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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 (1) (230/250)


인벤토리 (1)
2022.07.19.


하루가 지났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안산 게이트 관리인은 결국 노아로 정해졌다.

복구한 최상급 건물은 안산 스타디움.

중심부라 위치도 상당히 괜찮았다.

건물 자체가 방송하기에도 상당히 좋은 환경이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정리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대장님!”

대부분의 물자는 인천으로 모이니 타협할 수 있었다.

대신, 안산 거래소엔 콘텐츠와 관련된 물품들이나 비상물품 일부가 쌓일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거래소에 직접적으로 등록될 물품은 시청자를 위한 선물 정도로 이 역시 주민성 세력에 소속된 생존자만 챙겨갈 수 있는 구조다.

나름의 내실 챙기기였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좋은 방송으로 보답해주시면 됩니다.”

팬심에서 비롯된 호의였다.

이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리인 지정은 별개.

노아는 관리인의 자격과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제보만 잘 정리해 주세요. 동선 짜기 좋게. 다른분들 도움도 최대한 받으시고요.”

“알겠어요! 안 그래도 내일 운동 모임이거든요. 도와주실 분은 많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이로써 자잘한 부분은 전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정리된 내용대로만 움직이면 그만이니까.

이는 곧 새로이 마련된 여유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쉬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주민성은 초월 편의점으로 향했다.

직원들이 전부 생존자들로 바뀐 것으로 보아 최선아가 고블린들을 계속해서 강화시키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대장님.”

“수고하세요.”

처음엔 군것질거리를 챙기기 위해 들렸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넘치는 게 돈이니까.

“편의점2. 건물 보급.”

[건물 속성에 해당하는 물품이 보급됩니다.]

[보급 권한에는 일정 재화가 소모됩니다.]

[편의점2에 건물 보급이 적용됩니다.]

들고 있는 돈만 수백억.

그리고 수령 예정된 금액 또한 수백억이다.

천만 원대의 건물 보급이라고 해 봐야 월급으로 치킨 사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체감일 뿐이다.

“이, 이게 진짜 된다고?”

“대박!”

주민성은 신입 편의점 직원들의 감탄을 받으며 아지트로 돌아왔다.

비록 최상급 건물은 아니지만, 애착을 가지고 꾸민 건물이니만큼 큰 안정감을 주는 장소였다.

주민성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다.

“혼돈의 존재는 아직 몇 주 남았고……. 하성이나 악마 견제는 노아 씨가 해주실 테고. 거래소도 대부분 활성화했어. 나머지 수도권이야 제보 받는 대로 들르면 될 일이니까.”

결과는 놀라웠다.

“드디어…….”

당장 내일까지 여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잠을 청하기엔 아직 이르다.

“인벤토리로 갈 수 있겠군.”

주민성은 휴대폰을 꺼내 성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제 인벤토리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래?

답장은 5초 만에 돌아왔다.

-누나 지금 바쁜데 ㅠㅠ 나중에 가면 안 돼?

-응. 안됨.

-인벤토리 누구랑 가는데?

-혼자.

-아. 그럼 상관없어. 돌아올 때 불러!

성아영은 백삼 빌딩의 매력에 빠진 모양이다.

아무런 문제 없었다.

어차피 성아영의 동행을 바라고 연락한 건 아니니까.

여왕벌의 권능을 사용함에 앞서 사전 동의를 받았을 뿐이다.

[텐트 5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로 건너왔다.

온갖 최고급 가구를 감상하며 휴식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주민성의 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SSS급 건물주의 자질.

지독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조력자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인벤토리엔 장 박사뿐만아니라 먼치킨급 세입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중 가장 협조적일 것 같은 인물은 11번 세입자.

천사인 3번 세입자보다 더욱 이타적인 성향을 지녔다.

‘무슨 제국의 공주라고 했었는데.’

귀족도 아닌, 황족이다.

가정교육 하나는 제대로 받았을 게 분명하다.

“오랜만이군. 크크…….”

포장마차는 장 박사가 지키고 있었다.

조리 설비도 제법 옮겨와 그럴싸한 형태를 갖췄다.

11번 세입자도 기다릴 겸,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라면 한 그릇.”

“후후. 드디어 보여줄 때가 왔군.”

“오. 드디어 개발 끝났나 보네?”

“적어도 돈을 받고 팔 정도는 된다.”

상당히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바깥과 인벤토리 내부의 시간적 괴리를 생각해도 장 박사의 라면 개발은 상당히 오래 걸렸으니까.

촤르륵! 촤륵!

장 박사의 현란한 개인기가 이어졌다.

탱글탱글한 면발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음?”

동시에, 장 박사는 입자 절단기를 거친 것으로 추정되는 미세한 가루를 면 구석구석에 살포했다.

“이것이 비밀 스프다. 국물이 아닌 면에 스며들지.”

“미, 미친.”

“아. 국물은 따로 우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후후…….”

알싸하면서도 고소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맵기 단계도 설정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

“음……. 그럼 칼칼하게.”

“그렇게 하지.”

칼칼한 맛.

한국인이라면 거부하기 힘든 맛이다.

“근데 장 박사. 저거 가격은 정했어?”

“……후후후. 일단은 8000원이다.”

“8000원이라…….”

장 박사다운 가격 책정이랄까.

그동안 공들인 것 치곤 저렴하다.

상식적으로 보면 비싸고.

“일단 먹어보고 의견 줄게.”

“좋다. 크크…….”

조리 시간은 더도 말고 덜도 아닌 정확히 5분.

그럼에도 전부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조리 과정이 있었다.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라면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가 놓였다.

“…….”

그리고 세입자들이 근처에 착석했다.

고작 접시가 식탁에 놓이는 소리 하나만으로.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위희린의 인사를 시작으로 세입자들이 한마디씩 건네왔다.

“시간이……. 많이 지났나요?”

“아아. 수개월쯤은 흘렀겠지. 사소해.”

바깥에서의 며칠이 인벤토리 안에선 수개월이었다.

그만큼 라면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고, 세입자들을 본능적으로 끌어오는 힘이 생겨 있었다.

척. 척.

곧이어 새로운 라면 그릇이 연달아 놓여졌다.

고명부터 시작해 사소한 부분에선 전부 다른 라면이었다.

“이건 양보하지 않는다. 주인장이 이 몸을 위해 개발한 특제 라면이거든. 후후…….”

“흥. 그 라면은 정도에서 크게 어긋났다. 줘도 먹지 않아.”

천마의 앙숙인 7번 세입자의 꼬투리가 이어진다.

여전히 화해는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보단, 라면이 우선이었다.

이 라면을 8000원이라는 돈을 받고 팔아도 되는지.

‘우선은 국물부터.’

라면의 맛을 좌우하는 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국물 맛은 그중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8000원짜리 라면인 만큼, 국물은 반드시 맛있어야만 한다.

“……!”

장 박사의 라면은 주민성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종로에서 먹던 라면만으로도 그 이상은 없을 거라 생각 했는데, 예상이 단번에 깨진 것이다.

“미친……. 이게 8000원이라고?”

“후후. 모름지기 판매용 라면이라면 서민 친화적이어야 하지.”

8000원은 어마어마한 배려였다.

두 배 가격인 16000원이 책정되어도 사 먹을 의향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참고로 옵션은 개인 입맛에 맞게 추가할 수도 있다.”

곧이어 새로운 접시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뷔페식을 의심할 정도로 많은 접시가.

“대박…….”

세입자들의 추천이 이어졌다.

“파를 추가하시게. 국물 맛이 훨씬 산뜻해지거든.”

“아니. 고기가 답이다. 국물 맛은 깊어야 해.”

“당연히 계란이죠! 계란 넣어 주세요! 제발!”

“나는 떡을 추천하지. 씹는 맛도 중요하니까.”

“저는 치즈를 추천해요.”

하지만 주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라면을 들이켰다.

“그냥 먹을게요. 빨리 먹고 일해야죠.”

이 정도면 충분했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클클클…….”

장 박사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성의 이런 반응에 더욱 만족한 모양이다.

“재활용 가능한 특수 보존 용기를 좀 구해 봐야겠군. 안 팔면 손해야.”

“맞는 말이다. 빨리 구해 주면 좋겠는데.”

“오케이. 빨리 구해 볼게. 라면 이름은 정했어?”

“음……. 그냥 장 라면으로 해주면 좋겠군. 바깥 활동은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 이름 한 글자라도 남기고 싶어서 말이야.”

“장 라면. 좋군.”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주민성은 11번 세입자에게 말했다.

“여기, 조사는 좀 해봤어요?”

“음……. 조금은요. 봉인이 너무 많아서 전부는 못 봤지만요.”

“봉인이라. 풀 수는 있고요?”

“그냥은 안 돼요. 적어도 저주나 해주에 능숙한 7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있어야…….”

“해주요?”

“네. 대부분 저주 계열의 봉인들이라서요. 진짜 지독할 정도로 성미 나쁜 봉인들뿐이에요.”

세입자들 중에서 가장 유순한 11번 세입자의 얼굴에 명백한 분노가 서릴 정도였다.

협회장은 그런 인간이었다.

“혹시, 해주 능력자는 통할까요?”

“……해주 능력자요? 마법사는 아닌 거죠? 이곳 차원분일 테니?”

“네.”

기쁘게도, 주민성에겐 해주 특화 능력자가 존재했다.

협회 3연구소 유물 분석팀장이었던 남자가.

주민성은 곧장 장 박사가 재료로 사용하던 땅굴 벌집 일부를 떼어 씹었다.

그리고 여왕벌의 권능을 통해 이장호를 호출했다.

“……?”

회식 중이었는지 이장호는 먹음직스런 팔크라스 고기를 입에 넣던 도중이었다.

“우붑?”

“식사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콜록! 여, 여기는?”

“비밀 공간이요.”

굳이 여기가 인벤토리임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봉인만 풀면 되니까.

어차피 세세한 이야기에 관해선 주민성보다 더 잘해줄 상대도 있었고.

“자, 장 박사?”

“음? 오랜만이군.”

당연하게도 둘은 구면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장 박사는 영혼도, 사람도 아닌 상태라서 누구나 인식할 수 있었다.

“감금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인벤토리 내부.

그중에서도 장 박사가 공들여 꾸민 포장마차는 감금이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은 오히려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분위기였다.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이왕 본 김에 라면이나 대접하지. 하나 들게.”

“라면인가……. 오랜만이군.”

이장호는 장 박사의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근처에 놓인 김치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파스스……!

젓가락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운 없게도 노린 김치의 주인이 천마였다.

“겁이 없는 작자로군.”

“히, 히익!”

이장호가 가지지 못한 건 겁뿐만이 아니었다.

눈치도 함께였다.

“저기. 이장호 씨? 부른 사람은 접니다.”

“아, 아아……? 대장님?”

이장호는 파주 연구소로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지식을 활용해 게이트 도시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장 박사. 컵라면처럼 들고 다니면서 먹게 해줘.”

“그 정도야 쉽지.”

인벤토리엔 라면 용기가 잔뜩 있었다.

굳이 자리에 앉아서 라면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본 모든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잊어주시는 게 좋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주민성은 이장호에게 휴대용 라면을 챙겨주곤 소주잔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나머지 한 잔은 11번 세입자의 것이다.

“……대, 대장님. 저는 동성애에 관심이 없습니다만.”

“……저돈데요.”

영화처럼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귄다거나 하는 전개는 없었다.

애초에 포장마차 너머의 격리 공간 진입 조건이 자리에서 소주를 먹는 것일 뿐이었다.

“고백할 생각 전혀 없으니 걱정 마십쇼. 마시면 알게 됩니다.”

말을 마친 주민성은 그대로 소주를 들이켰다.

팟.

그리곤 격리 공간이 펼쳐졌다.

팟.

뒤이어 이장호와 11번 세입자도 들어왔다.

“이,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소주가 열쇠였거든요.”

이곳은 두 번째였다.

주민성은 익숙하게 신문 스크랩을 뒤적였다.

“아직 더 이동할 겁니다. 저 너머에 공간이 또 있거든요. 여기.”

주민성이 내민 스크랩은 부모님이 갇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매개체였다.

“자, 잠깐만요.”

“네?”

이장호는 경악했다.

“여기 저주가 너무 많은데요? 이렇게 끔찍할 수가…….”

이곳은 평범하게 악의 가득한 공간이 아니었다.

사방이 저주투성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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