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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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소망이 담긴 건물 (1)
2022.07.27.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번 방송 역시 성공적이었다.
최종 시청자 수는 210만 명.
어느 순간부턴 해외 시청자들도 어마어마하게 유입된 덕분에 달성한 숫자였다.
“200만 명이 다 같이 채팅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맞아요. 그때는 채팅을 읽는다기 보단 흐름에 맡기면서 해야 적응이 되더라고요.”
“아, 그렇게 하는 거였군요.”
노아와 달리 주민성의 동체시력은 매우 뛰어났다.
채팅이 아무리 빠르게 쏟아져도 원하는 채팅은 똑똑히 읽을 수도 있었다.
‘악마……. 생각보다 많았었지.’
0.1초만에 묻혔지만, 주민성은 확실히 봤었다.
-공개 입찰권의 양도를 원치 않는다. 우리와 함께 하자. 우리는 1개월 안에 유럽을 통합한다.
유럽에 자리 잡은 악마가 어설프게나마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담으로 흘려듣기엔, 주민성은 가능성 있는 미래를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이미 멸망한 나라가 대부분이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폴란드, 북아프리카 정도만 힘겹게 버티는 실정이다.
다른 차원의 이현이 말했던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곳에서도 튜토리얼 탑은 존재했다.
어째서인지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 부분이 아니었다.
‘……폴란드.’
같지만 다른 지구에서의 유럽은 멸망 직전이었다.
아니, 파벨이 있는 폴란드를 제외한 유럽은 확실히 멸망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평행세계에 악마가 아예 없다곤 볼 수 없었다.
그저 협회장과 연관되었던 악마의 연결고리만이 끊어졌을 뿐이다.
더불어, 그쪽의 최철진이라면 아마도 건재했을 터였고.
이제 거의 확신 단계에 도달했다.
유럽엔 최철진과 비슷한 거물급 악마가 존재한다.
악마로 추정되는 채팅은 이것 말고도 더 있었다.
-남아공에서 당신과의 만남을 원합니다.
이 역시도 이현이 말했던 정보와 일맥상통한다.
북아프리카 역시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이 살아남은 지역에 해당했다.
즉, 남아프리카는 멸망했다.
방금의 채팅은 악마가 쳤던 것일지, 아니면 영웅이 될 뻔했던 생존자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점은, 어떤 변수가 있다 한들 남아프리카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
남아프리카에도 거물급 악마가 존재한다는 쪽이 아무래도 가능성이 컸다.
‘지금이 차라리 잘됐다고 할 수 있어.’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세계는 다른 세계일 뿐.
주민성은 분명 대격변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인천은 멸망하지 않았고, 이베리카는 날뛰지 못했다.
북한으로 올라가 세력을 도모하려는 웨어울프 세력 역시도 사전에 제압했다.
그리고 지금은 최철진을 제압해낸 걸 넘어 대전에서 본격적인 악마 제물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장님.”
이경수와 인사를 마친 김정남도 병실에 합류했다.
튜토리얼 탑 내부의 상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보고에 의하면 튜토리얼 탑 주변만큼 안전한 지역이 없다는 판단하에 쉽사리 김정남을 부를 수 있었다.
게다가 최선호와 유호영이 또래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김정남이 끼어들기 애매했던 것도 있었고.
“그리고 감사합니다.”
“……네?”
“엄청난 능력자를 발견하셨더군요. 이경수 씨 완전 물건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예. 조금만 더 기합을 넣어서 능력을 단련한다면 근육도 정밀하게 찢을 수 있으실 것 같더군요. 인위적인 벌크업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이경수 씨를 최대한 활용해 볼 계획입니다.”
“…….”
김정남은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하지만 내심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반면, 이경수의 표정은 너무나도 지쳐 보였다.
김정남에게 여러모로 호되게 당한 모양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특히 어딘가에 제대로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꼭 부응하겠습니다!”
“네, 넵…….”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좋은 결과였다.
“늦기전에 출발하셔야겠네요.”
“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노아는 게이트 관리자였다.
타지에 자꾸 묶어둘 수는 없는 노릇.
“흔쾌히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노아 씨. 김정남 씨. 그리고 이경수 씨.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제가 더 감사드리지요. 하자 많은 C급에 불과한 절 거둬주셔서 감사합니다.”
훈훈한 인사가 끝나고, 김정남과 노아, 이경수는 스포츠카를 이용해 병원단지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양수찬이 사용하던 스포츠카였다.
“이제 다음 작업도 슬슬 해 볼까나.”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이제 거의 와해한 거나 마찬가지인 넥스트 길드를 정상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 잔존 악마 세력의 처우도 결정해야 했다.
물론 악마들을 상대로 타협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악마 처리장이 생겼는데 써먹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악마를 처리하면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어진다.
당사자들이야 후유증은 남겠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
주민성은 구석에 박혀 있는 악마에게 다가갔다.
“히, 히익! 나는 분명 협력했다고!”
“응. 고마웠어. 영혼 재배치. 병원.”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
이번엔 대상을 말하지도 않았다.
상쾌한 미소로 가리킬 뿐.
“아, 안 돼애애애!”
[악마 기사 파룬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악마의 감정이 가장 격해질 때.
그때가 바로 건물 혼돈화에 가장 도움 되는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털썩.
정말 깔끔한 뒤처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부업을 퇴마사로 해도 될 정도.
직업 만족도도 상당했다.
백해무익한 악마들이 건물 성장에라도 쓰인다는 사실에 주민성은 큰 보람을 느꼈다.
“안녕?”
이젠 인벤토리에 있던 나머지 악마들의 차례.
이번에도 주민성은 특별한 이벤트를 구상했다.
“히이익!”
파룬이라는 악마와 마찬가지로 다른 악마들 역시 인벤토리 속 세입자들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다.
심지어 한 악마의 목덜미엔 자상이 크게 남아 있었다.
3번 세입자가 참지 못하고 목이라도 잘라버리려 했던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선물용으로 하나는 돌려보내야 하네.”
주민성의 혼잣말은 악마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어왔다.
이쯤이면 나쁘지도 않은 시기였다.
3번 세입자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건네주고 천사와의 연줄을 만들어 두는 것도.
“어쩌겠냐. 악마가 악마 했는데. 누가 좋으려나.”
골라 보내는 재미를 느끼려는 순간.
악마들이 손사래를 치며 주민성을 말렸다.
“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왜. 뭐.”
“저희와 협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협상이라면 들어서 나쁠 게 없었다.
모든 건 정보가 될 테니까.
“대신 이상한 제안이면 파룬하고 똑같이 될 거다.”
지금도 건물은 실시간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원동력은 방금 재배치한 파룬이었고.
“……진명까지 뱉었다고? 그 파룬이?”
이름에 큰 의미가 있던 걸까.
악마들의 치열한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그리곤 어느 시점부터 너 나 할 것 없이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협상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뭐든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뇨! 저 녀석보단 제가 더 오래됐습니다! 저만 살려주셔도 됩니다!”
“제가 오른팔이었습니다! 저야말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어필하는 것은 물론, 주민성의 침묵이 길어지자 양상은 천하제일 약자 대회로 흘러갔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아카데미에서 따돌림을 당해…….”
“저는 아직 여자친구도 못 사귀어 봤…….”
가관이었다.
애초에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었다.
그저 자신이 흡수한 인간의 슬픈 기억만을 강조할 뿐이었으니까.
‘상관없겠지. 어차피 잘됐어.’
3번 세입자를 위한 선물은 나중으로 미뤘다.
가증스럽긴 해도 연기력 하나는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역할은 바람잡이로 정해졌다.
“좋다. 유예기간을 주지.”
“가, 감사합니다!”
“내일. 이곳에 다른 악마들이 모일 거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주민성은 악마들에게 저마다의 임무를 부여했다.
***
다음 날 오전.
제법 이른 시간임에도 대전 보훈병원엔 수많은 차량이 진입하고 있었다.
저 멀리 깔린 어둠조차 이들에겐 제약이 아니었다.
“젠장. 많이도 모였군.”
“걸려있는 게 워낙 크니까요. 그래도 백작님이라면 분명 잘 될 겁니다.”
“그래야지. 지금 몸뚱이라면 분명 가능성 있다.”
차량엔 저마다의 포부를 품고 찾아온 악마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대부분 여의도 직행보단 건물의 혼돈화를 통해 튜토리얼 탑에 입장하려는 이들이기도 했다.
대체로 신중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타입의 악마들이 대다수였지만 이번만큼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설령 함정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부딪혀야만 했다.
걸려있는 물건이 상위 차원 공개 입찰권이었으니까.
“어디 한번 보자고. 서울의 왕이 어떤 놈인지.”
악마 백작 루아노.
그는 마산의 상징이자 SS급 능력자인 임태준의 몸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의 능력과 몸의 상성도 터무니없이 좋았다.
갈리우스 공작 최철진을 제외한다면 지금의 그는 한국 최강급으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저 발톱을 감추고 있었을 뿐.
“이쪽입니다. 손님. 차량은 제가 주차해 드리지요.”
“……!”
명백한 악마어였다.
분명 격이 높지 않은 악마임엔 확실하다.
하지만 턱없이 약한 악마도 아니었다.
원래의 세계였다면 꽤 많은 수하를 이끌고 제법 풍족한 영지를 가졌을 법한 기사급은 됐다.
심지어 한 놈은 남작급이다.
그런 악마조차도 이곳에선 발렛파킹을 전담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이군.”
루아노가 탑승한 차량 운전자는 집사장이었다.
이조차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애초에 집사장조차도 탑승자가 루아노 백작이 아니었다면 모욕감을 느꼈을 테니까.
그게 악마들의 상식이었다.
이런 상식조차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내 기억이 잘못되진 않았을 텐데.”
임태준은 분명 최상류의 인생을 살아온 인간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도 발렛파킹은 분명 F급이나 일반인들이 전담해왔었다.
“손님. 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차 키. 주시겠습니까?”
“……미치겠군.”
심지어 이곳의 발렛파킹 전담자들은 손님 상대로도 은은한 분노를 뿜어대고 있었다.
손님이 왕이라는 상식이 철저하게 통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격을 눈앞에 두고도 그런 소릴 하는가?”
“……갑질입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오히려 뻔뻔하게 백작의 이름을 물어오고 있었다.
“저희 바쁩니다. 자꾸 방해하시면 왕의 눈 밖에 날겁니다.”
“크, 크흠!”
루아노 백작은 필사적으로 분노를 조절했다.
지금은 이런 서열싸움보단 대의를 추구할 때.
무엇보다 우선인 건 공개 입찰권이었다.
“집사장. 차 키 넘기게.”
“아, 알겠습니다.”
루아노 백작은 다시금 인내심을 발휘해 기사들에게 사과했다.
“바쁠 텐데 미안했네.”
휙.
기사는 대답없이 차 키를 낚아채곤 그대로 차량에 탑승했다.
“…….”
“차, 참으셔야 합니다! 백작님!”
“…후후.”
왜인지 루아노는 분노를 곱씹고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배, 백작님?”
“후후……! 서울의 왕. 무서운 심계를 가졌군.”
“심계……. 말씀이십니까?”
“그래. 인간들의 말로는 테스트 같은 거다. 자신과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지, 기사들을 시켜서 떠본 게 분명해.”
그 증거로, 근처의 다른 차량에서도 시비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 내가 누군지 아나! 자신 있나!”
“기사 주제에 어딜 감히!”
그런 모습에 루아노는 크게 기뻐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1차 시험이었음을 확신하는 기쁨이었다.
“크크크……! 아주 좋군! 들어가지!”
“예!”
***
한편, 주민성은 대회의실 옆 개인실에서 침대까지 꺼내 편하게 쉬고 있었다.
표정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바로 메시지 때문이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제물이 확보되었습니다.]
[건물의 혼돈화가 가속됩니다.]
모든 게 예상대로였다.
이 건물은 주변의 모든 감정을 먹이 삼아 성장하는 건물이었다.
여기서 예외사항은 오로지 건물주뿐.
그 외 모든 대상이 제물이었다.
“좋았어. 이 정도 속도라면 건물의 혼돈화는 오늘 끝난다.”
주민성은 이곳에 찾아온 악마들을 더욱 열 받게 하기 위한 추가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