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매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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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5.
“…그래?”
이용료를 내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구속할 확실한 수단이 생긴 거니까.
“그러든가.”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양수찬을 향해 납부용 인벤토리를 띄웠다.
“참고로. 설명해 줄지도 모르지란 선택지는 없다. 설명해야 해.”
“…알겠다.”
곧이어 이용료가 납부됐다.
애초에 양수찬의 지갑엔 제법 많은 현금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기 보단, 악마들에게도 별도의 현금 사용처가 존재할 가능성이 더욱 컸다.
차원 경매장도 있는 마당에 악마라고 없을까.
게다가 양수찬을 자처하는 눈앞의 악마는 평범한 녀석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빙의가 풀리진 않는군.’
명일학과 달리 양수찬의 악마 빙의는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나 지나서일까.
아니면 악마의 통제력이 강해서일까.
답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확실한 점은, 눈앞의 악마가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는 거다.
여태 만난 악마들의 개성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악마들 역시도 능력자들처럼 저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라면집에 난입했던 악마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고, 모텔의 악마는 카오스 게이트와 비슷한 공간으로 상대를 인도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런 녀석들은 대체로 무지성 악마에 가까웠다.
진짜배기들은 다르다.
놈들은 본연의 능력을 끝까지 숨기는 편이었다.
특히 이현에게 빙의했던 악마가 양수찬과 비슷했다.
긴 시간 인간을 관찰해 왔고, 제대로 사회에 녹아든 케이스였다.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
나름의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는 증거였다.
그 결과, 이현에게 빙의했던 녀석은 지나친 여유를 부리다 주민성에게 되레 당했다.
양수찬도 마찬가지다.
혼돈화가 진행중인 건물을 얻고 나서의 노골적인 행보로 길드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우선 혼돈화부터.”
이용료를 내고 나름의 만족감을 얻은 양수찬이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혼돈화는 말 그대로의 뜻이다. 건물 그 자체를 혼돈으로 만드는 거지.”
“그래서 혼돈이 뭔데.”
“너는 혼돈을 모르는가?”
“…도돌이표 금지.”
“…….”
어이없게도 양수찬은 실제로 주민성을 정말 모르냐는 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양수찬은 건물 이용자가 되었기에 조금의 거짓도 아닌 진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본 게 확실했다.
“…놀랍군. 네가 점거하고 있는 카오스 게이트와 튜토리얼 탑 전부가 혼돈이다. 정말 모르겠나?”
“…어?”
“말도 안 돼…. 아니, 일단 설명부터 해주지. 혼돈화가 끝난 건물은 혼돈이 되어 지분을 행사할 수 있다.”
“…….”
뭔가 이상했다.
튜토리얼 탑과 카오스게이트가 혼돈 그 자체였다면, 혼돈 등급의 건물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라야 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는 없었다.
‘거짓말은 할 수 없을 텐데?’
게다가 양수찬은 건물 이용자.
거짓말은 확실하게 제약된다.
“…거짓말은 금지야.”
“거짓말 같나? 사실이다.”
“…….”
이러면 양수찬의 말은 사실이 맞다.
제약이 깨진다면 따로 메시지가 떠올라야 할 테니까.
여기서 주민성이 파헤쳐야 할 건, 정확한 혼돈의 기준이었다.
“지분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뭐지?”
“지분 행사는 만능이지. 제약된 힘을 개방할 수도 있고, 마수나 마인들을 이곳 차원에 소환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
“…그럼 네가 혼돈을 통해 얻으려던 건?”
“간단하다. 아마 날 포함해서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악마들이 같은 생각이겠지. 튜토리얼 탑 1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능. 혹은 튜토리얼 탑 1층에 재입장 할 수 있는 권한. 이걸 얻기 위해서다.”
“…….”
튜토리얼 탑은 확실히 비범한 건물이 맞았다.
단순히 등반만 해도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탑의 재입장 부분이었다.
“탑의 재입장이…. 가능하다고?”
“그래. 네가 죽인 갈리우스 공작도 그런 악마였다. 그는 수십 개의 차원을 멸망시켰고 그만큼 튜토리얼 탑을 올랐었지.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가졌기에 그는 다른 차원에서 힘이 제한된다. 너는…. 정말이지 운이 너무나도 좋았다.”
“…….”
주민성은 말을 잃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갈리우스가 뭔데.”
“…최철진. 그렇게 말하면 이해하겠군.”
“아.”
드디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최철진은 악마들 중에서도 엄청난 고인물이었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그는 대놓고 세력을 일으켜 튜토리얼 탑을 향해 전쟁을 걸어온 인물이기도 했다.
죽어 가면서도 범상치 않은 암흑 현상을 일으켰고.
‘확실히 최철진은 어딘가에 숨어 부하들만 굴리고 있었지.’
그렇게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주민성 앞에 나서지 않았다는 건, 불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그게 알고 보니 다른 차원에선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거였고.
그제야 하나둘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충 알겠다. 오히려 힘을 숨기는 악마들이 사실은 더 강한 놈들이다?”
“그래.”
이현에게 빙의했던 악마.
그리고 눈앞의 양수찬에게 빙의한 악마.
둘은 아무래도 급이 높았던 모양이다.
기록상으론 A급보다 더 강하다는 평가였는데, 생각해보니 양수찬 역시 공간 진동 능력 말고는 별달리 선보인 능력이 없었다.
보통의 악마라면 고유의 능력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충분히 주민성이 제압할 수 있었던 수준이었다.
“좋아. 이해했어. 그럼 제물에 대해서 설명해.”
“…설마 제물도 모르는 건가?”
“…….”
다시금 양수찬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결국 납득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
설명이 재개됐다.
“제물은 생명체의 감정이다. 지성이 높은 생명체일수록 강력한 감정을 내뿜을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감정은 아주 강력한 자원으로 쓰인다.”
“…거참. 혼돈화는 어느 정도로 제물을 받아야 끝나는 건데?”
“목표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원했던 건 딱히 크지 않다. 튜토리얼 탑에 입장만 하면 그만이었어. 애초에 이 차원엔 이미 너무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 분명 이 세계 최강자라는 협회장도 다른 악마들과 손을 잡았던 모양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
“…….”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들까지 알게 됐다.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부분이다. 서울의 왕. 너는 협회장과 어떤 관계지? 적어도 이 인간 기억 속에는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더군.”
“…….”
“단신으로 우리 백작가의 일원들을 전부 제압해낸 능력자는 흔치 않다. 다들 나름의 제약은 있지만, 보통의 인간에게 패배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아.”
“…….”
주민성으로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백작가니 뭐니 해도, 실제론 심각할 정도로 상대하기 쉬운 상대였다는 것이 팩트였으니까.
말 그대로 호락호락한 상대였다.
일단은 단편적인 정보만 공개하고 새로운 정보를 챙겨보기로 했다.
“협회장이라면 잘 알고 있지. 나와 관계되어 있으니까. 그보다, 제물에 대해서 더 궁금해진 게 있어.”
“뭐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그곳에서 감금되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인간들이 있었다.”
“……오오?”
바로 포장마차 이야기였다.
왜인지 포장마차에 갇혀 있는 사람들과 제물에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보통의 힘으론 구현할 수 없는 경지일 텐데? 정말로 꿈과 같군….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면, 제물은 별달리 필요 없을 거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쌓이는 에너지만 활용하면 될 테니까! 아주 악마적인 발상이군! 서울의 왕! 너는 그렇게 제물을 축적해왔는가?”
“…….”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양수찬은 정말로 협회장과 크게 연관되어 있지 않았던 악마였다.
그리고 협회장에 대한 극찬까지 더해졌다.
“…악마적인 발상이라.”
“그래! 그 작품이 실존한다면 내 눈으로 보고 싶군! 만약 그런 공간이 지금도 활성화 중이라면 너에겐 악마의 재능이 확실히 있다! 그것도 공작급의!”
양수찬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이로써 협회장은 악마들에게도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포장마차가 만들어진 진짜 목적도.
‘협회장은 그렇게 나름의 제물을 쌓아 왔었군.’
그런 공간에 부모님이 연관되어 있었다.
꽈드득.
주민성은 순수하게 분노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협회장은 악마의 재능을 가졌지만 악마까진 아니었기에.
오히려 협회장과 거래하던 악마에게 더 관심이 갔다.
적어도 최철진 수준의 악마쯤은 되었을 테니까.
주민성은 그 악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현 씨에게 빙의했던 악마.’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처리했는지만 알고 있었다.
주민성은 그 악마를 태양의 순례지로 귀양 보냈고, 그로 인해 하위 차원이 시끄러워졌다는 정도가 기억난다.
그런 점들 때문에 주민성은 굳이 악마의 영혼을 재배치하지 않고, 확실하게 죽이는 것으로 노선을 바꾼 상태였고.
“어떤가!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이젠 협회장도, 갈리우스 공작도 없어! 나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 보자구! 친구!”
“갑분 친구네.”
쾅!
주민성은 그대로 양수찬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찍었다.
“크아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냐!”“누가 누구랑 친구를 먹어?”
“한 번만 봐주겠다! 다시 잘 생각해 봐!”
“…안 해. 임마. 애초에 지금 너랑 내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생각하냐?”
“나는 제대로 된 이용료를 지불했다! 분명 이 나라엔 이런 말도 있을 거다! 손님이 왕이다!”
“얼씨구.”
분명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존재한다.
하지만 건물주에겐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특히 매매도 아닌 임대 형식이라면, 갑으로서의 권한은 확실히 건물주에게 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용료를 내겠다고 한 거야?”
“그래! 왕의 친구가 될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다니!”
“에휴.”
악마가 되기 전의 양수찬은 생각보다 머리 좋은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정도면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었다고 봐야겠지.’
혼돈 건물과 관련된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놈들의 목적이 튜토리얼 탑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이 소모품처럼 쓰일 뿐이었고.
이런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튜토리얼 탑의 방비가 생각보다 굳건해서였다.
자신보다 강력한 최철진 세력이 무너졌기에 정공법을 택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주민성에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궁금한 게 있다.”
“뭐지?”
“악마도 생명체 맞지?”
“…그렇다만?”
답이 나왔다.
아무리 악마가 상대라 한들, 굳이 살인을 저지를 필요도 알게 됐다.
주민성에겐 아주 훌륭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상대는 저항도 할 수 없는 건물 이용자가 된 상태.
“네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저, 정말이냐!”
“나는 상대의 이름만 알면 자유롭게 상대를 죽일 수 있다.”
“……!”
우선 성아영의 능력을 공개했다.
교묘히 핵심 내용을 감추긴 했지만.
“선택권을 주지. 너의 진짜 이름을 말해라.”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지?”
“참고로 양수찬이라는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 죽일 수 있지.”
“…….”“네 진짜 이름을 말해. 악마로써의 이름. 그러면 살려준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건넸다.
죽기 싫으면 죽을 위험이 생기는 약점을 내놓으라는.
“…그건 협상이 아니다. 서울의 왕.”
“협박인데.”
“…….”
“실험하고 싶어서 그래. 참고로 네게도 이득이야. 이 실험의 결과는 너도 알 수 있거든.”
주민성은 양수찬을 계속해서 몰아세웠다.
저항은 통하지 않는다.
양수찬 역시 지금쯤 깨달았을 터였다.
주민성을 향해선 아무런 능력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걸.
양수찬은 건물 이용자였다.
건물주는 절대 공격해선 안 되는 상대로 인식되어 있다.
“진명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 그건 누구에게도 알려줘선 안 되는……!”
양수찬이 크게 당황했지만, 주민성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름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절망감과 무력감을 최대한 증폭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주민성에겐 이를 절정으로 끌고 가는 핵심 능력이 존재했다.
사실은 이름도 필요치 않다.
“영혼 재배치. 병원.”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얘.”
[악마 백작 뤼켈톤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양수찬에게 빙의했던 악마는, 병원의 혼돈화를 위한 재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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