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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 (2) (233/250)


전황 (2)
2022.07.22.


악의 조절 잘하는 아기 고블린 불룽이는 그대로 크룩스의 뒤를 따랐다.

“크룩.”

“키엑…….”

크룩스의 발길이 멈춘 곳엔 다른 아기 고블린도 있었다.

“응키엑!”

“키애!”

대충 머릿수를 파악한 크룩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고블린들에게 말했다.

“크룩.”

크룩스의 전매 특허 능력인 징검문이 열렸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징검문이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크룩스에게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만큼 크룩스가 강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물론 아기 고블린들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하지만 왜인지 강화도 거치지 않았을 크룩스에게선 넘보지도 못할 위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응키엑!”

“키애앵!”

크룩스가 여전히 강한 이유.

몬스터 특유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징검문 너머에 있을 거라고.

아기 고블린들은 아장아장 징검문으로 향했다.

지잉.

***

같은 시각 일산 게이트.

이곳은 인간이 지배하는 게이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날뛰지도 않는다.

기이한 게이트였다.

“취익!”

“이, 이건 어떠십니까…….”

가르취는 느긋한 표정으로 상납된 물건을 확인했다.

나름의 꼼꼼한 과정을 거쳤다.

“취에익!”

평범한 콧소리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모두는 이 콧소리가 내포한 알고 있었다.

허락을 알리는, 긍정적인 콧소리였다.

“감사합니다!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이곳은 가르취와 차크취라는 두 오크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게이트였다.

“젠장…….”

건물에서 빠져나온 한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더욱 긴장해야하는 건 지금부터였다.

“…조리실은 저쪽이다.”

“…….”

남자는 건물 외곽을 지키는 생존자들에게 떠밀리듯 조리실로 향했다.

“허튼짓하지 마라.”

“크윽…….”

남자는 억울함을 삼키며 참치 통조림을 정성스레 벗겨냈다.

“상차림은 투박하게. 인스턴트 밥은 무조건 큰 밥이다.”

지금은 배불뚝이 오크의 식사 시간.

정확히는 하루 20번의 식사 중 13번째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이렇게 스무 번의 끼니를 만족시켜줄 바에 어디론가 도망가면 분명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

“너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거냐…….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반복할 거지?”

“아직 신입이라 잘 모르나 본데 경험담 하나 얘기해줘야겠군. 여기서 도망가다 걸리면 머리통이 그대로 쪼개진다. 그날은 40번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지. 참고로 여태 도망에 성공한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제기랄….”

“그래도 걱정 마라.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도 이곳의 규칙 덕분이니까. 우린 네놈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

“너도 악마 맞지?”

“네놈들….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 여기선 숨길 이유도 없거든. 넌 중국에서 온 건가?”

“…아니. 평양이다.”

“호오.”

놀랍게도 여기 모여 있는 생존자들은 저마다 한 끗발 날리던 악마였다.

“경고하지. 확언컨대, 여기서 도망가는 건 불가능하다. 잠자코 기회를 기다리기만 해라.”

“…자존심도 없는 놈.”

“자존심 없긴 너도 마찬가지다. 자존심 있는 녀석들은 진작 죽었으니까. 그렇지?”

“…….”

악마는 혼자가 아니었다.

평양에서 나름의 세력을 이룬 제법 강한 악마였다.

심지어 내려오던 중 다른 지역의 악마들과 연계에도 성공해 기세등등하게 남쪽으로 내려오던 악마였다.

“죽으면 내세울 자존심도 없어진다. 여의도를 노리는 녀석이 너희들뿐인 줄 아는 거냐?”

“…무슨 말이지?”

“꽤 멀리서 내려온 모양이군. 우리도 너와 같은 형편이다.”

“…뭐?”

“우린 개성에서 내려왔거든.”

“…….”

놀랍게도, 이곳에 잡혀 있는 생존자들은 전부 악마였다.

“그래도 메리트는 있다. 최종 지분이야 조금 부족해지겠지만, 적어도 이곳은 인간들이 노리지 않는 지역이거든.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악마사냥에 당할 일이 없다는 거지.”

“…악마사냥?”

“젠장. 평양 출신이라서 그런가? 정보력 한번 더럽게 취약하군.”

“미, 미안하다….”

“서울의 왕이 악마사냥을 선포했다. 나름의 악마 판별법까지 공유했더군. 지금도 어딘가에선 동족들이 쉴 새 없이 사냥당하고 있을 거다.”

서울의 왕.

악마들에겐 무시무시한 단어였다.

수많은 차원을 지배하던 악마 공작 갈리우스가 서울의 왕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갈리우스는 악마중에서도 최상위종에 해당했으니까.

“…그런 차원이 여태 존재했던가?”

“아니. 여기가 최초다.”

“…젠장. 운도 없군.”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고 봐야겠지.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건 튜토리얼 탑밖에 없어.”

“결국 인내해야 하는가….”

그 순간, 거대한 괴성이 일산에 울려 퍼졌다.

“취이이이이이이!”

차크취의 거대한 괴성이었다.

“젠장. 얘기가 길어졌군. 저건 배고프다는 콧소리다. 빨리 상차림부터 끝내라. 얘기는 나중에 하지.”

“크윽! 알겠다!”

일산 게이트엔 생존자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하나둘 빠져나가더니, 지금은 전부 도망가고 없다.

“취익.”

“췌익.”

그때, 가르취와 차크취는 이틀이나 굶게 되었다.

덕분에 두 오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생존자들이 도망가게 놔두면 안 된다는 교훈을.

그리고 새로 찾아오는 생존자들은 반드시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췌이이이이이!”

“거의 다 됐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밥 나가신다!”

***

주민성은 성아영의 도움으로 인벤토리를 빠져나왔다.

물론 부모님을 비롯한 협회장 피해자들은 남겨뒀다.

이장호가 소개해준 사람들도 함께.

인벤토리 물건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했으니 케어와 관련해선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라.

“후우. 수고했어.”

“응응.”

도착한 장소는 백삼빌딩 88층.

“밥은 먹었어?”

“응.”

성아영의 입을 봉인한 반창고는 떼어 둔 상태였다.

적어도 이곳은 휴식하기 위한 장소인 데다, 이름 부르지 않기 훈련도 병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장 박사한테 라면 챙겨 왔는데. 좀 줄까?”

“아니.”

그럼에도 왜인지 성아영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뭔데. 왜.”

“요리 연습할 건데, 맛만 보면 안 돼?”

“…….”

난감한 질문이었다.

될 수 있으면 성아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방침이었기에 더더욱.

“요리는 둘째 치고, 식재료는 있어?”

“응. 거래소.”

“아.”

백삼빌딩의 관리인은 봉춘향이었지만, 이곳에서 90층까지 가는 데엔 고작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인벤토리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이 다녀온 모양이다.

의외로 둘의 사이는 친했던 걸까.

봉춘향이 성아영의 요청을 순순히 허락해줬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순수히 호기심도 생겼다.

“무슨 요리 할 건데?”

“팔크라스 갈비찜.”

“팔크라스…….”

A급 한우 미만이면 재료를 핑계로 잘 설득할 계획이었지만, 팔크라스 요리라면 주민성도 쉽사리 거절할 수 없었다.

원육 자체가 워낙 뛰어나니까.

대충 구워도 맛있고, 바싹 구워도 맛있는 고기였다.

그런데 팔크라스 갈비찜이라니.

이러면 흥미가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조금만 먹어 볼게.”

“오키!”

백삼빌딩엔 조리를 위한 층이 따로 존재한다.

하지만 성아영이 향한 곳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주방.

레지던스 내부에도 간단한 조리 설비 정도는 있었다.

성아영이 주방으로 이동한 사이, 주민성은 노아가 전달해준 제보 목록을 천천히 체크했다.

“……꽤 많네.”

이상하게도 수도권 쪽 제보는 거의 없었다.

반면, 외곽 지역 제보 건수는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심지어 제주도며 백두산 인근까지도.

“그나마 가까운 곳은 대전인가…. 세력도 꽤 커 보이고. 괜찮겠군.”

물론 가장 거대한 세력은 최철진의 본진이었던 부산.

우두머리를 잃었음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방침도 딱히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악마가 최철진의 뜻을 이어받은 모양이다.

“대전 정리하고, 대구 찍고. 부산 갔다가 제주도. 그리고 성아영 찬스 쓰고 서울. 다시 북쪽으로. 이렇게 가면 되려나.”

동선은 대략적으로 그려졌다.

갈비찜 맛만 보고 바로 출발하면 될 터였다.

“다행히 이현 씨 이름은 없군.”

여전히 이현은 행방불명인 상황.

다른 차원에서도 그랬듯, 이현은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계획을 행동으로 옮긴다.

찾기야 찾겠지만, 그래도 나름 마음은 놓인 상태였다.

어차피 그 또한 건물 이용자였고, 주민성에게 해가 될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다른 차원의 이현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모로 성장할 터였다.

게다가 이젠 나름의 추리도 가능해졌다.

제보받은 이름에 하성이 없었다.

하성은 카오스게이트와 협회장 모두와 연관되었을 유력한 악마.

그리고 이현은 카오스게이트에서 무언가 주민성에게 말 못 할 사연을 얻은 상태였다.

그리고 주민성 세력에게 그나마 취약한 부분은 해외와 관련된 세부정보.

하성이 해외로 도망쳤다면, 모든게 맞아떨어진다.

“해외라면 확실히. 이현 씨말곤 별달리 쫓아갈 사람도 없으니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자.”

주민성은 창가로 이동했다.

천상의 안개로 밝혀진 주변 경관은 지친 마음을 달래줄 나름의 볼거리였다.

“고블린들도 알아서 잘 크고 있군.”

강화된 아기 고블린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구역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중립 몬스터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밤이 되면 더 볼 만해지겠군.”

아기 고블린은 마석을 자기 머리에 콩콩 찍을 때마다 작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효과가 있었다.

야경 하나만큼은 끝내주리라.

“짠.”

어느덧 시간이 흘러 팔크라스 갈비찜이 완성됐다.

비주얼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색깔부터 윤기까지 돼지갈비찜보단 소갈비찜에 가까웠다.

“…제대로 만들었네?”

“그럼! 내가 누군데!”

“앞으로 이름은 부르지 않기로.”

“떼잉.”

성아영은 푸짐한 팔크라스 갈비찜을 작은 그릇에 옮겨 주민성에게 건넸다.

“잘 먹을게.”

“응!”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보기엔 그럴싸했고, 애초에 성아영에게 장인 수준의 갈비찜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

워낙 고기가 좋은 탓에 식감은 최고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맛이 없었다.

특히 쓴맛이 너무 강하다.

“…한방 갈비찜이야?”

“아! 한약도 조금 넣었어!”

“…조금이 아닌데?”

자칫하면 한 방에 갈 수도 있는 갈비찜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많은 시련을 극복해왔다.

이 정도는 시련도 아니었다.

그저 삼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피식자의 힘을 일부 포식합니다.]

그것도 포식자의 허기와 관련된 메시지였다.

‘뭐지? 팔크라스 고기는 분명 전부 흡수했을 텐데?’

주민성은 포식자의 허기도 틈틈이 챙기는 편이었다.

발동 조건이 조금 까다로울 뿐.

포식자의 허기는 다른 차원의 것을 먹어야만 발동되는 능력이었다.

상대적으로 접하기 쉬운 팔크라스 고기는 100% 포식을 진작에 마친 상황.

덕분에 주민성은 팔크라스 고기의 효능인 위협을 감지하는 감각이 극한으로 발달한 상태였다.

[골격이 더욱 강인해집니다.]

[체내 세포가 더욱 활성화됩니다.]

[뇌 활성도가 높아집니다.]

[주변 인지력이 상승합니다.]

[소화 완료까지 남은 시간 5분.]

팔크라스 고기와 전혀 관련 없는 내용뿐.

황당하게도 익숙한 효능은 하나도 없었다.

“대박. 뭐야? 한약만 넣은 거 맞아?”

“…으응?”

주민성의 격한 반응에 당황한 성아영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뭔가 다른 걸 넣었는데?”

“…비밀의 레시피야.”

“비밀 금지….”

“아씨.”

건물주는 원한다면 비밀도 없앨 수 있었다.

건물 이용자에게 건물주는 법이니까.

“거래소 리스트 옮겨 적었거든…. 그런데 꽃이랑 무슨 약재뿌리가 있더라구.”

“…그래?”

보나마나 다른 차원의 물건일 것이 확실했다.

주민성은 빠르게 출처를 물었다.

“어디 거래소?”

“안산.”

안산이라면 노아가 관리하는 게이트였다.

그곳엔 방송 콘텐츠와 관련된 물품들만 등록되기로 되어있었다.

“이상하다. 안산에서 다른 차원의 꽃이….”

주민성은 그대로 말을 잃었다.

안산 게이트엔 다른 차원의 식물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집이었군….”

꽃집의 관리는 꽃블린의 담당이었다.

요즘은 강서구와 안산을 오가며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꽃들이 많이 생겨난 모양이다.

적어도 이전에 알던 괴랄한 성능의 꽃은 없었으니까.

“근데 그걸 왜 샀어?”

“90층에서 추천해 주던데….”

“…….”

90층이라면 봉춘향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으니 그렇게 정한 모양.

“…그래?”

“왜? 별로야? 걔가 갈비찜에 넣어보자고 했었거든.”

어째서인지 봉춘향과 성아영은 장난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모양이다.

주민성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봉춘향의 센스가 돋보였다.

포식자의 권능까지 염두에 둔 추천이라니.

“아냐. 갈비찜은 됐고, 꽃만 더 달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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