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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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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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2)
2022.07.28.
주민성은 누군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예. 전화 받았습니다.
“다음 작전으로 갈게요.”
-옙!
상대의 정체는 기존 넥스트 길드원들이었다.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주민성의 세력에 합류하길 자청했다.
아무래도 이경수의 사례가 주효했다.
표면상으론 김정남의 컨택을 받아 출세한 셈이니까.
게다가 김정남은 대격변 이전부터 유명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성공한 케이스라 인기도 많았고.
덕분에 넥스트 길드원들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그럼 두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사방의 톱니바퀴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젠 중심부를 움직일 차례.
행사 장소는 강당이다.
“병원에 이런 시설은 왜 있는 건지. 참.”
제법 트여 있어 날개를 펼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악마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어필하는 모양인지 걸음을 옮길수록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주민성 역시 지지 않고 기운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세입자를 일으킨 것이지만.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건 가장 중후한 인상의 7번 세입자였다.
“……사악한 기운이 심각할 정도로 느껴지는군요. 전부 상대하실 계획인지?”
“아뇨. 부딪히진 말고, 기선제압용 기운만 내뿜어 주세요.”
“좋지요. 이 정도의 압박이라면 전력을 다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7번 세입자가 기운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7번 세입자의 기운과 악마의 기운은 한데 섞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서로를 밀어냈다.
콰지직! 콰직!
[병원의 내구도가 손상됩니다.]
[병원의 내구도가 손상됩니다.]
…
건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
‘상관없겠지. 반파만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강당 전체가 무너진다 한들 반파까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병원단지가 워낙 컸으니까.
“흐으으읍!”
7번 세입자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력을 다할 생각인 모양이다.
콰콰콰……!
이젠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뿜어지는 기운은 명백히 사방을 강타했다.
콰광! 쾅!
문이 박살 나고, 벽이 뼈대를 드러낼 정도였다.
부서진 대문 너머로 의자에 앉아 있는 악마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옭아매던 기운이 사라졌다.
탐색전은 여기까지.
이번 행사의 주인공을 코앞에 두고도 밉보일 짓을 하는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벅. 저벅.
드넓은 강당 내에선 오로지 주민성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단상에 오르기까지 입은 열지 않았다.
대신, 마이크를 이용해 소음을 일으켰다.
삐이이이이이!
그 누구도 주민성의 행동에 뭐라 하는 악마는 없었다.
그저 메시지만이 명백한 불쾌함을 설명해 줄 뿐.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건물의 혼돈화가 가속됩니다.]
주민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첫마디를 열었다.
“나다. 새끼들아. 반갑다.”
보통 사과문을 세 줄 요약할 때 쓰는 첫마디였다.
악마어로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메시지가 쏟아지는 속도로 볼 때 상당히 효율적인 첫인사로 짐작된다.
“크흠!”
물론 7번 세입자에겐 악마어가 아니었을 터였다.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잠깐 바라보곤, 침착하게 시선을 피했다.
“많이들 모여 줬네.”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녀석들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스웠다.
입꼬리가 계속해서 씰룩인다.
“방송으로 말했다시피, 공개 입찰권은 한 장이야. 알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은 오직 주민성만의 무대였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쪽들이 얼마나 쓸 만한 악마인지 모르지. 기준이 필요해.”
몇몇 악마들이 손을 들어 자신을 어필하려 했지만, 주민성은 이를 제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
갑작스런 만화에서나 볼 법한 선언에 악마들이 순간적으로 동요했다.
주민성은 그런 악마들을 다시 한번 기만했다.
“뻥이야.”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
혼돈화가 가속돼서일까.
건물 전체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뻥이고, 제대로 세력을 갖춘 친구를 찾고 있다. 무슨 의미인지 알지?”
“…….”
“최철진. 갈리우스 공작이라고 해야 하나? 그놈처럼 어설프게 세력 구축한 놈 말고, 제대로 된 세력을 일군 녀석들이 필요하다 이 말이야.”
강당은 분노에 휩싸였다.
이럴 것도 예상했다.
주민성은 악마들을 통해 들었다.
갈리우스 공작이 보통의 악마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한국을 멸망시킬 가장 유력한 악마였음을.
“비전을 제시해 봐. 너부터.”
주민성이 한 악마를 가리켰다.
노골적으로 분노하며 당장이라도 들썩이던 녀석이었다.
발언권을 얻은 악마가 말했다.
“……인간 주제에 감히.”
“너는 자기소개도 못 할 정도로 하찮은 놈이었군.”
“크윽!”
동행으로 추정되는 다른 악마가 지목받은 악마를 진정시켰다.
굳이 건물주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이곳에선 주민성이 명백한 갑이었으니까.
“…나는 말자크. 경주에서 왔다. 그리고 이 몸뚱이의 주인은 S급이다. 휘하엔 500명의 길드원, 22명의 기사급의 수하를 이끌고 있지.”
“호오.”
의외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양수찬만 해도 악마 수하는 셋뿐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주민성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다른 관중을 향해 말했다.
“방금 발언한 말자크보다 세력 큰 사람. 손들어보자.”
“…….”
제법 많은 악마들이 손을 들어 보였다.
명백히 말자크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기, 기다려라! 싸움은 숫자가 전부가 아니야!”
이곳에 모인 악마들의 스펙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게 확실해졌다.
말자크가 버림패라는 것도.
주민성은 속으로 능력 한 가지를 사용했다.
‘영혼 재배치. 병원.’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능력을 끝까지 사용하진 않았다.
일단 발동만 해두고, 여론을 선동했다.
“애초에 개인의 강함이 기준이었으면 나는 갈리우스 공작과 손을 잡았겠지?”
반응은 즉각적으로 왔다.
경쟁자 한 명을 재껴 버릴 찬스였으니까.
“크큭…!”
“멍청한 놈. 거느린 수하가 많다는 건 제법이지만, 인간이 너무 적다.”
덕분에 말자크를 보내버릴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했다.
“들었지? 너 탈락이야.”
모욕감을 선사했다.
동시에 발동 중인 능력도 마무리 지었다.
‘말자크.’
[악마 백작 말자크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이노오오오옴! 감히이이이이!
주민성은 잠시 분위기를 살피곤 한 악마에게 말을 걸었다.
말자크를 보필하던 악마였다.
“불만은 갖지 마. 이게 인간의 방식이야. 집단에 문제가 생기면, 대표가 책임을 져야지.”
“큭……!”
양수찬의 수하들을 추궁하며 알아냈다.
악마들은 건물주 능력에 대해서 모른다는 걸.
또한, 영혼 재배치에 대해서도 아예 무지했다.
때문에 지금의 퍼포먼스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불만 있으면 말해. 말자크 세력 후임자로 대우해 줄 테니까.”
“아, 아닙니다……. 그보다 백작님은 어떻게…….”
말자크가 왜 사라졌냐고 물어보고 싶을 터였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악마의 수치였다.
상대가 어떤 능력을 썼는지조차 모른다는 건 자신의 약함을 대놓고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아래층에 대기실 있으니까 그쪽으로 꺼져. 복귀는 행사 끝난 이후다.”
“……예.”
당연히 주민성은 이곳에 모인 악마들을 멀쩡히 돌려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부 건물 밥으로 줄 예정이었다.
적당히 악마들이 쌓이면, 3번 환자 대기실에 모인 영혼들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물론, 후속 조치도 해뒀다.
발렛파킹을 담당하던 악마들은 주민성의 명령에 따라 차량 타이어에 구멍을 뚫어 둔 상태였다.
넥스트 길드원들은 지금쯤 숨겨 둔 견인 차량에 시동을 걸고 있을 터였고.
“허튼짓은 하지 않는 걸 권장한다. 적어도 내 앞에서 강함은 통하지 않아. 무조건 세력의 규모만 볼 거다.”
광오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물론 허세였지만.
그럼에도 서울의 왕이라는 별명과 부풀려진 수많은 소문들은 악마들을 긴장케 하는 데 충분했다.
“그럼 다시 행사를 재개하기에 앞서, 불만 있는 친구는 손들도록.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너희들도 나름의 검증은 필요하잖아?”
주민성은 다시금 악마들을 도발했다.
영혼 재배치라는 절대적인 수단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없네?”
혼돈화가 진행 중인 천장을 바라보는 녀석들이 있었다.
내심 주민성의 의도를 눈치챈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대항해 오진 않는다.
의도를 눈치챘다 하더라도 공개 입찰권까지 블러핑이라고까진 못한 모양이다.
“그럼 다시 행사를 재개하도록 하지. 거기 너. 자기소개해라.”
“예, 예의를 갖춰라!”
“깡패들한테 예의는 무슨.”
면접을 빙자한 악마 줄이기가 재개됐다.
***
한편, 인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명절로 착각할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덤프트럭부터 시작해 온갖 개조 차량들이 가득했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차량을 선호하게 되어 발생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아예 부랴부랴 이삿짐을 챙겨온 생존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노아의 방송 덕분에 인천과 서울이 도시로서의 기능을 되찾아간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공식적인 호위가 선포된 이상 생존자들로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리고 지금, 생존자들은 여태껏 자신들이 서울 세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콰지직! 퍼펑!
고속도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안전했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몬스터들이 쏟아지듯 접근해왔다.
문제는 녀석들조차 10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
피슉! 피슉!
그중에서도 기괴하게 생긴 총을 들고 있는 능력자들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저격 능력자라도 되는 것처럼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자랑했다.
“자아! 다시 이동하시겠습니다!”
“마석 파밍 통제하겠습니다! 하차 통제하겠습니다!”
중간 중간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조차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쾌적하기 짝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파견 온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생존자들은 몬스터 토벌과 동시에 장사까지 시작했다.
“수제 팔크라스 샌드위치 팝니다! 창가로 손만 내밀어주세요! 소고기 샌드위치보다 맛있습니다!”
“수제 팔크라스 육포 팔아요! 가전제품과 물물교환도 가능합니다!”
“따끈한 커피 있어요! 시원한 아이스 커피도 있어요!”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굶주려 있었다.
그나마 배부른 고등급 생존자들조차 극심한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였고.
이들 모두에겐 그저 샌드위치와 육포라는 단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샌드위치엔 이젠 구하기도 힘든 채소까지 듬뿍 들어가 있었다.
“저, 저요! 여기부터 와 주세요!”
“커, 커피포트랑 교환도 됩니까? 거기서도 생활 가능한 거 맞죠? 컨테이너 1개월 무료 제공이고요!”
“에이. 기본이죠! 어디 보자……. 이 정도 커피포트면 샌드위치 두 개는 드릴 수 있겠네요. 아마 다음 주부턴 수원까지 개방될 테니 걱정 마시고요.”
제법 상태 좋은 커피포트의 가치는 샌드위치 두 개.
보기엔 커피포트 쪽이 손해였지만, 평가가 바뀌기까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운전자 쪽에서 샌드위치를 한 입 먹은 순간부터.
“……우움! 좌, 좜시만뇸!”
“네? 손님?”
“요고토! 요고토 바꿀게욤!”
운전자가 내민 건 제법 비싸 보이는 도자기였다.
“허어……. 가전제품이 아니긴 한데…….”
판매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운전자는 빠르게 샌드위치를 삼키곤 말을 이었다.
“대격변만 끝나면 떡상합니다! 무조건이에요! 감정가 1000만 원은 거뜬해 보이지 않아요? 이거 봐요. 문양도 고급스럽고!”
“흐음……. 좋습니다. 그럼 샌드위치 한 개 추가.”
“가, 감사합니다! 혹시 인천 안에서도 장사하십니까?”
“예. 물론이죠. B구역 42번길로 오시면 됩니다. 현장에선 팔크라스 꼬치구이도 판매하니까 참고하시고요.”
“오오……! 기억하겠습니다! 꼭 갈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샌드위치 반 개 서비스로 드릴게요.”
“오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천엔 이런 방식으로 재산을 불려 나가는 생존자들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각성 능력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대박……. 대박!”
운전자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손해 보며 샌드위치를 구매한 이유도 있었다.
그 또한 요리라면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컨테이너 생활…. 나쁘진 않을지도…!”
이렇게 지방의 생존자들은 저마다의 희망을 품고 인천으로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