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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빛 (3) (229/250)


그저 빛 (3)
2022.07.18.


고대 등급 건물의 고유 효과는 이러하다.

[고대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주변을 떠도는 고대의 영혼이 건물에 깃듭니다.]

최상급은 이렇다.

[최상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관리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건물주 부재 시 관리인이 해당 건물이 위치한 게이트의 지배 권한을 얻습니다.]

그리고 최상급 고대 건물.

이 새로운 등급엔 두 종류의 등급 특징을 모두 갖춘 고유 효과가 발현됐다.

[고대의 영혼을 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건물주 부재 시 관리인이 해당 건물이 위치한 게이트의 지배 권한을 얻습니다.]

‘좋은 건가……?’

미묘했다.

오크 타운의 관리인이라면 즈쉬나 즈민성을 임명할 계획이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애초에 나한테 협조적인 영혼이 있었던가?’

주민성에겐 몇몇 영혼과의 접점이 있었다.

대부분 악령이었을 뿐.

녀석들은 싸그리 태양의 순례지로 추방당했다.

그나마 쓸 만한 영혼이라면 장 박사가 있었다.

하지만 장 박사는 고대의 영혼이 아니었다.

나름 최신식 현대의 영혼이었다.

‘그렇다고 제르취를 임명하기엔…….’

제르취는 주민성의 제안을 거절할 게 분명했다.

강제로 임명해 봐야 트롤링의 가능성까지 있었고.

-나는 더 강해지고 싶다.

-당분간 찾지 마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제르취는 강남과 송파 인근을 떠돌며 수련 중이었다.

녀석은 분명 제대로 된 성과를 얻기 전까진 주민성에게 합류하지 않을 예정이다.

“난감하네…….”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심각해진 주민성이 걱정되었는지 즈쉬가 물어왔다.

“아냐. 건물은 아주 마음에 드는데……. 이 건물, 지어진 지 얼마 안 됐지?”

“그렇습니다.”

문제점은 이것이었다.

최신형 건물에 영혼이 깃들 리가 없다는 게.

설령 영혼이 존재한다 한들, 주민성과 접점이 없는 평범한 오크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주민성은 일단 질러보기로 했다.

“관리인 지정. 즈쉬.”

“취, 취이?”

황당하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천 남동구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인천 미추홀구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그제야 주민성도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존 관리인 지정이 생명체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고대 최상급엔 영혼까지 추가로 임명할 수 있다는 정도.

영혼을 관리인으로 임명하는 건 선택 사항이었다.

“취익! 이, 이건?”

“어……. 그게 말이지.”

주민성은 즈쉬에게 관리인 권한에 대해 설명했다.

“취익! 췩!”

즈쉬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새로운 권능! 감사합니다! 로드!”

“……그, 그래.”

아무튼 더 강해졌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오크 타운에서의 작은 해프닝도 끝이 났다.

이것으로 인천의 거래소는 전부 활성화했다.

“이제부터 이 건물은 창고도 겸한다.”

“말씀을 받듭니다.”

즈쉬는 인벤토리를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즈민성은 아니다.

즈민성은 왜인지 인벤토리를 쓸 줄 아는 오크였다.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마다의 기준이 있어 보인다.

“하위 차원에서 건너오는 물품들 있으면, 여기 꾹꾹 눌러 담아둬. 가격은 100원으로 통일한다.”

“알겠습니다!”

평범하게 건넨 지시사항이었지만, 오크들에겐 아니었다.

“못 들었나! 움직여라! 어서!”

“취익!”

이곳은 센트럴 타워처럼 이수길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언제나 전쟁이 준비되어 있는 오크 타운이었다.

병사라면 얼마든지 있었고, 하위 차원에서 추가로 충원해올 수도 있었다.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인벤토리가 생겼다! 발취! 하위 차원으로 이동해라! 축적 중인 물자의 5할을 이쪽으로 가지고 온다!”

“치, 치이!”

한쪽 송곳니가 없는 살벌한 오크 한 마리가 빠르게 하위 차원으로 넘어갔다.

곧이어 어마어마한 양의 수레가 튀어나왔다.

모든 수레는 주술사 양성소를 향했다.

“저기 즈쉬.”

“말씀하십시오.”

“근데 주술사 양성소는 뭐야? 저기 들어가면 주술사가 된다는 건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저 건물엔 부족들을 통합하며 되찾은 토템들을 모아뒀죠. 토템엔 선조들이 저마다 각성했던 주술들이 담겨있습니다.”

“주술이라?”

“예. 먼 옛날의 오크는 힘만 쓰지 않고 비와 번개, 불과 폭풍, 지진과 해일도 일으키곤 했었지요.”

대충 마법사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능력자로 치면 유호영처럼 사대 원소를 다루는 능력자일 테고.

“그런 오크를 저기서 만들 수 있어?”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선조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오크. 즉, 선택받은 오크에게만 해당하지요.”

“선택받은 오크라. 그게 누군데.”

“적어도 황무지 오크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것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할 수 있겠지요.”

“아하.”

대충 감이 잡혔다.

특정 오크에게만 시련이 열리고 능력이 부여되는, 그런 건물인 모양이다.

황무지 마을 천막의 상위호환이랄까.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취익!”

“응.”

수레의 물건이 거래소 인벤토리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잡동사니로 추정되지만, 분명 도움 되는 물건도 있으리라.

“그만 방해해야겠군. 이제 가 볼게.”

“벌써 가십니까? 축제를 벌일 계획이었는데…….”

“축제는 나중에. 방심하면 안 돼. 이제 어둠만 걷어냈을 뿐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민성에겐 오크들의 축제에 참여할 계획이 없었다.

크라노돈의 고기로 벌였던 하위 차원의 축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축제를 기준으로, 오크는 급격하게 강성해지며 어마어마한 번식을 이뤄냈다.

보나마나 뻔한 결과가 정해졌다.

인간으로선 절대 참여해선 안 되는 축제였다.

“그럼 수고.”

주민성은 빠르게 광휘의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았다.

이것으로 인천의 거래소는 전부 활성화한 상태.

이제 남은 핵심 게이트는 안산뿐이다.

“읏차.”

운이 좋게도, 주민성은 정확히 잔해탑에 도착해 있었다.

근처엔 초월한 헬스장과 초월 편의점이 있었다.

초월 편의점 앞 테이블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가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며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어어?”

노아가 주민성을 포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요란하게 빛나는 광휘의 날개는 멀리서도 눈에 띈다.

‘여기가 문젠데.’

노아는 어디 한군데 묶어두는 게 손해였다.

주민성 세력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우튜버였으니까.

게다가 팬심도 한몫했다.

괜히 개입해서 분위기 좋게 잘 돌아가는 방송에 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대, 대장님! 잠시만 봐 주세요! 잠깐이면 돼요!”

“…음?”

저 멀리서 노아가 주민성에게 계속해서 소리쳤다.

카메라는 물론 노아에게 고정되어있다.

“잠깐만 출연해 주시면 안 돼요? 1분만요!”

“…….”

그렇다고 여기서 매정하게 노아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방송 분위기를 해칠 수 있었다.

주민성은 그대로 몸을 날려 지상에 착지했다.

“와아! 대박! 여러분은 못 봤죠? 방금 대장님이 뛰어내리셨는데 무슨 태양이라도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뒤이어 노아 특유의 호들갑 타임이 이어졌다.

“아앗? 저 살아 있나요? 지구 뿌셔지는 줄! 크으으!”

주민성은 침착하게 노아의 방송에 출연했다.

“반갑습니다.”

단 한마디의 인사.

조금 더 멘트를 붙일까 고민하는 사이, 채팅창에선 이미 반응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하

-ㄷㅈㅇ

-ㄷㅈㅇ

-DJU

한참을 영문 모를 단어와 자음들이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뒤이어 반응이 이어진다.

-설마 어둠까지 걷어낸거임?

-미쳤다. 이 정도면 탈 SSS급인데?

-근데 왜 얼굴 안보여줌 ㅋㅋㅋ복면 컨셉?ㅋㅋㅋㅋ

-빛면대장 ㅋㅋㅋㅋ

-ㄴㄴ 빛빛빛빛ㅋㅋㅋ

-빛형아…. 헤으응….

-ㅋㅋㅋㅋㅋㅋ악질 쳐내!

노아는 그런 채팅창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주민성에게 말했다.

“헤헷. 이제 빛빛 님이네요?”

“아이고. 과찬입니다….”

주민성은 빠르게 분위기를 살폈다.

지금은 평범하게 토크 방송 중이었는지, 외국인 채팅 비율이 상당히 낮은 상태.

확실히 손전등 하나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론 제격이다.

“그보다 대장님! 어둠을 거둬내셨는데 지금 상황에 대해서 뭔가 짚이는 건 있으신가요?”

노아가 눈치 좋게 핵심 질문을 건네 왔다.

확실히 좋은 질문이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전부 어둠에 휩싸인 상황이었으니까.

방금의 질문은 시청자들의 의문을 해결하고, 아군 세력의 메리트를 끌어올릴 수 있는 주제였다.

주민성 역시 어울려주는 쪽으로 선택을 굳혔다.

이제 거래소도 활성화되어 더욱 활발한 경제 활동을 유도해낼 수 있었으니까.

“네. 있죠.”

“오! 정말요? 혹시 제가 민감한 질문을 해버린 건 아닐까 걱정되는데요! 사알짝만 알려주실 수 있는 부분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이 어둠 현상만큼은 조금이나마 설명 가능해요.”

주민성의 대답에 채팅창이 미친 듯 갱신되기 시작했다.

“우선 이 현상에 앞서, 저는 최철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철진이요? 부산의 유명 능력자분과 이름이 같으신데요.”

“네. 그 사람 맞아요. 그 사람은 악마에 빙의된 능력자입니다.”

“아, 악마요?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요?”

어중간한 사람이 악마를 언급했으면 시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주제였다.

음모론자로 몰릴 수도 있었고.

하지만 방금 말한 사람은 주민성이었다.

서울의 실질적인 왕으로 주목받고 있는.

“네. 최철진 일당이 저희 쪽 핵심 시설을 노리고 대규모 습격을 해 왔던 사실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확실히 터무니없는 행보네요? 이유가 뭐였을까요?”

“서울엔 악마들이 원하는 시설이 존재합니다. 그중 녀석들이 원하는 핵심 시설을 저희가 보유한 상태였고요.”

“우와…….”

다시금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주민성은 마지막 기름을 부었다.

“최철진을 죽였습니다. 보통 악마는 아니었는지 그 순간부터 어둠이 사방으로 쏟아지더군요.”

“어어…….”

채팅창 의견이 극렬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주민성이 잘못했다며 비난해왔다.

“……일단 심각한 모욕성 발언은 밴할게요.”

“아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할 말 조금 남아서요.”

“아아, 넵.”

주민성에겐 그런 이들의 여론조차도 뒤집을 무기가 있었다.

“악마. 아직 더 남아있습니다.”

“세, 세상에…….”

“꽤 많이 세상에 녹아들었고요. 여러분들과 가까운 곳에도 있을 거예요. 처음부터 하나씩 설명해드리죠.”

주민성은 2차 대격변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와 유물의 인과 관계를 풀었다.

유물에 지배당해 버리는 능력자들의 사례까지.

“지금 살아계신 시청자분들도, 분명 어느 조직이든 속해있을 겁니다. 자신이 여태 알던 대장이 대장이 아니게 되었다면, 그리고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고 유물을 획득했다면. 높은 확률로 악마가 깃든 겁니다.”

“…….”

무거운 주제에 노아마저도 숨을 죽였다.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주의해야 하실 분들이라면, 자신의 대장이 급속도로 세력을 넓이는 경우. 그런 경우엔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악마가 깃든 겁니다. 이런 어둠과도 비슷한 이상 현상을 발생시킬 거예요.”

“…….”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이번에 할 얘기는 반드시 상기시켜야 했다.

“일살 길드장 하성. 그는 저희 쪽에서도 놓쳤습니다. 특히 위험한 인물로 판단되며, 서울 경기권을 쥐 잡듯이 찾아봤음에도 놈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지방에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맞서지 않아도 됩니다. 제보만 해주세요. 찾아갈 테니까.”

하성은 악마에 깃든 녀석 치고도 특이한 행보를 연이어 보이고 있었다.

주민성이 가장 경계하는 상대는 그런 이들이었다.

미래를 도모하는 진짜배기 빌런들.

“대, 대장님!”

노아가 당황하며 주민성을 만류했다.

그럴만하다.

이 방송엔 장난기 심한 시청자들도 상당히 많았으니까.

또한, 악마 입장에선 역으로 주민성을 노린 함정을 팔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득보단 실이 많아 보이는 정보 제공이었다.

“괜찮아요.”

평범한 능력자였다면 분명히 이 정도 수준의 제보 수집은 본인에게만 손해였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시간 역행과 건물주 능력만 있다면 어딜 가든 헛걸음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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