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빛 (2)
(228/250)
그저 빛 (2)
(228/250)
그저 빛 (2)
2022.07.17.
주민성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았다.
근력에 기반한 속도였다.
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옴마야!”
“히이이이!”
중년 부부는 주민성의 템포를 따라올 수 없었다.
속도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주민성에겐 지금의 속도가 건물 폭발력으로 날아가는 것보단 느렸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을 뿐이다.
“흐음. 방향이 조금 어긋났네요.”
지금은 하강 중이었다.
저 멀리 부천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몇몇 생존자들도 포착됐다.
인천에서 출발한 생존자들인 모양이다.
저마다 어둠 속에서도 손전등에 의지해 열정적으로 건물을 수색하고 있었다.
“괜찮겠죠. 조금 걸어도 되니까.”
부천에 발생한 게이트는 굳이 개입할 필요 없었다.
슬라임 게이트였으니까.
사상자도 크게 발생하지 않은 지역이었고, 생존자들과 오크 라이더에 의해 자연스럽게 인천 게이트에 통합됐다.
보스 몬스터인 킹슬라임도 처리된 지 오래다.
당시 후방을 담당하던 송몽룡이 대격변 첫날부터 처리했다.
“어! 대장님! 오랜만입니다!”
세탁기를 나르던 생존자가 주민성을 발견하곤 살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어두웠을 텐데 여기까지 오셨네요?”
“아아. 내비게이션에 손전등만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이럴수록 먼저 움직여야 배불리 먹을 수 있거든요!”
팔크라스 고기는 여전히 인기 있는 주력 상품이었다.
생존자들 덕분인지 중년 부부의 경계심도 크게 내려갔다.
눈치도 빠르다.
“대, 대장님. 물건 조금만 챙겨도 되겠습니까?”
“저도 지갑을 두고 와서…….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어느새 주민성의 호칭은 자연스레 대장이 되었다.
새로운 거처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해야만 한다는 것도 깨달은 모양이다.
“음. 그러면 다른 분들이랑 같이 복귀하시겠어요? 저는 바로 볼 일이 있어서.”
“아아! 그럼요! 이래 보여도 300kg 나가는 물건쯤은 거뜬히 들고 갈 수 있습니다!”
남편 쪽은 신체 강화 능력자였다.
확실히 생존에 유리한 타입 중 하나다.
주민성으로선 나쁠 것 없는 제안이다.
“그러세요. 여기 정착 비용 받으시고요.”
주민성은 부부에게 흔쾌히 정착 비용 500만 원을 건넸다.
그리고 동시에 이용료도 청구했다.
텐트는 이미 둘러매고 있었기에 과정은 간단했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배불리 먹고 씻고 자는 데 지장 없을 겁니다. 병치레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잘 지내 주시고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중년 남편의 눈빛에 강인한 의지가 깃들었다.
가족을 지탱하기 위한 가장의 눈빛이었다.
그렇게 중년 부부를 떠나보낸 주민성은 가볍게 점프해 주변 어둠을 거둬냈다.
“오호.”
그러고 보니 생존자들의 허리춤엔 비슷하게 생긴 봉제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생존자들간의 거래도 제법 활성화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털실류는 가격이 얼마 되지 않으니 재가공해서 파는 쪽이 이득일 테니까.
개선점은 생존자들이 알아서 찾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거주 구역의 경제는 주민성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순환된다.
주민성은 조금 우회해서 인천으로 향했다.
생존자들이 더욱 활동하기 쉽게 주변의 어둠을 거둬낸 것이다.
나름의 배려였다.
“뿌듯하네.”
인천에 도착했다.
조금 지체됐지만, 차량으로 이동했다면 아직 인천에 도착하지도 않았을 시간이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고깃집도 아니고, 컨테이너 촌도 아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음? 민성이?”
새롭게 만들어진 이수길의 관리 사무소였다.
“얘기는 들었다.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더구나.”
“직접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해야 할 일이 계속 늘더라고요.”
“무사. 건강. 이거면 됐지. 그보다 여기 들렀다는 건 이쪽에서 따로 할 일이 있어서겠네?”
“네. 맞습니다. 저 따라 안산부터 인천까지 고생 많으셨잖아요. 이제 보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응?”
주민성은 봉춘향과 신우빈처럼 이수길을 지역 대표로 올릴 계획이었다.
“이제 최상급 건물도 소유할 수 있거든요.”
“상급도 아닌 최상급이라……. 실제로 존재하는 등급이었다니…….”
“고대 등급부터 전설, 신화 등급까지 있는데 최상급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죠.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으음. 곧 1차 정산이긴 한데, 박 씨한테 맡기마. 중요도만 따지자면 네가 하는 일이 우선일 테니.”
“감사합니다.”
인력 사무소 식구들의 업무도 재편됐다.
그중 이수길은 안산과 인천을 오가는 총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안산에선 김 씨가, 인천에선 박 씨가 현장 관리자가 되었다.
한때 임진석에게 당해 주민성을 위협했던 최면 인부들 역시 나름의 보상을 받았다.
김 씨와 박 씨의 보조가 되는 것으로.
보조 인부 둘은 둘째치고, 인력 사무소 식구들은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생계까지 내려놓고 따라와 준 사람들이다.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하다.
오히려 앞으로도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여기예요. 아저씨.”
주민성과 이수길이 도착한 장소는 송도.
대격변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좋은 동네에 속했다.
“음? 여기에 최상급 건물이 있다고?”
“네. 정확히는 있었죠. 잠시만 뒤로 물러나 주세요.”
“그, 그래.”
지금은 폐허에 불과했지만, 지도에 따른 위치라면 이곳이 맞았다.
이곳엔 한때 송도의 가장 호화로운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센트럴 타워라는 초고층 타워가.
“시간 역행.”
[지정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쿠구구구……!
웅장하다.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1차 대격변때 소실된 센트럴 타워가 웅장하게 복구되기 시작했다.
“마, 맙소사……!”
쿠구구구구……!
무너지던 당시의 모습이 역재생됐다.
풍화되어 사라진 건축 자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타워와 합쳐졌다.
“내, 내가 보는 게 허상은 아닌 거지?”
“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고.
센트럴 타워가 복구됐다.
백삼 타워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전력 설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후우……! 선물 완성입니다!”
“……세상에.”
“앞으로 여기는 요충지가 될 거예요.”
센트럴 타워의 위치는 너무나도 좋았다.
인천과 안산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며, 바다와도 연결되었고 최선호의 해상 요새도 드나들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중국 능력자 세력의 침공에도 대비 가능하다.
“들어가시죠.”
“그, 그래…….”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다목적빌딩2가 추가됩니다.]
두 번째 초대형 타워, 다목적빌딩 소유권 획득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층이든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되고요, 1층만 조금 비워 주시면 돼요. 여기는 창고라서.”
“음? 창고라면 지하가 더 넓지 않아?”
“아아. 자리는 많이 필요 없어요. 인벤토리가 생길 거라서.”
“이, 인벤토리…….”
“네.”
주민성은 이수길에게 게이트 거래소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믿어지지 않는 능력이구나…….”
“그쵸? 이제부터 아저씨가 그 능력의 주인이 될 거예요. 받으세요.”
모든 과정이 하이패스였다.
이수길은 주민성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족들 중 한 명이었다.
[관리인이 지정되었습니다.]
[건물주 부재시 관리인이 해당 건물이 위치한 게이트의 지배 권한을 얻습니다.]
센트럴 타워 관리인.
그리고 안산&인천 게이트 총괄 관리자.
이것이 방금 갱신된 이수길의 호칭이었다.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주민성은 거래소 인벤토리에 15억 원을 입금했다.
“메시지 뜨셨죠?”
“허업!”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확인한 이수길의 눈이 커졌다.
“돈은 자유롭게 써 주세요. 한동안은 기존 창고 물품도 여기로 옮겨야 하니까 요긴하게 쓰일 거예요.”
이수길은 사람 쓰는 일의 전문가였다.
인력사무소장으로 쌓아온 경력만 해도 무려 수십 년.
베테랑중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었다.
“허허. 모처럼 돈 쓰는 재미가 있겠구먼.”
“그쵸?”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에 주민성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돈 쓰는 보람을 만끽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아서요.”
이수길은 푸근하게 미소 지으며 주민성을 배웅했다.
“민성아.”
“네?”
“……고생 많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평범하게 취업 코스를 밟아도 됐었지만, 능력자라는 꿈을 안고 험한 길에 도전한 주민성이었다.
그리고 이수길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래.”
마음 같아선 지금에 안주하고 싶었다.
근처라면 얼마든지 싱싱한 물고기도 낚을 수 있다.
이수길이 끓인 매운탕에 소주 한잔이면 그동안의 고생이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대격변은 끝나지 않았다.
“대격변 끝나면, 그땐 포쁠 소 한 마리 구해서 배터지게 먹어보죠.”
“그래. 한가해지면 연락도 좀 하고.”
“알겠습니닷!”
“녀석…….”
주민성은 장난기 어린 미소로 쾌활하게 답하곤 재빨리 광휘의 날개를 펼쳤다.
오늘 중에 모든 관리인을 임명할 계획이었다.
“와…….”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오크 타운이었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오크들의 건물 중에서도 최상급이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이리라.
그 순간, 경비를 서고 있던 오크가 경기를 일으키며 외쳤다.
“취, 취익! 일족의 영웅을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
처음엔 오크 테마파크, 혹은 오크 부족 마을로 기획되었던 장소였다.
하지만 바뀌었다.
현대 문물과 하위 차원 지배종의 문물이 섞이니 어마어마한 작품이 완성되어버린 것이다.
둥! 둥! 둥! 둥!
주민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근처의 오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북을 네 번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크와 어울리지 않는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천막 사이사이에서 오크들이 쏟아져 나와 도열했다.
“취익! 영웅을 뵙습니다!”
“취익! 영웅을 뵙습니다!”
척! 척!
오크들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근육 부피 때문에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지만, 오크들은 어마어마한 균형감을 발휘했다.
“그러지 말고 편하게 쉬어.”
“쉬어! 췩!”
척! 척!
오크들의 인사가 끝나고, 뒤이어 즈쉬와 즈민성이 주민성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취!”
“…….”
생존자들이 군부대라도 털었던 걸까.
저마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서열이 낮아 보이는 오크들일수록 높은 계급이 새겨진 군복을 입고 있다는 정도.
즈쉬와 즈민성은 가장 깔끔하고 헤지지 않은 이등병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오크들이 왜 이렇게 많아?”
“취이이……!”
주민성의 물음에 즈쉬가 은은한 분노를 삼키며 답했다.
“태양의 순례지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취. 나쁜 기운에 노출되면 나쁜 오크가 됩니다.”“…….”
태양의 순례지와 나쁜 기운.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대충 지구의 쓰레기들을 하위 차원에 투척해 하위 차원이 오염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터전을 잃은 오크. 이곳 희망의 땅에서 생을 이어간다. 취.”
즈민성이 투정하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 그렇군…….”
“하지만 오크는 용맹하다. 오래 걸리겠지만, 반드시 나쁜 기운 억누른다. 주술사들이 양성되고 있다. 취.”
다행히 여기 계속 머무르진 않을 모양이다.
새로운 악령을 태양의 순례지로 보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즈쉬가 눈치 좋게 물어왔다.
“응. 여기서 가장 좋은 건물 하나만 빌려 쓰고 싶어서.”
“가장 좋은 건물이라…….”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오크들 역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이 부분 역시 진작 보고된 내용이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됐다.
‘보고가 생각보다 더 축소되어 있었군.’
즈쉬의 안내로 도착한 오크 타운 최고의 건물.
그것은 온갖 토템이 진열된 초거대 천막이었다.
묘하게 주민성의 텐트를 닮은 디자인이다.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지잉.
“풉.”
웃으면 안 되지만, 자동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천막 구석구석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별의별 설비가 전부 갖춰진 천막이다.
내부로 발을 들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주술사 양성소가 추가됩니다.]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됩니다.]
[최상급 고대 건물 고유 능력이 발현됩니다.]
주술사 양성소는 최상급 고대라는 괴랄한 등급의 건물이었다.