 몬스터는 오로지 아기 고블린뿐이었다.

“응애.”

“응애응애.”

아기 고블린들이 엉덩이를 추켜세우며 위풍당당하게 기어 나왔다.

“얘들아! 고생했어!”

“응애!”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최선아였다.

도개교를 건너온 고블린들에게 가속 능력까지 써가며 순식간에 달려가는 모습이다.

하나하나 직접 강화했기에 애착도 컸던 모양이다.

“다치진 않아서 다행이야!”

“응애!”

아기 고블린이 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응애.”

“어? 정말?”

“응앵애.”

“그랬구나! 민성 씨가 좋아하겠는데? 일단은 저기서 조금만 쉬고 있어!”

“응애!”

최선아가 가리킨 곳은 고블린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텐트촌이었다.

2열 종대로 제식까지 맞춰가며 기어가는 모습은 은근히 장관이었다.

최선호, 유호영도 최선아에게 합류했다.

“누나. 고블린들 무슨 능력 얻었대?”

“전부 개성 있게 얻었더라. 능력 이름을 뭐라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일단 가장 센 아이는 불룽이래.”

원래라면 훨씬 빨리 졸업했어야 했다.

생각보다 일정이 지연된 이유 중엔 고블린 나름의 서열 정하기가 있었던 모양.

“블룽이 아니고 불룽이?”

“응. 불룽이.”

“무슨 능력이길래?”

“초각성이라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아무튼 훨씬 강력하게 변신한대.”

능력명부터가 초각성이다.

단어만 봐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대충 초사이언 같은 건가?”

“비슷할 거야. 엄청 빠르게 날아다닐 수도 있고 장거리 공격도 할 수 있다니까.”

“신기하네.”

확실히 서열상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불룽이의 경우, 능력 하나로 여러 가지 파생 능력이 개방된 케이스였으니까.

다른 고블린들은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능력만 얻은 상태였다.

“우헤헤…….”

어느새 텐트 안에 들어간 불룽이는 음침하게 웃고 있었다.

“쟤……. 괜찮은 거 맞겠지?”

“귀엽기만 한데?”

“…….”

“왜?”

“……누나. 나 잠깐 불룽이 테스트 좀 해 볼게.”

“응? 괜찮겠어? 다른 능력도 아니고 튜토리얼 탑 능력인데.”

아무리 맹한 구석이 있는 최선아라도 튜토리얼 탑 능력이 어떤 종류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하게 각성하는 능력으로는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걸.

“나도 건물주 능력이잖아.”

“하긴. 너라면 괜찮긴 하겠다. 불룽이한테 전해줄게.”

“땡큐.”

곧이어 주민성 세력 2인자와 고블린 2인자의 대련이 펼쳐졌다.

“우헤헤…….”

“맙소사…….”

초각성을 마친 불룽이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엄청났다.

돋아난 날개와 더욱 뾰족해진 송곳니, 그리고 넘실대는 새까만 아우라가 절묘하게 어울렸다.

그렇다고 고블린이라기엔 배트맨에 가까웠고, 배트맨으로 정의하기엔 사악해 보이는 이미지다.

“먼저 간다.”

“우헤!”

최선호 역시 온갖 추방자 능력을 해금한 상태였다.

개중엔 공간 단축이라는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도 있었다.

쉬익!

놀랍게도 불룽이는 최선호의 선제공격을 깔끔하게 피했다.

유호영에게 배우고 추방자 능력으로 정밀도를 극한까지 올린 공격이었음에도.

“대박…….”

“우헤에에!”

다음은 불룽이의 차례.

날갯짓과 동시에 새까만 파동이 최선호의 어깨를 향했다.

그것도 연속으로.

콰콰콰콰!

“아니! 무슨 다연장 로켓포냐고!”

“우헤!”

그 외에도 온갖 비상식적인 공격들이 쏟아졌다.

대략 정리해 보자면, 13종류의 각기 다른 파동이 44가지 패턴이었다.

“허억……! 헉!”

“우……. 우키키!”

단순 대련이었기에 큰 부상은 없었다.

애초에 목숨을 노린 공격은 서로 행하지 않아서 무난하게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지쳐 쓰러진 최선호는 동경어린 표정으로 튜토리얼 탑을 바라봤다.

“튜토리얼 탑 미쳤네…….”

수준 높은 대련에 감동한 유호영도 끼어들었다.

“누나! 저도 대련하고 싶어요!”

“안 돼요! 애초에 원소 능력은 조절한다고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얘들 죽어요!”

“흑…….”

애초에 유호영의 주먹엔 온갖 속성들이 한데 섞여버리니 맞으면 즉사 수준의 공격들뿐이었다.

너무 실전성이 강해 대련할 수 없는 기묘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호영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튜토리얼 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최선호와 유호영의 눈이 마주쳤다.

뜻은 서로 같다.

둘은 당장이라도 튜토리얼 탑에 오르고 싶었다.

“민성이 형한테 전화해볼까?”

“콜. 무조건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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