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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3) (240/250)


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3)
2022.07.29.


“탈락.”

“……뭐?”

“탈락이라고. 나가실 문은 저쪽이다.”

보훈 병원에선 여전히 악마 거르기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슬슬 강력한 악마들만 남기 시작하니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녀석이 출현했다는 게 작은 문제였지만.

“그 결과엔 승복할 수 없겠는데…….”

남아 있는 악마는 다섯.

이곳에 어중이떠중이 악마는 없었다.

전원 백작 이상에 나름대로 지역을 장악한 데다, 해외 악마 세력과도 연결되어 있는 녀석들뿐이었다.

정상적인 면접이었다면 머리를 쥐어 뜯으며 누굴 뽑아야 하나 고민했으리라.

“결정은 내가 해. 그쪽 의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상품이 없었다.

주민성은 이 녀석들마저도 전원 탈락시키고 세력을 쓸어버릴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아니, 중요하지. 여기 남은 녀석들이 동시에 덤벼도 전부 찢어버릴 자신이 있어서 말이야.”

자존심을 자극해서일까.

주민성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남아있던 다른 악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자신감이 과하군. 제란 공작.”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여기는 마계가 아닌데.”

“곱게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추하군.”

잘만 하면 이이제이도 될 법한 상황.

어떤 방향이든 주민성에겐 유리한 방향이었다.

애초부터 제란 공작은 다른 악마들보다 위험해 보여 슬슬 제거할 타이밍이었고.

‘음?’

분위기를 타려는 순간, 제란 공작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손잡을 의향도 충분히 있었지.”

쿠구구……!

“어쩌겠나. 받을 수 없으면 빼앗을 수밖에.”

지면이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이 크게 손상됩니다.]

[건물이 크게 손상됩니다.]

……

갑작스레 느껴지는 압박감은 실제로도 건물을 훼손하고 있었다.

그것도 주민성에게 하나뿐인 혼돈화 건물을.

“……선 넘네.”

어느 샌가 사방에 새까만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일반 게이트도, 카오스 게이트도, 그렇다고 차원문도 아니었다.

아예 낯선 무언가였다.

제란 공작이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기회다. 공개 입찰권을 넘겨라. 서울의 왕.”

철그럭!

동시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란 공작이 생성한 게이트에서.

“기, 기사단?”

“……어째서? 이곳은 마계도 아닌데!”

왜인지 다른 악마들이 더욱 당황했다.

있어선 안 될 존재를 대하는 것처럼.

주민성도 나름대로 물러서서 대책을 강구했다.

지금 느껴지는 위압감은 보스 몬스터 수십 마리에게서 느낄 법한 위압감이었다.

철그럭! 철그럭!

새까만 철갑으로 무장한 괴인들이 나타났다.

키는 3미터 정도.

나름 인간의 외견을 하고 있었지만, 녀석이 뿜어내는 기운은 절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악마들 말대로 제란 공작 휘하의 기사단으로 추정된다.

주민성은 망설이지 않고 능력을 사용했다.

‘영혼 재배치. 병원.’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저놈들.’

정확히 기사단을 지정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메시지가 이어졌다.

[대상은 영체가 아닙니다.]

[영혼 재배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안 되는군.’

영혼 재배치는 생명체에게 통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악마에 빙의된 인간에게만 통하거나, 처음부터 영체를 상대로만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기사단은 기분 나쁘게도 생명체에 해당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서울의 왕. 탈락을 철회할 생각은?”

제란 공작은 지금도 나름의 호의가 남아 있었는지 회유를 제안했다.

당연히 주민성에겐 기만 혹은 거절의 선택지뿐.

협회장이 걷던 길과는 다르다.

애초에 이 자리는 당첨이 존재하지 않는 뽑기 게임이었다.

“……제법인데?”

“제법이라. 하하…….”

주민성의 호의적인 태도에 제란 공작이 손을 들어 기사단을 제지했다.

척!

일사불란한 움직임.

고블린 라이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제된 동작이었다.

“그런가. 나의 기사단도 그저 제법에 불과한가.”

“당연하지.”

주민성의 표정은 평온했다.

이런 모습이 제법 좋은 평가를 받은 모양이다.

기사단에 경악하던 악마들조차도 주민성의 태도에 다시금 경악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주민성은 건물 부가효과의 정서적 안정 효과를 증폭시켰을 뿐이었지만.

“저 기사단인가 뭔가에 물러나기라도 할 줄 알았어?”

“……하하.”

머릿수 싸움이라면 주민성에게도 자신 있는 종목이다.

지금 곁에 있는 7번 세입자를 제외하고도 당장 부를 수 있는 지원군만 수십 명 이상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곱게 탈락은 못 시켜 주겠네.”

게다가, 목줄 또한 처음부터 잡고 있었다.

애초부터 놓은 적도 없었고.

“크하하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제란 공작은 그저 광소할 뿐이었다.

“꺼낼 수 있는 카드가 그게 전부면, 탈락 맞아요. 아저씨.”

“크흐흐!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 정말로오?”

제란 공작의 신호와 함께 기사단이 돌진했다.

실내였음에도, 돌진이 가장 걸맞은 표현이었다.

여기서 꺼낸 주민성의 방어 카드는 7번 세입자였다.

“부탁드립니다.”

“으음!”

기세라면 7번 세입자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는 세입자들 중에서도 위희린과 함께 최강급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으니까.

콰아아아앙!

7번 세입자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그리고 거대한 기운을 일으켜 기사단의 돌진을 막아냈다.

주민성이 풀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능력자들의 싸움과는 본질부터가 달랐다.

천외천의 경지였다.

키리릭!

‘음?’

기사단과 7번 세입자가 얽힌 순간, 기사들의 갑옷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어?’

주민성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사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둘째 치고, 갑옷이 투혼 갑옷이라는 걸.

‘미, 미친!’

당장 눈에 보이는 투혼 갑옷의 가치만 계산해도 수천억대였다.

심지어 텐트처럼 거품 잔뜩 낀 가격도 아닌, 시세가 그러했다.

오히려 지금 같은 대격변 시국에 유물급 방어구의 가치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부르는 게 값인 데다 화폐의 가치도 바뀌어서 팔 사람도 없겠지만.

콰광! 쾅!

기사단은 기계적이고도 치밀한 합공을 통해 7번 세입자를 몰아세웠다.

그럼에도 나름의 제대로 된 공방이 성립됐다.

열세이긴 해도 치명적인 공격만큼은 완벽히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하아……. 역시 탐나는군.”

“그러게.”

제란 공작은 여전히 주민성과 손을 잡는 그림을 그렸다.

주민성 역시 어떻게 하면 투혼 갑옷을 온전히 빼먹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공작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젠장.’

아직 제란 공작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인지 다른 악마들 역시 제란의 기사단이 나온 순간부턴 도발을 멈췄다.

완벽히 방심하고 있었다.

영혼 재배치 한 방이면 분명히 건물 재료 확정이다.

‘저놈을 제압하면 기사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확실히 기사단은 까다로웠다.

제란 공작처럼 건물 재료로 쓸 수도 없었고.

게다가 타인이 착용 중인 장비는 소유물로 판정되지 않아 인벤토리 납치도 불가능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텐트를 이용해 기사단을 통째로 포장해서 수납하는 것.

인벤토리 내부라면 기사단을 제압할 충분한 전력이 갖춰져 있었다.

각오해야 할 건 악마들의 적대였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 이곳에 악마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것도 각오해야 했다.

텐트 포장 과정에서 주민성의 전투력 수준이 밝혀질 테니까.

악마들은 단순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어렵군.’

주민성의 출력으로 동시에 재배치할 수 있는 악마는 남작급 셋이 한계였다.

공작급은 하나뿐이었고.

‘일단 움직이자.’

결국은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치질을 통해서.

주민성은 다른 악마들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왜들 가만히 있는 걸까. 아까는 공작한테도 당당히 도발했으면서?”

“……큭. 기사단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것들은 평범한 기사급 악마가 아니니까.”

“그래? 안타깝게 됐네. 탈락.”

동시에 악마를 처리할 수 없으면,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면 된다.

가뜩이나 악마들은 기사단 때문에 상당히 경직된 상태.

주민성은 이점을 철저히 노리기로 했다.

“어어?”

“잘 가시고.”

“으어?”

[악마 백작 세르펜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건물의 혼돈화가 가속됩니다.]

털썩!

빙의에서 풀려나 기절한 능력자는 그대로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여태 해왔던 것처럼.

[텐트 573이 수납됩니다.]

이제 남은 악마는 제란 공작을 제외하면 셋뿐.

악마들의 수가 줄어들면, 제란 공작에겐 긍정적인 결과만 남게 된다.

“……탈락을 철회해야 하나.”

“크흐흐! 드디어 생각이 바뀐 건가?”

“조금은?”

이런 전개라면 제란 공작은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자가 줄어들면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고 생각할 테니까.

반대로 남은 악마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 어필이 부족하면 바로 탈락인 데다, 주민성은 탈락 철회까지 언급했으니.

“그렇다면 나 역시도 협조할 수밖에.”

제란 공작이 손을 들자 기사단의 공세가 멈췄다.

쾅!

“감히!”

7번 세입자와 기사단 사이의 전투 양상도 바뀌었다.

제란의 기사 한명이 세입자를 전담 마크 하며 철저히 방어에 임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기사단원들은.

콰직!

“크아악! 제란! 네 이놈!”

단번에 다른 악마들에게 쇄도했다.

쿵!

“크윽!”

한 명은 당했고, 한 명은 방어에 성공했다.

이것으로 제란과 적대하는 악마는 둘.

2대2 구도나 마찬가지였다.

“아아. 이 싸움은 개입하지 않아도 좋아. 내가 적극적이지 못했으니, 만회해야겠지.”

“오호.”

제란 공작의 만회 방법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된 모양이다.

주민성이 처음 말했던 것처럼, 개인의 강함보단 세력의 강함을 강조했던 걸 기억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제란은 오로지 기사단을 이용해서만 악마들을 공격했다.

‘잘됐네. 시간 좀 끌어야 했는데.’

주민성은 영혼 재배치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차분히 회복했다.

“크흠…….”

어느새 7번 세입자와 제란 기사의 공방전도 멎었다.

아무래도 방어에만 진심으로 올인하는 상대를 공격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개인의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생각대로 형태를 바꿔대는 투혼 갑옷은 최강의 방어 효율을 자랑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미안하구만. 저런 갑주는 처음이네. 만년한철보다 더 단단하다니.”

주민성은 7번 세입자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원하신다면 대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해주도 제대로 해서요.”

“그, 그게 정말인가?”

“에이. 당연하죠.”

세입자에게 마음의 빚을 씌운다는 건 언제나 환영할 일이었다.

그들이 오랜 기간 체류할수록, 세입자들을 친위대나 다름없는 역할로써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쾅!

“크아아아아! 젠장!”

주민성의 개입 없이도 악마들 간의 싸움은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제란 공작의 기사단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상대측도 나름의 분투 정도는 하는 듯했지만, 무언가의 규칙에 얽매여 있기라도 한 건지 악마들은 제대로 된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주민성은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쌓이는 기운에 집중했다.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회복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좋아. 충분해.’

시간이 흘러 대망의 두 번째 재배치 시간이 다가왔다.

악마들 사이의 승기도 확실히 기울었다.

제란 공작 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물론 동족이랍시고 목숨은 끊지 않는다.

그저 무릎 꿇릴 뿐.

생각해보면 호칭부터가 귀족의 호칭이었다.

이 또한 나름의 규칙인 모양이다.

‘영혼 재배치. 병원.’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찌 흘러가든, 이제 망설일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배치가 끝나면 견제할 상대는 기사단뿐이니까.

어떻게든 세입자들의 도움을 받아 발을 묶고, 텐트로 포장해서 갑옷만 분리하면 된다.

“제란 공작.”

이것으로 시동어는 끝.

능력이 발동됐다.

“……음?”

“잘 가시고.”

[악마 공작 제란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이, 이, 이이!

재배치가 끝나자 주변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전의 재배치와는 뭔가 다르다.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건물의 혼돈화가 완료됩니다.]

[최초로 혼돈 등급 건물 소유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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