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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매수 (2)
2022.07.24.


허공에 튀어나온 건물 잔해와 부딪혀 비행 속도를 줄였다.

쿵!

동시에 몸을 비틀어 건물 잔해를 걷어차는 테크닉을 발휘했다.

이로써 추락 속도는 배가된다.

쉬이이익!

그리고 지상과 닿기 전, 다시 한번 몸을 비틀어 착지 준비를 마쳤다.

쿵!

주민성은 당당하게 병원 정문으로 추락했다.

물론 이경수의 동의는 필요 없었다.

평범한 추락이 아니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빠른 추락이었다.

“커헉! 허억! 헉! 잠시만요!”

“아뇨. 바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는 너무 불리해요! 최소한의 작전이라도……!”

아무리 기습이 유리하다 한들, 상대의 역량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기습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게다가 수적 불리함까지 떠안은 상황.

이경수의 표정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작전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공유되지 않았을 뿐.”

당연히 주민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불리한 싸움을 즐기는 성향도 아니었고.

“수적으로는 몰라도, 질적으로는 무조건 유리하거든요. 전혀 불리하지 않습니다.”

“……예?”

질적 우위만큼은 확실했다.

주민성에겐 인벤토리가, 그리고 인벤토리 속 세입자들이 있었으니까.

여차하면 전원을 소집하는 것으로 악마들을 제압할 심산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살기인 성아영과의 영상통화라는 플랜B도 있다.

상대가 방어 능력에 특화되었을 경우 사용할 카드였다.

영상 속 인물들을 보여 주며 이름만 알려 주면 그것으로 끝인 작전이다.

“작전도 나름 철저하게 구상되어 있어요.”

“……제 눈엔 그저 기습과 돌격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경수로선 불가항력이었다.

가자고 하면 가는 수밖에.

아지트 위치를 알려준 순간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정 곤란하시면 근처에서 숨어 계셔도 되고요.”

“……아닙니다. 믿겠습니다. 어차피 전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경수는 C급 파동 능력자였다.

좀 더 자세히 풀자면 상대 근육에 큰 부담을 주는 근접 디버퍼.

디버퍼라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지위는 있겠지만, 근접해야만 능력이 적용되는 점은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어지간한 근접 전투 능력자는 신체 강화나 가속 계열의 초인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네. 잘 따라오세요.”

병원 외부엔 아무런 경비 인력도 없었다.

수뇌부의 악마화가 끝난 지금, 근방에서 이들을 제압할 상대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주민성으로선 감사할 일이었다.

상대가 악마인 걸 떠나서, 건물 상태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최상급이다.’

애초에 병원 단지부터가 어지간한 대학교 캠퍼스 수준으로 넓었다.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었을 터였다.

지방 의사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민성은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 내부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크릴린의 소유입니다.]

[소유권을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음?”

당황스럽게도, 예상과는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선호가 소유 중인 건물에 들어갈 때와 비슷한 느낌의 내용이었다.

“…….”

메시지는 더 있었다.

[혼돈화가 진행 중인 건물입니다.]

[제물이 부족해 혼돈화 진행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번에도 혼돈이었다.

혼돈의 위령제부터 혼돈의 존재까지.

확실히 대격변 종식엔 전혀 도움되지 않을 법한 내용들이다.

게다가 제물이라면 혼돈의 위령제라는 나쁜 사례까지 있었다.

“……1절 매너 안 하네.”

여기선 진정한 건물주의 권한을 발휘할 때.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건물 소유권을 빼앗았다.

“압수.”

압수라는 말과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가 추가됐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병원(혼돈화)가 추가됩니다.]

[해당 건물은 부가효과가 발현되지 않습니다.]

일단 소유권을 빼앗긴 했지만, 상당히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서울과 달리 지방의 악마들은 이런 식의 편법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특히 위협적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악마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판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혼돈화를 진행 중인 건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악마들을 유인할 무언가가 필요해.’

튜토리얼 탑으론 부족했다.

악마들을 유인할 더욱 강력한 미끼가 필요해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이곳은 적진 한가운데니까.

“아마 3층에 있을 겁니다.”

“넵. 3층으로 갈게요.”

우선은 병원의 악마 정리가 먼저였다.

건물 소유권을 빼앗은 순간부터 건물 내부에 있을 악마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혼돈화가 진행 중이라는 건물의 존재만으로 상대의 계획을 깨 버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심지어 혼돈화 진행은 중단된 상태였다.

생존자들의 제보 때문인지, 주민성의 침입을 감지한 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선택지는 세 개쯤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건물 폭발이었다.

혼돈화가 진행 중인 건물 자체를 파괴해 상대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고, 건물 자체의 등급도 높을 테니 파괴력도 어마어마할 터였다.

어지간하면 한방에 악마를 죽일 수도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건물의 혼돈화를 풀어내는 것.

이 방법 역시 간단한 편이다.

시간 역행으로 건물 자체의 시간을 되돌리면 되니까.

게다가 악마 생포에도 성공한다면 혼돈화의 방법과 목적 등을 알아내 상대의 의도를 간파할 수도 있었다.

병원이라는 최상급 건물은 덤이었고.

세 번째 수단은 도박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복잡하기까지 하다.

건물의 혼돈화를 주민성이 직접 성공하는 방법이었다.

인류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가능성이 있었지만, 주민성 본인에겐 나쁜 얘기도 아니었다.

혼돈화 성공을 통한 최초 보상이 확정되어 새로운 능력이 생길 테니까.

게다가 악마들 역시 바보가 아니다.

분명 튜토리얼 탑과 비견될 만한 보상이 있기 때문에 건물의 혼돈화를 진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에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어느새 3층에 도착했다.

건물 소유권이 사라져 패닉상태에 빠진 악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란 말이다! 어서!”

“크윽! 알겠습니다!”

이경수가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물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죠? 굉장히 끔찍한 목소린데…….”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되지 않을 뿐.

만물 소통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정체는 악마가 확실했다.

주민성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누구냐!”

“소속과 정체를 밝혀라!”

악마들이 뒤늦게 한국말을 걸어왔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턱을 날려 버린 이후였으니까.

콰아앙!

“끄어어억!”

턱을 적중당한 녀석은 길드장 양수찬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쉽게 공격을 허용했다.

그 증거로 주민성의 주변 공간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잉!

양수찬의 기존 능력인 공간 진동 능력이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이런 시국에 기습이라니! 비겁하다!”

주민성은 빠르게 자리에서 회피, 그리고 동시에 양수찬에게 쇄도해 앞차기를 날렸다.

지이잉!

공간 진동 능력은 순수한 공격 능력이 아니었다.

회피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방금처럼.

“흥! 신체 강화 능력자인가!”

앞차기를 피해 낸 양수찬이 주민성에게 비아냥댔다.

하지만 방금의 앞차기는 주민성의 메인 공격이 아니었다.

주민성은 신체 강화 능력자가 아닌 건물주 능력자였으니까.

건물주에겐 아주 훌륭한 상대 생포 능력이 존재했다.

“이용료 청구.”

건물주는 이용료를 청구해 상대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양수찬의 명치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쾅!

“끄르르륵!”

“경수 씨.”

“네!”

그리고 이경수의 차례.

이경수는 빠르게 접근해 양수찬의 근육을 파열시켰다.

“끄아아아아아!”

고통 속에선 온전히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인간도, 몬스터도, 그리고 악마에게도 해당하는 진리였다.

그 사이, 주민성은 모여 있는 다른 악마들을 제압해 나갔다.

“젠장! 고위 능력자인가!”

“아닌데.”

별다른 능력을 쓴 건 아니다.

순전히 피지컬만으로도 싸움이 가능했으니까.

병원의 건물 부가효과를 받지 못할 뿐, 텐트가 보정해 주는 신체 능력은 어지간한 신체 강화 능력자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김정남에게 배운 효과적인 타격법이 매우 유효했다.

콰앙!

“끄륵……!”

한 대만 제대로 때려도 기절 확정이었다.

“여기요.”

“아! 네!”

이경수와의 호흡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핸디캡이 커서 그렇지.

표면상 A급, 그리고 잠재적 S급 이상의 양수찬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할 정도면 능력 자체의 출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세력의 생존자가 아닌 공식 세력원으로 영입해도 될 정도.

“수고하셨습니다.”

“……예!”

이경수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젠 무한한 존경과 신뢰가 느껴진다.

말로만 듣던 서울의 왕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애초에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능력자끼리의 싸움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죽이지 않고 제압하신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아아. 물론이죠. 물어볼 것들이 좀 많아서. 잠시 자리좀 비워 주시겠습니까?”

“……아아. 실례했습니다.”

세력원으로 영입할 계획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주민성이 추진할 것은 건물의 혼돈화.

인류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는 선택지를 골랐기 때문에 보안은 상당히 중요했다.

‘어차피 책임은 내가 질 거니까.’

이경수는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방금의 싸움으로 많은 고민들이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모습이다.

“일단 나머지는 선물용으로 챙겨 둘까.”

악마들을 살리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죽이면 세입자에겐 마이너스였다.

특히 3번 세입자에겐 반드시 악마의 수급을 챙겨가야 하는 목적이 존재했다.

기왕이면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내고 제대로 된 보상으로 치환하는 편이 낫다.

“일단 포장부터 해야겠군.”

주민성은 기절한 악마들에게 포스트잇을 붙인 후 텐트로 포장해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포스트잇 내용은 별 거 없었다.

-죽이지 말 것. 죽이려면 제대로 된 협상 카드를 제안하도록.

선택은 세입자의 몫으로 남겨 뒀다.

이것으로 부가적인 보상도 반쯤 확정된 상황.

대장 격인 양수찬에게 만큼은 다른 조치를 했다.

수납하지도 않고, 인벤토리에 챙겨 둔 능력 봉인 도구를 사용해 양수찬을 구속하는 것으로.

툭툭.

“야. 악마.”

“끄으……!”

양수찬이 깨어나자 다시금 고통어린 소리를 내고 있다.

이경수가 걸었던 근육 파열이 계속되는 모양이다.

“젠장……! 이럴 때 하필 기습이라니……!”

뭔가 억울하기라도 했던 걸까.

생각보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뒤늦게 주민성을 포착했다.

그제서야 한국말을 하기 시작한다.

“……서울의 왕인가.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지?”

양수찬도 주민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의 왕이라는 단편적인 정보가 전부였지만.

“뭐긴 뭐야. 네가 악마니까 잡으러 온 거지.”

“게다가 건물 이용료라니. 소유권까지 빼앗았나.”

메시지는 악마한테도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용료 청구는 협상용 카드였다.

혼돈화가 끝난 건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물론 이용료를 받지 않으면 받지 않는 대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었고, 받으면 상대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었기에 뭐든 좋은 결과였다.

주민성이 양수찬에게 물었다.

“혼돈화가 뭐냐?”

“……!”

“멀쩡한 병원을 왜 이상하게 바꾸냐고.”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다 알고 왔으니까 빨리 불어라. 이용료 청구된 거 보이지? 시간 끌면 너만 손해야.”

“……크윽.”

혼돈화 빼고는 모든 걸 안다는 듯 말했다.

심리적으로 몰아세우기 위함이었다.

“혼돈화. 제물. 그리고 건물의 혼돈화가 끝날 때 생기는 모든 효과. 전부 말해라.”

단어가 늘어갈 때마다 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말하지 않았던 정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어이없는 모양이다.

양수찬이 고심 끝에 말했다.

“……조건이 있다.”

“조건?”

“이용료만 내게 해 준다면, 설명해 줄지도 모르지.”

“…….”

황당하게도 조건은 주민성에게 더욱 유리했다.

건물 이용료를 자진해서 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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